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환 -- >
"영웅?"
"응, 세이커 위아드라는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이 원래는 헌터들을 지원하는 잡부, 그러니까 일개미로 이곳에 왔던 사람인데 어떻게 해선지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거야. 지금 세진이 익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련법을 익히고, 또 그 게이트 있지? 그런 것을 처음 만든 사람도 그 세이커란 사람이야. 아무튼 그래서 그 사람이 데블 플레인을 연방에서 독립시켰지. 그리고 이곳 타모얀 행성은 그런 데블 플래인 연합의 중심 행성이 된 거야. 물론 교역을 위한 행성은 또 따로 있지만."
"뭔가 복잡하네. 아무튼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데블 플레인 연합의 중심 행성이란 말이지?"
"응. 여기가 타모얀 행성이 맞다면 그럴 거야."
"그런데 그 세이커란 사람이 이 게이트를 만들었다고?"
"아, 잘 모르지? 그 사람이 만든 듀풀렉 게이트란 것이 있었어. 뭐 이게 아주 대단한 물건인데 행성간 이동도 가능하고, 행성 내에서도 먼 거리를 순식간에 건너뛰게 하는 그런 거지. 아무튼 그게 중요해. 행성간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그거 말이야. 지금 우리 연방에서도 행성간 이동 게이트를 열곤 하지만 그래도 세이커의 듀풀렉 게이트와는 좀 차이가 있어. 에너지 사용도 그렇게 편리성도 그렇고 우리 쪽의 것이 많이 모자라지."
"어쨌거나 행성 사이를 훌쩍훌쩍 건너다닌다는 것만으로도 그건 이미 넘사벽이거든? 우리 지구 문명으론 꿈도 못 꿀 일이지."
"그래봐야 별 것 없어. 여기 데블 플레인 연합도 세이커의 것을 흉내내고 유지하는 정도지 새로 만들어 내진 못하고 있다고 들었으니까. 뭐 우리 연방의 게이트도 어느 정도 수준에서 멈춰서 더는 발전이 없기는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제법 대단한 행성에 와 있는 거네? 데블 플레인 연합의 주성(主星)이라니 말이야."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허서르는 언제 올까?"
세진은 며칠 동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지겨울 것 같았다.
"곧 올 거야."
"응? 곧?"
"여긴 게이트가 흔하게 쓰이는 곳이라니까? 행성 내에서도 게이트를 이용해서 훌쩍 훌쩍 넘어 다녀. 그러니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여기서도 툴틱을 사용하니까 말이야."
"아, 통신의 제약도 없고, 이동의 제약도 덜 받으니까 금방 볼 수 있다는 말이네? 하긴 우리 어리만 해도 어디든 금방금방 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니까 어리가 훨씬 대단한 것 같아. 호호."
- 이제 어리를 떠올리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잊고 있어서 어리는 삐친 것이에요.
어리 앵무가 머리맡의 침대 장식 위에 앉아 있다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세진과 자넷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오는 모양이네. 호홋."
자넷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고, 세진도 일어나서 복장을 수습하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대지의 일족 넷째 딸인 허서르는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대외적으로 알려지기로는 다른 행성으로 오고 갈 수 있지만 조금 불안정해서 그냥 아카데미 학생들의 견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테멜 게이트에서 자넷이 나왔다는 것이다.
사실 그곳의 테멜 게이트는 아주 특별한 것으로 데블 플레인 연합의 각 행성 지도층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덱터의 존재는 아직까지 데블 플레인 연합의 행성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인 것이다.
그런데 자넷이라는 거물급 인사가 그곳의 게이트를 이용해서 나타났다니 살짝 머리가 아파지는 허서르였다. 허서르 프락칸은 데블 플레인 연합의 외교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자넷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몇 십 년 전에 연방에서 운영하던 헌터룸 기지 하나가 차원의 틈에서 갑자기 쏟아진 운석의 습격으로 순식간에 파괴되어 기능이 중지된 일이 있었다.
그 일은 그야말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주 공간이 살짝 비틀리면서 그 안에서 운석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재수가 없었던 라훌 행성의 헌터룸 우주 기지는 그대로 박살이 났고, 그 안에서 유희를 즐기던 이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몰살을 당했다.
그 일은 당시에 어마어마한 파장이 있었다.
그 때에 죽은 이들의 수가 백만에 가까웠고, 그 중에는 연방의 고위급 인사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히 사건의 경위는 철저하게 조사가 이루어졌고, 당시 우주 공간의 틈이 열린 현상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현상이 인위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는데 십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결국 그 사고는 우주의 신비 중에 하나로 결론이 났던 것이다.
허서르는 그 때, 그 사고로 자넷이 실종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실종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넷이 본체로 라훌 행성으로 내려갔다는 정황이 있었지만 라훌 행성의 어디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그녀가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해서 나타났다고 했다.
허서르는 그말에서 자넷의 실종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자넷은 라훌이 운석 공격을 받게 되자 곧바로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해서 탈출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라훌 행성에서 그녀를 찾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에는 다시 라훌 행성에서 수 색을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귀환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결과가 테멜 게이트를 이용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허서르는 그렇게 그간의 상황을 퍼즐처럼 맞춰 보고서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밝혀 낸 것이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자넷을 만나서 자신의 추측이 맞았는지 알아보는 일만 남아 있었다.
허서르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자넷과 그녀의 남편이 있다는 방으로 향했다.
"반가워요. 아, 반갑다고 해야 하죠? 드디어 귀환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죠."
