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37화 (237/298)

< -- 알았건 몰랐건 그것은 거래를 한 것이다. -- >

'쫑'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녹두병사에게 포위가 되고, 이어서 세진과 자넷의 디버프에 걸리고, 깝딴 무르이까의 정화에 당했다.

그러고는 연신 이리저리 두드려 맞아야 했다.

나름 괴수의 위용을 뽐내며 반항을 해 봤지만 그래봐야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세진의 계획 때문에 일찌감치 사냥이 끝나지도 않고 연신 밀고 밀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야 무르이까의 숨겨진 능력을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시간을 끌기도 하고, 때로는 녹두병사들을 여럿 희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무르이까에게 더이상 숨기는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설 때쯤에서야 집중 공격을 퍼부어서 '쫑'을 빈사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쫑'의 질긴 목숨은 살아 남았다. 아직 괴수를 만들어 내는 것에 성공하지 못한 어리가 관찰용 괴수로 남겨 둬야 한다고 했고, 세진도 괴수 한 마리 정도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여긴 탓이다.

언제고 필요할 때에 이번에 무르이까를 꾀는데 쓴 것처럼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흠. 이 정도 타격을 입혔으면 또 한 동안은 걱정이 없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깜딴 무르이까."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우린 별로 거든 것도 없는데요 뭐. 그나저나 날랐습니다. 몬스터들을 길들인 건가요?"

무르이까는 녹두병사들이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세진은

'역시 영혼을 읽는다고 하더니 뭔가 다르긴 다르군.'

하고 생각했다.

"아, 몬스터를 길들일 수 없다는 건 깝딴도 아실 겁니다. 그러니 녹두병사들을 길들였다고 하긴 좀 어렵습니다.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테멜의 코어를 어느 정도 조작해서 그 코어를 통해서 테멜 안에 있는 일부 몬스터를 조종하는 것에 성공한 것입니 다. 사실 저 괴수도 저렇게 두고 연구를 해서 테멜 코어의 지배를 받도로 하려는데 그건 좀처럼 성공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테멜 코어를 이용해서, 그 테멜에 있는 몬스터를 조종한다는 건가요?"

무르이까는 세진의 말을 그렇게 이해했다.

"맞습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았어요. 저도 그 이상은 물어 보지 않을게요. 그런 비밀을 알려달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테멜 코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통제한다는 것은 흥미가 있어요. 그걸 잘 이용하면 지역 코어를 부족 코어나 지역 코어를 이용해서 일정 영역의 몬스터들을 통제할 수단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역시 그런 생각을 쉽게 해 내시는군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테멜의 코어를 이용해서 테멜 내의 몬스터를 지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세진은 그 정도에서 이야기를 멈췄다.

사실 세진은 나름대로 깝딴 무르이까에게 보답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모르게 깝딴의 비기를 훔쳤지만 그 대신에 테멜의 코어를 이용해서 몬스터를 통제할 수 있다는 힌트를 주는 것이다. 무르이까는 알 수 없지만 세진으로선 최소한의 대가를 치르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깝딴은 곧바로 나비의 테멜로 갈 건가요?"

자넷이 전장 정리를 대충 마치고 다가오며 무르이까에게 물었다.

"네.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고 달라질 것이 없죠. 더구나 저도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좋아요. 그러니 서둘러야죠."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깝딴 일행을 게이트까지 안내할게요. 우리도 다시 수련을 하러 들어가야 하니 어차피 가야 할 곳이에요."

"그래주면 고맙죠."

무르이까는 자넷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나오는 구간을 지나야 테멜의 게이트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세진과 자넷이 도와준다면 고생이 덜할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무르이까가 그런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걸로 하죠."

세진이 괴수 사냥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가자고 결정했다.

카뉸은 괴로웠다.

어쩌다가 세진과 자넷에게 잡혀 오게 된 것도 그렇지만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또 에테르가 거의 없는 공간에 머무른다는 것도 그랬다. 거기다가 요즈음은 자신의 내부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엄청난 무언가가 카뉸을 잠식하고 있었다.

냐냥!

- 이상하다냥. 나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냥.

카뉸은 이전에 경험했던 진화와는 전혀 다른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너무나 생소해서 겁이 났다.

- 어쩌냐냥. 어쩌냐냥.

카뉸은 자신이 어리에게 세뇌가 되어서 여전히 말끝마다 '냥'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도 신경쓰지 못할 만큼 공황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건 또 왜 이러는 거야?"

"어머, 이러다가 죽는 거 아냐?"

"뭔가 탈이 난 것 같군요.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세진과 자넷, 무르이까가 그런 카뉸을 발견했다.

이제 테멜로 들어갈 준비를 마치고 카뉸이 있는 곳으로 왔는데 막상 와서 보니 카뉸이 엄청 괴로운 듯이 몸을 비틀며 갸르릉 거리고 있는 것이다.

"어리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도 모르는 것이에요. 설마 굶어서 그런 것일까요?"

"밥 안 준 거냐?"

"배식을 조금 줄인 것이에요. 죽을 정도로 안 준 것은 아닌 것이에요."

"그래. 알았다. 하긴 이건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자넷, 이 나비 녀석 기운이 널을 뛰고 있는 거 느껴져?"

"응, 엄청난 기운이 들락거리는데?"

"이런 정도라면 뭘까? 떠오르는 거 있지? 내 생각은 그거 같은데?"

