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디 있니? 여기 있니? -- >
그녀는 디퀴피드의 심처에서 세진과 자넷, 어리를 맞이했다.
"어떤가요? 제게 전해진 기억들 중에서 가장 호감이 갈 만한 몸을 만들었어요. 괜찮은가요?"
그녀는 세진과 자넷, 어리 앞에서 팔을 벌리고 한 바퀴 회전을 해 보이며 자신의 몸을 자랑했다.
"누구의 기억인지 모르지만 편향된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자넷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팔각정 디퀴피드의 몸은 여성 인류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세진이 보기에 그렇게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뭐, 여성의 미에 대한 기준은 같은 인류라도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니까. 저 모습은 딱 그건데? 다산의 축복을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의 미인형이야."
세진은 그렇게 팔각정 디퀴피드의 외모를 평가했다.
- 아, 본 적이 있는 것이에요.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것이에요. 풍만한 다산의 상징. 그래서 족장 부인이라고 했던 것이에요.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최고의 미녀라고 했었던 것이에요.
셋의 반응이 이렇게 나오자 팔각정 디퀴피드의 현신체는 자넷과 세진, 어리의 반응이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살짝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120Kg는 될 것 같은 드럼통 몸매를 지닌 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과거 시대나 미래의 어떤 때라면 몰라도 적어도 현시대에 미녀라고 불러주기엔 힘든 외모였다.
다만 얼굴의 이목구비는 뚜렷해서 얼굴 미녀는 가능할 것 같았다. 조금만 살을 빼면 확실히 보기 좋은 얼굴이 될 터였다.
"이 모습이 별로인 모양이군요. 하아, 어쩌죠? 우리들은 한 번 만든 몸을 바꾸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이왕이면 보기 좋은 모습이 되려고 고심한 결과 인데 아쉽네요."
디퀴피드는 정말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녀가 전승한 기억 속에는 그런 모습이 대부분 미녀의 기준에 부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디퀴피드들이 있는 행성은 대부분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 생존을 다투는 전장이고,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많은 행성민들은 다산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희생이 많으면 많이 나아서 보충을 해야 하는 것이 전투를 생활로 여기는 이들의 공통된 습성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팔각정 디퀴피드의 선택은 세진 일행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외모가 또한 세진 일행에게 의미가 큰 것도 아니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너의 외모를 보고 너를 판단할 것도 아니니까."
세진은 간단한 한 마디로 그녀의 고민을 불식시켜 줬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나 저의 종족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 있나요?"
이제 막 태어나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의 동족들에 대해서 물었다.
"응? 그거야 네가 알아야지. 우린 너를 구성하는 건축물을 만들고 거기에 네가 될 디퀴피드의 씨앗을 넣은 것 뿐이야. 그 이상은 우리도 아는 것이 별로 없지."
"그렇군요. 결국 지금 제가 전대 디퀴피드에게 받은 지식 이외에는 저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해 주실 것은 없다는 건가요?"
"무얼 알고 있고, 모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우리가 너를 만든 이유는 네가 이 행성의 대기에 있는 에테르를 정화해 주길 원해서야. 물론 내 예상대로라면 너는 아직 에테르 정화는 할 수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세진은 이전에 만났던 노인과 노파 디퀴피드의 말을 통해서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디퀴피드도 에테르 정화라는 궁극적인 기능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대신에 이번에 만든 디퀴피드는 스스로 성장해서 결국 에테르 정화에까지 이를 수 있을 거라고 클리르 행성의 디퀴피드들이 장담을 했었다. 물론 그것은 세진의 생각에도 아주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아, 맞아요. 나는 아직 정화를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에테르를 이용해서 탐지를 하거나 혹은 에테르를 흡수해서 모으는 것은 가능해요."
"그거 말이야. 에테르를 모아서 가공하는 것도 가능한가?"
세진은 그것이 궁금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에테르 코어나 그와 유사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아, 그건 할 수 없어요. 어쩌면 그런 것이 가능하게 되어야 궁극적인 흡수 기능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아직 그 방법은 모르고 있어요."
"그럼 동결을 이용한 탐지, 그리고 흡수까지가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거네?"
"맞아요. 그래요."
"좋아. 그럼 탐지 범위는 어느 정도 되지?"
세진이 본격적으로 디퀴피드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
"아, 잠깐 세진. 그 전에 저 디퀴피드에게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하는 거 아냐? 지구에 오직 저 디퀴피드만 건설할 것이 아니라면 이름이 있어야지."
