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69화 (269/298)

< -- 어디어디 숨었니, 머리카락 보일라 -- >

행성 코어는 지구의 의지와 여전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한 쪽이 무너지는 순간 급격한 상황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실제로 행성 코어는 지구의 의지에게 빚이 있다.

최초로 지구에 코어가 도착을 했을 때, 지구의 의지가 행성 코어에게 곁을 내어 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행성 코어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행성들과는 달리 지구의 의지는 명확하게 살아 있으며 또한 의지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고요히 잠들어 있거나 미약한 영향력만 행사하는 다른 행성들의 의지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물론 지구에 와 있는 에테르 행성 코어는 그런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행성 코어는 지구에 도착한 후에 몇 번의 성장을 거치는 동안에 다른 행성에 있는 코어들과는 다르게 변했다.

원래 일정하게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코어에서 탈피해서 완전히 독립적인 사고를 통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 행성 코어는 다른 행성에 있는 코어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유용한 정보들을 잃었다.

그래서 지구에서 만들어진 테멜이 이면 공간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구의 이면 공간은 다른 행성의 테멜과 같은 것이었지만 모태가 되는 행성 코어가 몇 번의 각성을 거치는 동안에 정보의 유실이 많았기에 그런 형태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무조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행성 코어의 변화는 곧, 그 하위 코어들의 변화를 이끌어 냈고, 다른 행성의 코어들과는 다른 의지를 지닌 코어로 진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성 코어는 이번에 크게 손해를 봤다.

실제로 잃어버린 에테르의 양도 양이지만 문제는 우호세력의 몰락이 문제였다.

인간들 사이에서 폴리몬들은 몸을 숨겼다.

아직까지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폴리몬이란 사실이 들키는 순간 사라지게 된다.

이제 폴리몬을 사냥하는 이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이전에 현상금으로 걸어 놓았던 치료제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약이 필요 없는 사람도 그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는 너나 할 것 없이 폴리몬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거기다가 사냥을 당하지 않아도 실종되는 폴리몬들도 많았다.

이제 폴리몬이나 일반 몬스터나 인간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길이 점차 막히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폴리몬들 중에서 미리 명령을 내려 뒀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인 간을 배우고 나면 돌아와서 새로 태어나는 폴리몬들을 가르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 모자란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 인간들의 도시나 마을에서 인간들의 기록물을 수집해 놓은 것도 많고, 행성 코어 스스로도 인간들의 행태를 보고 들은 것들이 많았다. 어찌 보면 행성 코어는 가장 정확한 지구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존재일 수도 있었다.

행성 코어는 자신의 주관이 새로 만들어진 아이들에게 심어지는 것을 꺼렸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백지 상태로 태어나서 인간들과의 교류에서 보고 배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행성 코어는 효율이란 것을 생각해서 새로 태어나는 폴리몬들에겐 최소한의 지식을 넣어 주기로 했다.

지극히 객관적인 지식들을 넣어주고, 그 이후는 교육을 맡은 폴리몬들을 통해서 알아서 성장하게 두는 것이다.

행성 코어는 그것이 재미가 있었다. 이전의 아이들은 그저 태어나면 정해진 길을 따라 갔지만 새로 태어나는 폴리몬들은 제각각 개성이란 것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하면 그 아이들 중에 어떤 녀석은 끝내 행성 코어를 뛰어넘는 성장을 하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까마득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어쨌거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은 묘한 기대와 흥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젠 더 이상 내 아이들을 인간들의 틈에 끼워 넣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인간들에게 배울 것은 다 배운 것 같은데?'

행성 코어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새로운 이면 공간을 만들었다.

폴리몬들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을 인간들이 찾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숨겼다.

'이젠 흘러가는 대로 두리라.'

행성 코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엔 더 이상 몬스터가 늘어나지 않았다.

