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84화 (284/298)

< -- 인간 마을 자히알락에 들어서다 -- >

울렉치와 그 부하들이 전리품으로 늑대의 사체를 40구가 넘게 획득했다.

그들은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다들 기뻐하고 있었다.

세진은 그들이 그 사체를 어떻게 사용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비록 다른 것과 섞여 있기는 했지만 80%는 에테르로 이루어진 사체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승화가 되어서 형체가 흩어지고 남는 것은 거의 없을 터.

그런데도 사체를 굳이 말 등에 싣고 가는 것은 무언가 쓸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저기 빛이 보이는 것이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리가 앞쪽 지평선을 가리키며 세진과 자넷에게 말했다. 그리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대지 위에 환하게 밝은 빛을 머금은 공간이 있었다.

"생각보다 환한데? 뭘까?"

세진은 작아서 다른 사람이 듣기 어려운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은 대도시의 화려한 유흥가의 불빛을 연상시킬 정도로 밝았다.

세진은 어쩌면 이곳의 문명이 생각했던 것 보다는 발달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도시의 밤이 밝은 것은 그만큼 기술이 발달해 있다는 뜻인 것이다.

적어도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밤은 어둡기 마련이다.

'도착하면 알게 될 일.'

세진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울렉치를 따라서 말의 옆구리를 찼다.

그렇게 세진은 이면 공간 안에서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을 하게 되었다. 이미 울렉치가 세진 일행에 대한 이야기를 해 뒀기 때문인지 세진 일행이 울렉치와 함께 마을에 도착하자마다 부족의 족장과 원로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이들은 세진의 예상대로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이 분명했다.

건물이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자세히 보니 조립이 가능한 형태였다.

다만 그 규모가 몽고의 파오와는 차이가 있어서 그 몇 배는 되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나무와 가죽으로 2층 집까지 지어 놓은 것을 보며 세진은 확실히 이들의 문명 수준이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서 오게. 이방인. 그래 이름이 뭔가?"

세진과 자넷, 어리가 마을에서 제일 큰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기둥도 없이 넓은 홀이 있고, 그 홀에는 두꺼운 깔개를 깔고 사람들이 좌우 3열, 전면에 1열로 앉아 있었다. 모두 합치면 150명 정도가 될 것 같은 인원인데, 울렉치도 그 사이에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그 외에 울렉치와 함께 왔던 사람들 몇 명도 자리가 있었는지 알아서들 움직였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아예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세진은 입구쪽의 면에 자넷과 어리를 동반하고 앉았다.

전면에는 열다섯 명의 사람들이 있고, 좌우에는 한 줄에 스무명이 넘는 인원이 각각 세 줄씩 여섯 줄이다.

그 모두의 시선이 세진 일행을 향하고 있었다.

세진은 전면 중앙에 앉은 사내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세진, 자넷, 어리. 자넷은 내 아내. 어리는 여동생."

물론 세진의 말에서 알아들은 것은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며 말한 이름 뿐이다.

아내라는 말이나 여동생이란 말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세진은 일단 신분을 명확히 밝히고 셋이 모두 깊은 연관이 있는 관계임을 알리려고 했다.

"세진. 좋다. 우리 말을 알아듣는다고 했지? 확실한가?"

세진은 다시 이어진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척박한 곳에 무슨 일로 그대와 같은 이방인이 나타난 것이지 모르겠다. 이곳은 우리 인간들에게도 저 마가스에게도 그다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그대들의 모습을 보면 험한 삶을 살지 않은 이들로 보인다. 그런 그대들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하군. 하지만 설명을 할 수 없을 테니 간단히 묻겠다. 그대들은 자의로 이 땅에 왔는가?"

세진은 그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자의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자의가 아니다. 그렇다면 뭐라 답을 해야 하는가?

세진은 잠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이면 공간에 들어온 것은 자신들의 의지였다. 세진의 대답에 사람들은 잠시 웅성거렸다.

대충 들어보면 이곳에 무슨 볼 일이 있을까 하는 정도의 의구심이었다.

"그럼 다시 묻겠다. 이것은 굳이 확인을 할 것도 없겠지만 그대들은 누구의 자식인가? 하늘의 자식인가? 땅의 자식인가? 누구를 섬기는가?"

