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 정부 따위? 없는 게 나아! -- >
세진이 몬스터 토벌을 중지한다고 했지만 단 한 곳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세진은 한반도 내에 있는 몬스터들을 일주일 동안에 씨를 말렸다.
물론 이면 공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이 끝없이 다시 나오기는 했지만 그런 몬스터들도 그리 멀리 이동하기 전에 사냥을 당했다.
쫑과 나비로 대표되는 괴수들이 한반도 전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생긴 것이 모두 똑 같이 생긴 몬스터라서 목격자들은 황금색 고양이와 흰 색의 개에 대한 엄청난 위용에 대해서 입을 모았다.
그들은 72마리의 황금색 고양이와 72마리의 하얀색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한반도의 주민들은 누가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몬스터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춘 것만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긴급한 회의가 연일 계속 되었다.
몬스터가 사라진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에테르 코어의 수급이 불안정해지면 도시나 마을의 기능이 멈추게 될 우려가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런 상황은 세계 정부에 보고가 되었고, 세계 정부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비록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중접 이면 공간 다섯 곳에 뭉쳐 있는 지역의 몬스터를 순식간에 토벌해 버린 능력은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의 몬스터들을 토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몇 사람의 입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저항에 부딪혔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나
'지금이 좋아. 지금 이대로!'
를 외치는 이들이 있기 마 련이다.
몬스터들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럽지만 그런 상황을 빌미로 세계를 경영하게 된 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몬스터들의 위협도 적당히 방비를 하고 있었고, 세계의 모든 재화와 힘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어찌 좋지 않을까?
그런데 몬스터를 박멸할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그들에겐 끔찍한 일이 될 터였다.
때문에 세계 정부에서 이전 장관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다시 한 번 정리가 되어서 지침이 되어 하부 기관으로 배포가 되었다.
[한반도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세력과는 접촉을 금한다. 그들은 인류의 배신자들일 따름이다.]
"하! 미친 거지? 뭐 인류의 배신자?"
세진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튼 개떡 같은 것들이 꼭 지랄을 하지. 내가 이래서 정부라고 하는 것들을 싫어하는 거야. 그냥 내버려 둬도 잘 사는데 꼭 무리를 지어서 편을 가르고 조직을 꾸미고, 결국에는 상하 관계를 만들어서 억압을 해. 그런 주제에 그 조직의 이익을 위해선 다른 조직을 탄압하지. 아, 정말!"
세진은 분통을 터뜨렸다.
사실 하나의 정부 아래에서 뭉쳐서 몬스터에 대항하고 인류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세진은 정부의 존재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의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인류의 결집이 필요한 때에 하나의 거대 정부가 생긴 것을 어떻게든 인정해 주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아서 세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정부가 지구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리야 이것들이 열 개 도시라고?"
"그런 것이에요. 열 개의 큰 도시로 모든 것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에요."
"결국 거기에 원흉들이 있다는 거겠지?"
"그런 것이에요. 하지만 개인이라고 보긴 어려운 것이에요."
"역시 집단인 건가?"
"회사거나 혹은 가문이거나 종교 단체이거나 그런 것이에요."
"핫, 기가 막히는군. 좋아. 그럼 우리도 한 번 해야지?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력 재편을 해야겠어."
"어떻게 하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자넷이 물었다. 자넷의 얼굴에는 설레는 기대가 감돌고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안정한 몬스터 청정지역으로 만들 거야. 그리고 지금 10대 도시라고 하는 것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는 거야. 또, 세계 정부에서 탈퇴하고 우리에게 오는 도시나 마을들에 대한 방위 협정을 맺는 거지. 만약에 거기에 시비 거는 놈들이 있으면 전쟁인 거야."
"우와 과격하네?"
"지금 어리의 생산력이면 충분할 거야. 지구 전체를 먹여 살리는 거야 어렵지만 지금 상태에서 조금씩이라도 더 지원을 해 줘서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지. 거기다가 에테르 코어에 대한 독점도 문제가 될 거야. 이면 공간 이외의 몬스터들을 정리하면 당장 그 도시들도 문제가 생기겠지. 뭐 비축분이 있으니 어느 정도는 버티겠지만."
