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았건 몰랐건 그것은 거래를 한 것이다. -- >
세진과 자넷은 무르이까 일행을 게이트까지 배웅하고, 계속해서 테멜 안에서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실제로 세진과 자넷은 수련 보다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린 것은 사실, 무르이까 일행의 귀환이었다.
무르이까 일행도 세진과 자넷이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그들이 무사히 그들의 행성에 도착을 했다면 세진과 자넷에게 다시 사람을 보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대를 가지고 계속 테멜 안에 머물렀던 것이다.
"지금쯤은 도착하지 않았을까?"
자넷이 한바탕 몬스터 사냥을 하고 난 뒤에 앉아 쉬는 사이에 무르이까 일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테멜 게이트를 넘어서 곧바로 그들의 처음 출발했던 테멜에 도착을 했다면, 그 테멜을 벗어나서 부족으로 돌아갈 시간은 충분했겠지. 문제가 있다면 그 테멜의 출구를 부족 코어를 지니고 있는 몬스터가 지키고 있을 경우지만, 그래봐야 남색 등급 부족 코어를 지닌 경우일 테니까 그들 다섯 명이라면 충분히 처리하고 나갈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런데."
"응?"
자넷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진을 보자 세진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자넷을 보았다.
"있잖아. 그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테멜 코어를 지닌 녀석이면 어떻게 되는 거야?"
"뭐?!"
세진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 못한 경우의 수가 나온 것이다.
만약 자넷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무르이까 일행이 그 테멜 코어 몬스터를 처리해서 테멜이 사라지게 되면, 이 나비의 테멜이 가진 게이트는 사라지게 된다.
"아니야. 아직 게이트가 남아 있으니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세진은 자넷의 우려를 기우로 돌리고 싶었다.
"그래야 할 텐데 말이야. 자꾸 불안하거든."
"정말로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그렇게 말을 하지만 세진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기 전에 둘의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나비의 테멜 게이트 반대쪽에 있던 테멜에 변고가 생긴 것이다.
"이런!"
세진은 자넷을 보며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고, 자넷도 고개를 흔들었다.
나비의 테멜에 있는 게이트는 무사했다. 게이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 게이트를 통해서 들어오는 에테르의 성질이 바뀌었다.
원래 게이트는 반대쪽에 있는 행성에 에테르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이쪽 테멜로 보낸다.
그런데 지금 그동안 게이트를 통해서 들어오던 것과는 다른 에테르가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게이트가 연결되었던 테멜이 바뀌었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리고 그 에테르의 성질이 클리르 행성의 것과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하필이면 일이 이렇게 되다니."
세진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벽을 등지고 앉았다.
"그러게. 무르이까가 그랬을까?"
자넷이 실망스런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무르이까의 소행일까 추측을 했다.
"무르이까가 아니라면 그 부족의 누군가가 했겠지."
세진과 자넷은 파괴된 테멜이 브리즈가티 종족의 행성에 있는 테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테멜을 파괴할 이유가 없었다. 무르이까 일행이 테멜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출구를 지키는 몬스터를 처리해야 했다면, 그 테멜은 무르이까의 고향 행성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무르이까 일행은 다시 게이트를 이용했어야 하고, 절대 테멜을 파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네. 급하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으니까 말이야. 뭐 난 상관없어. 나중에 가도 되고, 또 못 가도 상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진."
자넷이 세진을 보며 괜찮다며 담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든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야 할 상황의 무르이까라면 테멜의 출구를 막고 있는 몬스터를 처치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하필 그것이 테멜 코어까지 함께 지니고 있는 녀석이어서 테멜이 붕괴된 것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넷은 넓은 마음으로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자넷!"
물론 세진은 그런 자넷이 안쓰럽다.
"아니. 정말로 괜찮아. 아니 도리어 잘 된 건지도 몰라. 내가 가서 회사로 복귀한다고 해 봐야 일거리만 잔뜩 있을 거 아냐? 차라리 세진하고 이렇게 지내는 것이 더 좋아. 이제 세진도 굳이 데블 플레인으로 갈 필요는 없는 거잖아."
"엉?"
"그렇잖아. 깝딴의 비술도 이미 얻어 뒀는데 굳이 데블 플레인으로 가서 뭐 하려고?"
"내가 문제가 아니라 자넷이..."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나는 괜찮다고. 뭐 세바스가 좀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상관없어. 난 세진만 있으면 되니까."
"그 말. 듣기엔 무척 감동인데 그럴수록 미안해지잖아. 자넷."
"호호홋. 그럼 앞으로 잘 해. 나에겐 세진 밖에 없으니까."
"그거야 지금까지도 잘 하고 있었다고."
"자자, 수련이나 더 하자. 순간이동도 조금 더 가다듬고, 얼마 전에 에헤로의 석판과 오러 로드 수련법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에 대해서 실험하던 것도 조금씩 조심해서 해 보고, 우리 할 일이 많잖아."
"그래. 그래. 그러자. 이럴 때에는 그저 뭔가에 몰두하는 것이 최고지. 하자, 수련."
세진은 평소와 달리 조금 더 활달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자넷의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리고 어떻게든 연방이나 연합으로 갈 길을 찾고 말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굳혔다.
"아버지, 어째서 그렇게 하신 거지요?"
"크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니요? 그들은 제 은인들이었어요."
"너도 괴수 사냥에 힘을 보태서 빚을 갚았다고 들었다."
"그걸로 빚이 탕감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아버지는 대족장의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분이겠지요. 그런 식의 계산으로 우리 브리즈가티와 다른 행성들 사이의 외교 문제를 처리한다면 우린 우방을 모두 잃게 될 테니까요."
