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73화 (273/298)

< -- 어디어디 숨었니, 머리카락 보일라 -- >

세진은 덱터에그로메에서 디퀴피드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세진과 자넷이 침입하기 쉽게 틈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 긴 시간 이야기를 할 것도 없이 노인 디퀴피드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다며 상자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역시 100개의 씨앗이 들어 있었고, 그 외에 자신이 지금까지 디퀴피드의 원형을 복구하기 위해서 연구했던 내용을 아낌없이 내어 놓았다.

어차피 그들은 스스로 번식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의 손을 빌려서 건축물이 만들어져야 생명을 지니고 번성할 수 있게 변해버린 종족이었다.

때문에 세진에게 내어 주는 씨앗도 그 중에 얼마나 디퀴피드로 태어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한 기대로 세진에게 씨앗을 전해 주는 것일 뿐이다.

세진과 자넷도 두 디퀴피드를 만나면서 그런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뜬구름 잡듯이 후손이 된 씨앗을 넘기는 그들의 모습이  약간은 측은하기까지 했던 세진과 자넷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헛되게 버려지는 씨앗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물러났다.

덱터의 디퀴피드는 늙은 노파의 모습으로 세진과 자넷을 배웅했다.

세진은 클리르에서 시간을 끌지 않았다. 곧바로 다시 테멜 게이트를 이용해서 타모얀으로 넘어왔고, 그곳에서 연방과 연합에게 디퀴피드에 대한 정보를 전했다.

이전에도 디퀴피드에 대한 정보는 연방과 연합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행성 전체에서 테멜을 감지하는 감시 장치의 기능일 뿐이지, 다른 가능성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세진과 자넷의 보고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곧바로 타모얀을 비롯한 몇 곳의 행성에 디퀴피드 건설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세진은 그것이 완성되는 것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우린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전달했다. 그러니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만 내 고향 행성이 지금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세진은 그렇게 허서르 프락칸에게 통보를 했고,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는 세진과 자넷에게 엄청난 양의 에테르 코어를 선물로 내 놓았다.

그들이 가지고 온 디퀴피드의 정보에 대한 대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연합에서 주는 것이고, 연방에서 주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해서 자넷이 세바스 회장에서 대리 수령을 부탁했다.

물론 그것을 가지고 안전한 투자를 통한 수익 창출의 임무도 세바스 회장에게 떨어졌다.

세바스는 자신도 회장 자리를 집어 던지고 자넷을 따라 나서겠다고 떠들다가 그의 비서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이전에 봤을 때 보다는 비서의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세진은 생각했다. 처음 세바스가 회장이라고 나타났을 때에는 비서가 곁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 후로 세진과 자넷이 타모얀과 데블 플레인 연합의 다른 행성들을 다니면서 괴수 사냥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에 세바스가 종종 찾아오곤 했었는데 그 때마다 비서의 능력이 일취월장하더니 이번에 보니 세바스가 절절 매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후훗, 비서가 제법이야. 저러면 정말 회장 자리가 힘들어지는데. 나도 세바스가 깐깐하긴 했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호호호."

자넷은 세바스의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소리만 남겨두고 세진과 자넷은 다시 게이트를 넘어서 지구로 돌아갔다.

세진은 지구로 돌아오면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혹시 행성 코어가 무슨 일이 벌이지나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구에는 별 다른 일은 없었다. 다만 몬스터 사냥이 중지된 상태로 에테르 코어를 분배하는 형식으로 프락칸과 깝딴들이 나누어주고 있으니 그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몬스터를 멸종시키는 바람에 지구의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겼고, 그것은 프랜드의 책임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가 없는 동안에 헌터룸을 이용한 어리넷을 방치했더니 그 안에서 이런저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었다.

"하!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네. 몬스터를 박멸해서 에너지 위기를 초래한 프랜드는 각성하라? 이거 어떤 새끼들이야?"

세진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나왔다.

"어리가 알아본 것이에요. 음,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를테면 예전 표현으로 잉여인간 정도 될 것 같은 것이에요."

"잉여인가? 그건 또 뭐야?"

자넷이 처음 들었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언니, 잉여란 것은 남아도는 걸 말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잉여인간은 그런 인간인 것이에요. 있기는 하지만 남아돌아서 사회에서 쓸모가 없는 그런 인간인 것이에요."

"잘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러니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라는 말이야?"

"그 글을 올린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서 더부살이 인생인 것이에요. 가족들이 벌어오는 것으로 연명하면서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런 식으로 백해무익한 유언비어나 만들어 내는 인간인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 이렇게 동조하는 사람들은 또 뭐야? 뻔히 말도 안 되는 내용인 것을 알 텐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조를 하고 있잖아."

세진은 그것이 더 화가 났다.

미친 놈이 하나 있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야 어떻게든 이해를 해주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 헛소리에 편승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였다.

"몬스터가 없어진 것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러면서 불평불만을 가지게 되는 것이에요.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인 것이에요. 그런데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서 불편한 것들이 생기니까 그렇게 떠드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에요. 이건 김혜인 박사가 한 말인 것이에요."

어리는 벌써 김혜인 박사와 이야기를 해 본 모양이었다.

"김 박사가 그런 소리를 해?"

