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65화 (265/298)

< -- 남의 칼을 빌려서 적을 치는 수법 -- >

LA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에서 일어난 폴리몬의 실종 사건.

그 일이 벌어지는 동안에 어리넷은 지능적으로 그 소식을 감췄다.

그래서 결국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에서 폴리몬의 실종이 일어났더라도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세진과 어리의 폴리몬 납치는 완벽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그 수가 무려 18만이나 되었다.

물론 모든 폴리몬을 테멜로 데리고 온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폴리몬들은 지속적으로 테멜 안으로 납치를 당하고 있었다.

테멜은 기본적으로 어리의 통제를 받는다. 거기에 더 심각한 것은 테멜로 유입되는 에테르를 어리가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폴리몬들은 에테르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다.

당연히 그들에게 에테르 공급을 멈추게 되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재미있는 사실은 폴리몬들이 몸안에 코어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몸 자체가 코어였다.

따로 코어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전에는 코어 위에 몸뚱이를 만들어 걸친 형태였지만 폴리몬들은 그런 구별이 없었다.

물론 에테르가 공급되지 않는다고 당장에 폴리몬들이 죽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들은 에테르가 거의 없는 테멜로 이동이 되는 순간부터 거의 모든 신체 활동을 멈추었다. 왕선녀와는 또 달랐다. 왕선녀는 에테르가 공급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폴리몬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험을 해 봐야겠어. 폴리몬 몇을 에테르가 전혀 없는 곳을 만들어서 넣어 봐. 도대체 얼마나 버티는지 알고 싶으니까."

그런 세진의 명령에 따라서 폴리몬 100 개체가 특별한 테멜 공간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또 다른 폴리몬들은 에테르의 농도가 각기 다르게 설정된 테멜에 분산 수용 되었다.

폴리몬들은 불안해했다.

하지만 그들의 불안은 낯선 곳에 옮겨 온 것에 대한 불안감일 뿐이었다.

"행성 코어와의 연결 자체가 없는 것이에요."

어리가 그들을 관찰하다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그럼 다른 몬스터들이나 코어들처럼 지속적으로 어떤 정보를 주고 받지 않는다는 말이야?"

세진이 의외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것이에요. 그냥 처음 만들어진 상태에서 인간들과 교류를 하면서 성장하는 것이에요. 지금까지는 다른 명령을 받은 것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을 공격하지 말라는 것과 인간의 모든 것을 배우라는 것까지가 지금 폴리몬들에게 각인된 내용의 전부란 말이야?"

"물론 그 왜에 행성 코어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이 깔려 있는 것이에요. 그걸 기초로해서 다른 명령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말을 듣자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말이야. 지금 이곳 테멜로는 지구의 행성 코어가 보내는 메시지가 도착을 하지 못하는 거잖아. 그렇지?"

"당연한 것이에요. 어리의 테멜은 입구조차도 필요할 때에만 열리는 것이에요. 거기 다가 어리 테멜의 입구가 열려 있는 동안에 어리 테멜에서 다른 테멜로 통하는 입구는 절대 열리지 않는 것이에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리 테멜의 입구가열렸을 때에 그 입구를 통해서 어떤 명령이나 정보를 테멜 안으로 보낸다고 하더라고 그건 하위 테멜로 연결이 될 수가 없는 것이에요. 특히 어리가 관리하는 몬스터들이 있는 곳은 절대로 안전하게 관리가 되는 것이에요."

어리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몇 겹의 안전 장치를 통해서 외부에서 침입할 수 있는 에테르 코어의 신호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굳이 폴리몬들을 모두 잡아 죽일 필요는 없겠지. 그것들도 제법 뛰어난 일꾼들이잖아. 다른 명령을 받지 못하는 한, 폴리몬들이 우릴 적대할 이유도 없고 말이야. 안 그래?"

"세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자넷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물었다.

자넷은 몬스터에게 인정 따위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처음으로 인간들과 의사 소통이 가능하고 또 교류를 하는 에테르 기반 생명체를 보게 된 것이라서 신기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넷의 입장에서 몬스터는 박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랜에서 몬스터를 키우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젠 저 폴리몬이란 것들도 좀 살펴보자고. 몇 가지 실험을 해 보고. 지금 폴리몬들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테르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라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비상용 밧데리처럼 남겨 두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비상용 밧데리?"

세진의 말에 자넷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알다시피 이곳 어리의 테멜은 물론이고 실제로 우리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에너지가 에테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그렇지?"

"그래. 맞아."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우리 어리의 경우에도 실제론 어리와 테멜 코어가 결합해 있는 형태고, 그걸 유지하거나 혹은 테멜 안에서 여러 생산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도 에테르야. 어리는 에테르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거지."

"그런 나도 알아 세진. 그래, 그래서 지금 폴리몬들을 혹시 모를 에테르 고갈 사태에 대비해서 죽이지 말고 데리고 있자는 거야? 그러느니 차라리 에테르 코어를 축적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아?"

자넷은 세진의 말을 이해했지만 역시 마음데 드는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폴리몬은 몬스터지만 아직까지는 일종의 초식 동물이잖아. 인간을 공격하지도 않고 적대하지도 않아. 더구나 저들이 스스로 에테르를 만들어 낼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두고 봐도 될 것 같고. 거기다가 이런저런 일을 시키기에도 적당한 상태고 말이야. 일꾼으로 나쁘지 않잖아."