세진은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했다. 중첩 이면 공간도 하나하나 파괴했다. 지역 코어가 있는 7등급 이면 공간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공략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행성 코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어느 순간 지구엔 몬스터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문제야."

세진은 깊은 고민에 잠겼다.

"맞아. 문제야. 지구 전체가 에너지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어."

"에테르 코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 모자란 것도 문제지만, 정작 더 중요한 문제는 이제 에테르 코어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거지. 무슨 이윤지 몰라도 몬스터가 더는 늘어나지 않고 있어."

"거기다가 있던 것들도 모두 박멸을 해 버렸지. 있다면 이제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살고 있는 폴리몬들 뿐이야. 하지만 폴리몬은 잡아도 코어가 안 나오지."

"행성 코어는 무슨 생각일까? 아니 어디에 몬스터들을 만들어 쌓고 있는 걸까?"

"어쩌면 더는 에테르를 생산하지 않기로 한 거 아닐까? 지금 지구 대기 중의 에테르는 늘어나지 않고 있잖아."

자넷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아니. 난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에테르를 만들어 내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 그 에테르를 이용해서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겠지. 우리가 알 수없는 곳에 숨어서 말이야."

"대대적으로 몬스터를 만들고 있을까? 아님 지역 코어 등급이나 대륙 코어 등급을 생산하고 있는 걸까?"

자넷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역 코어 등급의 몬스터나 대륙 코어 등급의 몬스터가 몰려나온다면 아무리 세진과 자넷, 어리라고 해도 감당할 수가 없다.

"그게 조금 헷갈려."

"응? 왜?"

"우리가 처리한 지역 코어 등급의 몬스터가 왕선녀 빼고도 서른다섯이야. 거기다가 그 외의 몬스터들도 부기지수였어. 그런데 그걸 다 버렸단 말이야. 대신에 꽁꽁 숨어 버린 거야. 만약 우리 예상처럼 전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지역 코어 몬스터나 대륙 코어 몬스터를 만들고 있었다면 이미 있던 것들을 어떻게든 회수해서 재활용 했을 거란 말이지."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런 몬스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뭔가를 하고 있을 거다?"

"그것도 아니면 자넷 말대로 정말로 에테르 생산을 멈췄을 수도 있겠지. 전혀 기대하지 않는 거지만 말이야. 솔직히 지금 어리가 테멜로 끌어 들이는 에테르의 양도 무시할 정도는 아닌데 그래도 지구 대기의 에테르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니까 말이야."

"이럴 때에는 뭔가 행성 코어와 싸우고 있는 그 무지어마대단한 존재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 것이에요."

듣고 있던 어리도 답답한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게. 정말 어째서 그 존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함께 힘을 모으면 훨씬 쉽게 행성 코어를 상대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자넷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어쨌거나 지금으로선 숨어 있는 행성 코어와 그 일당들을 찾는 것이 중요해. 그리고 아울러서 지구 인류의 당면 과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어쩌긴 사냥을 하게 해 줘야지."

"응? 사냥을? 몬스터는?"

자넷이 몬스터를 어디서 구할 거냐고 물었다.

"그야 당연히 테멜 안에서 사냥을 하게 하는 거지. 지구에선 더 이상 몬스터를 찾을 수 없으니까 각 도시별로 몬스터 사냥팀, 혹은 에테르 코어 수집 팀을 만들어서 어리의 테멜 안으로 들어와서 사냥을 하게 하는 거야."

"그게 뭐야? 그냥 에테르 코어를 주는 쪽이 낫지 않아?"

"그건 아니지. 그들의 실력이 늘어나야 이후에 다시 몬스터들이 나타났을 때, 뭔가 해도 할 수 있겠지. 조금이라도 준비를 시켜 둬야 하는 거야. 그래서 테멜에서의 사냥도 마냥 쉽게 두지는 않을 거야. 어리에게 가끔씩 간섭해서 지능적인 몬스터를 발생시키는 거지."

