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의 칼을 빌려서 적을 치는 수법 -- >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전투 병단의 의체들은 전 세계에 퍼져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에테르를 정화시켜서 지구 본연의 기운으로 되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때문에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사체나 에테르 코어를 이들 프락칸과 깝딴에게 가져다주면 적당한 기치로 환산을 해 준다.
물론 그 교환은 지역이나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과하지 않을 정도의 요구라면 선을 지켜서 들어주는 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화 의식을 치르고 프락칸과 깝딴이 그 몬스터 사체나 에테르 코어를 다른 곳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적으로 지구를 위한 봉사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프락칸이나 깝딴, 그들을 보호하는 전투 병단의 의체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프락칸과 깝딴을 일종의 포교 단체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잖다.
아무 이익도 없이 그저 퍼주기만 하면서 몬스터 퇴치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거의 몬스터 퇴치교라는 종교 단체의 신관들과 성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어쨌거나 그 때문에 프락칸과 깝딴은 몬스터와 평화 협정을 맺고 공존해서 살아가자는 주장을 하는 이들과는 사사건건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간혹 프락칸과 깝딴에 대한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는데, 물론 그것이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프락칸과 깝딴이 움직이면 그 곁에는 적어도 네 명의 전투 병단 의체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프락칸과 깝딴이 대대적으로 습격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급한 곳부터 먼저 어리가 출동을 해서 상황을 정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희생자가 생겼다. 프락칸과 깝딴, 호위를 맡고 있던 전투 병단의 의체 몇이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공격한 것이 인간 각성자와 수련 능력자들, 그리고 몬스터들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몬스터와 인간이 연합을 해서 깝딴과 프락칸을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말이다.
"어리야! 준비해라!"
세진이 굳은 얼굴로 명령을 내렸고, 어리는 정신 연결을 통해서 세진의 의도를 파악하고 곧바로 괴수 군단을 준비시켰다.
"성명서 발표 해. 프락칸과 깝딴이 공격 받은 도시들은 물론이고 벤진과 카미에에게 선전포고를 해. 이번 일에 대해서 어떤 협상이나 양보도 없다고 하고. 지금부터 72시간 이후에 전면전을 시작한다고 전해!"
"네."
어리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세진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정도여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 할 생각이야?"
자넷이 물었다.
그녀도 세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막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자넷에게도 어리 테멜의 주민을 공격한 이들은 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몬스터들과 연합을 해서 인간을 공격한 것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지금 어리넷은 한창 시끄러웠다.
프락칸과 깝딴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빠르게 어리넷을 통해서 전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인간과 몬스터가 연합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었다. 당연히 그 배후로 벤진 회장과 브라만 카미에가 지목되었고, 그들은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리넷 상이 묘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원래 몬스터란 것은 지구를 지키는 수호신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그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 수호신이 지구가 오염되고 병들어 가는 것을 보다 못해서 새로운 무공해 에너지원을 인간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에테르 코어란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초기에 인간들을 공격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인간의 수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가 병들어서 결국 인류 전체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 분명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지구 인류의 수가 많이 줄었으니 지구 정화는 끝이 났고, 그 때문에 수호신들이 인류와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서 평화 협정을 맺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단순하다. 어리넷에 퍼진 이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묘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먹혀들고 있었다.
그들은 초기 몬스터의 모습이 모두가 전설과 신화에 나오던 존재들이었음을 상기하고 그것들이 몬스터가 아니라 진정한 지구 수호신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인간의 수가 너무 많았고, 또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부터 대두되었던 문제들이니 당연히 설득력을 가졌다.
그것을 바로잡은 몬스터, 아니 수호신들과 이제는 미래를 위해서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야 할 때인데, 프락칸과 깝딴들이 그 수호신들에게 반기를 들고 쓸데없는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급속도로 퍼졌다.
어리는 그것이 벤진과 카미에를 비롯해서 그들에게 동조하는 몇몇 도시의 권력자들에게서 나온 여론 몰이임을 파악했다.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지만 열 사람이 그렇다고 우기면 한 둘이 거기에 동조하고 또 그렇게 수가 늘어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더구나 믿고 싶은 내용이 아닌가.
이제는 몬스터와 싸울 이유가 없고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 그 달콤함이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심지어는 세진의 근거지인 한반도에서도 그런 내용을 믿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세진의 선전포고와 함께 이루어진 이 기묘한 여론 조작은 어리넷의 관리자들이 손을 쓰기 시작한 후로는 조금씩 세력이 약해지는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초기에는 분명 벤진 회장과 브라만 카미에를 주축으로 한 몬스터 평화 협정 파벌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었지만, 그 이후는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었다.
세진은 그런 상황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위험을 전혀 생각지 않는군. 그들과의 공존이 애초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젠장."
세진은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프락칸과 깝딴을 통해서 에테르 기반 생명체에 대한 대대적인 인식 전환 활동을 하 고 있었다.
분명히 몬스터들의 위험에 대해서 한두 번씩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말도 되지 않는 유언비어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어. 어디 한 번 해 보자는 거지?"
"어쩌려고?"
세진의 표정이 결연해지는 것을 본 자넷이 걱정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부터 몬스터와 협력, 혹은 몬스터의 편을 드는 이들은 모두 적을 간주하고 공격한다. 그것이 개인이거나 단체이거나 상관없어. 모두 적이야."
"세진 너무 과격하지 않아?"
