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환 -- >
하지만 그렇다고 덱터가 데블 플레인 연합과의 소통을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과 불안을 느끼게 될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덱터에서도 어쩔 수 없이 데블 플레인 연합과 소통할 수 있는 테멜 게이트를 유지해야 했고, 그것이 바로 세진과 자넷이 뛰어든 에그로메의 테멜이었다.
물론 그 외에 다른 한 곳의 에그로메의 테멜도 역시 같은 이유로 유지하고 있는 소통 창구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관리하는 테멜 안쪽에는 몬스터가 남아 있지 않았다.
깨끗하게 정리하고 테멜 코어만 남겨둔 것이 두 곳에 테멜인 것이다. 그래서 세진과 자넷이 두 괴수와 함께 테멜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들을 반긴 것은 몬스터가 아니라 덱터의 전사들이었다.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로 이루어진 일단의 무리들이 테멜 입구의 홀을 점령하고 세진과 자넷이 들어오자마자 공격을 퍼부었다.
"죽엿!"
"잡아!"
다섯 명의 그랜드 마스터와 수십 명의 마스터들이 일제히 좁은 통로에서 세진과 자넷을 향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강기가 넘쳐흐르는 무기들을 원거리에서 일제히 세진과 자넷을 향해 날린 것이다.
콰과과과광! 콰과광.
하지만 그런 공격을 세진과 자넷이 예상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야말로 멍청한 일일 것이다.
과드득. 콰직! 순식간에 세진과 자넷의 몸이 박살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위로 나비와 쫑의 모습이 나타났고, 다시 그 뒤를 이어서 세진과 자넷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어머나 아까워라. 잘 만든 인형이었는데 어쩌면 이렇게 잔인하게..."
자넷이 발밑에 조각나서 흩어져 있는 세진과 자넷의 몸뚱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것들은 단지 의체로 만들어진 인형일 뿐이지만 지금 세진과 자넷이 사용하고 있는 의체와 똑 같이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박살이 나 있는 모습을 보니 속이 편치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도 봐 줄 이유 따위는 없는 거지? 어리야, 다 죽여!"
세진은 예상은 했지만 대화도 타협도 없이 그대로 공격을 감행한 덱터에게 인정을 베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적이 된 상황인 것이다.
- 어리는 알아들은 것이에요. 어리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곧바로 나비와 쫑이 좁은 입구를 막고 있는 덱터 소속의 사람들에게 달려 들었다.
후웅! 나비와 쫑의 몸에서 일어나는 에테르의 파장이 묵직하게 세진과 자넷을 휘감았다.
그리고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피해!"
"후퇴! 후퇴해!"
"막아! 우리가 막아야 동료가 도망 커억!"
"씨이, 이거... 윽!"
"크아아악."
콰작, 두두둑. 으직! 콰드득. 퍼벙! 카카강! 쿠웅!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나비가 휘두르는 앞발에 이리저리 사람들이 날아가고, 쫑의 입에서 쏘아진 에테르를 막다가 몸의 일부가 터져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정신을 읽고 쓰러진 이들은 나비와 쫑의 발에 밟혀 죽었다.
머리에서 엉덩이까지 20미터에 이르는 나비와 쫑은 그 덩치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괴수 등급을 상대할 준비가 덱터의 사람들에겐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몇 명이 당하는 사이에 반 수 이상이 후퇴해서 모습을 감췄다.
"그만!"
세진이 통로를 따라서 달러 나가려는 쫑과 나비를 멈춰 세웠다.
"쯧!"
세진은 피범벅이 되어 버린 입구 홀을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세진도 누가 누구를 원망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저 서로 적이 되었다는 것이 비극의 원인인 것이다. 덱터의 테멜 게이트 관리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때문에 모두 모여서 회의를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 합니까? 테멜을 파기합니까?"
성질 급한 한 사람이 관리팀의 수장에게 물었다.
"크음.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네?"
"여기 테멜의 코어를 파괴한 후에는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물었네."
수장의 질문에 잔뜩 흥분했던 인물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되면 테멜에 있던 모든 인원이 에그로메의 중앙 광장으로 튕겨 나가겠지. 그리고 그 괴수 둘과 세진과 자넷이라는 남녀도 함께 테멜 밖으로 나가게 될 것이고 말이야. 쉽게 말하면 테멜 게이트를 파괴한 우리들과 그 게이트가 꼭 필요했던 그들이 함께 광장에 떨어지게 된다는 소리지. 자, 어떻게 될까?"
"그, 그야."
"화가 난 그들이 우릴 살려둘까? 아니 우리가 도망을 갈 수 있다고 하면, 그 후에는 그들이 어떻게 할까? 다른 한 곳의 에그로메를 찾겠지? 그리고 다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이 될 것이고 말이야."
"그야 우리가 전력을 다해서 막으면..."
"괴수 둘을 한꺼번에 상대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 같은가? 내 수준의 간부들이 적어도 서른은 있어야 괴수 하나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괴수가 둘이 한꺼번에 날뛰면? 설마 두 배의 인원이면 된다는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겠지?"
수장은 아까부터 과격한 선택을 하려는 부하를 노려봤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적에게 당한 것만 마음에 담고 있는 단순한 인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게이트를 이용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인물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문제?"
"지금까지 우리들 덱터가 데블 플레인에 대해서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쪽에서 우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철저한 통제로 저 쪽에서 우리 덱터에 대한 전력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 덱터는 그 사이에 많이 약해졌습니다. 행성들을 관리하던 이들이 독립을 해서 행성을 지배하는 데에 맛을 들인 경우도 많고, 또 데블 플레인이 아닌 반대쪽의 에테르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서 힘을 투사하느라 여유가 없기도 합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데블 플레인 연합이 우리와의 조약을 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그 세진과 자넷이 우리에 대한 정보를 알리게 될 것이란 말인가?"
