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36화 (236/298)

< -- 알았건 몰랐건 그것은 거래를 한 것이다. -- >

무르이까는 세진이 내어준 방에서 고민에 잠겨 있었다.

카뉸이 지니게 된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해서 고향 행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으로선 무르이까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이용해서 세진이나 자넷처럼 여행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쪽의 확률 보다는 카뉸의 게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무르이까가 망설이는 이유는 역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카뉸의 게이트가 혹시라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테멜로 연결이 된다면 그 때는 무르이까 일행은 우주의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 세진과 자넷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도박을 해야 할 때도 있는 거야.'

무르이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너무 오래 집을 떠나 있었고, 그녀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당연히 문제가 생긴다.

그녀가 테멜 안으로 들어온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 물론 그녀가 실종된 장소까지는 어떻게든 찾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곳에서 숨겨진 테멜 입구를 찾아서 구조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더구나 테멜 게이트가 평범하지 않아서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어떤 테멜로 가게 만들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돌아가야지. 오래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어.'

무르이까는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에 곧바로 세진과 자넷에게 카뉸의 테멜을 통해서 돌아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당장 가시겠다는 말입니까?"

세진이 물었다.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고 무슨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세진님이 말씀하신 그 덱터 무리가 관리하는 테멜들이 정말로 데블 플레인으로 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장 그것을 이용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죄송한 말씀이지만 무르이까 깝딴께서 저희를 한 번만 도와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세진은 떠난다는 무르이까를 잡아 둘 마땅한 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쫑'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도움이라니요?"

무르이까는 세진과 자넷에게 빚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니 당연히 부탁을 한다면 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괴수가 하나 있습니다. 전에 저와 자넷, 그리고 어리가 힘을 모아서 포획을 했는데 그 동안 힘을 회복해서 약간 상대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그 괴 수를 제압해야 하는데 깝딴께서 도움을 좀 주실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 괴수를 잡으셨다고요? 그것도 생포를요?"

"네. 그렇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저와 자넷, 어리가 힘을 모으면 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자넷에게 들어니 깝딴께서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계시다니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고 물어보는 겁니다."

"물론이에요. 당연히 도와줄 수 있어요."

"깝딴. 성급히 결정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괴수를 사냥하는 일입니다. 적어도 깝딴 열 명 이상은 모여야 하는..."

"그렇습니다. 깝딴."

"위험합니다."

무르이까는 흔쾌히 허락을 했지만 그 추종자들을 결렬하게 반대를 하고 나왔다.

그들에겐 무르이까의 안전이 최우선이니 당연히 그렇게 나올 것을 세진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무르이까의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다. 무르이까는 추종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진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한 번 제압에 성공했던 괴수라는데 거기에 무르이까와 그녀의 추종자들이 더해지면 어렵지 않게 다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리는 최대한 깝딴 무르이까의 에너지 사용법을 가피할 수 있도록 해. 중요하다는 거 알지?"

"어리는 알고 있는 것이에요. 전에 프락칸의 비기를 습득한 경험을 살려서 이번에도 잘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고. 이번에도 녹두병사들 소비가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괜찮겠어?"

"어리는 세진님을 위해서 열심히 하는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테멜 코어에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리는 에테르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에테르가 부족하다면 분명 대단한 엄살을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저 정도라면 아직은 여유가 있다는 소리다.

"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야. 깝딴의 능력이 더해지고, 거기에 그랜드 마스터 둘이 힘을 더하게 되는 거니까."

"그래봐야 그랜드 마스터 둘이 녹두 병사 몇 명의 역할 밖에 못하는 거잖아."

세진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자넷이 피식 웃었다.

"세진도 알면서 그래? 녹두병사들이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힘의 집중을 생각하면 그랜드 마스터들이 우위에 있어. 세진이나 내가 괴수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거잖아. 방어력의 한계를 넘어서 타격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그런 의미에서 무르이까가 데리고 온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는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래. 그러길 바라고 있어. 나도."

세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쫑'과의 싸움을 빨리 끝낼 생각은 없었다.

될 수 있는 대로 시간을 끌면서 깝딴 무르이까의 능력을 최대한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어리가 깝딴의 능력을 카피하는 것이 수월할 것이다.

"자, 가자. 기다리고 있겠다."

자넷이 재촉하자 세진과 자넷, 어리의 모습이 홀에서 사라졌다.

"여기가 테멜이라구요?"

무르이까는 모랜으로 들어선 후에 그곳이 테멜 안이란 사실을 듣고는 무척 놀랐다.

지금까지 봤던 테멜과는 전혀 다르게 끝없이 높은 천정과 기둥 없이 넓은 벌판이 그녀를 반기고 있는데, 그곳이 테멜 안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맞습니다. 테멜입니다. 형식이 독특하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괴수가 있습니다. 가는 동안에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를 몇 번 마나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세진은 곧바로 '쫑' 옆으로 통로를 내지 않고 제법 거리를 두고 모랜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야 이동하는 중에 한 번이라도 더 깝딴 무르이까의 능력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꼼수였다.

거기다가 몬스터들은 모두가 모랜 테멜의 코어가 통제하는 녀석들이었다.

평소에는 제 멋대로 내버려 두지만 필요할 때에는 모랜 테멜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이 모랜의 테멜 코어였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모랜 테멜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고, 어리가 끼어들면 통제력을 잃게 된다.

