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32화 (232/298)

< -- 의외의 만남 -- >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괴수는 테멜에 반응했다.

그것도 테멜을 취해서 이미 계곡에 있는 테멜 곁에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소형 테멜 하나가 괴수의 수집품이 되었고, 테멜을 목에 걸고 괴수에게 다가갔던 세퍼트는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괴수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핏물이 되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결국 동물을 이용해서 어리의 테멜을 계곡 안의 게이트 테멜에 넣는다는 계획은 백지화 되었다.

그리고 나비를 이용하는 것도 나비를 믿을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나비는 여전히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결국 의체를 이용해서 괴수를 릴레이로 유인한 다음에 테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네?"

자넷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말했고, 세진과 자넷도 그 이상의 방법은 찾을 수 없다는데 동의했다.

덱터와 틸터의 세력을 이용하면 어떻게든 수가 생길지 모르지만 세진이나 자넷은 그들 사이의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그들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

프랜드에그로메의 건설이 덱터를 압박해서 그들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예상치 않게 나비가 등장하고, 나비로부터 데블 플레인으로 통하는 게이트 테멜을 확인한 후로는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게이트 테멜로 들어갈 방법만 찾게 되었다.

실제로 프랜드에그로메의 목적이 데블 플레인 연합에 속한 행성으로 가기 위한 것이었으니 괴수가 지키는 테멜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는 셈이다.

"좋아. 그럼 사람들을 모아서 계획을 짜 보자."

"연습도 해야 할까?"

"일단 익스퍼트 중급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의체들을 이용해서 유인을 해 보도록 하자고. 그게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하면 익스퍼트 최상급자들로 해야 하고, 그것도 실패하면 마스터들을 투입해야지."

"출혈이 심각하겠는데?"

"그동안 어렵게 성장시킨 의체들인데 아쉽기는 하지.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고, 실제로 덱터와 전면전도 각오했던 일인데, 그런 전투에서 생길 희생을 예상하면 이쪽이 훨씬 나은 선택이야."

세진은 덱터에게 양보을 얻지 못하고, 세진이 키운 세력이 일정 이상으로 커지게 되면 기습을 통해서 덱터와 싸울 생각도 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게이트 테멜을 확인해서 데블 플레인 연합으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세진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지구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을 괴수들을 정리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가장 좋은 방법은 에테르를 정화하는 프락칸의 능력이 아니라 몬스터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깝딴의 능력이었다.

데블 플레인에 속한 행성들 중에서 깝딴이란 특이한 능력자들이 여럿 모이면 괴수라도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다고 자넷이 장담을 했던 것이다.

깝딴 스물이면 괴수 하나를 몇 시간 안에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 깝딴의 비의를 훔치고 그것을 지구의 이민자들에게 의체를 이용해서 익히게 하면, 충분히 지구의 몬스터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세진의 생각이었다.

그 때문에 데블 플레인으로 가는 것을 지상 과제로 삼고 악착같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었다.

그것도 본체가 아닌 의체를 잃는 정도라면 길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어리 공방의 식구들을 통해서 괴수를 유인하는 자살 지망생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용해서 몇 번의 실험을 거쳐, 괴수를 유인하는 데는 적어도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는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한 번의 시도에 200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30명의 줄을 세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시도는 그야말로 끔찍한 실패로 끝이 났다.

유인이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괴수는 거의 6km를 미끼를 따라 이동했다. 계곡에서 6km나 벗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대쪽에서 기다리던 정진이의 의체가 계곡 안으로 달려갔다.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할 마스터급 실력자가 필요했는데, 정진이가 솔선수범해서 나선 것이다. 몇 되지도 않는 마스터 수준의 의체들 중에서 그나마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서는 이들은 어리 공방의 식구들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무래도 어렵게 성장시킨 의체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정진이가 나서게 되었다.

어쨌거나 정진이가 테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다음에는 연습이 아니라 실전을 하게 될 거라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정진이의 의체가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금까지 미끼를 쫓아서 발광을 하고 있던 괴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괴수는 계곡 안쪽의 테멜 입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진이는 그 괴수의 공격을 몇 번 피하지도 못하고 끝잔이 나고 말았다.

"괴수가 계곡으로 순간이동을 했어."

자넷이 후퇴를 한 후에 어리의 홀로 들어와서도 멍한 표정으로 짓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힘을 뚫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는 건가?"

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뭔가 꼼수를 사용해서 쉽게 가려고 했던 것이 완벽하게 막혀 버린 것이다.

"나비는 역시 안 되는 것일까요?"

어리가 다시 나비의 활용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세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녀석은 믿기 어렵지. 어쩌면 그 녀석의 테멜에 있는 괴수가 계곡에 있는 괴수보다 더 위험할지도 몰라. 그 녀석은 테멜 코어까지 함께 지니고 있는 녀석이니까 말이야. 그걸 상대하느니 차라리 계곡에 있는 괴수를 상대하는 쪽을 택하겠다."

세진은 나비의 테멜 안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갇히는 상황을 걱정했다.

"세진, 스트레스 풀러가자."

"응?"

"한 바탕 사냥이나 하자고."

"사냥을?"

