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디 있니? 여기 있니? -- >
결과적으로 이면 공간은 없었다.
"이면 공간을 모두 철수한 것도 그렇고, 중첩 이면 공간을 모두 파괴해도 반응이 없는 것도 그렇고, 도대체 이 행성 코어는 무슨 생각인 거지?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그래서 어쩔 거야? 디퀴피드는?"
자넷이 곰녀의 활용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지 세진에게 물었다.
"물론 더 건설을 해야지. 그리고 그 디퀴피드들이 지구 전체를 탐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그래서 일단은 수시로 확인을 해야지. 우리가 확인을 해 본 곳은 기껏 서울을 중심으로 반경 700Km 안쪽일 뿐이잖아. 거기다가 더 중요한 것은 디퀴피드로 지구 대기 중의 에테르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거야."
"아, 그래. 그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어떻게 하려고? 어리에게 계속 받아들이게 할 거야? 난 그게 궁금했어."
자넷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물론 어리도 에테르를 받아들이면 좋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국 지구의 기운을 어리가 계속 먹어치우는 결과가 되잖아."
"그야 그렇지."
"그럼 나중에는 지구가 그만큼 약해지게 될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에테르를 정화해서 지구로 돌려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거야. 어리에게 필요한 에테르는 다른 행성에서 얻어 올 수도 있어. 조금씩 모으면 되지."
"하지만 어떻게?"
"쉽잖아. 프락칸이나 깝딴에게 곰녀가 모은 에테르를 정화하라고 하는 거야. 농도가 낮은 에테르를 정화하는데 비효율적인 힘을 쓰고 있는 프락칸과 깝딴들에게 효과적으로 힘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거지."
"아,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럼 프락칸과 깝딴들이 계속해서 번갈아 가면서 정화 작업을 하면 되겠네?"
"그런 거지. 계획대로 되면 지구 대기중의 에테르 농도는 점점 낮아질 거야. 적어도 행성 코어가 에테르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많이 정화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래서 더 많은 디퀴피드와 프락칸과 깝딴이 필요하게 되는 거지."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행성 코어도 언젠가는 힘을 모두 잃고 맥을 못 쓸 거 아냐."
자넷이 반색을 했다.
"거기다가 이번에 발견한 진법하고 마법진의 마나 집적진을 합쳐서 에테르를 끌어 모으는 구조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어. 디퀴피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놀고 있는 프락칸과 깝딴들이 효과적으로 정화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지."
"그거 다르게는 못 쓰는 거야? 에테르를 끌어 들인다면서 그럼 그 자체를 어떻게 이용할 방법은 없을까?"
세진은 정화에 신경을 쓰는데 자넷은 그 에테르를 이용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지구의 인류들은 에너지 문제로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었다.
물론 세진에게 예쁨을 받는 도시나 지역에 사는 이들은 그런대로 풍족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 나머지 대부분의 도시나 마을들은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세진도 지구 전체의 도시와 마을을 일일이 신경을 쓸 수는 없는 일이고, 세진이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구하지 않으니 테멜의 이주민들도 세진이 이뻐하는 도시들에나 관심을 보일 뿐, 다른 곳에는 신경을 덜 쓰는 편이다.
그래서 자넷은 그런 도시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미웠다가도 측은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 자넷은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며 어느 정도 미움이 희석된 모양이었다.
"그건 곰녀가 모으는 에테르에는 꿈도 못 꿀 일이야. 규모가 너무 커. 물론 곰녀에게 작은 범위에서 에테르 흡수를 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따로 마법진과 진법을 사용하는 것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 문제가 있다면 이게 아주 곤란한 건데 말이 야."
"응? 뭐가 문젠데?"
"안테르가 있는 곳에서는 쓸 수가 없다는 거? 그게 제일 문제지."
"아하, 그렇구나. 그건 심각하네. 그럼 에테르 집적진으로 에테르를 모아도 전기를 만드는 용도로는 쓸 수가 없는 거네?"