"모르겠네. 세진의 선택이 좋은지. 난 그냥 빨리 처리를 했으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선 위협이 되지 않는다니 일단은 세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폐기하는 거야? 알았지?"

자넷은 일단 한 걸음 물러났다.

세진의 말대로 폴리몬들은 당장 위험한 녀석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세진도 폴리몬들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어떤 경로가 되었건 행성 코어와 연결이 되면 그 때부터는 행성 코어의 뜻대로 움직일 것이 분명한 폴리몬들인 것이다.

"지금 밖에선 난리가 난 것이에요. 폴리몬들이 모두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에요. 더 이상은 어리넷을 이용하지도 않고 통신기를 지니고 다니지도 않는 것이에요."

어리가 잠깐 동안 보이지 않더니 언제 나타났는지 세진과 자넷이 있는 테이블의 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네. 그래서 폴리몬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는 거야?"

"그건 아닌 것이에요. 하지만 지금부터 포획하는 폴리몬들은 또 다르게 취급을 해야 하나 물어 보러 온 것이에요."

"그야 당연하지. 1차로 납치한 폴리몬들도 시차를 두고 세 계층으로 나눴지?"

"그런 것이에요."

"그 다음에는 세 시간 단위로 테멜 안으로 들어오는 폴리몬들을 나눠서 서로 다른 곳에 있게 했고?"

"시키는 대로 한 것이에요. 덕분에 테멜이 모자라게 된 것이에요."

어리와 자넷은 세진이 폴리몬을 납치하는 시간 차이에 따라서 분산해서 수용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폴리몬들이 실종되기 시작하면서 혹시라도 행성 코어가 폴리몬들에게 어떤 특별한 지령을 내렸을까 걱정이 되어서 분산해서 수용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세진은 혹시라도 행성 코어가 폴리몬들과 의사 전달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직접 만나지 않으면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폴리몬들이 일제히 몸을 숨기는 상황이라면 어떤 다른 명령을 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이전보다 한층 조심하자는 의미로 어리에게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럼 이상이 없다고 판단된 폴리몬들을 한 곳으로 묶으면 되겠네. 하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납치한 폴리몬들과 이후에 들어온 폴리몬들은 섞이지 않도록 해야하는 건 알지?"

"물론인 것이에요. 시간 간격을 좀 더 넓혀서 반나절 정도씩 묶으면 될 것이에요. 그럼 어느 정도 테멜 공간이 확보가 되는 것이에요."

어리는 하위 테멜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어리가 성장을 하면서 거느릴 수 있는 하위 테멜의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물론 지역 등급의 테멜 코어는 흡수했지만 지구의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흡수하지 못한 한계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즈음 어리도 조금씩 스스로 배우고 익히는 면이 늘어나고 있었다.

외부 요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진도 나름대로 어리의 미래를 아빠 미소를 지으며 기대하고 있는 중이었 다.

폴리몬의 실종은 행성 코어에겐 큰 상실이었다.

행성 코어는 이전에 만들었던 수 많은 몬스터들과 전혀 다른 진화된 자식들을 생산하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그들은 틀에서 찍어낸 다른 아이들과는 격이 달랐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고, 그 마지막엔 행성 코어 자신에게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행성 코어가 부여한 불확실성을 기반으로 어머니인 자신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그리 능력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에테르를 소비해서 한 명의 자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행성 코어는 그래서 따로 그 자식들을 강제하지 않았다. 알아서 성장하며 커나가길 기대했고, 그걸 위해서 인간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다.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기는 하지만 먼저 상대를 공격하는 일은 하지 않도록 명령도 내려 두었고, 인간들의 모든 것을 배우라는 명령도 심어 두었다.

물론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대항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초적인 제약도 심기는 했지만 그거야 당연한 과정이고,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에테르를 소비하며 폴리몬이란 자식들을 만들고, 그러면서 이전에 생산했던 자식들을 선별해서 수를 줄이는 작업도 하고 있었다.

아직은 자신을 보좌해서 나름대로 할 일이 많은 아이들은 남겨두고 그렇지 않고 그저 숫자만 채우고 있는 아이들은 다시 에테르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실제로 이즈음에는 행성 코어가 만들어내는 에테르보다 소비하는 에테르의 양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행성 코어는 폴리몬의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많은 폴리몬이 일시에 사라졌다.

행성 코어는 분노했다.

그래서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행성 코어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직까지 행성 코어는 지구의 의지와 팽팽하게 겨루고 있는 중이었다.

지쳐 쓰러질 때가 되었을 것 같은 지구의 의지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성 코어가 섣불리 움직이다간 일순간에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것이 날아갈 위험이 있었다.

심지어 행성 코어 자신을 돕고 있는 다른 코어들조차도 쉽게 빼서 다른 일을 도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행성 코어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폴리몬들은 어디로 갔을까.

실제로 폴리몬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하나 뿐이었다.

언젠가 자신의 자식을 통해서 만나봤던 인간.

그 인간만이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행성 코어는 어떻게든 그 인간을 처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행성 코어는 대리인을 세우기로 했다.

인간들에게 배운 바에 의하면 다른 이의 칼을 빌려서 내 적을 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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