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디 있니? 여기 있니? -- >
세진은 디퀴피드의 외형을 거대한 팔각정의 모양으로 만들었다.
물론 단지 외관을 치장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서양식 석조 망루를 올린 피라미드 형태는 세진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디퀴피드가 완성되고 나서 그 바깥쪽을 팔각정 모양으로 손을 본 것이다.
그 물론 팔각정의 크기가 지름 2Km는 아니다. 그 넓이는 디퀴피드의 기초와 지하에 뻗어 있는 뿌리 부분까지 모두 포함한 넓이일 뿐이고 팔각정은 커다란 빌딩 정도의 규모였다.
세진은 자넷과 어리 앵무를 데리고 팔각정 안쪽으로 들어갔다.
안쪽의 통로는 처음 들어온 사람을 길을 잃기 딱 좋을 정도로 복잡하게 갈래가 지어 져 있었다.
원래 설계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어리가 미로 형태를 구현해 놓은 것이다.
- 이리로 가는 것이에요. 어리 앵무가 앞장서서 세진과 자넷을 안내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디퀴피드의 씨앗을 안치할 공간이었다.
- 여기에 씨앗을 넣은 후에 이곳은 봉인을 해서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도 발아하는 것을 볼 수 있겠지?"
세진이 내심 기대를 가지고 중얼거렸다.
"보긴 해야지. 확인도 하지 않고 나가서 기다리자면 답답할 거야."
자넷도 씨앗을 안치만 하고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자, 그럼 어디 해 볼까?"
세진은 씨앗이 놓일 위치를 가늠했다.
디퀴피드의 씨앗 역시 테멜 게이트를 지날 때에 에테르 코어를 허공에 끼워 맞추는 것처럼, 그렇게 허공에 자리를 잡고 놓으면 되게 되어 있었다.
이미 디퀴피드가 완성이 되어서 미묘한 에너지, 즉 기(氣)라고 할 수 있는 지구 본연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다.
그 힘을 받아서 디퀴피드의 씨앗은 중력을 무시하고 허공에 떠 있게 되는 것이고, 그 이후는 세진이나 다른 외부인의 간섭이 소용이 없는 단계가 된다.
거기까지가 세진이 노인과 노파 디퀴피드에게 들었던 내용의 전부였다.
디퀴피드의 씨앗이 언제 어떻게 발아를 해서 한 명의 디퀴피드로 태어나게 되는지는 확실히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건물에 묶여 있는 존재들. 자신들이 태어난 이후는 기억하지만 그 전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들을 태어나게 해 준 놈들에게 물어 보면 알았을 걸, 그런 것도 하난 안 물어 보고 뭐 했나 몰라."
"세진이 이제 새로 태어나는 디퀴피드에게 이야길 해 줘. 그럼 이후로는 디퀴피드들로 자신들의 탄생에 대해서 알게 되겠지."
- 맞아요. 그런 것이에요. 후손들은 선대의 기억을 이어받는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해 주면 나중에 이 디퀴피드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탄생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에요.
"그것도 그걸 후대에 물려 줄 정보로 지정을 할 때 이야기겠지. 그 노인과 노파가 기억을 이어받지 못한 것처럼 또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행성에 하나나 둘 밖에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괜찮을 거야. 지구에 있는 디퀴피드들이 서로 교류를 하며 지내면 클리르 행성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그런가?"
- 그런데 연방과 연합에선 디퀴피드를 거대하게 만들어서 행성마다 하나씩만 두려고 하는 것 같던데 참 아쉬운 것이에요.
어리가 연방과 연합의 디퀴피드 건설 계획을 떠올리고 말했다.
"워낙 행성의 수가 많으니까 우리가 준 씨앗이 고작 150개였잖아. 부족하니 어쩔 수가 없는 거지. 그래도 한꺼번에 만들지 않고 일단 만든 다음에 시험을 해 본다고 했으니 어떻게 될 지 모르지."