"규모를 크게 해서 어떻게 수를 내면 에테르 집적진에서 에테르를 이용해서 열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열 에너지를 안테르의 범위 안으로 보내서 그곳에서 전기 에너지로 전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겠지. 효율이 많이 떨어지긴 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전기하고 에테르가 상극이니까 그런 문제도 생기네. 하여간 안테르를 사용하는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가 나뉘게 될 수도 있겠어."
"연방하고 연합의 차이가 생기는 거겠지. 연방의 과학은 전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고 데블 플레인의 문명은 에테르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거라서 차이가 있잖아.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는 전기가 아주 제한적으로 쓰이지?"
"음, 그러네. 정말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좀 더 시간이 흘러서 지구 전체의 에테르 농도가 떨어지게 되면 다시 안테르 없이도 전기를 쓸 수 있게 될 거야. 그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지."
"선택의 문제네. 전기 없이 에테르를 풍족하게 쓰려면 에테르 집적진을 사용하면 되는 거고, 전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안테르를 가동하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거고 말이야."
"뭐 그런 거지."
세진은 심드렁한 대꾸를 하고 있었지만 내심으로는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로 나누어진 지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우주 연방과 데블 플레인 연합이라는 좋은 예가 있어서 상상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진은 아무래도 데블 플레인 연합 쪽의 문명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쪽이 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쯧, 난 역시 빌딩숲 보다는 한적한 전원생활이 어울리는 사람인 모양이네. 큿."
"갑자기 뭐라는 거야?"
"아니. 아니야. 자, 그럼 이제부터 다시 행성 코어를 찾기 위한 작업을 시작해보자. 디퀴피드를 어떻게 어느 규모로 세워야 지구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보자고. 이제 남은 씨앗이 49개 밖에 없어든."
"꼭 규모를 일정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바다를 커버해야 하는 경우라면 될 수 있으면 크게 하나 지어서 몽땅 맡겨 버리고, 사람들이 많은 지역이라면 조금 작게 만들어서 여럿으로 나누어 놓는 것이 좋겠지. 그래야 혹시라도 습격을 받아도 한꺼번에 부서지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겠어?"
"여럿으로 분산하느냐 아니면 하나로 모아서 지키느냐의 문제겠지."
"그래도 프락칸들이 에테르를 정화하는 것을 생각해도 조금씩가 나눠서 하는 것이 좋잖아. 괜히 큰게 지었다가 모여드는 에테르를 감당하지 못하면 어쩌겠어?"
"그거야 다음부터는 반경 50Km 정도로 정해서 그 안에서 흡수를 하는 걸로 해야지. 전에 100Km은 솔직히 좀 과했지."
세진은 곰녀의 에테르 흡수 실험을 생각하고 살짝 인상을 썼다. 자칫했으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문제였다.
곰녀도 그렇게 될 것은 예상을 못했다니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진땀이 났던 경험이었다.
세진은 내친 김에 곰녀 디퀴피드에게 범위를 좁혀서 50Km정도 범위에서 에테르 흡수를 시켜봤고, 그것을 김혜인 박사를 비롯한 프락칸 실력자들을 데리고 가서 정화하는 실험도 해 봤다. 그 시도는 확실히 성과가 있었다.
프락칸 30명 정도가 힘을 합치면 100Km범위에서 몰려드는 에테르까지 정화를 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곰녀가 전력을 다해서 에테르를 모아도 30명의 프락칸이 힘을 쓰면 정화가 가능한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렇게 전력을 다해서 정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두 시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 결과 곰녀에게 열두 팀의 에테르 정화 팀이 배정이 되었다.
거기에는 프락칸 30명에 깝딴 10명이 하나로 묶여 있었다.
프락칸이 깝딴보다 정화 능력이 더 뛰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깝딴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무언가 공헌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고 소외가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큰 차이기 있는 일이다.
때문에 세진은 누구에게나 일거리를 안겨주려고 배려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리는 일거리가 넘쳐서 매일같이 투정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어리는 너무 힘이 드는 것이에요. 디퀴피드 마흔아홉 개를 만들라고 하는 건, 정말 너무 과중한 업무인 것이에요. 어리도 여유를 가지고 쉬고 싶은 것이에요."