"음, 몬스터야 어차피 잡아야 하는 거지만 그렇게 몬스터를 급하게 정리하면 확실히 문제가 생기긴 하겠네."
"어쨌거나 아직도 이 세상은 에너지가 지배하고 있으니까. 저들이 세계 정부를 빌미로 에테르 코어를 독점하고 있지만, 몬스터가 없다면 그것도 물 건너 가는 거야. 어디서 에테르 코어를 구할 거야?"
"그럼, 결국 이전에 말했던 대로 사람들을 선별해서 헌터 자격증을 줄 거야? 그래서 어리의 테멜 안에서 사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식으로?"
"꼭 필요한 정도의 에테를 코어를 획득하기 위해서 모든 주민들이 몬스터 사냥에 나설 필요는 없지. 지금도 보아하니 에테르 코어가 부족한 곳은 거대 도시들 밖에 없어. 다른 곳에서 그곳으로 에테르 코어가 흘러 들어가고 있는 거지. 거기에 식량이나 여러 자원들 역시 그들 도시로 집중이 되고 있어. 분명 잘못된 것인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또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 정보 통제가 아주 잘 되고 있는 거야. 죽일 놈들인 거지."
세진은 생각할수록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몸을 들썩 거렸다.
"그럼 도시들을 공격해서 혼을 내 주는 것이에요. 각 도시의 중앙을 공격하면 되는 것이에요. 어리는 지금이라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세진이 10대 도시의 주인들에게 느끼는 분노를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세진의 허락만 있다면 그 도시들은 엄청난 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 일단 저들이 하고 있는 짓을 사람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일단은 천천히 일을 진행하자. 먼저 그 도시들 근처에 괴수들을 풀어. 그래서 도시들을 고립시켜. 따로 공격하진 말고, 밖으로 나오는 경우에만 위협을 하도록 하고. 녹두병사들이면 충분하겠지?"
"걱정 없는 것이에요. 하지만 지구 전체를 한꺼번에 살필 수는 없으니 간혹 놓치는 경우는 생길 것이에요."
"괜찮아. 어쨌거나 거대 도시 주변에서 괴수들이 어슬렁거리면 뭔가 문제가 생기겠지. 그리고 다른 도시에서 그 도시로 들어가는 보급품들은 무조건 빼앗아. 절대 다른 도시의 생산품이 거대 도시로 들어가지 못하게 해."
"한 도시에 괴수급 한 마리와 녹두병사 30마리를 배치할 것이에요. 잘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 그렇게 수고를 하고. 한반도에선 프락칸들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한반도 전체를 정화할 거야."
"전투병단도 함께?"
자넷이 물었다.
"당연하지. 프락칸과 깝딴을 호위하는 일이 그들이 할 일이니까.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와 목적을 사람들 사이에 전파하도록 해. 김혜인 박사가 프락칸으로선 최고니까 그녀에게 프락칸의 지휘를 맡기고, 깝딴은 정진이씨에게 맡겨. 호위야 남편들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다른 프락칸과 깝딴들은 전투병단 의체들을 배정하면 되고."
"알았어. 자기 계획에 맞춰서 내가 맡아서 일을 시킬 테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은 무슨. 솔직히 어리가 데리고 있는 괴수들이면 지구 멸망도 내 손으로 할 수 있어. 10대 도시고 뭐고 눈에 차지도 않아. 다만 피를 보는 것이 망설여져서 잠시 시간을 두고 지켜보려는 것 뿐이야. 그래봐야 뱃속 시커먼 놈들이라 언젠가 정리를 해 버릴 생각이지만."
세진은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스스로 누군가를 징치할 자격이 있는지 어떤지에 대해선 이제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이란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세진은 결국 선과 악이란 보편성과 개인차에 기인한다고 결론지었다.
