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76화 (276/298)

< -- 어디 있니? 여기 있니? -- >

곰녀가 흡수하면서 모은 에테르 덩어리는 어리가 위험을 감수하고 테멜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어찌어찌 정리가 되었다.

하지만 예상 보다 어리 테멜의 피해가 컸다.

테멜 자체가 테멜 코어의 에테르로 유지가 되는 것인데 갑작스러운 에테르 폭풍이 테멜 안에서 몰아쳤으니 적잖은 피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넓고 넓은 어리 테멜의 일부가 파괴된 것에 불과했고, 그것도 그렇게 유입된 에테르를 어리가 흡수해서 북구하고도 남는 양이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흡수 실험의 문제를 봉합한 후에는 어리가 정말로 싫어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 어리는 정말 싫은 것이에요.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니까 어쩔 수 없이 참는 것이에요.

사실상 어리의 감각이 극도로 무뎌지는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어리의 반응도 이해하는 세진이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 일이었다.

"700Km 정도는 된다고 했지?"

"네.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부탁을 할까? 뭘 찾는지는 알지?"

"테멜을 찾는 것 아닌가요?"

곰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테멜을 찾는 것이 당연한데, 이 행성에선 테멜이 약간 다른 형태로 만들어져 있어. 테멜 보다는 좀 더 감지 하기가 편한 형태일 거야."

"그런가요? 일단 찾아보기는 하겠지만 어떨지 모르겠네요."

곰녀는 자신이 없다는 표정으로 에테르 동결에 이은 탐지를 시작했다.

- 으아아, 느낌이 이상한 것이에요. 마치 늪에 가라앉고 있는 것 같은 것이에요. 어리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것이에요.

어리가 엄살을 피우며 세진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파닥거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곰녀가 에테르 동결을 풀고 눈을 떴다.

"어떻게 되었지?"

세진이 조급한 마음에 물었다.

"몇 곳, 이상한 기운이 있는 곳을 찾기는 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테멜과는 전혀 달라요. 테멜은 하나도 찾지 못했어요."

곰녀는 뭔가 찾았지만 테멜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세진은 그래도 뭔가 찾았다는 데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이면 공간은 아직 곰녀도 경험을 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어떻게 설명을 해 줄 길이 없었는데, 만약 지금 찾은 것 중에서 이면 공간이 있다면 다음부터는 이면 공간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이상하네?"

'그런데 갑자기 자넷이 고개를 갸웃 거렸다.

"응? 뭐가?"

"아, 그게 말이야. 지금 테멜을 하나도 못 찾았다고 하는 거잖아."

"그야 그렇지."

"그거 클리르 행성에서도 그랬잖아."

"응? 뭐가?"

"클리르 행성의 디퀴피드도 테멜을 못 찾았다고."

"무슨 소리야? 클리르 행성에선 테멜을 완벽하게 감시하고 있었는데?"

세진은 자넷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렇지. 하지만 그건 테멜을 감시한 것이 아니라 테멜의 입구를 감시한 거였어. 그래서 클리르에서도 어리가 테멜 입구를 열지 않으면 테멜이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했잖아."

"어?"

- 맞는 것이에요. 어리의 테멜은 입구를 닫아 놓아서 디퀴피드도 알지 못했던 것이에요. 물론 입구를 열어도 주변 에테르를 조작해서 들키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디퀴픠드가 테멜 자체를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테멜의 입구를 감지한다는 것이에요. 그런 것이었어요.

"정말 그러네? 실제로 테멜이 아니라 테멜의 입구를 탐지하고 감시하는 거였어."

"그게 문제인 거야. 이렇게 되면 이면 공간이 있어도 탐지를 해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왜냐면 이면 공간은 테멜에 가까운 형태지 테멜 입구와는 전혀 거리가 멀거든."

"이런, 정말 그런데?"

세진은 자넷의 말에 허탈한 표정이 되었다.