"음? 그런가? 하긴 적어도 열 개 정도의 디퀴피드를 건설할 생각이니까 이름이 필요하긴 하겠네."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정해 준다면 고맙게 받겠어요. 내 기억에 의하면 틸터 디퀴피드가 내 전대 디퀴피드였던 모양이지만 틸터 디퀴피드라는 형식으로 불리는 것 보다는 좋은 이름이었으면 해요."
푸짐한 인상의 여인이 기대감 넘치는 눈빛으로 세진과 자넷, 어리를 바라본다.
세진은 그것이 굉장한 부담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웅녀하자. 웅녀."
"웅녀?"
"단군왕검의 마누라, 그러니까 우리 한민족의 시조 할머니 이름이 웅녀시지. 곰녀. 곰 여자."
- 좋은 것이에요. 곰녀. 마음에 드는 것이에요.
"그래. 그게 좋겠네. 웅녀 보다는 곰녀가 더 나을 것 같아. 어쩐지 외모를 보고 정하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자넷이 살짝 곰녀가 될 운명의 여자의 눈치를 봤다.
"뭐. 일단 어리야 여기."
세진이 어리에게 신호를 주자 허공에 커다란 곰의 모습이 나타났다. 가슴에 초승달 무늬가 있는 반달가슴곰이었다.
"이게 곰이야. 그리고 곰녀는 이 곰을 닮았다는 의미에서 붙이는 이름이야. 물론 깊이 들어가면 이 곰이 인간이 되어서 이후에 단군 왕검이라는 우리 민족의 조상과 결혼을 해서 우리들의 시조 할머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지. 아무튼 그래서 네 이름은 곰녀로 하자."
"좋아요. 곰녀. 그 곰이란 동물도 마음에 드네요. 푸짐하게 생겼어요. 그리고 어차피 나는 어딜 돌아다니지도 않고 특별하게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을 테니까 저를 찾아오는 몇몇 사람에게만 불릴 이름이잖아요. 그러니까 뭐가 되어도 크게 상관은 없어요."
곰녀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너무나 태연했다. 조금의 애상감이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면 외롭거나 처량하지 않을까?"
자넷이 곰녀를 보며 물었다.
"우린 오래 살고, 또 그 긴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온전한 디퀴피드의 완성과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박멸, 그것을 이루기까지 우리 디퀴피드들은 쉴 틈이 없어요. 그런 감상적인 생각은 이후에 모든 것을 이룬 다음에 해도 될 일이죠."
곰녀는 자넷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세진은 그런 곰녀의 반응에 그녀가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조금 다른 감성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 한 쪽에서는 디퀴피드가 역시 기계적인 장치게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떨쳐 버렸다.
디퀴피드가 거대한 건축물로 만들어졌지만 곰녀가 태어남으로서 이미 물건이 아니라 생명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굳힌 것이다.
"좋아. 아까 질문으로 돌아가서 지금 감지 범위나 흡수 범위는 어느 정도 되는 거지? 그걸 조절할 수는 있나?"
세진이 다시 곰녀에게 아까 하다가 말았던 질문을 던졌다.
"확인을 해 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파악한 바로는 감지 범위는 반경 700Km정도가 될 것 같아요. 하지만 흡수는 100Km가 한계일 것 같네요."
"음, 탐색에 대해선 이미 클리르 행성에서 확인을 했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럼 그 에테르 흡수를 한 번 해 볼 수 있나?"
세진은 일단 디퀴피드의 에테르 흡수 능력을 시험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 효율이 좋다면 지구 전체의 에테르를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디퀴피드를 건설하거나 혹은 씨앗이 허락하는 최대한의 디퀴피드를 건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알았어요. 처음이라서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해 볼게요."
곰녀는 세진의 요구를 선선이 허락했다.
그리고 동시에 팔각정 디퀴피드를 중심으로 반경 100Km 안쪽 공간에서 에테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디퀴피드를 중심으로 태풍이 생긴 것처럼 에테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다른 것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데 유독 에테르만이 디퀴피드의 영향을 받아서 움직였다.
- 멋진 것이에요. 세면대에서 물이 빠지면서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처럼 그렇게 에테르가 디퀴피드로 끌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에요. 그 때문에 소용돌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우우우웅 우우웅.
스즈즈즈즈즛 스즛 스즛.
"어머, 저거 봐. 저게 에테르야?"