세진은 이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실내에 모여있던 이들이 모두 웅성웅성 떠들기 시작했다.

당연한 답이 나와야 할 때에 답이 나오지 않으니 놀란 것이다.

"어째서 대답이 없는 것인가? 스스로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인가?"

어머니야 잘 알고 있는 세진이다. 지금도 영구 회복 캡슐의 해택을 받고서 테멜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밭농사에 취미 를 붙여 얼굴이 까맣게 그을려 있을 분이다.

세진은 자주 뵙지는 못해도 간혹 들러서 인사를 하곤 한다.

세진은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손을 하늘로, 땅으로 가리키며 둘 다 고개를 저었다.

"뭔가 모른다는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아니란 것인가?"

부족장은 너무 급한 나머지 세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질문을 이어서 했다.

그리고 실수를 깨달았는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하늘과 땅, 그 중에 어디에 속하지는 모른다는 것인가?"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웅성거림은 더욱 커진다.

"그러하면 마가스가 땅에 속함을 모르는가?"

세진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마가스가 땅에 속함을 안다는 것인가?"

세진은 자신이 대답을 잘못 한 것을 깨닫고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니!"

"족장. 저 사람의 표정을 보니 이전 질문에 답을 잘못 한 듯 합니다. 모른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는데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하니 저리 당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 족장의 곁에 있던 늙은이가 족장을 만류했다.

족장은 서른을 조금 넘은 듯 보였지만 다른 이들은 대부분 장년을 넘어 노년에 들어간 이들이었다.

세진은 그것을 보고 족장을 뽑을 때에 혈연이거나 혹은 특별한 능력을 기준으로 뽑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저리 젊은 사람이 족장이 되어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다시 질문을 하지 마가스와 한 핏줄이 아닌 것은 분명한가?"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면 그대들이 우리 자히알락에 머무는 동안에 우리에게 해를 끼칠 어떤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가?"

세진은 물론이고 자넷과 어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분명 하늘의 자식들이 분명한데, 스스로 그 어머니를 모른다니 참으로 이상하군. 하지만 마가스는 아닌 것이 분명하니 마을에서 머무는 것을 허락하겠다. 그리고 마을의 손님이니 먹고 마시는 것을 세 달 동안 책임을 져 주겠다. 그 동안에 스스로 마을의 공동체가 되어 도움을 준다면 이곳에서 계속 머물며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나, 그렇지 못하다면 자히알락을 떠나서 스스로 홀로 서야 할 것이다."

세진은 족장의 판결을 듣고만 있었다.

그러면서 족장 좌우로 앉아 있는 이들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세진이 생각하기에도 족장의 판결은 정말 주먹구구식이었다. 몇 마디 물어 본 것도 없으면서 이방인을 마을에 살게 허락을 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금 더 많은 질문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족장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그는 서둘러서 자리를 뜨고 싶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마치 식으면 맛이 없는 음식을 먹다가 두고 나온 사람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세진 일행이 족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족장은 마을 전체 회의를 마친다는 선포를 하고는 곧바로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가 뒤쪽에 있는 문으로 나가고 나서, 홀에 있던 이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울렉치가 세진에게 다가와서 세진 일행을 건물 밖으로 끌고 나갔다.

"저 하늘바탕에서는 족장 없이는 의사 결정을 하지 못하지. 그러니까 족장이 없을 때엔 그곳에 오래 머물면 안 되는 거야."

우렉치가 밖으로 나와서 세진에게 설명을 했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 자히알락에 머물게 되었는데 어떻게 할 거야? 먹고 자고 할 곳이 없잖아. 이번에도 땅을 파고 들어갈 건가?"

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마을 안에 벽돌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어리가 테멜 안에 가득 가지고 있는 흙으로 벽돌 블럭 형태로 만들면 그것을 쌓고 끼워 맞춰서 건물을 올리면 될 일이었다.

안전한 곳에 있으니 며칠 정도면 충분히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내가 따로 거처를 구해 줄까?"

세진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울렉치의 소매를 잡고 마을을 걸었다.

그러다가 마을 외곽에서 빈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응? 아 저기에다가 살 곳을 마련하겠다고? 그건 곤란해. 저긴 쓸 사람이 있어. 이리와, 필요한 것이 공터라면 내가 내어주지."