"휴우,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
브리즈가티의 노스니 대족장은 아버지에게 크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보이는 딸에게 진실을 털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가 모르는 그것이 뭐죠? 그게 뭐기에 은혜를 원수로 갚죠? 굳이 테멜을 파괴할 이유는 없었잖아요. 입구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테멜 자체를 파괴하죠?"
"약속 때문이다."
"약속이라니요?"
"우리 데블 플레인 연합은 덱터라고 불리는 세력과 오래 전에 조약을 맺었다. 이번에 네가 갔다는 그 클리르 행성을 기준으로 테멜 게이트의 사용을 금한다는 조약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죠?"
"덱터는 우리와 비슷하다. 즉 여러 행성들을 총괄하는 세력이라는 소리다. 우리 데블 플레인 연합보다 훨씬 많은 행성들을 지배하는 세력이지. 물론 그들은 몬스터, 즉 에테르기반 생명체들이 우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온전히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려고 하는 이익 집단의 성격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지배하는 곳과의 교류를 금지하는 조약이 있다는 거군요?"
"맞다. 그러니 네가 그 클리르 행성에 갔다는 것도 비밀이 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는 던젼, 그러니까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하는 행성간 이동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테멜 게이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간혹 있잖아요."
"클리르로만 가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냥 두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 테멜의 게이트가 클리르로 통하는지 아닌지."
"에테르의 성질을 알면 간단하지 않으냐. 우리는 게에트 테멜이 발견되면 그곳에 조사단을 보내서 그 테멜의 에테르 성질을 파악하고 그것이 클리르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다면 곧바로 테멜을 파괴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을 이어온 일이다. 사실 너만 아니었으면 그 테멜도 발견 즉시 파괴했을 것이다. 그런데 네가 내 딸이기 때문에 네가 돌아올 때까지 테멜을 보호하고 있었지. 아마도 그런 이유로 다음 선거에서는 대족장의 자리를 내 놓아야 할 것이다."
"아빠!"
"네 잘못이 아니다. 그건 확실하지. 너는 아무것도 몰랐고, 나는 내 선택으로 너를 기다린 것이니까."
"흐흐흑."
무르이까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미안했고, 세진과 자넷에게 미안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자신이 테멜을 발견했던 것도, 클리르로 통하는 게이트를 넘은 것도 잘못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온 후에 테멜을 파괴한 아버지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해 왔던 일인데 그것을 두고 따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버지는 대족장의 연임을 불가능해졌고, 세진과 자넷은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올 수 있는 최고의 패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들은 무르이까 일행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셈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경우도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무르이까는 그것이 더 속상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젠 정신이 든 것이에요?"
- 그렇다냥.
"멋진 모습이 된 것이에요. 하지만 반쯤 몬스터가 된 것 같아서 불안한 것이에요."
- 나비는 몬스터가 아니다냥. 그냥 몬스터의 힘을 빌려서 쓸 수 있을 뿐이다냥.
"그래요. 믿는 것이에요. 어리는 나비를 믿을 것이에요. 그럼 어느 정도나 힘을 쓸 수 있는 것이에요?"
- 테멜의 주인의 힘을 모두 쓸 수 있다냥. 하지만 테멜의 코어에 에테르가 부족하면 힘을 쓸 수 없다냥.
"그건 게이트를 통해서도 보충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나비는 엄살을 부리면 안 되는 것이에요.
- 하지만 세진과 자넷이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냥. 그래서 코어에 에너지가...
"시끄러운 것이에요. 그리고 경고하는 것이에요. 세진님과 자넷 언니에게는 언제나 공손, 공경, 존경, 충성, 숭배 등등등인 것이에요. 세진님은 이 어리의 주인님인 것이에요. 자넷 언니는 이 어리의 언니인 것이에요. 그러니까 나비는 말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냐냐냥! 나비는 어리의 호된 꾸지람에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이고 두 앞발을 귀 위에 올려 놓았다.
- 알았다냥. 혼내지 마라냥. 세진님과 자넷 언니...
"나비는 남자인 것이에요. 자넷 언니는 누나인 것이에요."
- 세진님과 자넷 누나. 알았다냥. 하지만 둘이서 사냥을 계속하면 나도 약해진다냥.
"어리가 이야기를 해 볼 것이에요. 사냥이야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세진님과 언니는 내 부탁을 들어 줄 것이에요. 그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에요."
- 뭐든 물어봐라 냥. 그런데 뭐 좀 먹고 하면 안 되냐냥.
"좋아요. 어리는 상냥한 것이에요. 먹을 것을 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에요. 괴수의 코어가 테멜 코어와 결합이 된 것이 나비의 테멜에 있는 그 괴수의 코어인 것이에요. 그럼 그것은 어떤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에요."
- 어렵다냥. 설명하기 어렵다냥.
"그럼 밥은 없는 것이에요. 이번에 오션 테멜에서 아주 잘 큰 커다란 다랑어를 한 마리 가지고 온 것이에요. 하지만 나비는 그걸 먹기 어려운 것이에요."
- 나비는 어리가 시키는 대로 다 한다냥. 하지만 너무 어렵다냥.
"그럼 하는 수 없는 것이에요. 이제부터 나비는 헌터룸으로 옮겨가서 공부를 하는 것이에요. 헌터룸의 각인 장치를 이용해서 기본적인 지식을 각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에요."
- 무섭다냥. 그런 거는!
"하라면 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나비가 어리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야 '쫑'을 파고들 대책이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니 서두르는 것이에요."
냐냐냥. 냐옹. 냥.
- 간다 간다냥, 하지만 배가 고프다냥.
"시끄러운 것이에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마취를 시켜줄 것이에요. 배가 고파야 공부가 잘 된다고 하는 것이에요."
냐냥 냐냐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