보편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것을 가지고 선과 악을 나눌 수 있지만, 세진은 개인의 주관이 그 선과 악을 재단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진 스스로가 자신의 잣대에 따라서 선악을 나누고 악을 징벌하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어쩔 거야?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그들이나 내가 같은데.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고, 나는 내가 옳다고 여기면 누군가 중재를 해야 하는데 중재할 존재가 없으니 둘 사이의 문제는 둘이서 해결을 해야지. 크큿, 그러니까 억울해도 하는 수 없는 거지.'
세진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민족이란 지역을 공유하며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연대감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라고 간략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세진은 자신이 민족으로 따지면 한민족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일종의 소속감이 있었고, 애착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 애착 속에는 오랜 세월동안 파벌을 갈라 싸우는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과 냉소 역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진이었다.
하지만 막상 한민족의 대다수가 죽고 겨우 1천만 정도가 남아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는 절로 분통이 터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도 권력 다툼을 하며 세계 정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의 존재를 알고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부산 그리고 그 외의 여러 크고 작은 도시들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그나마 사람들이 많은 서울을 비롯한 다섯 도시의 수장들은 모두가 세계 정부에서 도시의 수장으로 임명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주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해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언제나 그러했듯이 민초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면면히 이어지는 생존의 밑거름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이름을 내 놓지 않는 사람들의 힘이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방위병들의 희생 위에서 도시의 생존이 이어진 것이다.
콰과과광! 콰광! 우르르르르 콰과광!
"으아악. 피해. 무너진다."
"도망가!"
"뭐야? 무슨 일이야? 몬스터냐? 방위 새끼들은 뭘 한 거야? 차! 차 가지고 와!"
"시장님.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피하셔야..."
"그러니까 차를 가지고 오란 말이야!"
"지금 여기까지 차를 가지고 올 수가 있겠.. 으아악!"
"김비서! 김비서 어딜가... 커억!"
우르르릉. 콰과곽!
"그 동안 파악된 쓰레기들을 모두 치워. 그들이 가진 것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가루로 만들어 버려!"
- 알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서울시의 관료들 대부분은 한 곳에 잡아 놓은 것이에요. 방금 무너진 청사 안에 있던 시장이란 놈도 테멜 안에 잡아넣은 것이에요. 지저분하게 싼 것이에요.
"놈들의 집은?"
- 박살을 내고 있는 것이에요. 보호해야 할 문화재에 해당하는 것들은 통째로 테멜 안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에요.
"놈들의 가족들은?"
- 대부분 테멜 안으로 잡아넣은 것이에요.
"절대로 하루 한 끼 이상은 주지 말고,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주지 마. 굶겨 죽여도 괜찮아. 제 배를 채우기 위해서 동족을 팔아먹고 착취한 놈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야. 세계 정부와 이어진 통신은?"
- 파악된 것은 모두 장악을 한 것이에요. 하지만 다른 도시에도 있을 테니까 지금 이 상황은 모두 알려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에요.
"서울시, 전체에 지금 상황에 대한 성명을 발표해. 그 동안 관리라는 놈들이 어떤 짓 을 해 왔는지 알리고, 또 우리가 앞으로 모든 몬스터를 책임지고 막을 테니 생업에만 신경을 쓰면 된다는 사실도 알려. 그리고 에테르 코어 수급을 위해서 몬스터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요 며칠 일거리가 없어서 걱정일 테니까 어리 네가 사람들을 모집해서 모랜 안에서 일정 기간 사냥을 할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고."
- 이미 김혜인 박사팀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에요.
"한반도가 정리가 되면 다른 지역의 도시들에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하자. 그래야 사람들이 지금까지 세계 정부가 해 온 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게 되겠지."
- 그렇게 할 것이에요.
"10대 도시는?"
- 봉쇄를 시작한 것이에요. 이젠 발등에 불 떨어진 것이에요.
"그래. 잘 했다."
세진은 어리를 칭찬하면 어리 앵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그렇게 전격적인 세진의 공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