"그거 게임 같은데? 가끔 나오는 네임드 몬스터 뭐 그런 거 같잖아."

자넷이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그래. 그거하고 같은 거지. 당연히 보상도 괜찮게 줄 생각이야. 가끔 복권 당첨이 되는 사람이 나오게 되는, 뭐 그런 거지."

"뭐 그거야 세진이 알아서 하고. 그나저나 지구에서 몬스터들이 모두 사라지니까 좀 허전하긴 하네."

"이제부턴 조금씩 안정을 시키면서 연구를 해야지. 이 지구의 에테르 코어들은 연구할 것이 많잖아. 폴리몬도 그렇고 왕선녀 같은 경우에도 그렇고, 6등급과 7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도 그렇고."

원래 7등급 이면 공간에는 지역 코어 등급의 몬스터만 있고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다섯 개의 7등급 이면 공간 중에서 열두 곳은 몬스터가 없고 이면 공간 유지 코어만 존재했다.

세진은 행성 코어가 관리를 포기하면서 그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몬스터로 만드는 것을 잊은 모양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행성 코어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 맞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6등급과 7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물론이고 그 아래 등급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도 꽤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쉽게 어리의 말을 듣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는 것은 생존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약점으로 작용을 하게 되어 있었다.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은 지금도 쫄쫄 굶으면서 어리의 협박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에테르가 전혀 공급되지 않는 테멜 안에 그 코어들을 놓아두고 때때로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어리의 말을 듣도록 만들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물론 그 코어들이 행성 코어와 만나게 되면 어리의 통제 따위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겠지만 테멜 안쪽의 세상은 외부와 완전히 격리가 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행성 코어와 만나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혹시라도 행성 코어가 어리의 테멜 안쪽으로 들어온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리의 것이 되지 않은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은 몇 단계의 테멜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수용되어 있는 것이다. 하위 테멜의 하위 테멜의 하위 테멜의 하위 테멜.

어리는 그런 식으로 완전한 보안 대책을 세우고 제일 마지막 테멜에 그것들을 놓아두고 있었다.

"굶다보면 말을 듣게 되는 것이에요. 굶어 죽는 것은 슬픈 일인 것이에요."

어리는 그렇게 갇혀 있는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이 반드시 굴복하고 말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네 부하로 만들어서 어디 쓰려고?"

자넷이 어리에게 물었다.

"다른 테멜 코어와 결합을 시켜서 테멜을 만들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알아서 테멜을 관리하게 하는 것이에요. 어리같은 테멜들이 무징무징 생겨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언니도 다 알면서 괜히 그러는 것이에요. 테멜이거나 뭐거나 에테르가 문제인 것이에요. 에테르가 공급되지 않으면 끝장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말을 안 들으면 에테르 공급을 끊고 가두어 두는 것이에요. 아주 오래 그렇게 둘 것이에요."

"그런데 7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 정도면 거의 지역 등급의 테멜일 텐데? 그런 건 유지 하기 어렵지 않을까? 에테르 엄청 들어갈 텐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도 안 되면 다른 행성에 가서 사냥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지구엔 몬스터가 없지만 다른 행성에는 넘치는 몬스터들인 것이에요. 에테르는 충분히 수급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 그래. 이러다간 에테르 몬스터가 몰살을 당하는 행성들이 생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주로 활동하는 최고 수준의 몬스터가 지역 코어 몬스터인데, 그것까지 쓸고 다닐 거 아니니."

"호호호. 어리는 가능한 것이에요. 여기 말고 다른 행성에는 의외성이 없는 것이에요. 행성 하나도 시간만 주면 정리할 수 있는 것이에요. 대륙 코어나 행성 코어는 감당을 할 수 없지만 지역 코어까지는 이젠 가능한 것이에요. 깝딴들의 도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많이 성장을 한 어리인 것이에요."

"그. 그래. 이젠 어리 니가 무섭다."

"무징무징해진 어리인 것이에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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