그리고 동시에 석실 중앙에 굉장한 기운이 몰려 들어와서 뭉치기 시작했다.
"음, 에테르 맞는 것 같은데? 저거 위험하지 않을까? 벌써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 코어 정도의 에테르가 뭉쳤는데?"
세진은 굉장히 빠르게 몰려드는 에테르에 내심 놀랐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곰녀도 위험하다 싶으면 흡수를 멈추지 않을까?"
"그렇겠지."
- 엄청난 에테르가 디퀴피드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에요. 어마무지한 것이에요.
어리는 여전히 기운의 흐름을 민감하게 살피면서 중계를 해 주고 있었다.
"아, 저 그런데 어쩌죠?"
그 순간 곰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일행을 쳐다 봤다.
"응? 무슨 일이지?"
"저기 에테르를 흡수해서 모으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를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걸 언제까지 모으고 있어야 하죠?"
"적당히 모은 다음에 멈추면 안 되나?"
세진이 다수롭게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흡수를 멈추게 되면 그 순간 여기 모은 에테르가 한꺼번에 풀려 날 텐데요?"
"응? 뭐라고?"
'
"흡수를 중단하면 그 때까지 모았던 에테르가 한꺼번에 풀려 버린다고요."
곰녀가 조금은 다급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게 얼마나 여유가 있는데? 지금처럼 계속 모으면?"
"한 시간도 못 버틸 것 같아요."
"한 시간이 지나면 여기 모인 에테르가 한꺼번에 폭발을 한다는 거야?"
"아마도요."
"하! 아니 그게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잖아. 적어도 흡수한 것을 유지는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세진이 버럭 화를 냈다.
"저기 세진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 흡수를 당장이라도 멈춰야 하는 거 아닐까? 벌써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 코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응? 아! 그렇지. 일단 멈춰야 하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 이 근처의 에테르 농도가 급속하게 올라가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데? 대기 중에 에테르 농도가 그렇게 높으면 돌연변이는 물론이고 에테르 감염이 되어 죽을 수도 있다고."
세진은 입술이 바짝바짝 타는 것을 느꼈다.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좋은 생각이 났어."
"응? 무슨?"
세진이 자넷을 똑바로 쳐다봤다.
"어리야, 그거 있지? 간이 테멜 게이트."
"테멜 게이트?"
"그거 있잖아. 테멜이 아니라 게이트만 약식으로 만들었던 거."
"그게 왜?"
"한 쌍 중에서 하나를 여기다 설치를 하는 거야. 그래서 여기 모인 에테르를 그대로 어리의 테멜 안으로 옮겨 버리는 거지. 어때? 가능할까?"
세진은 잠깐 생각을 해 봤다.
"어리야. 지구의 에테르 성질에 맞춰서 테멜 게이트를 한 쌍 만들어 볼 수 있을까?"
- 어려운 것이에요. 어리는 복사는 몰라도 개조는 아직 어려운 것이에요. 하지만 곰녀가 모은 에테르를 해결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응? 어떻게?"
- 그냥 테멜 입구를 열어서 옮겨 버리면 되는 것이에요. 지금 상태는 안정적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상태에서 테멜로 옮기는 것은 가능한 것이에요. 대신에 테멜로 들어가자마자 에테르가 폭발적으로 흩어질 것이에요. 그게 문제지만 괜찮은 것이에요. 피해가 없을 곳으로 옮겨서 터트리를 것이에요.
"위험한 것 같은데?"
- 어리가 책임질 수 있는 것이에요. 피해가 생겨도 새로 생긴 에테르로 복구를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걱정 없는 것이에요.
"음,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해 보고. 다음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시도해 봐야겠다. 참, 곰녀. 혹시 에테르 흡수 범위를 정할 수 있어? 조금 더 축소하는 거 말이야."
세진은 일단 급한 불을 먼저 끄기로 했다. 그리고 곰녀에게 에테르 흡수 범위를 조절할 수 있는지 물었다.
"네. 조절할 수 있어요."
"그럼 흡수를 하는데 제약 같은 것은 없나? 너도 지구의 에너지를 쓴다고 하지 않았나?"
"괜찮아요. 이곳 행성의 에너지는 굉장히 질이 좋아요. 그래서 저는 별로 힘들지 않아요. 그리고 제 몸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요. 잘못 만들어진 곳이 없어서 에너지 효율도 아주 좋아요."
곰녀는 팔각정 디퀴피드가 무척 만족스럽다는 듯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