울렉치는 세진의 뜻을 알아차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세진 일행을 끌고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간 후에 울렉치는 넓은 공터 앞에 세진 일행을 데리고 갔다.

"여기, 여기를 쓰면 될 거야. 내 가족들이 쓰는 곳이지만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은 일이니까 상관없어."

세진은 그 공터가 일종의 운동장 비슷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수련을 위한 장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따로 무슨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을 외곽으로 가면 이런 공터 정도는 얼마든 있다. 그러니 이곳을 내어준다고 울렉치가 크게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았다.

"마음에 드나? 좋다고? 그럼 다행이네. 그럼 어떻게 할지는 몰라도 여기서 알아서 해 보게. 나는 가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오지. 아, 곧 사람들이 몰려 오게 될 거네. 새로운 마을 손님에게 관심이 있으면 조금씩 먹을 것을 가지고 올 거야. 필요한 것은 불을 피워서 그들이 음식을 할 수 있는 숯을 만드는 것인데, 자넨 나무도 없으니 그것도 내가 해 주지. 기다리게."

울렉치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가버렸다.

세진과 자넷, 어리는 어둑한 공터에 남아서 잠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자, 그럼 일단 하룻밤 잠을 잘 텐트라도 만들어 보자. 어리야 가능하지?"

"걱정 없는 것이에요. 천을 만드는 것이 조금 문제긴 하지만 어리는 응용력이 좋은 것이에요. 덩어리로 만들어서 넓게 당겨서 펼 수 있는 소재로 만드는 것이에요. 뼈대를 세운 후에 그것을 뼈대에 발라서 씌우면 되는 것이에요."

"음, 그거 저번에 어떤 행성에서 주민들이 쓰던 거잖아. 그런데 그거 물에 약하지 않냐?"

"여긴 건조한 곳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룻밤은 괜찮은 것이에요. 이슬도 많지 않으니까 걱정 없는 것이에요."

어리는 세지의 걱정을 일축했다.

"뭐. 그게 제일 편하긴 하지. 그 위에 비닐 같은 걸 코팅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어리가 고생을 좀 하면 되겠네."

"아, 맞는 것이에요. 다 만든 다음에 물을 막을 수 있는 용액을 만들어서 발라주면 되는 것이에요. 역시 언니는 머리가 좋은 것이에요."

자넷이 약점을 보완할 방법을 이야기하자 어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곤 곧바로 어리가 텐트의 뼈대가 될 금속 봉을 만들어 내고, 그것들을 이어서 뼈대를 만드는 일은 세진과 자넷이 함께 했다.

그 뒤에는 어리까지 힘을 모아서 신축성이 좋은 흑갈색의 불투명한 덩어리를 손에 잡고서 길게 늘이는 일을 했다.

뼈대의 한 쪽에 덩어리를 고정시키고 그 뒤에는 조금씩 잡아 당겨서 뼈대가 된 금속 봉 위로 붙여 나가는 작업이었다.

이 신기한 덩어리는 두께의 차이에 다른 신축성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쉽게 끊어지거나 뚫리지도 않는 튼튼한 것이어서 한 주먹으로 충분히 텐트의 한 쪽 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효용성이 좋은 소재였다.

다만 물에 약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어리는 물을 막을 수 있는 액체를 만들어서 커다란 페인트 붓으로 스윽 스윽 발라주는 것으로 약점을 보완했다.

그렇게 세진과 자넷이 D형 텐트를 완성했을 무렵, 울렉치가 명 사람과 함께 나무와 그릇, 곡물 자루, 말린 고기 같은 것들을 들고 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세진 일행이 만들어 놓은 텐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와, 벌써 집을 지었어?"

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집이 아니야? 그럼, 잠시 쉴 곳인 거야? 저게?"

세진은 고개를 끄덕 거렸고, 울렉치는 텐트가 무척 신기한 모양인지 자꾸만 눈길을 줬다.

"음, 가죽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저런 건 어디서 나온 거지?"

울렉치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았던 세진 일행이 어디에서 텐트를 꺼낸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술법을 익히고 있는 건가?'

울렉치의 눈빛이 이전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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