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51화 (251/298)

< -- 세계 정부 따위? 없는 게 나아! -- >

한반도가 새로 나타난 세력에 의해서 완벽하게 점령당했다.

이것은 세계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한 일이어야 했다.

그다지 얻을 것도 없는 위험 지역에 뭉쳐서 살면서 시도 때도 없이 지원을 요청한다는 민원이나 넣던 지역이 완전히 세계정부의 영향권에서 사라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려진 뒷모습을 보면 또 상황이 다르다.

지금껏 한반도는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앞장서서 진행하던 이들이 세계정부에서 임명한 관리들이었다.

초창기의 한반도 관리들 중에는 민족을 위해서 혹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들을 위해서 애쓰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들이 하나같이 세계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것들이다 보니 점차 지원을 줄이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서 세계정부의 배후에 있던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들이 이어지면서 이슬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시나브로 한반도의 재화들이 세계정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세계정부에 꼬리를 치는 친정부 인사들이 관리로 임명되는 일이 늘어나게 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서 그나마 한반도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여건이 열악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이유도 다른 지역에 비해서 더 많은 희생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그것이 누적되다보니 한민족의 수는 천만이 겨우 될 정도로 줄어들게 된 것이다.

어쨌거나 겉보기와는 달리 한반도 지역은 나름대로 세계정부의 배후에 있는 세력들에게는 괜찮은 주머니였던 셈이다. 가끔씩 손을 넣어 휘저어 보면 뭔가 한 줌씩 군것질 거리가 나오는 요술 주머니 같은 그런 곳이 한반도였다.

그런데 그런 곳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거기에 더해서 세계10대 도시 주변의 괴수가 등장하고 또 7등급으로 짐작되는 몬스터 수십 마리가 도시를 포위한 상태로 등장했다.

그야말로 10대 도시로서는 재앙이 닥친 것이다.

더구나 더 큰 문제는 그 몬스터들 때문에 도시가 고립이 되었다는 것이다.

거대 도시는 아무리 자체 생산을 한다고 해도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소비도시다.

그 도시들은 세계의 다른 도시나 마을에 비해서 급격하게 성장했다.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구조물들의 건설도 끝없이 이어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의 급증이었다.

거기다가 그들 10대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평균 재화의 세 배 정도를 소비하며 살고 있었다.

에너지는 물론이고 의식주의 모든 것이 다른 도시의 세 배 가치를 소비하는 것으로 굳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오늘부터는 다른 도시의 두 배에 해당하는 것들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거대 도시 주민들의 소요 사태가 그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보여주었다.

도시가 몬스터들의 등장과 함께 고립되고 얼마 후에 긴축 재정이 발표되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강제적인 초치가 취해졌다. 그런데 그 후 이틀이 지나기 전에 도시의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것을 갑자기 누리지 못하게 된 것에 불만을 터뜨렸다.

그들은 긴축된 소비가 다른 도시 주민이 사용하는 것의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도시나 마을에 비해서는 그래도 세 배 혹은 네 배의 배급을 받는 것임을 절대 수긍하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이 들고 일어나 데모를 시작한 이유였다. 도시의 지배자들은 그런 주민을 무력으로 진압하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이 키운 주민들은 그들이 보기에도 너무 현실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 10대 도시라는 곳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을 때, 세계의 다른 도시들은 그 동안 묶여 있던 정보의 일부가 풀리면서 세계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었다.

특히 10대 도시와 그 도시의 주인이랄 수 있는 단체나 가문의 횡포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세계정부에서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난 배경에는 어리의 지속적인 정보 공작이 있었다.

거짓을 꾸미지 않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세진이 원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맞습니다. 갑작스럽게 10대 도시에만 몬스터들이 등장하고 그 몬스터들이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인위적인 조작이 가미된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것이 한반도 점령 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프랜드 말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이 악마의 주구를 사역해서 우리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용. 조용히들 하십시오. 그렇게 떠든다고 대책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정리를 해 보면 이번 사태는 아무래도 프랜드에서 벌인 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모든 모발이 하얀색인 사내가 목소리를 높이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눈썹과 수염까지 모두 백색이었고, 입고 있는 옷은 반대로 검은색 일색이었다. 그가 화상 회의를 주관하면서 이야기를 이끌기 시작하자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목소리들이 정리가 되었다.

"벤진 회장께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대책이라도?"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내가 흑백의 대비를 보이는 벤진 회장에게 물었다.

"대책이 있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서 도시의 고립을 풀고 나올 능력이 있는 분이 있습니까? 수십 마리나 되는 7등급 몬스터들과 그보다 더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한  마리씩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모든 능력을 쏟아 부으면 그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벤진 회장은 앞쪽의 카메라를 보면서 굳은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소? 이대로라면 우리 도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오."