"그것도 그렇겠다. 세진 말대로 새로 만든 디퀴피드가 정화를 할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는 별로 소용이 없는 거잖아. 어쩌면 건설 계획이 백지화 되는 건 아닐까?"
자넷이 걱정을 했다.
"그 부자 연방에서 그럴 일은 없지. 혹시 모를 안전 장치를 하는데 그 정도의 비용 쯤은 충분히 감수하고 남을 걸? 그게 아니라도 세바스가 모두 가지고 가서 써 먹을 거야. 그 인간 그걸로 씨앗을 얻어서 나중에 디퀴피드 분양 사업을 하겠다고 했었잖아."
"호호호. 그건 정말 획기적인 사업 계획이었어. 일단 경쟁 업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지분에서 월등하게 앞서 있으니까 말이지. 제대로 되기만 하면 엄청난 사업이 될 거야."
"뭐, 그렇다고 하고. 저거 조금씩 변하는데?"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허공에 떠 있던 디퀴피드의 씨앗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원레 디퀴피드의 시앗은 단순한 에너지 덩어리로 구슬처럼 생겼다.
하나의 색으로 특정 지을 수 없이 다양한 색으로 휘도는 엄지 손톱 크기의 구슬이 디퀴피드 씨앗의 모습이었다.
그것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는데 세진과 자넷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디퀴피드 몸체로부터 받아들인 행성 에너지를 흡수해서 증식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실뿌리가 자라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윽, 좀 물러나야겠는데?"
세진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디퀴피드의 씨앗 때문에 급히 몸을 피했다. 그것은 솜사탕처럼 가는 실이 풀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급격하게 팽창을 하며 공간을 가득 채워 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 저거 봐."
하지만 이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한히 늘어나서 석실 전체를 채우고 넘질 것 같았던 그것들이 벽에 닿으면서 녹아내리듯이 흡수가 되기 시작했다.
- 모두 벽으로 흡수가 되고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까지 정확하게 살피고 있었다.
어차피 디퀴피드의 씨앗은 물질이라기 보다는 에너지에 가까웠다. 그것이 확 풀어지면서 디퀴피드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틈으로 스며들고 결국 건물이 만들어 낸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보면 디퀴피드라는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컴퓨터라고 봐도 되는 걸까?"
세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거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과 비슷한 것 같은데?"
자넷도 디퀴피드를 그렇게 파악했다.
- 하지만 디퀴피드는 스스로 하나의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에요.
"뭐 내가 보기엔 씨앗은 운영체계인 것 같은데? 디퀴피드란 컴퓨터 본체를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그걸 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그 역할을 씨앗이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인간이라고 뭐 달라? 두 개의 세포가 만나서 무한 증식을 하면서 점처 커지는 거잖아. 거기에 방향성을 제시해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들이고 말이야. 우린 그렇게 태어나지만 디퀴피드는 좀 다를 뿐이지. 몸을 다 만들어 놓고 거기에 정신이 깃드는 형태일 뿐이잖아. 우리 인간이야 자 라나면서 조금씩 교육과 학습을 통해서 운영 체계를 익히는 것이 차이가 있는 거지."
자넷은 그래도 디퀴피드를 기계로 대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뭐 이 세상에 이런 생명체가 있다고 인정하면 되는 거지. 굳이 따질 것 있겠어?"
세진도 자넷의 의견에 따라 주기로 했다.
디퀴피드가 아니라 연방의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세진은 굳이
'인간이 아니다.'
'기계일 따름이다.'
하면서 차별을 하거나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이젠 세진은 그런 형태의 생명체도 있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주의 여러 행성들을 경험한 것이 세진을 그렇게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느새, 석실은 다시 처음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석실 안쪽은 이전에 씨앗을 놓기 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겉보기엔 같은 모습이지만 에너지의 흐름이 확연히 달라져서 다시 씨앗을 올려놓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에너지들이 벽과 바닥 천정을 타고 흐르긴 하지만 실내의 빈 공간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세진과 자넷, 어리는 다시 석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거 어째야 하나? 이 디퀴피드는 제대로 가동을 시각한 것 같은데, 에테르의 동결, 흡수, 정화 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지?"
