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디어디 숨었니, 머리카락 보일라 -- >
"디퀴피드가 필요해!"
어느 날, 세진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에엑, 그건 싫은 것이에요. 그게 있으면 정말 곤란한 것이에요."
어리가 질색을 한다.
디퀴피드가 있으면 어리의 감지 범위가 극악하게 제한을 당하니 그렇게 펄쩍 뛰는 것이다.
"아니. 언제나 켜 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에만 가동을 하도록 만들면 될 거야."
"그게 왜 필요한 건데? 세진? 세진이 어리를 달래는데 자넷이 물었다.
"그게 있으면 이면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그걸로 지금 행성 코어와 다른 몬스터들이 숨어 있는 곳을 찾을 거라는 말이야? 그게 가능할까?"
자넷이 뭔가 그럴듯하단 생각이 들었는지 표정이 밝아지며 물었다.
"그게 테멜도 찾아내는 물건이잖아. 그렇다면 이면 공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세진은 이면 공간이 테멜보다 훨씬 수준이 떨어지는 차원 생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테멜과 이면 공간이 비슷한 구석이 있으니까 가능성이 높기는 하네. 그런데 그거 만들 수 있을까?"
"어리야, 어떠냐?"
자넷의 물은에 세진이 어리를 보며 물었다.
"어리는 그거 못 만드는 것이에요. 어리는 할 수 없는 것이에요."
어리가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세진은 그것이 사실이란 것을 알지만, 또 숨겨진 무엇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 지금 당장은 못 만들겠지. 하지만 클리르 행성에 가서 방법을 찾으면 가능하겠지? 응?"
"어리는 하기 싫은 것이에요. 클리르 행성은 더더욱 가기 싫은 것이에요."
어리는 정말 싫은 듯이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어차피 에테르 코어를 확보하기 위해서 다른 행성에 가서 사냥도 해야 하잖아.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클리르에선 사냥도 힘든 것이에요. 디퀴피드 때문에 녹두장군이나 괴수 군단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클리르는 싫은 것이에요."
어리가 싫다고 떼를 써보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는다. 세진은 행성 코어가 어디에 숨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디퀴피드가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단 한 대만 있으면 행성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니 이참에 그것을 만드는 완벽한 방법을 알아오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전에 사용하던 소형 디퀴피드는 지금 쓰지 못한다.
그것은 대형 디퀴피드의 신호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로 디퀴피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형이라도 홀로 작동이 되는 거라면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해 볼 테지만 그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이 클리르 행성에 다녀와야 할 듯 했다.
"그런데 괜찮을까? 우리가 사라진 것을 알고 행성 코어가 활동을 개시하면 어쩌지?"
자넷이 걱정을 한다.
"그래서 뭐? 결국 행성 코어가 할 수 있는 일은 몬스터를 풀어 놓는 일이 전부잖아. 설마 그 동안에 행성 코어와 대립하고 있는 그 존재가 패배를 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다지 바뀔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거기다가 이번에 가서는 그렇게 오래 있다가 올 것도 아니거든."
"어쩌려고?"
"그냥 틸터 쪽에 가서 디퀴피드 견학을 좀 시켜달라고 하지 뭐."
"응? 들어 줄까?"
"원하는 사람들을 타모얀 행성으로 옮겨 준다고 하면 서로 가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그거야 모르지. 거기 틸터 사람들 은근히 그 행성에서 대장 노릇하면서 사는 것을 즐기는 것 같던데."
"그래도 늙은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이 많을 거야. 또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입김이 세잖아."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럼 여긴 어쩔 거야? 의체들을 모두 다시 불러 들여야 하잖아."
"그게 고민이긴 하지. 어리야 오션이나 그런 녀석들 여기 남겨 놓고 가면 행성 코어 에게 잠식 당할까?"
세진이 어리에게 물었다.
"위험한 것이에요. 어리는 어리의 테멜 밖으로 나간 테멜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에요."
어리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일부만 이곳에 남기고 가야겠네."
세진이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우주에 헌터룸 관리 기지를 세우는 거야. 라훌 행성의 정지궤도에 있던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을 남겨서 지구에서 활동을 하게 하는 거지."
"테멜 밖에 내 놓기는 하는데 지구 위에는 불안하니까 우주에 띄워 놓겠다는 거네?"