허서르는 자넷을 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귀환이라... 그렇군요. 돌아온 거로군요. 맞아요. 반갑다고 해야죠. 그리고 아울러서 축하도 해 주면 고맙겠네요."
자넷이 허서르의 인사를 받았다.
"물론이에요. 자넷. 정말 축하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테멜 게이트를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을지 짐작이 되지 않네요. 하긴 라훌 행성의 재앙을 피해서 도망을 친 후부터 지금가지면 거의 25년 이상이네요. 고생이 많았겠어요."
"그건 그렇게 어떻게 된 거죠?"
자넷은 두루뭉술하게 질문을 던졌다. 라훌 행성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알지 못하니 그런 식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 갑자기 헌터룸 기지가 파괴된 것은 우주에서 예기치 않은 공간의 틈이 생겨서 거기서 운석들이 쏟아졌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오해할까봐 이야길 하는 건데 그 문제는 10년이 넘도록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졌고, 결국 자연적인 현상이었음이 밝혀졌으니까 괜히 음모론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아요. 그리고 연방과 회사에서는 라훌 행성에 대한 면밀한 수색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본체로 라훌 행성에 내려간 사람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결국 몇 명의 본체 사용자들을 구조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어요. 설마 자넷처럼 테멜 게이트를 이용해서 재앙을 피한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요."
자넷은 허서르의 말에서 충분히 세진과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힌트를 얻었다.
비록 허서르의 추측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차하게 이런저런 설명이 필요 없으니 그대로 허서르의 추측을 인정하기로 했다.
"우린 그 당시에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몰랐어요. 그 때는 다른 행성에 있었죠.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문제는 돌아갈 테멜 게이트가 작동을 하지 않았어요. 라훌 행성으로 갈 길이 없어진 거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필드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래서 수차례 탐험을 거친 끝에 끝내 다시 라훌 행성으로 통하는 테멜 게이트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죠. 그리고 돌아와서 본 라훌 행성은 더 이상 필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은 없었고, 우린 버림받았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연방으로 돌아가리라 결심했죠. 그래서 다시 테멜 게이트를 이용한 여행을 시작했고, 여기까지 오는데 15년이 넘게 걸렸어요. 그런데 라훌 행성에서 그런 사고가 있었다니 믿기 어렵군요."
자넷은 그렇게 요약해서 지금까지의 행적을 이야기하면서 지구에 있었던 시간까지 테멜 게이트를 탐험했던 시간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렇군요. 이해해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짐작해요. 뭐라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허서르는 진심으로 오랜 시간동안 역경을 헤쳐 온 자넷과 세진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아, 그렇다고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할 것은 없어요. 우린 고난을 겪었지만 그만큼 얻은 것도 있으니까요. 네. 그래요."
자넷은 허서르의 위로를 받으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떳떳한 기세를 뿜었다.
"아, 그런데 자넷은 이제 연방으로 다시 복귀를 할 건가요? 테니 그룹에서 난리가 나겠군요. 실종되었던 회장이 다시 돌아오는 일이니까 말이죠."
"뭐 그렇겠지만 이미 새로운 회장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 저는 제 재산만 되찾고 회사에선 물러날 생각이에요. 솔직히 회장이란 자리가 참 불편한 자리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거든요. 이젠 남편하고 여행이나 하면서 삶을 즐길까 해요. 아, 당분간은 몬스터 사냥에 전념을 할 생각이에요. 특히 괴수요."
"네? 괴수를 사냥한다고요? 아, 그러고 보니까 여기 올 때에 엄청난 몬스터들을 앞세웠다고 들었는데 혹시?"
"호호호. 비밀이에요. 자세하겐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여행 중에 많은 것을 얻었어요. 호호호."
"그, 그렇군요. 저도 그 비밀이 무척 궁금해지네요."
"허서르 프락칸도 아시겠지만 그런 것은 쉽게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참, 그건 그렇고 우리 부부가 타모얀 행성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셨으면 해요. 당분간 연방의 재산들에 대한 문제를 정리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렀으면 하거든요."
자넷은 그렇게 타모얀 행성에서 일처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허서는 반색을 하며 자넷의 부탁을 수락했다.
허서르는 자넷이 몬스터를 부리는 것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자넷은 허서르가 그럴 것임을 알고 허서르에게 이런 저런 편이 제공을 부탁한 것이고.
그 시간 자넷의 귀환 소식이 자넷의 비서였던 세바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뭐라고? 누, 누가?"
"자넷 전 회장님께서..."
우당탕탕. 쾅!
"저기 회장님, 어딜 가시는 겁니까? 지금 결제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회장님!"
하지만 비서의 외침은 세바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바스는 곧바로 달려 나가며 툴틱을 켰다. 그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루 한 번은 연락을 취했던 자넷의 툴틱으로 통신을 연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세바스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어디야? 어디 계신 거야?!"
회장실을 향해 세바스가 고함을 지르자 곧바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타모얀 행성입니다. 게이트를 통과해야 툴틱이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듣고 가시라니..."
이번에도 세바스는 비서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툴틱으로 그룹 의전실에 연결을 한다.
"무조건 내가 게이트에 도착할 때까지 타모얀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열어 둬, 중간에 어딜 경유하건 상관없어. 얼마의 비용이 들건 무조건 내가 타모얀 행성에 도착하게 만들어! 알겠나!?"
툴틱 너머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바스는 곧바로 회사의 본관 건물의 테라스로 향했다. 400층이 넘는 건물의 72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 가까운 곳의 테라스에는 그의 전용 반중력 자동차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 목적지를...
"게이트 관제소. 최대한 긴급으로!"
세바스는 이번에도 안내 멘트조차 듣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자넷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