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의외의 만남 -- >
이미 한 번 왔던 테멜이었다.
테멜의 구조도 그 사이에 딱히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전에 지나면서 잡았던 몬스터들은 모두가 새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만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세진과 자넷에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어차피 수련을 위해서 들어온 곳이고, 몬스터를 많이 잡으면 잡을수록 테멜 코어의 에테르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어리는 나비를 에테르가 거의 없는 테멜에 가둬 두었고, 그러니 나비를 통한 새로운 에테르의 유입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열심히 사냥을 해서 몬스터의 수를 줄이고, 또 그 몬스터를 테멜 코어가 다시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 테멜 코어는 에테르 부족 현상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이다.
거기다가 이 나비의 테멜은 테멜 코어 자체가 곧 부족 코어를 지닌 괴수였다.
그래서 세진은 테멜 코어의 에테르를 많이 소비시키는 것이 괴수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쨌건 세진과 자넷은 초반의 남색 등급 몬스터들을 빠르게 지나쳐서 보라색 등급 몬스터들이 나오는 곳까지 진출을 했고, 그곳에서부터는 몬스터들을 찾아 다니며 씨를 말리기 시작했다.
원래 테멜 안에서의 몬스터 재생은 외부에서보다 몇 배는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세진과 자넷이 보라색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사냥을 해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시 모든 몬스터들이 다시 만들어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읏차."
세진은 몬스터의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세진의 몸은 순식간에 몇 미터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나비의 종족 특성이라고 했던 순간이동을 세진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젠 능숙하게 쓸 수 있는 것 같네?"
그런 세진의 모습을 보며 자넷이 칭찬하듯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면서 자넷의 검은 방금 세진을 공격했던 몬스터의 목을 잘라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자넷은 몬스터와 제법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자넷 역시 너비의 순간이동법을 몸에 익혀 낸 것이다.
"연속으로 쓸 수 없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에테르가 아니라 정신력을 사용하는 방법이어서 꽤나 쓸모가 있기는 해. 이건 각성자들과 비슷한 것 같아."
"각성자들의 능력이야 원래 헌터룸에서 각인하던 정신 능력과 닮은 점이 있었잖아. 하지만 나비의 이 순간이동은 마스터도 흉내내기 어려운 거라고.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지 않는 이상은 감당할 정신력을 얻기 어려울 거야. 뭐 나비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아."
"그건 아마도 나비가 이 테멜의 괴수와 정신 연결이 되면서 정신력이 늘어난 때문에 쓸 수 있게 된 능력일 거야. 사실 방법만 알고 정신력이 허용하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잖아."
"그 무슨 말을!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우리야 쉽게 배우긴 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그랜드 마스터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었지."
"그럴까? 초급이라도 익히자고 마음먹으면 익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미터 이동하고 두통으로 뒹굴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곘지. 흥."
자넷은 세진의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사실 세진이 말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진이 쉽게 여기는 것은 세진과 어리의 정신 연결 탓이었다.
세진은 어리와 정신이 연결 되면서 어마어마한 정신 영역의 확장을 경험했다. 그래서 자넷 보다도 순간이동의 반발이 크지 않았다.
다만 연속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순간이동을 준비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정신에 걸리는 부하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에테로의 수련법도 어느 정도 익힌 것 같은데, 크게 변하는 것은 없네?"
"그건 욕심이지. 이전보다 공격력이 훨씬 늘었고, 이용할 수 있는 에테르의 양도 늘었잖아. 그걸 무시하는 거야? 세진?"
에헤로 수련법에서 경지 상승의 단초를 찾지 못했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 세진에게 자넷은 너무 급하게 욕심을 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쉽게 오를 경지였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겠어? 그래도 뭔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잖아. 안 그래?"
"그렇기는 하지. 맞아."
세진은 자넷의 핀잔을 덤덤하게 받아 들였다. 사실 스스로도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자, 그만하고 다시 사냥하자. 요즘 조금씩 몬스터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잖아. 빨리 잡다보면 결국 테멜 코어가 몬스터 생성을 포기할 때가 올 거야. 호호호."
세진은 자넷이 그 황금 고양이 녀석을 잡아 족치는 상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웃음 소 리에서 알 수 있었다.
고개를 한든 세진이 앞장서서 테멜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자넷은 이미 사냥 중에 나온 에테르 코어를 수거해서 소형 테멜에 넣고 난 후였다.
무르이까는 도무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네 명의 동료와 함께 테멜의 게이트를 탐색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새로 발견된 테멜을 확인하고, 그 안의 에테르 성질이 이질적이란 사실을 알았다. 당연히 족장이나 원로들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녀는 대족장의 딸이었고, 이미 경지에 올라서 인정받는 깝딴이었다.
그런 그녀가 테멜 게이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냥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테멜 게이트는 발견 즉시 부족 연합 회의에서 그 처분을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그 처분이라는 것은 그 테멜 게이트 반대쪽을 확인하고 그곳과 교류를 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반대쪽의 상황이 좋지 않다면 당연히 테멜을 파괴해서 반대쪽 행성과의 소통을 끊어야 했다. 그래야 반대쪽 행성의 에테르가 고향 행성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무리이까가 사는 행성의 에테르 농도를 낮춘다고 해도 테멜 게이트가 계속해서 에테르를 뿜어 낸다면 에테르 정화에 필요한 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엔 테멜 게이트는 파괴하고 그 대신에 행성간 게이트를 설치해서 교류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무르이까는 이번에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이 발견한 테멜도 그렇게 될 것임을 짐작했다.