"연구소에서 사회 현상에 대한 것도 다루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지구의 인류들에게서 일어나는 몇 가지 현상들에 대해서 원인 분석을 하고 있다고 들은 것이에요."

"한 마디로 말해서 남들 고생할 때는 웅크리고 있으면서 주는 거나 받아먹으면서 연명하다가 이젠 살만 하다 싶으니까 고개를 들고 나와서 기웃거리는 것들이란 소리지? 제가 스스로 뭔가 하진 못하고 남들을 선동해서 그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것들."

"세진, 너무 과격하게 생각하지 마."

"아니. 내가 보기엔 그래. 분명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 철학이나 종교, 정치가 필요하 긴 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벌써부터 그런 것들이 고개를 들고 세력을 모으게 되면 세상은 또 편 가르기가 시작될 거야."

세진은 그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에 거슬리고 귀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다가 가두는 것도 능사는 아니었다.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전투병단까지 모두 철수 시켜. 그리고 알아서들 살라고 해. 어차피 몬스터는 없어. 그럼 없는 대로 적응하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참, 어리넷도 끊어버리고, 정지궤도에 살아남은 위성들도 모두 없애버려."

세진이 어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는 것이에요. 어리는 일하러 가는 것이에요."

홀에서 어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쩌려고?"

"필요하면 노력해서 쟁취하라고 해야지. 그리고 각 도시나 마을들 돌아가는 꼴을 보 고 그래도 인간다운 사람들을 추려서 이쪽 지역으로 이주를 시킬 생각이야."

"응? 어디로?"

"아무래도 호주가 제일 좋을 것 같은데? 땅도 넓고 기후가 좋은 곳도 많지."

"그럼 거기 있는 사람들은?"

"그곳만은 못 된 것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아야지. 까짓 그 정도 일이야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세진이 하고 싶다니까 말리진 않겠지만 너무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는 거 아냐? 그냥 알아서 살게 두는 것이 좋지 않아?"

세진은 자넷의 말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도 너무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이니 어느 정도 진행시켜 보고 이후에 계속 진행할지 그만 둘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이곳 한반도에도 사람들을 좀 모아보고, 디퀴피드도 여기에 먼저 만들 거야. 그 다음에 호주로 지구의 생존자들 중에서 그래도 선별해서 사람들을 모아 봐야지. 솔직히 그렇게 모아 둬도 또 시간이 흐르면 망종들이 나올 거라고 보지만."

세진은 여전히 인간 셋이 모여도 편가르기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모두 한 편이 되는 경우는 절대자에게 귀의한 상태일 때뿐이지. 그것도 배교자가 나오곤 하지만."

세진은 그렇게 인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디퀴피드는 지름 2km 크기로 시험제작이 되고 있었다.

그것은 실제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축물이었다.

세진은 빠른 시간 안에 디퀴피드를 완성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에는 몬스터가 없고, 사람들은 에테르 코어의 부족에 시달리며 그나마 있는 것을 아껴가며 쓰고 있었다.

그래봐야 에테르 코어를 비축하고 있던 이들은 각성 능력자가 수련 능력자, 혹은 그들을 부릴 수 있는 집단들에 해당되는 일일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안테르 조차도 작동을 멈추는 시간이면 전기조차 쓰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안테르를 가동하기 위해서도 에테르 코어가 필요하다보니 결국 그것도 시간을 정해놓고 제한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안테르는 저녁 시간에 잠시 작동시키고, 그 안테르가 작동하는 시간에만 도시에 전기가 공급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시간이 되면 전기를 끊고 안테르의 가동을 중단했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의 삶은 과거로 회귀했다.

전기가 없던 시절의 삶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난방을 위해서 석탄이나 석유 혹은 나무를 태우기 시작했고, 자투리 시간에 뜨개질을 하는 손들이 늘어났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넓은 땅을 경작해야 했고,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불편 정도는 세진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세진이 걱정하는 것은 지구의 에테르 농도가 짙어기는 것이다. 그나마 아직은 지구 생명체들이 에테르에 위협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장담을 할 수 없었다. 에테르의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그것은 그 행성의 생명체들에겐 재앙이 된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에테르가 늘어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계단 위에 올라선 것처럼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생명체들이 에테르에 노출되어 돌연변이가 되거나 혹은 원인도 없이 사망하는 경우 가 생긴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연방의 통계에 의하면 그 순간에 행성 생명체의 90%가 죽는 것으로 보고가 되었다. 그게 무엇이건 상관 없었다. 심지어 박테리아도 90%는 사라진다. 무엇이건 에테르에 저항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들만 살아남는 다는 것이 연방의 연구 결과였다.

에테르가 일정 수치가 넘으면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세진이 디퀴피드의 제작을 서두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일단 시험을 해봐야 하겠지만 디퀴피드가 에테르 정화를 할 수 있다면 행성 코어와의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퀴피드의 정화 기능은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진은 그것을 걱정하며 지구의 에테르 농도 변화를 예민하게 살피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지구 대기 중의 에테르 농도를 낮출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드디어 국회의사당까지 밀어 버리고 세운 디퀴피드의 완공일이 되었다.

세진은 자넷과 함께 디퀴피드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 움직였다.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의 생존 투쟁에서 새로운 획을 긋는 역사적인 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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