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72화 (272/298)

< -- 어디어디 숨었니, 머리카락 보일라 -- >

"뭐지?"

세진은 반투명하게 변해버린 노인에게 물었다.

- 우와 완전히 물리적인 성질이 없어진 것이에요. 방금까진 분명히 실체였는데 지금은 그냥 에너지일 뿐인 것이에요.

[맞아. 바로 그거지. 우리는 과거 디퀴피드가 파괴되고 행성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을 쳐야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스스로 그것을 바로 잡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종족은 멸종했지만 디퀴피드에서 되살아났다. 우리는 우리 종족의 정보를 디퀴피드에 심었고, 디퀴피드가 만들어질 때마다 우리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럼 뭐지? 디퀴피드의 에고라고 봐야 하나?"

[우리는 자체로 하나의 종족이다. 디퀴피드 종족. 우리의 목적은 온전한 디퀴피드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 완성이란 것이 동결, 흡수, 정화가 가능한 디퀴피드를 말하는 건가?"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너는 이제 동결과 흡수가 가능한 디퀴피드까지 설계를 완성했다는 건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생명이다. 만들어진 것에서 탄생하게 되었지만 그 생명의 씨앗은 언제나 존재해야 한다. 디퀴피드를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디퀴피드에게 그 씨앗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완성된 디퀴피드에 넣어야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면서 디퀴피드의 능력을 점차 커지게 되는 것이다.]

"그럼 처음 만들어지면 감지 능력만 지닌다는 건가? 그렇게 보기엔 지금 네 신세가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는데? 너도 흡수나 정화는 못하지 않나? 오랜 시간 동안 성장을 해야 한다면 너는 그럼 아직 덜 자란 것인가?"

세진은 나이 운운했던 늙은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아니다. 나는 이미 오래 시간을 살아왔다. 다만 내 몸은 만들 때부터 잘못 설계되고 만들어진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제대로 성장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진작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으면 좋지 않나? 틸터 놈들도 관심이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다. 그들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길 원했다. 내 몸을 다시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또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여전히 더디게 성장을 하고 있다.]

"성장을 하긴 하나?"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무가 죽지 않으면 조금씩이라도 자라는 것과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들이 있는 디퀴피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다.]

"놀랍군."

세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거대한 디퀴피드가 그냥 요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가 된다는 소리다.

그것도 돌과 쇠를 섞어 만든 하나의 건축물이.

"대단하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보는 거야. 이럴 수가 있구나."

자넷도 전혀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의 등장에 놀라고 있었다.

"혹시 인공 지능 컴퓨터 뭐 그런 건 아니었을까?"

[무슨 소리. 우리는 엄연히 하나의 행성에서 번성했던 종족 디퀴피드였다. 비록 멸망의 순간에 이런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는 했지만 우린 분명 인류의 한 종이다.]노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상관 없겠지. 과거가 무슨 상관이겠어. 지금이 중요하지. 그래서 노인, 어쩌면 좋겠어? 보아하니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 모양인데?"

세진은 정색을 하고 반투명한 노인의 형상을 향해 물었다.

[디퀴피드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 도움을 주겠다는 거다.]

"도움?"

[설계도와 함께 씨앗을 주겠다.]

"아, 그게 없으면 디퀴피드를 가동시킬 수가 없다고 했지? 그래서 몇 개나 줄 건데?"

[여럿을 만들겠다는 건가?]

"지금까지 이야기를 뭐로 들었어? 우주 연방 전체에 소식을 전할 거야. 그래서 너와 너희 종족에 대해서 알려야지. 그럼 아마도 많은 행성들이 관심을 가지겠지. 문제는 이쪽 덱터와 불가침 협정이 있어서 좀처럼 이리로 넘어오기 어렵다는 것이지만, 내가 설계도와 씨앗을 가지고 넘어가서 그곳에서 만들고 새로 씨앗을 받을 수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는 거 아니겠어? 그게 아니고, 너희 종족에 대한 정보만 넘기면 아마도 연방과 연합이 힘을 모아서 이곳 클리르 행성으로 쳐들어 올지도 모른다고."

[좋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씨앗 100개를 넘겨주겠다. 설계도와 함께.]

"그거 좋군."

