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이트 에테르 코어의 진화 -- >
벤진 회장의 LA, 인도 브라만 승려 카미에의 델리.
두 곳의 대도시에서 어리의 힘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물렀다.
갑자기 도시 안에서 괴수 두 마리와 7등급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서 나타났다.
그리고 세진은 그들이 몬스터와 정확히는 행성 코어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세진이 신경 쓰고 있던 나머지 두 곳의 도시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무너졌다.
어리가 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래를 거절한 이들에 대한 행성 코어의 보복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세진은 한반도 전체를 몬스터 청정 지역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 는 일이 되고 말았다.
몬스터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이면 공간이 있는 곳으로 몰려서 그곳에 자리를 잡고 벗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사람들은 몬스터가 언제 공격을 해 올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지만 어쨌거나 더는 몬스터가 쳐들어오는 일이 없다는 것은 사람들의 얼굴에 작은 웃음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그 동안 세진은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어리와 괴수 군단을 모두 철수시켰다.
행성 코어가 직접 등장을 했고, 그 행성 코어가 여타의 행성에 있는 코어들과 달리 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세진은 지금까지 공격적으로 하던 일처리를 멈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몬스터들은 일정 영역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이면 공간에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
"맞아. 에테르의 농도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문제야. 에테르는 계속 늘어나게 될 거고 언젠가는 지구 전체를 삼키겠다. 그것이 행성 코어들의 목적이었으니까."
"프락칸과 깝딴들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여유를 가져 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자넷은 세진의 기운을 북돋워주려 했다. 하지만 세진은 행성 코어의 등장이란 충격에서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리가 온 것이에요. 오늘도 열심히 사냥을 하고 돌아온 것이에요."
그 때, 어리가 홀에 나타났다.
세진이 칩거를 하고 있다고 벗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리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몬스터 사냥을 하고 그 몬스터의 사체나 코어를 테멜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거기에 프락칸과 깝딴, 그리고 전투병단 소속의 의체들도 세계 곳곳에서 몬스터 사냥을 하고 정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사실 몬스터를 사냥하고 코어가 나온다고 모두 정화를 해 버릴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에테르 코어에 의지하는 세상이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도 몬스터들이 영역을 벗어나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없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필요한 만큼만 몬스터 사냥을 하고 에테르 코어를 확보하면 굳이 몬스터와 싸울 이유가 없으니, 사람들도 무리를 지어서 필요한 만큼의 사냥만 하는 쪽으로 행동 지침을 정하고 있었다.
굳이 위험을 자초하며 몬스터를 박멸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였다.
지구의 인구는 급격히 줄었고, 몬스터들이 차지했던 땅의 대부분을 다시 돌려받았으니 생산을 위한 땅이나 자원이 모자란 일은 없었다. 소비 주체가 그만큼 줄었는데 생산 가능한 토지가 늘어난 아주 괜찮은 상황인 것이다.
적어도 같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사람들은 지구 전체가 조금씩 에테르에 물들면 결국 지구에선 에테르 기반 생명체 이외의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지금 당장의 현실, 그 이상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특별한 몇몇 뿐이었다.
"하긴 이해할만 하지. 내 삶에 여유가 없는데 무슨 미래고 후손이겠어?"
세진은 그렇게 사람들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변화가 그것만이 아니란 사실을 세진은 오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세진님, 전혀 새로운 타입의 몬스터인 것이에요. 왕선녀와 비슷한 몬스터들이 엄청난 숫자가 나타난 것이에요."
"엄청난 숫자?"
"적어도 십만 이상은 될 것이에요."
"미친!"
세진은 어리의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왕선녀는 왕벚꽃나무가 변신을 한 몬스터였다.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외모지만 근본이 몬스터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데 이 여자 몬스터는 그 자체로 코어였다. 다시 말해서 지역 등급의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여자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어리는 그걸 흡수하거나 하는 것은 이번에도 생각도 못했다.
생긴 것만 인간 여자를 닮은 것이 아니라, 거의 20대 인간의 사고 능력과 학습 능력 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력이 거의 완전 기억력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지성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물론 기억력이 좋다고 생각이 뛰어나고 지혜로운 것은 아니어서 이 왕선녀도 조금은 멍청한 구석이 있었다.
물론 세진은 왕선녀의 발달 속도로 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똑똑한 몬스터가 하나 생길 거라고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그 왕선녀를 지금까지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있는 이유는 그녀가 지구의 에테르 기반 생명체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과, 왕선녀가 세진이나 자넷, 어리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이듀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선녀는 지역 등급 코어를 지닌 어마어마한 괴수다. 세진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정도의 괴수인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조심해서 감시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지금도 소형 테멜 안에서 홀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왕선녀는 별 불만이 없었다. 그저 세진이 하라는 대로 그렇게 머물러 있으면 책이나 읽고 있는 중이었다.
"아, 하지만 왕선녀와 등급은 다른 것이에요. 대부분 노란색 등급이거나 초록색 등급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3등급이나 4등급 몬스터들이 사람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응? 그럼 별로 문제가 없는 거 아냐?"
"그게 아닌 것이에요. 벤진 회장과 카미에 브라만이 그 인간형 몬스터들과 평화 협정을 맺은 것이에요. 그리고 교류를 하기로 한 것이에요."
"허허허."
세진은 어리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저 헛웃음만 터뜨렸다.
'에테르 기반 생명체와 평화 협정이라니.'
세진은 기가 막혀 웃으면서도 그게 가능할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단기간은 몰라도 미래를 생각하면 그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리야. 왕선녀를 만나야겠다."
세진은 그렇게 말하고 홀에서 모습을 감췄다.
