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79화 (279/298)

< -- 베일을 벗겨 세상으로 끌어내다 -- >

"디퀴피드, 그걸 초대형으로 만들어서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커버할 수 있도록 하고, 그걸로 이면 공간을 찾아내는 거야. 디퀴피드의 탐색으로 폴리몬들의 등장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그럼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탐색할 수 있다면 놈들의 근거지도 찾을 수 있을지 몰라. 그게 아니라도 에테르의 흡수 범위가 엄청나게 넓어질 테고, 또 다른 작은 디퀴피드들을 포기하더라도 그거 하나로도 충분히 에테르 정화를 할 수 있지 않겠어?"

"클리르에 있던 규모로 디퀴피드를 만들자는 거야?"

"응, 그래."

세진은 자넷의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초대형 디퀴피드 그것은 확실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

어찌어찌 다른 소형 디퀴피드가 파괴되는 일이 생겨도 결국 초대형 하나를 지켜내면 어떻게든 에테르 정화를 계속할 수 있을 테고, 결국 행성 코어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래. 해 보자.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수라도 써 봐야지."

세진은 결국 초대형 디퀴피드의 건설을 결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폴리몬들의 공격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폴리몬들은 소규모로 흩어져서 계속 공격을 해 왔다.

폴리몬들은 공간 이동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렇게 나타난 폴리몬들은 도망갈 길이 없었다. 올 때에는 순간 이동으로 왔지만 돌아가진 못했던 것이다.

즉, 어디선가 만들어진 폴리몬들이 순간 이동을 통해서 지구 여기저기에 뿌려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점점 희생자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이 죽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결국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죽고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두 명이 서너 명이 되고, 열 명이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것이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피부에 닿을 정도가 되면 그 때부터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폴리몬의 공격 초기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몇 달간 지속된 공격으로 적잖은 희생자가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공포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디퀴피드가 없는 곳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디퀴피드가 주된 공격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디퀴피드 주변에 새로 인간들의 거주 구역이 텅텅 비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세진의 근거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에서도 공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어차피 세상에는 몬스터가 없었다.

있다면 간혹 나타나서 세진과 싸우는 폴리몬들이 있을 뿐이다. 그것만 피하면 위험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젠 굳이 떼를 지어 도시에서 아웅다웅 몰려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소규모로 무리를 지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떠났다.

그렇게 되니 결국 폴리몬과 싸우는 것은 세진과 일부 인간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세진은 그와 같은 현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류에 대한 회의가 가슴에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지구의 인류를 지켜야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데, 내가 그들에게 굳이 고삐를 씌울 이유가 있나?'

이런 생각이 세진의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어리가 쉬지 않고 작업을 한 끝에 새로운 디퀴피드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따로 먼 곳에 건설하지 않았다.

서울 강남에 곰녀를 만들었듯이 이번에는 강북 전체를 갈아엎으면서 초대형 디퀴피드를 건설했다.

어리는 최대한 기존에 있던 건물들을 살리면서 디쿠피드를 만들었다.

사실 디퀴피드의 대부분은 땅 속에 묻혔다.

지상이 아닌 지하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리 혼자서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실 행성 코어의 눈을 피해 보자는 의도도 있었다.

가능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지만 어리가 지하에서 작업을 하면 어쩌면 행성 코어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곰녀가 에테르 동결로 주변을 장악한 상태에서 어리가 작업을 했기 때문에 비밀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한층 컸다.

세진은 새로 태어난 초거대 디퀴피드에게 '왕검'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곰녀의 짝으로는 왕검이 좋을 듯해서 지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왕검의 탄생 이후 한 달, 왕검이 온전히 제 몸에 적응을 하고 최초로 지구 전체에 대한 탐색을 하는 날이 왔다.

"곰녀와 다른 동족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 왔던 탐색 작업을 이젠 제가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까?"

세진은 왕검이 초거대 디퀴피드라서 다른 디퀴피드들과 다른 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왕검은 그의 동족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에테르 동결이나 흡수의 범위가 넓어지고, 기운을 움직이는 양에서 다른 디퀴피드와 차원이 다른 규모라는 것만 빼면 차이가 없었다.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더 효율적인 것도 아니었다.

딱 규모만 커진 것뿐인 것이다. 그 때문에 세진은 약간 실망을 했다.

"그래. 그거야.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탐색을 해 줘."

"알겠습니다."

왕검은 세진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어차피 디퀴피드의 존재 이유가 에테르 생명체의 박멸이고 디퀴피디의 완전한 복원이었다.

세진의 요구가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의 싸움을 위한 것임에야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왕검은 자신이 태어나기 얼마 전에 몇 명의 동족이 폴리몬이란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의 싸움에서 희생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지구 전체의 디퀴피드와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한 유일한 디퀴피드인 것이다.

왕검은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탐색을 시작했다.

- 으아아아. 싫은 것이에요. 곰녀와 왕검이 동시에 이러는 것은 아닌 것이에요.

어리가 왕검의 에테르 동결이 시작되자 앓는 소리를 했다.

디퀴피드의 탐색이 중첩되어도 어리에게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 하나가 탐색을 하거나 둘이 겹치거나 어리가 받은 영향은 같았다.