디퀴피드는 테멜의 입구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의 변화를 감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숨겨진 공간인 테멜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쪽 행성들의 테멜이 무조건 입구가 열려 있다는 것 때문에 테멜 입구를 찾고 감시하는 능력을 테멜을 찾고 감시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들이 테멜의 입구를 찾고 감시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다른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에요. 에테르 동결을 이용한 탐색으로 그 이면 공간인가 뭔가 하는 것을 찾을 수 없다고 장담하지 마세요. 지금 알려드린 몇 곳을 먼저 확인하고 오시는 것이 어떤가요?"

그 때, 곰녀가

'나 삐쳤어요.'

라는 표정으로 한 마디 쏘아 붙였다.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폄하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한 모습이었다.

'생명체는 생명체야. 저렇게 토라지는 것을 보면.'

세진은 그 모습에서 이런 쓸데없는 감상을 잠깐 가졌다.

"그럴 수도 있겠네. 일단 확인부터 하자. 테멜 입구는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곳은 찾았다니까 그곳에 어쩌면 이면 공간이 있을지도 모르지."

자넷이 그렇게 제안을 했고, 세진과 자넷은 어리의 테멜로 들어가서 곧바로 이동을 했다.

혼자 남겨진 곰녀는 뭔가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는 듯이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진과 자넷은 곰녀가 찍어준 위치를 돌면서 하나하나 확인을 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면 공간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흥미로운 몇 가지 것들을 찾을 수 있었는데,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지형, 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얽혀서 에테르나 기(氣)를 끌어 모으는 곳들을 발견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세진의 관심을 끈 것은 인공적으로 무형의 에너지를 가공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것들 두고 진법이라고 하는 걸까?"

"응? 무슨 소리야?"

자넷이 세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그들은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와 있었는데 곰녀가 찍어 준 장소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서 세진이 기감을 끌어 올려서 자세히 살펴보니 자연의 기운과 에테르가 한 곳으로 뭉치면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묘하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자넷도 그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저기 있는 바위하고, 저쪽에 있는 언덕, 그리고 여기 땅 밑에 박혀 있는 몇 개의 돌기둥으로 기운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는 거야. 거기다가 저 안쪽에는 뭔가 이렇게 흘러 들어가는 기운을 끌어 들이는 것이 있어."

"그게 말이 안 되잖아. 지금도 계속해서 흘러 들어가는 기운인데,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정도로 모였으면 어마어마 할 텐데? 여기가 만들어진 것이 어디 한 두 해가 되었겠어?"

자넷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그게 신기하긴 하네. 일단 들어가서 살펴보자."

세진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거 자연적으로 미로를 만들어 놓았네. 그러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공포심도 일으키고 자칫하면 환각도 보여주겠어. 일반인은 고사하고 익스퍼트 정도의 실력자라도 통과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마스터는 되어야 버틸 수 있겠어."

세진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쉽게 들어가는 거 아냐?"

자넷이 세진의 곁에서 팔짱을 끼고 매달리듯 따라오며 웃는다.

"어허!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런 소리를! 당신 남편은 능력자라고!"

"응. 그래 인정해 줄게. 자긴 능력자야. 응."

오랜만에 닭살 멘트를 나누면서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 몇 걸음 옮기자 세진과 자넷은 동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볼 때는 그거 막다른 산기슭 정도로 보였는데 제대로 길을 따라 걸어 들어오니 계곡의 안쪽에 있는 동굴로 연결이 된 것이다.

"저건가?"

세진이 동굴 입구에서 들어온 기운들이 얽혀 있는 곳을 보았다.

그것은 커다란 옥석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대한 옥석 하나가 동굴 바닥에 놓여 있었는데, 세진은 그것이 빙산의 일각처럼 위로 나와 있는 부분보다 땅에 묻혀 있는 부분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옥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기운 때문에 그 돌의 크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우와, 커다란 산봉우리 하나가 묻혀 있는 것 같은데? 이렇게 큰 돌이 어떻게 여기 있는 걸까? 설마 이걸 누가 묻어 둔 것은 아니겠지?"

자넷이 설마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공교롭긴 하지만 설마 그렇진 않겠지. 여기에 이 돌이 있는 것을 누가 발견하고 여기를 숨기기 위해서 밖에 있는 진을 설치한 것이 아닌가 싶어."