"이미 그들이 많은 행성들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더구나 그들은 테멜 게이트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쌓은 상태입니다. 이곳 클리르의 중요성도 알고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그러니 어쩌자는 건가? 싸워서 물리칠까? 가능성은 있고?"
"타협을 해야 합니다. 비록 믿을 수는 없다고 해도 그냥 게이트를 넘게 하는 것 보다는 이쪽에 대한 정보를 데블 플레인에 팔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게이트를 양보하는 형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친 소리요. 이미 우리는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먼저 제물로 삼아서 보낸 남녀를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협상이나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처음부터 급하게 나서던 이가 어림도 없는 소리라는 듯이 반대를 하고 나섰다.
"쯧, 자넨 입 좀 다물고 있어. 그렇게 말을 할 거면 대책이라도 이야길 해! 같이 죽자는 소리만 빼고 말이야."
수장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나무랐다.
"물론 그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협상이 어려울 겁니다. 테멜로 들어오는 그 순간을 노려서 기습을 한 것은 좋았지만 엉뚱한 사람들을 죽이고 말았으니 그 부부의 분노가 클 것입니다."
이들은 그들이 죽인 것이 세진과 자넷을 흉내내서 만든 의체 인형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을 하는 것이다.
- 빨리 떠나고 싶은 것이에요. 어리는 디퀴피드의 방해가 정말 마음에 안 드는 것이에요.
어리는 이제 쫑의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있었다.
어리에게서 30미터 이상 떨어지게 되면 통제가 되지 않는 몬스터가 된다. 만약에 쫑이 그렇게 되면 그것도 큰일이다.
그래서 어리는 쫑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나비는 쫑의 곁에 바짝 따라 붙으면서 어떻게든 어리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한다.
여전히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비는 아무리 애를 써도 쫑의 머리에 있는 어리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나비도 저렇게 변신을 하니까 완전히 몬스터잖아. 그런데도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일반 생물이 되는 것은 참 신기해."
자넷이 어리 곁을 맴도는 나비를 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 지금 저 몸은 분명히 테멜 안에 있는 괴수의 모습인데 말이야.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지금 나비 테멜이 유지가 된다는 거지. 몸은 밖으로 나와 있으면서 테멜 코어는 여전히 테멜 안에 남겨둔 상태라는 이야기지. 아무튼 저 나비도 연구할 게 많은 녀석인 것은 분명해."
"호호호. 세진이 그렇게 말하니까 나비가 불쌍해지네. 또 어리에게 시달릴 거 아냐? 세진이 그렇게 생각을 했으면 어리도 분명 알았을 테고 말이야."
"뭐 그렇게 되겠지."
세진도 자넷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세진과 어리는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니 뻔히 그렇게 될 것이 분명한 것이다.
"여기도 복잡하네. 테멜이 제법 큰 곳인 거 같지?"
"그렇겠지. 게이트가 있는 테멜이야 남색 등급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 규모가 작을 수는 없지."
"빨리 게이트 찾아서 이동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방으로 돌아갈 길을 찾았으면 좋겠고?"
"뭐,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지만 연방으로 갈 수 있으면 가는 것도 좋겠지. 알잖아. 나도 내 것을 그냥 버리는 성질을 아니라고."
"그나저나 이번에 가게 되면 십 몇 년이야? 아니다 그보다 우리가 게이트를 넘어 왔을 때, 이미 그 정도 시간이 지나 있었으니까 세바스를 만나게 되는 것 거의 25년 정도 만인가?"
"흐응. 그렇겠지. 무르이까가 그렇다고 했으니까 대충 맞지 않을까?"
"실종되었던 회장님의 귀환인 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세진이 살짝 자넷이 걱정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거기다가 나 이젠 그랜드 마스터거든? 그것도 세진 덕분에 에테르가 없는 행성에서도 제 힘을 낼 수 있는 그런 그랜드 마스터 말이야. 이런 수련법은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도 특별한 가문에서만 익혔다고 들었는데 내가 그렇게 될줄은 몰랐어. 아무튼 나를 어떻게 할 수 있는 개인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어지간한 집단도 겁날 건 없지만."
"야야, 그래도 연방이잖아. 수 많은 우주 행성들의 집합인데 그렇게 쉽게 이야길 해도 되는 거야?"
"흥, 그래봐야 별 것 없어. 세진은 모르지만 우리 연방의 과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자리 걸음이었어. 발전의 극에 이른 거지. 아니 더 이상의 발전은 위험하다고 멈춰 버린 거라고 할까? 뭐 나 정도 되니까 아는 거지만 아무튼 뭔가 락에 걸려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랜드 마스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란 건 별로 없어. 몬스터 조차도 없는 행성들이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네."
"내 걱정은 하지 마. 그리고 날 두고 혼자서 떠날 생각도 하지 말고. 알았지?"
"응? 내가 자넷을 두고 어딜 가겠어? 그런 일은 없어."
"그래야지. 이제 세진이 가진 게이트의 시간 정지 효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자 칫 세진만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내가 죽고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니까 이젠 함께 다녀야 하는 거야. 언제나. 알지?"
"그래. 알아. 나도 자넷을 두고 갈 생각은 없어."
- 둘은 그만 하는 것이에요. 지금은 애정 확인을 할 때가 아닌 것이에요.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에요. 자살 지망생으로 보이는 것이에요.
그 때, 앞서가던 쫑의 머리에서 어리가 세진과 자넷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이미 그들의 등장을 알고 있었던 세진과 자넷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그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