그럼에도 어리는 탐색 자체가 싫어서 엄살을 부리는 것이다.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왕검이 눈을 뜨고 세진을 보았다. 왕검은 곰녀와 달리 남성체의 모습으로 현신체를 만들었고, 그것도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20대 중후반 정도의 기품 있는 한국인의 모습. 세진이 보는 왕검은 딱 그런 느낌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없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동족들이 찾았던 묘한 기운의 흐름과 다른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왕검은 그렇게 말했고, 세진은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결국 디퀴피드도 이면 공간은 찾지 못하는 건가?"

"사실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탐색의 목적이 모호합니다."

왕검은 그렇게 말했고, 세진도 그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디퀴피드들이 발견했던 에너지의 이상 현상들은 이미 세진이 모두 확인을 했다. 그런데 지금 왕검은 지구 전체에서 그것들과 다른 형태의 이상 현상은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디퀴피드의 탐색으로 이면 공간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거나, 혹은 이면 공간이 없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이면 공간이 없을 수는 없었다.

분명히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행성 코어가 어디에 숨어 있다는 말인가.

세진은 실의에 빠져서 어리의 테멜 안으로 돌아왔다.

"무슨 수로 행성 코어와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의 은신처를 찾지?"

세진은 다시 고민에 빠졌고, 자넷은 물론이고 상황을 전파 받은 테멜 안의 모든 사람들이 무너진 기대감에 허탈한 심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바로 그거다!"

며칠 동안 어리 홀에서 칩거하고 있던 세진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응? 무슨 일이야?"

자넷이 깜짝 놀라서 세진 곁으로 다가왔다.

"지금, 이주민들 중에서 꽤나 현실성 있는 추측이 나왔어."

세진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리 홀에 어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리는 이미 세진과의 정신 연결로 세진이 방금 어리가 들었던 내용을 알고 있음을 았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자넷만 궁금해서 세진을 독촉했다.

"자, 이렇게 생각을 해 보자. 어딘가에 이면 공간이 있어. 분명히 있고, 그것은 특별한 기운을 지니고 있을 거야. 그렇지?"

"응. 그렇겠지."

"자, 그런데 지구 전체를 탐색해서도 못 찾았어. 그럼 왜 그럴까? 분명히 이면 공간이 있다는 가정에서 생각을 해 봐."

세진의 말에 자넷은 열심히 궁리를 해 본다.

이면 공간은 있다.

그런데 지구 전체를 탐색해도 못 찾았다.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이면 공간이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것이 답일 수는 없다.

"행성 코어는 행성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아. 알잖아. 여기 지구에 있어야 하는 거라고."

자넷은 세진에게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거란 추측은 말이 안 된다는 뜻으로 말했다.

"맞아.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은 그게 아니야. 다시 하자. 이면 공간이 있어. 그것도 지구에 있지. 그런데 지구 전체를 탐색해도 찾을 수가 없었어. 왜 그럴까?"

"탐색에 걸리지 않으니까 그렇잖아. 디퀴피드가 탐지하지 못하는 거겠지."

"디퀴피드는 사소한 에너지의 뭉침도 탐지가 가능해. 그런데 이면 공간 같은 거대한 에너지 이상을 알아내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될까?"

"하지만 상황이 그렇잖아. 왕검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뭘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왕검이야. 그래서 그래."

"뭘 찾는지 모른다고? 그게 더 말이 안 되지. 무조건 에너지의 이상이 있는 곳이면 모두 찾았어. 하지만 이면 공간은 없었다고."

자넷은 세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왕검이 찾는 범위 전체에 이면 공간이 있으면?"

세진이 그렇게 자넷에게 물었다.

"뭐?"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공간, 그리고 지구 전체를 뒤덮은 이면 공간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그, 그렇게 되면 왕검이나 누구나 특별하다고 느끼는 에너지 이상이 없다는 거야?"

"전체 속에서 이상을 찾는 거잖아. 통째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거지. 왕검은 이면 공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까 탐색 범위 전체가 그가 찾아야 할 대상인데, 그 안에서만 찾고 있으니 찾을 수가 없지."

"그럼 세진 생각은 행성 코어가 있는 이면 공간이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는 거란 말이지?"

"그래.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 밖에 답이 없어. 그리고 그건 아마도 8등급 이면 공간이거나 그 이상의 이면 공간이라고 봐야겠지. 행성 코어는 지구 크기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거야."

자넷이 입을 딱 벌렸다.

그건 상상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던 것이다.

지구 전체를 뒤덮은 이면 공간.

지금까지의 이면 공간은 일정 범위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공간이 확장되는 형태였다.

그런데 지금 세진은 이면 공간 자체의 넓이가 지구 전체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자넷은 말도 되지 않는 규모에 일단 놀랐지만 또 그것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정말 그 정도 규모의 이면 공간이 있다면, 지금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에테르 기반 생명체가 있을까? 지금까지 1등급에서 최고 7등급의 이면공간까지 경험을 했지만 그것은 지금 자넷이 상상하는 것과는 댈 것도 아니었다.

"어, 어쩔 거야?"

자넷이 물었다.

"들어가야지. 이면 공간으로."

세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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