"맞아.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세진과 자넷이 카뉸의 상태에 대해서 주고 받는 대화를 무르이까도 들었지만 알맹이가 빠진 이야기여서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르이까는 살짝 짜증을 냈다.

"아, 깝딴께서도 느끼실 수 있겠지만 이 고양이, 기운이 들락날락 하고 있죠?"

"뭔가 강해졌다가 약해졌다가 하긴 하네요."

무르이까는 세진의 물음에 느낀 대로 대답을 했다.

"맞습니다. 원래 이 녀석 남색 등급 중에서도 약한 몬스터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테멜 입구가 몸에 생기면서 진화한 덕분이죠.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강한 힘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고 있는 거죠. 이 정도면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와 비슷할 정도죠."

"그래서요?"

"그래서 저와 자넷은 그 힘이 어디에서 올까 생각을 해 봤고, 그것이 테멜의 주인이라던 그 황금 고양이 괴수에게서 오는 힘일 거라고 의견 일치를 본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카뉸이 몬스터가 되고 있다는 건가요?"

무르이까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잘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이 녀석의 몸에 들어오는 힘이 테멜의 주인이라는 그 녀석의 것일 확률은 거의 100%라고 생각합니다."

"참, 이상한 일이네요.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물론 생명체의 몸에 테멜의 입구가 생긴 경우는 가끔이지만 있었죠. 그런데 그 테멜 안에 테멜 게이트가 있었다는 소리도 못 들었고, 그 테멜의 코어가 테멜 입구가 있는 통물을 잠식한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무르이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것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은 빨리 테멜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겁니다."

세진이 무르이까 일행에게 말했다.

"네? 지금 테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요?"

무르이까가 놀라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한동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어째서요?"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녀석이 괴수의 힘을 얻게 되면 그 후에 어떻게 이 녀석을 잡아서 배를 드러내게 만들겁니까? 어제 우리가 괴수 사냥을 했지만 어제 입은 전력 손실이 많아서 다시 괴수 사냥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 카뉸의 테멜 입구로 들어가지 않으면..."

"깝딴 서둘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서요."

추종자들이 무르이까를 재촉했다.

그들도 상황을 인식한 것이다.

"자, 들어갑시다. 그리고 어리는 나비를 잘 살피고 있고."

"어리는 알아 들은 것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에요."

"세진, 우리도 지금 들어가자고?"

"그래야지. 일단 땁딴 일행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니까."

"하지만..."

자넷은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곧,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세진과 함께 테멜로 들어갈 태세를 갖췄다.

"자, 그럼 갑시다."

세진은 서둘러서 나비의 아랫배에 있는 테멜 입구를 건드려서 테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나머지 인원들이 뒤를 따랐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에요. 나비는 어째서 이러고 있는 것이에요?"

'- 냐냥, 무섭다냥. 무섭다냥.

"이겨야 하는 것이에요. 나비는 잘 듣는 것이에요. 테멜 코어에는 의지가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어리의 생각에 괴수라고 해도 따로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닌 것이에요. 그것은 단지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것이에요. 그러니 의지가 있으면 이길 수가 있는 것이에요."

- 무섭다냥. 무섭다냥.

"괴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에요. 아주 강한 힘인 것이에요. 하지만 그 힘에 밀려서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 것이에요. 나비는 몬스터가 아닌 것이에요. 그러니 정신을 차리는 것이에요. 힘을 내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는 열심히 나비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것은 어리가 여러번 코어를 흡수하면서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되는 충고였다.

커다란 힘, 하지만 그것은 그저 힘일 뿐이었다.

적어도 지구의 코어가 아닌 이상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흡수를 통해서 상대를 어쩐다는 그런 프로그램도 없었다. 그저 강력한 힘의 투사가 이루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 힘의 투사를 견딜 수만 있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나비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사실 고양이로 살아오다가 테멜 입구가 몸에 만들어지면서 진화를 한 카뉸은 아직 도 어리고 여린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본능적인 사고에 익숙한 동물일 뿐이었던 카뉸이 진화를 통해서 체계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으니 또 그 의지가 그리 강하지도 않았다.

천적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동물들의 특성이 드러나듯이 거역할 수 없이 강대한 힘 앞에서 카뉸의 정신은 맥을 잃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만 스스로의 두려움에 짓눌려서 정신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카뉸에게 어리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카뉸의 정신은 어리의 말 한 마디가 들려올 때마다 깜빡 거리며 되살아나길 반복했다.

그러면서 점차 카뉸은 오직 어리의 말에만 집중하며 버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리의 영원한 딸랑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 그것이 깜빡 거릴 때마도 어리의 목소리를 듣고 깨어나고 또 깨어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카뉸은 온전히 어리에게 의지하는 정신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테멜 안으로 들어가면서 괴수를 어떻게 뚫고 나올까를 걱정했던 자넷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자넷은 테멜로 들어가면서 괴수를 진정시킬 나비가 없다면 테멜의 주인이라는 그 괴수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를 걱정했다.

하지만 카뉸이 정신을 차리고 어리의 충실한 딸랑이가 된다면 모든 일은 순탄하게 풀릴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에요. 지금 밀려드는 것은 단지 나비가 감당하기 어려운 힘일 뿐인 것이에요. 힘에는 생각이나 의지가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힘은 나비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나를 믿는 것이에요. 나비는 나를 믿어야 하는 것이에요.

- 나비는 어리를 믿는다냥.

"그래요. 그런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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