"그게 연방에서 쓰는 방법이잖아. 저번처럼 갑작스럽게 우주에서 유성이 쏟아지지 않는 이상은 안전하고 말이야. 듣기로는 행성 코어도 행성 밖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일은 없다면서?"
"응, 그렇지. 모든 것은 그 행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지."
"그러니까 지구에 남겨둘 필요가 있는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호위할 전투 병단까지 엄선해서 남기고 가자는 거지."
"뭐. 그렇게 하면 되긴 하겠네. 그럼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갔다는 것을 행성 코어가 알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어리는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우주에 기지를 세우는 것은 어마무지 어려운 일인 것이에요."
어리가 탁자에 철퍽 엎어졌다.
세진이 클리르 행성에 가 있는 동안에는 더 이상 지구에서 몬스터 사냥을 할 수가 없다. 그 말은 지구에 에테르 코어가 공급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문제는 마땅한 해결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모랜에 있는 몬스터를 지구 곳곳에 풀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프락칸과 깝딴을 통해서 일정량의 에테르 코어를 나눠주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이 있는 도시나 마을에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에테르 코어를 공급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은 도시나 마을에 남아 있는 비축분이 제법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했다.
사실 지금 지구에 프락칸과 깝딴을 남기는 이유는 그들이 아주 소량이지만 대기중의 에테르를 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곧 프랜드를 대표하는 얼굴마담이기 때문이다.
프락칸은 몬스터 사체와 코어를 정화해서 행성 본래의 에너지로 바꾼다. 그리고 깝딴은 살아 있는 몬스터의 몸 안에서 생체 에테르를 정화해서 행성 에너지로 바꾼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대기 중에 있는 에테르에 사용하게 되면 노력에 비해서 얻는 것이 너무 적다.
같은 노력을 들여도 에테르가 밀집된 사체나 코어, 혹은 생체 에테르에 비해서 대기 중의 에테르 농도가 낮다보니 정화를 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어떻게든 대기 중의 에테르를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세진은 그것을 위해서 마법진 중에서 마나를 응집시키는 마법진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성공하면 몬스터를 통하지 않고도 에테르 코어를 합성해 내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테멜이 외부에서 에테르를 흡수하는 것을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것은 어리도 자신의 코어와 테멜이 함께 어우러져서 이루어지는 능력이어서 그것을 따로 만들어 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테멜 코어가 테멜을 이용해서 외부에서 에테르를 흡수하는 것을 잘만 이용하면 에 테르를 모아 뭉치고 그것을 프락칸이나 깝딴이 정화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별다른 연구 성과가 없었다.
어쨌거나 세진은 서둘러서 정지궤도에 헌터룸 관리 기지를 건설했다.
사실 이전에 라훌 행성에 있었던 규모의 기지는 아니었다. 도리어 세진과 자넷이 로페소에테 행성에 머물 때에 사용했던 소형 우주선의 확장형이란 말이 옳았다.
소형 우주선에 들어 있던 헌터룸 시스템을 다수 제작해서 그것은 거대한 우주선 안에 넣는 형태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전의 라훌 행성 기지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그런 기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지구 곳곳에 파견나가 있는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그들의 호위를 위해 함께 움직일 전투병단 의체들을 유지하기엔 충분했다.
"살다살다 이제는 지구를 내려다보며 의체를 사용하게 될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우주 여행을 한다고, 다른 행성 주민들도 만나고 그랬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우와 정말 예쁘긴 예쁘네. 전에 다른 행성들 찍어 놓은 거 봤는데 지구만큼 예쁜 곳은 없었어. 진짜 내 고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예쁘긴 예쁘다."
"진이 너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말투냐? 너 이제 할머니 소리 듣잖아."
"어머나 혜인 언니는 뭐? 외할머니 소리 안 듣나? 호호호."
"다들 옛날 같으면 경로당이나 노인정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탱탱한 모습으로 이렇게 있는 것도 복이라면 복이지."
"맞습니다. 그게 다 운이 좋아서 세진님과 연을 맺었기 때문이지요."
우주 헌터룸 기지에 오랜만에 모인 어리 공방 5인조는 그렇게 회포를 풀고 있었다.
다들 이제는 테멜 안에서도 그렇고 의체로도 그렇고, 제법 비중이 있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프락칸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김혜인 박사고, 깝딴의 우두머리는 정진이였다.