"앞에 몬스터 세 마리가 오네요."

자넷이 얼마간 걸음을 옮기다가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무르이까와 그 추종자들은 숲이 있고, 냇물이 흐르고 또 풀과 나무, 작은 동물들까지 살고 있는 이곳이 테멜 안이란 사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러다가 자넷의 경고를 듣고는 전투 준비를 했다.

세진은 그 모습을 보고 어리에게 무르이까에 대한 관찰을 시작하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했다.

'어리야 준비해라.'

'어리는 이미 준비가 끝난 것이에요. 세진님이 실망하지 않도록 어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에요.'

깝딴의 능력은 디버프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디버프가 상대의 몸 안에서 이질적인 에테르를 만들어서 그 대상이 지닌 생체 에테르와 충돌하게 하는 것이라면 깝딴의 능력은 상대의 몸 안으로 특정한 기운을 밀어 넣은 다음에 그 기운으로 상대의 에테르를 정화시킨다는 것이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에테르를 정화하게 되면서 나오는 본연의 기운이 에테르와 천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었다.

세진은 그것을 어리를 통해서 파악한 후에, 지구에서 에테르와 수련 능력자들의 기운이 충돌하고 폭발하는 현상을 떠올렸다.

최초에 인도에서 수련자들이 에테르 코어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폭발을 일으킨  것은 지금까지도 유명한 이야기였다.

'몬스터의 몸 안에서 에테르를 정화해서 본래의 기운으로 만들고, 그 기운과 에테르의 충돌을 유도하는 거였어. 아니 그냥 정화만 하면 알아서 에테르와 정화된 기운이 충돌을 하는 거야. 대단하다.'

세진은 깝딴의 능력이 어떻게 발현이 되는지 확인한 후, 어리에게 한 가지에 집중하게 했다.

깝딴이 사용하는 능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그리고 그 능력을 어떻게 조종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어리는 자신의 테멜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어리의 기반이 된, 물질의 분해와 합성 능력을 기초로 한 것이다.

어리 테멜 안에서 어리는 어떤 것이건 분해하고 또 합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니 당연히 대상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어떤 것들이 어떤 구조로 엮여 있는지를 모르고야 어떻게 분해를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자연스럽게 지금 어리 테멜의 기반이 되었던 최초의 어리가 지녔던 능력이 업그레이드되어 테멜 내부의 모든 것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기반으로 깝딴이 사용하는 능력의 실체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다.

'깝딴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프락칸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외부에서 기운을 끌어 들여서 그것을 몸 안의 일정한 통로를 거치게 하는데 그 통로를 거치면 그것이 깝딴이 사용하는 에너지로 바뀌는 것이에요.'

'그거 프락칸도 그랬잖아.'

'맞아요. 경로가 다르긴 하지만 몸 안의 일정한 에너지 통로를 사용해서 에너지를 변화시키는 것은 같아요. 다시 말하는 세진님이 익히고 있는 오러 로드 수련법의 한 갈래인 셈이죠. 수 많은 오러 로드 중에서 일부를 사용해서 에너지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제 파악은 끝난 거야?'

'무르이까가 숨기는 것이 없다면 끝난 거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아직은 뭔가 더 있 을 것 같아요. 이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알 수 있을 것이에요.'

'그래. 그럼 계속 수고해라.'

세진은 일단 몬스터의 몸 안에 있는 에테르를 곧바로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는 것에서 충분히 얻을 것은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쫑'과의 전투는 이전처럼 어리가 녹두병사들을 '쫑'의 주변에 다수 소환을 하고, 그 후방에서 세진과 자넷이 디버프를 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깝딴 무르이까에겐 괴수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만 도와주면 된다고 했다.

굳이 그녀의 호위인 네 명의 추종자를 싸움에 밀어 넣지는 않겠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그들이 없어도 충분히 괴수를 사냥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했지만, 자넷의 말대로 그렇게 하자 추종자들이 전사를 무시했다면서 도리어 화를 냈다. 그리고 두 명의 마스터를 무르이까 호위로 남기고 그랜드 마스터급 두 명은 '쫑'을 상대하는데 힘을 더했다.

'어때? 단순한 면이 있는 사람들이야. 거기다가 저런 괴수를 상대로 싸울 기회가 많 은 것도 아닌데, 손가락만 빨고 있는 사람들도 아니지. 굉장히 호전적인 사람들이기도 하거든. 특히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때는 말이야.'

자넷은 다른 사람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한국어로 귓속말을 하며 웃었다.

어쨌거나 싸움은 이전에 '쫑'과 싸웠을 때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다.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더해진 것 보다는 확실히 깝딴 무르이까의 능력이 대단했다.

그녀는 이전과 달리 엄청난 기운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대단한 것이에요. 무르이까가 이전에 사용하던 로드가 아니라 그보다 확장된 로드를 사용하는데 우와, 에너지의 양이 열 배는 더 많은 것이에요. 무르이까는 그런 것을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것이에요.'

'숨긴 것이 아니라 쓸 일이 없었던 거지. 너 같으면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쓰고 싶겠냐?'

'어리는 닭 잡는 칼로 소를 잡도록 할 것이에요. 힘은 아끼는 것이 좋은 것이에요.'

단번에 말을 바꾸는 어리다. 제 에테르가 아까운 것은 알면서 남이 하는 것은 인정을 못하는 어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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