자넷은 세진을 말리고 싶었다.
"어쩔 수 없어. 독재가 뭔지 확실히 보여주지. 지금까지 세계 정부, 그 배후의 10대 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해 줄 거야. 내가 힘을 앞세우면 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을 해 보고 싶어졌어. 우선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이들 중에서 친몬스터 성향은 완전히 쓸어버릴 거야."
자넷은 세진의 말을 들으면서 그저 한숨만 쉬었다.
사실 자넷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30년이 넘도록 몬스터와 싸우면서 생존을 이어온 인류가 갑작스럽게 몬스터와 평화 협정을 맺고, 또 이후로 공존을 모색하자는데 그렇게 쉽게 찬성을 하고 동의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물론 절대 반대를 외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의 싸움은 원치 않았다.
그걸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하지만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 지구의 생명체 사이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어느 한 쪽이 우세하면 다른 쪽이 궁핍해지는 관계, 그것이 문제였다.
더구나 인류는 늘어나는 에테르의 기운을 조절할 어떤 대책도 없었다.
에테르를 조절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자넷도 몬스터와의 공존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에테르 코어라는 에너지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지 연방과 연합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자넷이었다.
사실 에테르 코어 때문에라도 모든 에테르 기반 생명체의 박멸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실제로 연방과 연합의 의지였다.
모두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이곳 지구에서도 그처럼 몬스터의 완전한 박멸은 문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세진의 폭주를 막을 도리가 없어보였다. 자넷은 시간을 두고 세진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세진은 선전포고 72시간이 되는 순간 제일 먼저 LA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쫑과 나비가 각 10마리씩이고 녹두병사가 500이 동원된 어마어마한 공세였다.
세진은 그 정도면 어렵지 않게 벤진 일당을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벤진 회장은 세진의 공격을 각성자와 수련 능력자를 내세워서 막으려고 들었다.
세진은 몬스터를 이용해서 인간을 공격하는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잠시 주춤했던 세진, 하지만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몬스터에게 동조한 순간부터 저들은 인류의 적이다! 모두 쓸어 버려!"
세진은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는 자넷과 함께 곧바로 벤진 회장의 빌딩으로 향했다.
이미 세진은 벤진 회장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벤진 회장 집무실에는 이미 그를 지키기 위한 몬스터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폴리몬들도 몇 명이 보였다.
"잘못된 선택을 했군. 벤진."
세진이 자넷과 함께 파르티크로 만들어진 탈 것 위에서 창을 사이에 두고 벤진을 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벤진 회장에게 곧바로 전달이 되었다.
"잘못된 선택? 이들과 평화롭게 지내자는 것이 뭐가 잘못이지?"
벤진 회장은 짐심으로 그렇게 물었다.
처음 시작이야 어쨌건 지금은 확실히 몬스터들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지 않은가. 제법 긴 시간동안 폴리몬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벤진은 확신했다. 그들 폴리몬들은 충분히 인간들과 공존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말이다.
"그 평화가 언제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나?"
세진은 당장이라도 벤진 회장의 빌딩을 박살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벤진 회장과 그 곁에 있는 폴리몬들을 통해서 작은 정보라도 더 얻어 보려는 생각이었다.
"우리가 변치 않는 이상은 언제까지나!"
벤진은 자신만만하게 소리를 질렀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나 인류에겐 약속을 어길 힘이 없었다. 힘을 지닌 쪽은 저쪽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철저하게 약속을 지켜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물론 눈 앞에 있는 저 세진이란 인간은 다를지 몰랐다. 그는 힘이 있으니 몬스터들과 대립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인간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벤진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몬스터들을 등에 업을 필요가 있었다.
"에테르는 점차 늘어난다. 그리고 결국 지구 전체는 에테르에 먹혀 버리겠지. 그렇게 되면 지구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저것들 에테르 기반 생명체 뿐이다."
"그걸 어떻게 믿는단 말이냐? 거짓말이다!"
벤진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이 우주에 그렇게 멸망한 행성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행성에서 저것들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 싸우고 있다. 내가 하는 말은 진실이고 몇 번이나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몬스터와의 공존을 애초에 생각지 않는 것이다."
"그, 그럴 리가 없다. 저들은 약속을 했다. 우리와 공존하기로. 저들은 우리를 공격하 지 않는다. 폴리몬들은 좋은 이웃이 될 소양을 지니고 있다."
벤진은 세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는 인류 전체의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 약속은 지켜질 수가 없다. 에테르는 계속 늘어나게 된다."
"잠깐,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우리 어머니가 에테르의 생산을 중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가?"
그 때, 벤진 회장의 곁에 있던 폴리몬이 나서서 세진에게 물었다.
"행성 코어는 한 번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너는 네 어머니란 그 행성 코어가 정말로 에테르 생산을 멈추고 지구의 생명체와 공존할 생각이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 약속을 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약속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믿는가? 우리와 너희는 생명의 기반 자체가 다르다."
세진은 그 폴리몬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세진이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단 이성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행성 코어는 최초의 등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행성 코어와 협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는 모든 약속이란 것이 그러하듯,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힘의 우열이 결정을 하는 것이다.
힘이 있는 쪽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 세상의 흐름이 아니던가.
그래서 세진은 행성 코어와 어떤 협상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킬 수단이 확실치 않은 이상은 어떤 약속이나 협정도 허무한 말장난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