세진은 노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노인은 다시 실체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세진이 들어가려고 벼르고 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상자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안쪽에도 별다른 것은 없다. 그저 우리들이 사용하는 에너지가 밀집되어 있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이곳 지하지. 지하에 모든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야. 마치 뿌리처럼."

"뭐 대충 파악을 하긴 했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군."

세진은 상자를 받아 들며 말했다.

"맞다. 그 씨앗이 디퀴피드의 모든 것이다."

세진은 혹시 씨앗을 어리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다.

'불가능한 것이에요. 저건 에너지로 만들어진 것이에요. 코어보다 차원이 높은 것이에요. 비교하자면 영혼도 에너지 집합이지만 어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어리가 세진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정신 연결을 통해서 대답을 해 왔다.

"자, 그럼 어디 보자고. 디퀴피드가 이런 식으로 생긴 거 맞나?"

세진은 어리를 이용해서 허공에 디퀴피드의 축소 모형을 입체 영상으로 띄웠다.

"오오. 정말 내 모습을 완전히 파악을 했군. 아, 여기 여기를 보면 숨겨진 것이 있지. 지금 내 본체가 있는 곳이라서 이렇게 빈 공간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런 거지."

노인은 자세하게 세진이 보여주는 영상을 들여다보다가 한 지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리가 만든 모형 옆에 새로운 입체 영상이 떠올랐다.

"이런 거지. 여기에 이렇게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있지. 이런 식인 거야. 그렇게 되면 에너지들이 이렇게 흐르지. 물론 이 에너지란 것은 여기 이 뿌리에서 끌어올린 행성 본연의 에너지인 것이지. 그게 여기서 사용이 되는 거야."

노인은 자신이 만든 입체 영상의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며 그 때마다 확대되고 회전하는 영상을 통해 설명을 이어갔다.

"행성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지는 않나?"

세진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혹시라도 이 디퀴피드가 또 다른 행성 코어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우리는 행성의 에너지를 이용하지 소비하지 않아. 행성 에너지 자체는 그대로 유지가 되는 거지. 그저 우리 몸에서 쓰이다가 배출이 될 뿐이야."

"그건 확인을 해 보면 알 일이지. 좋아. 그럼 이제 모두 끝이 난 건가? 어리야, 건축에 쓰일 재료들도 다 파악했어? 못 만들거나 그런 건 없고?"

- 걱정 없는 것이에요. 세진님이 가지고 계신 그 씨앗들 이외에는 모두 어리가 합성하고 만들 수 있는 것이에요. 당장이라도 하나 만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말이야."

"또 뭔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말을 거는 세진에게 노인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응대했다.

"꼭 이렇게 큰 규모로 만들어야 하는 건가? 축소하면 안 되냐는 거지."

세진은 그것이 궁금했다. 거대 도시 하나의 크기는 너무 과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행성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거네. 이보자 작으면 안 되는 거지."

"작아도 범위에 문제가 있을 뿐, 능력의 문제는 없다는 거지?"

"이봐,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만 그건 안 될 말이야. 애초의 우리의 가능성이란 것이 규모에서 나오는 것인데 설마 소규모로 만들어서 내 씨앗들을 허비할 생각인가? 그렇다면 다시 돌려주게. 절대 그건 허락을 할 수가 없는 문제네."

노인은 세진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상자를 빼앗으려 했다.

"워워. 진정해. 혹시 해서 물어 본 거야. 그러니까 진정하라고. 사실 내가 떠나고 나면 너도 이후에 이 씨앗들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는지는 알 수 없는 거잖아. 안 그래? 내가 아무리 약속을 하더라도 이후는 알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마음을 비워."

"이이익! 그런!"

"그리고 생각을 해 보라고. 행성 하나에 너희 종족 하나씩은 너무 외롭지 않은가? 이곳 클리르 행성에도 너희가 둘 있지만 그것도 나는 적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마을 하나에 하나씩이라도 있었으면 좋지 않겠나? 그리고 그런 소규모면 몬스터들이 전부 몰려오는 엄청난 위험도 없을 것 같지 않은가?"

세진은 노인을 회유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설명을 곁들였다.

