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년 만의 귀환 -- >
세계는 프랜드라는 정체불명의 단체를 잊지 않고 있었다.
인류는 몬스터와 생존을 놓고 대립하는 중이었고, 사람들은 몬스터가 이면 공간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어찌어찌 막아 내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드러나 있는 몬스터가 전부가 아니고 이면 공간에 숨어 있는 몬스터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천공기의 존재가 절실했다. 천공기가 없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몬스터의 완전한 퇴치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후였지만 여전히 프랜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괴수들이 떼로 나타나 중첩된 이면 공간으로 이동할 때에 세계는 두려움에 떨 었고, 프랜드가 무언가 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프랜드는 세계 곳곳에 파견했던 벗의 전사들을 모두 복귀 시키고 잠적을 해버렸다.
그들이 받아들였던 수 많은 이민자들이나, 그들이 부리던 벗의 전사들, 그들과 의사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의 우이동 어리 공방,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괴수는 각각의 이면공간으로 이동해서 사라지고, 이후로는 인류와 몬스터의 힘겨운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X급 감시조에서 보고서가 올라왔습니다."
"음? X급이면?"
"한국의 우이동 어리 공방입니다."
"내용이 뭔가? 그들이 나타났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여기 이 사진을 보시면 이 사람이 세진이란 사람이고, 여기 이 여자가 자넷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들은 어리 공방의 5인조가 분명합니다."
"30년이 지났는데 외모가 거의 변화가 없군.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이 말하는 의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0년 전에 이미 그들은 진짜 몸이 아니라 정신을 옮겨서 사용할 수 있는 가짜 몸, 즉 의체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본체는 어떨지 모르지만 일단 젋은 육체로 살 수 있다니 부러운 일이군."
"각성 능력자들과 수련 능력자들의 수명도 일반인들에 비해서는 월등하게 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구나 마스터급 능력자들은 200년 정도의 수명을 지닐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저들의 젊은 모습은 그리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본체의 능력이 그 정도에 이르러 있다면 저들의 수명도 무척 길 것입니다."
"하긴, 그렇겠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고 말이야. 저들은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난날 저들의 행보를 생각하면 인류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더구나 저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어쩌면 천공기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네. 천공기를 저들이 독점하는 것 말이야. 개인적인 욕심을 떠나서 인류를 위해서라도 천공기의 기술은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네.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그렇게 되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만, 사실 저들을 강제할 수단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 사라졌던 것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30년 전의 전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세계 정부와 겨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30년의 시간 동안 제자리걸음을 한 것이 아니라면..."
"세계 정부의 힘으로도 감당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이미 마스터급 실력자들을 몇 명이나 보유하고 있었던 저들입니다. 그들이 그 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하면 어쩌면 7등급 몬스터에 해당하는 실력자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재앙이로군."
"인류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단체입니다.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통령님.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저들을 대하다가 정말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크음. 미안하네. 내가 사적인 감정을 앞세운 것 같군. 나는 그들이 괴수의 난동을 피해서 이면 공간으로 숨어들어갔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그들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아. 그 때문에 실수를 했군."
"그것도 아직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일입니다. 어쩌면 일각의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프랜드에서 몬스터들을 막다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해체 상태까지 몰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당시 괴수들이 이면 공간으로 다시 돌아간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큼. 그리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비서실장까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군."
"저는 그들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쪽입니다. 명확한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는 소문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좋은 자세군. 나도 배워야 할 태도야. 그건 그렇고 언제 나타났나? 그리고 뭘 하고 있지?"
"몇 시간 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너진 공방을 재건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곳엔 안테르가 없을 텐데?"
안테르는 안티 에테르를 이르는 말로 에테르를 방비하는 설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있어야 전기를 이용한 여러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습니다만 그들은 이미 안테르와 유사한 기술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군. 그래 접촉은?"
"아직입니다. 그들의 등급은 X입니다. 그 등급은..."
"그래. 정부의 허가 없이는 관찰만 허용된 등급이지. 그리고 정부의 허가는 전체 장관 회의를 거쳐야 하는 등급이기도 하고. 그래서 회의는 언제 하나?"
"통령님의 허락이 있으면 곧바로 소집을 하고, 화상 회의로 전환하면 30분 안에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나 혼자서 떠들어 봐야 결론이 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군."
통령은 자신이 세계 정부의 수반으로 있지만 그 권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어 서 제대로 된 정책 결정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세계 정부가 들어선 것이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예전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파벌들은 건재하고 있었다.
"이거 잘 하면 한국 계파의 힘이 커질 수도 있겠군."
통령의 혼잣말을 비서실장이 들었는지 그의 시선이 통령에게로 향했다.
"한반도에만 이면 공간이 다섯 개나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몬스터들의 활동이 심각할 정도로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희생이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하는 곳이 한반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몬스터들을 격퇴하며 명맥을 이어온 곳이기도 하지. 사실 그들의 원조 요청이 번번이 기각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어."
"그거야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역이 아니라 국가라고 봐야겠지. 세계 단일 정부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옛 강대국들의 세력이 정책을 좌우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통령님, 국가는 없습니다. 지구만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국가가 아닌 지역 이기주의로 봐야 합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통령님의 그런 사고 방식은 인류의 분열을 가속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가와 민족, 지역, 종교 등등으로 갈라진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사실 세계 정부는 예전의 UN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아닌가. 그저 들러리인 거지. 아니 거대 세력이 세상을 경영하기 위한 괴뢰 기관이라고 해야 할까?"
"위험한 말씀입니다."