"세진!"
"세진님!"
자넷와 어리가 갑자기 사라진 세진을 불렀다. 그리고 둘의 모습도 홀에서 사라졌다. 세진은 어리가 관리하는 테멜이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자넷은 아니다. 그래서 자넷은 어리가 이동을 시켜줘야 했다. 세진이 왕선녀가 머무는 테멜의 석실에 나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리와 자넷이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누추하지만 그쪽으로 앉으세요. 참, 환영해요."
왕선녀는 세진과 자넷, 어리의 의체에게 자신의 방에 있는 의자들을 권했다.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왔다. 행성 코어에 대해서."
"아, 어머니. 하지만 나는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해요."
왕선녀가 세진의 말에 제약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왕선녀는 어머니인 행성 코어로부터 일정부부는 제약을 받은 몸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행성코어가 왕선녀의 몸에서 무리한 에테르 운용을 하는 바람에 몸이 많이 상했다.
더구나 변신을 한 것도 행성 코어의 힘이었지 왕선녀의 힘은 아니었다. 그 때, 행성 코어는 왕선녀를 세진 일행에게 넘기면서 락을 걸어 놓듯이 왕선녀가 가진 기억의 대부분을 흩어 버렸다. 실제로 락인지 봉인인지 삭제인지는 왕선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왕선겨나 많은 것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거기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좋아. 아는 것만 말을 해 주면 되니까."
"알았어요. 물어봐요."
왕선녀는 세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런 왕선녀의 모습은 어딜 봐도 청초한 인간 여자의 모습이라고 속을만 했다.
어리가 파악한 바로는 왕선녀의 신체는 인간 여성의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왕선녀의 몸은 의체 수준으로 인간의 몸과 유사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왕서녀는 그 몸을 에테르를 이용해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몸이 코어이니 스스로 에테르를 흡수해서 몸을 유지하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면 인간과 같다고 봐도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행성 코어 이외에 에테르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 존재가 또 있나?"
"아, 에테르를 만드는 것은 오직 어머니 밖에 없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딸들은 모두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기는 해요."
"응? 그럼 어떤 몬스터라도 지구의 에너지를 흡수해서 그걸로 에테르를 만들 수 있다는 건가?"
세진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그건 아니에요. 어머니의 여러 자식들 중에서 딸이 있고, 그 딸들만 그게 가능하죠. 여기서 딸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처럼 아이들을 낳을 수 있는 존재를 말하는 거에요."
"부족코어?"
"정화하게는 화이트 코어들이에요."
왕선녀는 세진의 물음에 한 번 망설이지 않게 대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런 내용을 숨기지 않고 알려줘도 되는 건가? 내가 너희 종족을 멸종시키려고 하고 있는데도?"
세진은 그런 왕선녀의 태도에 의구심을 가지고 물었다.
"당신은 매우 강력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를 이기진 못해요. 그건 정말 당연한 거죠. 그러니 상관없는 거예요."
왕선녀는 자신의 정보가 세진에게 힘을 준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좋아.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행성 코어가 이 지구 전체를 손에 넣을 생각인가 하는 거야. 그러니까 행성 코어가 지금 정도, 혹은 지금보다 조금 더 낮은 수준에서 에테르의 비율을 조절할 생각은 없는가 하는 거야. 일종의 공생인 거지."
"아! 공생. 함께 사는 거. 좋아요.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어머니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모른다고?"
"자식이 부모의 속을 어떻게 짐작하겠어요? 아, 그런 말이 있죠? 내 자신도 나를 모 른다고요. 그런데 하물며 다른 이의 속을 어떻게 짐작하겠어요?"
"그런가?"
"하지만 짐작은 할 수 있어요. 아마도 어머닌 공생을 생각하지 않으실 거예요."
"어째서?"
세진은 함께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생명의 기반 자체가 다르다.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내게서 태어나는 것을 채울 수 있는데, 굳이 왜 다른 존재가 만든 생명과 함께 누리겠어요? 그럴 이유가 없죠."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굳이 다른 것과 함께 누릴 이유가 없다?"
"물론 제 생각이긴 하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짐작일 뿐이죠."
"그런데 왜 인간들 틈으로 몬스터들, 그러니까 자신의 아이들이랄 수 있는 것들을 들여보내고, 평화 협정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지?"
"무슨 소리죠?"
왕선녀는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세진의 말을 듣고 되물었다.
세진은 몬스터들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대량으로 나타난 것과 그들이 인간들과 평화 협정을 맺고 인간들과 함께 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음, 배우려는 거죠. 지금 제가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는 것처럼, 그들도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울 거예요."
"위험하군."
세진은 딱 잘라서 그렇게 지금 상황을 파악했다.
몬스터들이 진화를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만큼 무서운 무기는 없다. 인간이 나약한 몸으로 지구의 지배자가 된 것이 바로 생각할 줄 아는 힘 때문이다.
그런데 몬스터들이 인간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아, 어리는 눈앞에 깜깜한 것이에요."
"무슨 소리야?"
"자넷 언니. 지금 세진님 감정이 그런 것이에요. 어리는 세진님의 느낌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이에요. 눈앞이 깜깜한 것이에요."
"그, 그래. 그렇겠구나.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일이니 말이다."
자넷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몬스터가 인간들과 손을 잡고 세진에게 저항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인데 세진은 행성 코어는 고사하고 대륙 코어도 감당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뭔가 있어. 아직은 희망이 있는 거야. 아직은."
하지만 세진은 갑자기 큰 소리를 치더니 왕선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홀로 돌아 갔다.
어리는 세진이 자넷과 함께 모여서 의논을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넷과 함께 세진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