'그렇다면 이참에 내가 가서 반대쪽 상황을 살펴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무르이까는 그렇게 생각을 했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남색 등급의 몬스터를 잡고 테멜 게이트를 통과해서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넘어간 반대쪽 테멜에서 기다리는 것은 같은 남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아니라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였다.
무르이까도 그렇게 서로 다른 등급의 몬스터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이 되니 곤란한 점이 많았다.
비록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무르이까 일행이었지만, 테멜의 특성이 몬스터들이 두세 마리가 몰려 다닌다는 것이고 또 때론 싸우는 중에 다른 몬스터들이 난입을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르이까 일행은 테멜의 게이트를 나와서 얼마 전진을 하지 못하고 후퇴를 해야 했다.
그 때에 무르이까는 아끼던 애완고양이도 잃고 말았다.
어쨌거나 고양이를 잃은 것은 아쉽지만 그렇다고 무르이까 일행이 죽을 수는 없으니 겨우겨우 후퇴해서 테멜 게이트를 다시 작동시키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그 후는 무르이까는 물론이고 그의 추종자들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황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멜 게이트를 통과했는데 전혀 다른 장소에 도착을 해 있는 것이다.
들어갔던 테멜에 도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르이까 일행에게 악몽이었다.
급하게 싸움을 하다보니 결국 도망을 치게 되었고, 어찌어찌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 영역을 벗어나니 또 다른 남색 등급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들을 잡다보니 다시 다른 몬스터가 나오고 또 다른 몬스터가 나왔다.
무르이까 이행은 그곳이 절대 자신들의 고향 행성에 있는 테멜이 아니란 것을 확신했다.
무르이까와 그 추종자들을 이런 저런 고민을 했지만 선택은 두 가지 밖에 없었다.
테멜의 출구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서 그곳에 어딘지를 확인하는 것, 그게 아니라면 다시 테멜 게이트를 열고 그곳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
이 두 가지 방법을 놓고 고민을 하던 무르이까는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쪽을 선택했다.
즉 테멜 게이트를 다시 열고 들어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가 고향 행성에서 발견한 테멜로 가게 될지, 아니면 두 번째로 도착했던 테멜로 가게 될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테멜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무언가 시도를 하기는 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벌써 추종자의 배낭에 들어 있던 음식들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서둘지 않으면 테멜 안에서 굶어서 죽게 될 수도 있었다.
무르이까 일행은 무척 강력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르이까는 능력이 있는 깝딴이었고, 나머지 넷 중에 둘은 그랜드 마스터 초입이고 나머지 둘은 마스터 최상급이었다.
이 정도 전력이면 남색 등급 테멜 정도는 어렵지 않게 파괴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보라색 등급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보라색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보라색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라면 상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르이까도 테멜의 출구를 찾아서 나갈 생각을 미뤄둔 것이다.
하지만 보라색 몬스터라도 두 마리 이상이면 무르이까 일행에게는 무척 위험한 상대였다.
그런 위험을 몇 번이나 넘기면서 무르이까 일행은 다시 테멜 게이트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 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르이까 일행은 예상치 못한 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어? 저들은?"
자넷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세진을 보았다.
"왜? 아는 종족이야?"
세진이 물었다.
그들은 순회를 하면서 몬스터를 사냥하다가 테멜 안에 자신들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찾아온 길이었다.
"본 적 없어?"
"글쎄? 전에 라훌족 행성에서 헌터들을 많이 봤는데 저들저럼 생긴 종족은 못 본 것 같은데?"
"아, 그렇긴 하겠다. 저들은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 유명한 종족이니까."
"유명해?"
"호호호. 세진이 뭘 찾아서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가고 있었어?"
"그거야 깝딴이라고 몬스터를 약화시키는 특이 능력을 지닌 종족이 있다고 했잖아. 설마? 그런 거야? 저들이 그 종족이야?"
세진은 말을 하다말고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맞아. 저들이야. 따로 무슨 종족이라고 부르진 않지만 대부분 솟구치는 종족이라고 한다고 했던 그 종족이야."
"그건 전에 이야길 했었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신성하게 여긴다면서?"
"그래서 나무라거나 풀이라거나 아니면 그게 뭐가 되었건 중력을 이기고 올라가는 것들을 숭배하는 이들이야. 다만 인공적인 것들을 이용하면 그런 신성함 따윈 없다고 생각하지. 뭐 초기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부유선에서 내린 사람을 보고 엎드려 절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어."
"그래. 들었어. 그런데 피부가 녹색이라더니 그렇게 티가 많이 나진 않네?"
세진은 깝딴이 있는 종족이 피부색이 짙은 녹색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났다.
"아, 녹색이 짙은 종족이 대부분인데, 저들은 아마도 건조한 기후지역에 있는 부족일 거야. 그 쪽은 피부색이 좀 옅은 색이라고 들었다. 거기다가 그 쪽의 부족 족장이 지금 그 행성에서 대족장을 하고 있지 아마?"
"대족장이 행성의 우두머리 정도 되는 건가?"
"비슷해. 뭐 저들은 원로원이 잘 되어 있고, 전체 대회의 같은 것도 있어서 대족장이 독재를 하진 않지만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있는 걸까?"
"그거야 테멜 게이트를 열고 나온 거겠지. 일단 저들이 게이트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만나보긴 해야겠지?"
"응. 그래야지. 가, 남편."
세진은 자넷의 재촉을 받으며 솟구치는 종족의 사람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마침 그들은 두 마리의 몬스터를 막 잡은 후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타난 세진과 자넷의 모습에 당황해서 허겁지겁 무기를 챙겨들고 경계 자세를 취했다. 세진은 그런 이들에게 양손바닥을 그들이 볼 수 있도록 어깨 높이로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