"바보같은 소리. 규모의 문제다. 규모가 작으면 그만큼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건 제곱에 비례하다고 할 정도지. 규모가 클수록 능력이 커지는 것이고 작을 수골 작아진다. 그것도 제곱의 비례로."

"음. 그건 좀 문제가 있는데? 그래서야 작게 만들어도 마을 규모는 되어야 쓸모가 있다는 거잖아."

"그럼, 그렇게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건설하면 되는 거 아냐? 디퀴피드가 굳이 땅 위에 있을 이유가 있어? 지하에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어쩌면 그게 몬스터의 공격을 방어하는데 더 유리하기도 할 것 같고."

자넷이 곁에서 디퀴피드 건설에 대한 도움말을 던진다.

"뭐, 일단 이 정도면 되나?"

세진은 눈 앞에 떠 있는 입체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다. 이걸론 부족하다. 이것은 내 모습일 뿐이다. 자, 이걸 봐라. 이렇게 되어야 조금 더 빠르게 성장하고 흡수와 정화까지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세진의 말에 노인은 급히 새로운 영상을 띄웠다.

그것은 지금까지 봤던 노인 디퀴피드의 모습과 닮아 있으면서도 훨씬 복잡한 모습의 디퀴피드였다.

"와우, 이건 정말 정밀한데? 그런데 이거 만드는 것이 가능하긴 한가? 돌과 금속으로 이런 규모로?"

세진은 그 정교함에 입을 딱 벌렸다.

- 걱정 없는 것이에요. 어리는 만들 수 있는 것이에요.

하지만 어리는 그 영상을 기억하며 자신있게 큰소리를 쳤다.

"뭐, 그렇다는군. 그런데 이봐,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너희 디퀴피드끼리 어디까지 대화가 가능하지? 보아하니 이곳 클리르 행성의 다른 디퀴피드와는 의사소통을 하며 지내는 것 같은데?"

세진은 디퀴피드들의 의사 소통이 궁금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위 안에 다른 동족이 있으면 대화를 할 수 있 게 되는 것이지. 나는 당연히 이 클리르 행성 전체가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고 말이야."

"행성간 통신은 안 된다는 건가?"

"그건 불가능하지. 테멜 게이트를 넘어서까지 내 영향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래? 알았어. 그럼 우린 이제 그만 가 봐야겠군."

"벌써 가는 건가?"

노인은 세진이 떠난다고 하자 굉장히 섭섭한 얼굴을 했다.

"함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야 그렇지. 그럼 말일세, 부탁 하나만 들어주게."

"부탁?"

세진은 노인이 부탁이란 말을 꺼내자 뭔가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닌가 해서 살짝 인 상을 지었다.

"덱터 쪽의 디퀴피드에게도 들러주게. 내 부탁은 그걸세."

"설마 그쪽에서도 내게 노인장과 같은 것을 요구하는 건가? 자신이 가진 씨앗으로 디퀴피드를 세워 줄 것을?"

"그렇지. 그리고 그건 자네에게도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닐 거야. 생각해보면 우리들 둘이 이곳 클리르 행성에 갖혀 지낸 것이 너무도 오래 되었어. 후손도 보지 못하고 말이야."

"그거야 무식하게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앉은 욕심 때문이지. 그냥 적당히 했으면 이 클리르에도 많은 디퀴피드가 있었을 거야."

세진은 노인을 타박했다.

"흘흘흘, 하지만 정작 내 몸을 만든 것은 이 행성의 주민들과 틸터, 덱터 사람들이지. 욕심이라면 그들을 탓해야지. 내가 아니라."

"노인도 마찬가지잖아. 큰 것만 좋아해서는 작은 규모로 만든다니까 펄쩍 뛰어 놓고선."

"흘흘흘."

"알았어. 덱터에그로메에도 들러서 가지. 우리가 간다고 전해 줘. 괜히 침입자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알겠네. 그리고 부탁 하네."

노인의 시선이 세진이 들고 있는 상자에 닿아 있었다.

그러선 그것이 곧 후손들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알았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와서 이것들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뿌리를 내렸는지 알려주도록 하지. 약속은 하지 못하지마 노력은 해 볼게."

"흘흘흘. 고맙구먼."

"그럼 잘 있어."

세진은 노인에게 짧게 인사를 하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틸터에그로메를 벗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덱터에그로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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