"그렇습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하하하. 선택이 여지가 없으면 몬스터와 싸우셔야지요. 그래서 승리하시면 되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리고 다들 뭔가 한 수씩은 숨겨 놓은 것이 있을 테니 이참에 한 번 시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벤진 회장은 다시 시끄러워지는 아홉 개의 화면을 한 번씩 훑어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다시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모든 화면의 사람들이 조용히 입을 닫았다.

"우리 인정할 것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으로 세상을 지배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우리 전부를 발 아래에 둘 수 있는 힘이 나타난 것입니다. 아마 그들 프랜드는 우리 열 개의 도시를 지우려고 마음먹으면 순식 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몬스터들로 충분히 입증이 된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항복을 하자는 겁니까?"

콧수염이 멋들어진 사내가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요. 항복이라. 그게 왜 필요할까요?"

"뭐?"

"지금 그 말의 의미는 뭡니까? 벤진 회장?"

"항복이 필요없다는 겁니까?"

"도대체 무슨 소립니까?"

벤진 회장의 한 마디가 다시 사람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왜 필요할까요?"

그런 중에 벤진 회장의 목소리가 그들의 귀를 흔들었다.

일순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프랜드가 욕심을 낼만한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굳이 우리에게 받아야만 할 것이 있습니까? 다른 말로 우리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가면 될 일인데 굳이 항복 따위를 받아서 우리라는 후환을 남겨둘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불씨를 남겨두겠습니까?"

벤진 회장의 목소리는 점차 뒤로 갈수록 격앙되게 들렸다.

그리고 그 내용 하나하나가 화상 회의를 하고 있는 10대 도시의 주인들의 가슴을 묵직하게 짓눌렀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힘을 내세워서 지구의 인류 전체를 억압해 왔습니다. 그것을 프랜드가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감추려고 하는 모든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들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벤진 회장.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소? 당신은 우리의 리더가 아니오?"

"함께 힘을 모을 때에는 제가 앞장서서 여러분을 이끌 수 있지만 지금처럼 고립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저도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이제는 고립된 도시별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 주민들의 소요를 진정시키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도시 자체적인 생존이라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벤진 회장?"

"각오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도시들은 일순간에 무너지게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도시를 컨트롤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게 실패하면 여러분은 도시 주민들의 손에 여러분의 자리에서 끌려 내려오게 되는 치욕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지요. 그래서 저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LA의 운영에 신경을 써야 할 입장입니다. 그게 얼마나 갈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서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나오리라고 보시오? 벤진 회장은?"

이제는 누구에게 매달려봐야 특별히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모두들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들을 벗어 던지고 진지하게 회의에 임하는 모습이 되었다.

"두고 보겠지요. 그러면서 우리들의 도시가 얼마나 빠르게 몰락하는지 지켜보겠지요. 그리고 결국에 도시의 몰락이 결정되면 그 때, 그들이 나서서 우리들을 징치할 가능성이 제일 높지요. 그게 아니라면 당장 지금 이 순간이라도 우리들의 근거지를 공 격할 수도 있는 일이고 말입니다."

벤진 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잠깐 등 뒤로 고개를 돌려서 밖을 바라봤다.

그의 등 뒤로는 LA 시내의 모습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대항할 수단은 전혀 없다는 겁니까?"

아무래도 쉽게 항복할 생각이 없는 이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지만 충족되면 우리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게 뭐요?"

질문은 동양인이 던졌지만 다른 화면의 모든 주인들이 벤진의 답을 기다리는 눈치다.

"이기지는 못해도 맞서서 거세게 저항할 수 있을 정도의 무력! 그것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우리를 공격하면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공격을 하라는 정도의 엄포는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 필요한 겁니다. 그것도 각 도시가 독립적으로 그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기지는 못하지만 건들면 자폭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거로군. 그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을 보이면서 하는 협박이어야 한다는 소리고."

"그렇군.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지. 지금으로선 도저히 방법이 없어."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는 해야겠지요. 프랜드가 수천만 인류가 한꺼번에 몰살을 당하는 것을 보기 싫다면 적어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겠지. 우리가 준비를 잘 한다면 말이지."

"그게 뭐 어렵습니까? 도시 전체에 여기저기 핵을 심어 두면 될 일이지. 함께 죽자는 것은 그리 어려울 일이 없는 거 아닙니까?"

"아,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그것도 준비를 해 둬야겠군요."

"역시 머리를 모으니 좋은 생각들이 나오는군요. 좋습니다. 좋아요."

발밑에 핵폭탄을 깔아 놓고 상대를 위협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 의견에 열렬한 찬성표를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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