"원래 그건 디퀴피드와 의논을 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자넷이 세진의 말에 그럴 듯한 추측을 내 놓았다.
"그래. 그렇겠지. 그럼 이 디퀴피드는 어디서 찾나? 어이! 들리나? 우리가 네게 생명을 줬다. 그러니 나와서 인사라도 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세진이 빈 석실에서 고함을 질렀다.
우우우웅. 우웅. 우웅. 그러자 석실의 벽에서 희미한 빛이 나면서 묘한 떨림이 생겼다.
"이거?"
세진은 그 현상을 보면서 디퀴피드가 반응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으음. 지금 당장은 나올 수 없는 거 아닐까?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자넷이 한국어가 아닌 연방 공용어를 사용해서 말했다.
우우웅 웅.
그러지 곧바로 디퀴피드의 반응이 왔다.
"한국어는 모른단 말이지? 그러니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한 거고?"
우우웅. 웅.
"좋아. 그렇다고 하자. 그런데 지금 당장은 우리 앞에 나올 수 없는 건가?"
우우웅, 웅.
"지금 나올 수 있다고?"
웅웅. 웅웅.
"나올 수 없다고?"
우우웅, 웅.
- 긍정은 우우웅, 웅. 부정은 웅웅, 웅웅. 이것인 것이에요.
어리가 디퀴피드의 반응을 분석해서 답을 내 놓았다.
우우웅, 웅.
"그런 것 같네. 디퀴피드도 그렇다고 하는 것 같고. 자, 그럼 디퀴피드에게 시간을 좀 줘야겠지? 세진 어때?"
"뭐. 그래야지. 그럼 하루 정도 시간을 주면 될까?"
웅웅. 우웅.
"이건 뭐 스무고개를 해야 할 상황이네? 자, 디퀴피드 잘 들어. 앞으로 필요한 시간이 열흘 이상이면 긍정 아니면 부정 표현을 해 봐."
세진이 그렇게 디퀴피드와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디퀴피드는 앞으로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에는 될 수 있으면 외부에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몸에 적응하는데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고 또 지구의 에너지를 디퀴피드 전체에 골고루 펼치는데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단다.
그 시간이 지나면 노인 디퀴피드가 그랬던 것처럼 디퀴피드 내부에선 자유롭게 자신의 몸을 만들어서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진은 디퀴피드의 성공적인 탄생을 위해서 보름 정도는 기다려 줄 아량이 있었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에 지구 인류는 세진과 어리에 의해서 분류되고 재배치 되었다.
호주에서는 세진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사라졌고, 대신에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이나 힘을 세진과 어리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빈 몸으로 가족들과 함께 다른 대륙의 도시로 옮겨지는 이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고 반대로 호주로 옮겨지는 이들의 수도 많았다.
차이가 있다면 호주로 옮겨지는 이들에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제공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곳보다 훨씬 나은 생활환경이 제공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재배치하는 동안에 세진의 눈밖에 나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이전처럼 신청을 통해서 몬스터 사냥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냥터는 당연히 어리의 테멜 안이었다.
사흘 단위로 사냥을 떠날 사람들을 뽑고, 그들에게 모랜의 일부를 개방해서 사냥을 통해서 에테르 코어를 얻을 수 있게 했다.
지금 당장은 에테르 코어만한 에너지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세진은 에테르 코어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목줄을 쥐고 있는 것 같아서 목에 가시가 걸린 기분이었지만 당장 사람들에게 에테르 코어를 그냥 줄 수도 없고, 사람들의 몬스터 대항 능력을 유지시켜 줄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뽑아서 사냥을 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디퀴피드와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부터 세진과 자넷, 어리가 디퀴피드의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