"그러면서 어리 테멜 안에 떡하니 만들어 놓은 디퀴피드는 어쩔 거냐? 테멜에는 별 필요도 없는 거잖아. 행성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인데 그걸 어쩌려고 그래?"
자넷이 어리에게 핀잔을 준다.
어리가 어리 홀 바로 가까이에 디퀴피드를 떡하니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걱정 없는 것이에요. 어리의 테멜에는 에테르가 가득한 것이에요. 그리고 지금까지 프락칸과 깝딴들이 연습하면서 정화해 놓은 기운들도 많이 있는 것이에요. 지구의 기운 이외에도 다른 행성들의 여러 기운이 섞여 있지만 그래도 상관없는 것이에요. 디퀴피드는 그것으로도 충분히 가동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디퀴피드는 그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에요."
"세진 알고 있었어?"
자넷의 화살이 세진을 향한다.
"그야, 뭐... 어차피 어리 테멜이 곧 우리들의 삶의 터전이잖아. 그러니까 여기도 에테르 정화를 위한 장치 하나 정도는 있어도 좋겠다 싶었지."
"그건 어리가 할 수 있잖아. 테멜 안의 에테르를 모두 다른 곳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지 않아? 에테르 청정지역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디퀴피드가 필요해?"
자넷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하지만 어리가 에테르를 정화하진 못하지. 그리고 에테르를 생산하지도 못하고 말이야. 하지만 디퀴피드가 만약에 온전히 성장해서 정화 능력을 지니게 되면, 에테르 정화 능력은 확보가 되잖아. 어리가 아니라 디퀴피드가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건 프락칸과 깝딴들이 해 주는 일이잖아."
"유비무환. 뭐 그런 거지. 만들어 둬서 손해를 볼 일은 없잖아."
"그야..."
자넷은 굳이 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실랑이를 벌일 문제는 아닌 것이다.
모든 일은 어리가 하는 건데, 자넷이 나서서 해라 마라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어리가 엄살을 피우며 투덜거리는 것이 얄미워서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나저나 이건 정말 어디에 숨었을까? 그냥 드러내고 있었으면 우리가 찾아도 벌써 찾았을 텐데 말이지."
세진의 관심은 다시 행성 코어로 향했다.
디퀴피드는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선 한반도 지역 서울에 만들어 놓은 디퀴피드를 중심에 놓고 어떻게든 빈 곳이 생기지 않도록 디퀴피드를 건설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두 번째로 디퀴피드가 세워진 곳은 중국이었다.
대충 탐지 범위가 겹치는 것을 계산해서 디퀴피드는 산시성의 임주시 근처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미 국가의 결속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세계 정부를 거쳐서 지금은 그저 지구의 어느 지역, 어느 도시 정도로 구별을 하는 상황이어서 세진이 그곳에 디퀴피드를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고 나서는 이들은 없었다.
어차피 사람들이 살지 않는 땅을 골라서 공사를 시작한 것이어서 이후에 근처 도시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일자리를 얻기는 했어도 공사를 놓고 시비를 거는 일은 없었다.
사실 인력이 거의 필요 없는 일이지만 사람들이 일자리를 원하니 세진은 그들의 바 람을 들어 주었다.
그 때문에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들까지 디퀴피드 공사 현장에 나와서 건설 인부로 일을 하곤 했다.
세진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능력자들을 위한 사냥 기회를 더 늘려야 하는지 고민을 했다.
지금도 모랜에서 사냥을 하는 이들은 많았다.
어리가 추리고 추려서 지원을 받아서 사냥을 시키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각 도시별로 필요한 에테르 코어의 수급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능력자들의 수련에는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뭐가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많은지. 떱."
세진은 인류의 대몬스터 전투 능력을 보존 향상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쨌건 사람들을 고용하는 바람에 조금 공사 속도가 느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디퀴피드 건설 현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응? 어디 한 번 숨어 봐!"
세진은 행성 코어를 향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제 에테르 정화가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행성 코어도 결국 모습을 드러내게 될 거라고 세진은 믿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