"괜찮아. 어차피 나야 뭐 허수아비 아닌가. 그런데 말이야, 프랜드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가 되는군. 이전에도 나타났던 성향이지만 프랜드는 아무래도 친 한반도 적인 성향이 있단 말이지. 그런데 지금 한반도의 상태를 보면 프랜드의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지 않겠나?"
"..."
비서실장은 통령 마리오테 라지노의 얼굴을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는 통령이 세계 정부를 막후에서 지배하는 세력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가 걱 정스러웠다. 만약 그렇게 되면 통령 뿐만이 아니라 지금 세계 정부의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된서리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구 전체가 단일 정부가 된 이후로 그들 막후 세력들은 세계를 더욱 쉽게 주물러 왔다. 모든 것이 그들의 뜻대로 경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통령이라고 해도 반기를 드는 것은 자살 지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적어도 비서실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하하. 그렇게 볼 것 없네. 나야 뭘 할 수가 있겠나. 그저 시키는 대로 손을 들고 도장 찍으면 되는 사람인데. 그리고 내가 정말로 뭔가 해 보려고 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자네 앞에서 떠들겠나? 자네가 그들의 눈과 귀라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통령은 자신의 비서실장이자 감시자의 얼굴을 보며 생기 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시길 바랍니다. 저도 통령님과 함께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싶으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될 거네. 아무렴 내가 그 정도 분별력도 없을까. 걱정하지 말게."
통령은 그렇게 비서실장을 안심시켰고, 사실 그것은 그의 진심이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미 세계는 그들의 것인데.'
"못해도 7천만이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고작 천만이 겨우 넘을 정도야. 그것도 남한 쪽에 대부분이 몰려 있고, 북한은 전멸이나 마찬가지군. 6천만이 죽었다는 소리야.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몬스터들이 워낙 많았잖아. 진정해 세진."
"그래도 말이 안 되는 거지. 지난 30년 동안에 지구의 인구가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야. 그래서 이해를 해 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비율이 안 맞아. 봐봐 일본 인구가 절반 이상이 죽었다는데도 5천만은 남았어. 중국도 아직 몇 억은 되는 숫자야. 그런데 유독 한반도에서만 거의 몰살을 당한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서울의 인구만 거의 천만이었다. 적어도 세진이 기억하기론 그랬다.
그런데 서울에 사는 사람의 수가 150만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도 주로 대도시나 예전 대도시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서 무리를 짓고 있었다.
알고 보니 식량 생산 때문에 도시 보다는 근교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은 것이란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는 식량 생산을 건물 안에서 하는 것이 보편화 되어 있었고, 또 도시 안이라고 하더라도 녹화 사업이 잘 진행 되어서 짜투리 땅이라도 모두 농업에 사용이 되고 있었다. 옥상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작물을 기르고 있었고, 실내 농경도 굉장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특정한 나라들에 편중되어 있었다.
옛 미국과 프랑스, 영국, 중국, 인도, 일본, 호주 등이 그런 예에 속했다.
그에 비해서 다른 나라들이나 지역들은 낙후된 경우가 많았다.
"같은 지구라면서? 균형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고, 또 모자라는 곳에는 당연히 지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 모양인 거야?"
"어리가 알아본 것이에요. 세계 정부의 지원은 특별한 도시들에 집중이 되는 것이에요. 다른 곳에서 생산된 것들까지 그 도시들도 유입이 되고 있는 것이에요. 거기다가 정보 통제가 심한 것이에요. 자유로운 통신은 이제 없는 것이에요."
"왜 그런 거야? 인터넷이 죽었어?"
"유선 통신은 불가능한 것이에요. 남은 것은 무선 통신인데 거의 대부분의 인공위성이 수명이 끝난 것이에요. 그래서 무선 통신도 인공위성을 통한 것은 세계 정부에서만 사용을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안테르의 영향이 미치는 일정 범위 안에서는 유선 통신을 하고, 거리가 떨어진 도시나 마을끼리는 무선 통신을 하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도 제한이 많은 것이에요. 에테르가 짙어 지면서 전파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에요. 강력한 전파는 도리어 에테르 때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에요. 그래서 약한 전파 신호를 이용해서 송신과 수신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아, 그건 생각나. 그래서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도 툴틱 사용할 때에 그런 점을 고려해서 만들곤 했지. 맞다."
"네. 그런 것이에요. 그런데 지구의 기술력이 아직은 모자라서 장거리 무선 통신에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도 인공위성을 통한 통신을 하고 있다는 건 의외로군."
"어리도 그건 잘 모르는 것이에요. 하지만 매우 강력한 전파를 사용하면 도리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어리는 생각하는 것이에요. 약하면 에테르의 저항을 덜 받아서 사용 가능하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하면 에테르의 저항을 뚫고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말이 정답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리는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정보들을 취합해서 내린 결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론은 그거잖아. 어떤 놈들이 작당을 해서 지구의 재화를 멋대로 유용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게 바로 지금 거대 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그곳들이란 사실. 그 때문에 한반도를 비롯한 많은 지역들이 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거."
"맞는 것이에요."
"어리는 조금 더 정보를 모아 봐. 아무래도 이것들을 그냥 둘 수는 없을 것 같아. 그 전까지는 몬스터 토벌이고 이면 공간 공략이고 뭐고 일단 스톱이야."
으드득.
세진이 이를 갈았다.
'역시 어딜 가나 죽일 놈들은 있는 거야. 그래도 고향이라고 좀 애정을 가져 볼까 했더니, 실망이 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