거기에 전투 병단의 단장이 떡배였고, 김형일과 선도일도 전투 병단에서 제법 많은 무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체로 활동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김혜인 박사는 테멜 안의 이주민 거주 구역에 있는 연구실의 관리자였고, 어리나 세진이 귀찮아하는 여러 행정적인 문제들을 1차적으로 결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돕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당연히 어리 공방 5인조 모두가 포함이 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세진과 자넷, 어리가 클리르 행성에 다녀오는 동안에 지구에 남아 있을 의체 사용자들을 이끌 책임자로 이 다섯 사람이 뽑혔다.
이제는 다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었지만 회복 캡슐이라는 문명의 이기와 수련과 각성 이후에 계속 경지를 높여서 얻은 신체적인 건강으로 그들은 겉보기에 30대 초반 정도로 보일 뿐이다.
그것도 본체일 때나 그렇지, 의체는 외모가 의미가 없으니 언제나 젊게 살고 있는 다섯 사람이다.
"그나저나 언니는 어때? 프락칸 능력으로 대기 중에 있는 에테르를 정화하는 거?"
정진이가 프락칸 중에서도 최고 능력을 보이는 김혜인에게 물었다.
"그거 연습하면 조금씩 나아지긴 하지만 그래봐야 효율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 깝딴 쪽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무슨 성과 없어? 대기 중에 농도가 낮은 에테르를 정화할 때에는 범위를 넓히거나 혹은 기운을 적게 소모하는 쪽으로 개량을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우리도 아직은 성과가 없어. 그저 그렇지. 우리 역시 같은 방향으로 연구를 하고 있어. 범위를 넓히고 사용하는 기운의 양을 줄이는 쪽으로 말이야."
"우리도 그랜드 마스터 정도 넘어서면 좀 나아질까? 이건 프락칸이나 깝딴은 그런 경지 구분이 분명하지 않고 막연하기만 하니까 답답한 면이 있어. 그래도 깝딴은 좀 나은 편이지?"
"호호호. 언니도 참, 낫기는 뭐가? 우리 깝딴들이야 생체 에테르를 정화하는 거라서 초보 깝딴도 어느 정도 등급이 있는 몬스터 체내의 생체 에테르를 정화할 수 있어. 그런 걸로는 경지를 구분하기 어렵지. 그래서 딱히 경지를 판단한 기준은 우리 역시 없어."
"그렇구나. 그래도 몬스터를 직접 상대하니 우리 프락칸 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언니."
"응? 왜? 뭔데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불러?"
"그 행성 코어 있잖아. 지구에 있다는."
"응,"
"만약에 그게 다른 우주까지 퍼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다른 행성의 코어들이 모드 지구의 코어처럼 그렇게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사고를 하게 되면 말이야."
"글쎄..."
김혜인은 정진이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몇 번이나 물었던 질문이지만 답답함만 생길 뿐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거 언젠가는 일어날 일, 아닙니까?"
그런데 듣고 있던 남자들 중에서 선도일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
"응? 뭔 소리냐?"
떡배가 물었다.
"몬스터 등장 초기에 등급이 높은 코어를 처리한다면서 미국이랑 러시아랑 몇 나라에서 우주로 코어를 쏘아 버린 거 있었잖습니까. 그게 만약에 다른 어떤 행성에 도착해서 행성 코어가 되면 뭐 지금 지구의 행성 코어와 같은 놈이 등장하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발 그 전에 그 로켓들이 폭발해서 에테르 코어가 박살이 나기를 바라야겠다. 그게 아니면 어디 항성 같은 거에 들어가서 홀라당 타버리거나."
떡배가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창 밖으로 지구가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온통 검은 색의 공간이 끝도 없다.
거기에 촘촘하게 박혀 있는 수 많은 별들이 있었지만 그 별들은 끝없이 넓은 공간에 흩어져 있는 티끌일 뿐이다.
"젠장, 지구가 저렇게 크게 보이지만 저기 빛나는 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겠지?"
떡배가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저 빛들이 우리 태양같은 거라던데?"
"저 중에는 항성이 아니라 은하인 것도 있어요. 은하가 별무리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빛 덩어리 하나가 수억의 별들이 뭉친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김혜인 역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아아, 그만. 그만하자고. 너무 허무하잖아. 우리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내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만 해."
정진이가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다섯 사람은 창밖의 우주를 한동안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