"응, 그런가? 그래도 대단하네. 그런데 저 돌 말이야 좀 이상하지?"

자넷이 옥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옥돌으 표면은 푸석푸석하게 변해서 조금씩 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응. 이상할 수밖에 없지. 저건 지금 지구의 기운과 에테르가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어. 그래서 저렇게 조금씩 부서직 있는 거지. 원래 저 옥석은 지구의 기운만 받아 들이던 놈이었을 거야. 그런데 대기 중에 에테르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이를테면 병이 들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런 것 같은데?"

"응,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저 돌 뭐지?"

자넷은 돌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것은 세진도 마찬가지여서 아까부터 옥석을 통과한 기(氣)의 흐름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옥석의 역할을 알 수 있었다.

"기운을 받아 들여서 그것을 다시 대지로 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야. 땅 속 깊은 곳으로 기운을 불어 넣으면 땅 속을 흐르는 기의 흐름에 추가가 되는 거지. 음, 그런데 문제가 있긴 하네."

"뭐가?"

"빌어먹을 쪽바리 놈들이 박아 놓은 철심들이 그 땅 속 기의 흐름을 막고 비틀어 놓고 있어. 그 철심들이 이를테면 동맥 경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거지."

"철심? 그건 또 뭐야?"

자넷은 세진이 말하는 철심을 알지 못했다.

"하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 일본 놈들이 우리 나라를 점령하고 있으면서 우리 땅 곳곳에다가 철로 만든 봉을 박았어. 지금도 간혹 발견이 되는데 그거 제대로 뽑기도 어렵지."

"응? 땅에 왜 철심을 박아?"

"지금 말했잖아. 그게 땅을 타고 흐르는 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막고 또 끊어 놓는 거야. 그런다고 한반도의 기를 모두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었나봐. 지금 여기 옥석이 받아들여서 땅 속 깊은 곳으로 흐르는 기운에 힘을 더해 주는데, 그것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흘러가다가 저기쯤에서 막혀서 요동을 치고 있어. 딱 거기에 철심이 박혀 있는 거지."

"우와, 그래? 그 놈들 정말 나쁜 놈들이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데?"

"아오, 한참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거 또 보고 있으니까 열이 받네."

"참아. 지금 일본 지역은 말도 아니잖아. 다른 곳도 그렇지만 특히 일본은 프락칸이나 깝딴의 활동도 없어서 어렵게 살고 있다고."

자넷이 폭발할 것 같은 세진을 달랬다.

"두고 보겠어. 어디 두고 보다가 여기서 철심들 뽑아다가 거기다가 하나씩 박아 주겠어.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하지만 세진은 쉽게 마음을 풀지 않고 후일을 기약했다.

"어쨌거나 여기도 이면 공간은 아니네. 참, 어리야."

- 어리 여기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두 분이 저를 잊은 줄 알았던 것이에요.

어리가 세진의 어깨 위에서 날개를 살짝 퍼덕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래. 미안하다. 저 돌 때문에 좀 놀라서 깜빡 했다."

- 어리는 마음이 넓으니까 이해하는 것이에요.

"음. 그래. 그럼 여기 안테르 하나 설치할 수 있을까?"

- 안테르 설치 어렵지 않은 것이에요.

"그래. 그럼 부탁하자.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잊지 말고 안테르가 멈추지 않도록 관리 도 좀 해 주고. 여긴 꽤나 중요한 장소인 것 같으니까 말이다."

- 알겠는 것이에요. 어리가 신경 쓰는 것이에요. 세진은 안테르를 이용해서 옥석으로 들어오는 기운 중에서 에테르를 막아 주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이곳의 옥석이 에테르와 기의 충돌로 훼손되는 것은 막을 수 있고, 또 더 많은 기운을 대지로 정화해서 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건 그것이 작게는 지리산과 크게는 한반도는 지구에 유익할 것은 분명했다.

"자자, 나머지 장소들도 돌아보자. 곰녀가 기다리겠네."

세진은 어리가 안테르를 설치한 후에 곧바로 다른 장소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