"그래. 어차피 이번 실험 실패로 한동안은 회복 기간이 필요할 거 아냐? 사기도 말이  아니게 떨어진 상황이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그 사이에 에헤로의 석판이나 더 수련을 하자."

자넷은 그렇게 한 호흡 쉬어가자는 의견을 냈고, 세진도 자넷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그럼 어리는 '쫑'과 좀 더 깊은 대화를 해 보는 것이에요. 어리는 조금씩 코어와의 정보 교환에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에요. 조금씩이지만 어리는 코어의 풀리지 않는 정보 영역을 풀어내고 있어요. '쫑'과 정보 교환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에요."

"그래봐야 그 녀석들은 이성이나 감정이 없는 것들이잖아. 그건 생물이라기 보다는 프로그램에 가까운 것들로 아는데?"

세진이 어리에게 물었다.

"그런 것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정보 교환을 통해서 의사소통은 가능할 것이에요. 음, 의사소통 보다는 그냥 프로그램 조작 정도라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요."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그런 녀석이 지구의 영향을 받아서 진화라도 하게 되는 날에는 정말 악몽이 될 거다."

세진은 어리에게 조심하라고 일렀다.

에테르 기반 몬스터들의 코어는 이상하게 지구에만 가면 변화가 생기는 듯 했다. 특히 테멜 코어들은 어김없이 그랬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테멜 코어보다는 상위에 속하는 '쫑'의 경우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에요. 어리의 테멜은 완벽하게 어리의 것이에요. 아무리 괴수라도 모랜 테멜의 영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래. 그럼 수고하고. 그 나비 녀석이나 불러라."

"나비요?"

"그래. 사냥을 하는 김에 그 녀석 테멜에 있는 것들이나 사냥을 해야겠아."

"하지만 그 안에는 괴수가 있잖아요. 세진님."

"그거야 전처럼 나비가 통제를 하게 해야지. 안 그러면 확 가죽을 벗겨 버리고."

"아, 네."

"이번에 가서 나비의 순간이동하고 에헤로의 석판을 좀 수련하고 나올 생각이니까 그렇게 알고."

"세진, 하필이면 나비의 테멜로 가는 이유가 뭐야?"

자넷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물었다.

"그 놈을 약하게 만들어야지. 어리도 나비에게 더 이상은 에테르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치를 해. 에테르를 모으지 못하는 상태에서 우리가 사냥을 열심히 하게 되면 결국 나비의 테멜 코어도 약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거기에 분명히 테멜 게이트가 있었잖아. 그것도 확인을 해야지. 살짝 넘어갈 생각은 아직 없지만 그 게이트를 일단 파악해 둘 필요는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 그렇구나. 에테르가 보충이 되지 않는 상태로 계속 사냥을 하면 테멜 코어의 에너지도 점점 떨어지겠네? 응, 나쁘지 않은 계획이야."

"하지만 세진님. 그러다가 괴수가 나비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두 분을 공격하면 어떻게 해요? 그렇게 되면 큰일이잖아요."

어리의 얼굴에는 걱정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걱정하지 마. 어차피 잃어봐야 의체야. 최악의 상황이라도 말이야. 그리고 수련은 좀 그런 맛이 있어야지. 배수의 진을 친 것 같은 그런 위기감 말이야."

세진은 어리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나비의 테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굶을 수는 없으니까 빵빵하게 챙겨 가야지."

"그게 뭐야? 위기감 같은 것이 있어야지 수련이 잘 된다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수련이라고 굶으면서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세진이 소형 테멜에 이런 저런 먹을 것들을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세진과 자넷은 소형 테멜에 보급품을 가득 채운 상태로 나비의 테멜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이다.

어리가 함께 들어갈 수는 없으니 대신에 소형 테멜 하나를 준비했다.

냐냥. 나비는 창살 안에 갖혀 있는 상태로 다시 어리의 홀로 이동이 되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황금색의 눈동자로 불안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세진님과 자넷님께서 나비 너의 테멜로 수련을 하러 가시기로 한 것이에요. 테멜이 넓고 몬스터가 많으니 수련 장소로는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괴수는 정말 멋진 목표가 될 것이에요."

- 위험하다냥.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에요. 세진님과 자넷 언니는 강한 것이에요.

- 그게 아니다냥. 괴수가 내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냥.

"아, 그런 것이군요. 그럼 곤란한 것이에요. 그런 나비는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에요. 가치가 없는 나비인 것이에요. 그렇다면 어리는 나비를 어떻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 그, 그냥 놓아주지 않을까냥.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나비는 멍청한 것이에요. 똑똑하지 못한 것이에요."

- 잘못했다냥. 나와 괴수는 하나다냥. 절대로 내 말을 들을 거다냥.

"나비는 잔머리를 굴리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나비는 벌을 받게 될 것이에요. 앞으로 나비는 에테르가 없는 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에요."

냐냥!

- 그건 말이 안 된다냥. 나는 한 번도 에테르가 없는 곳에서 지낸 적이 없다냥. 잘못하면 죽는다냥.

"안 죽을 것이에요. 몬스터들도 에테르가 없는 곳에서 잘 버티는 것을 이미 확인을 한 것이에요. 비록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 봐주라. 냥. 뭐든 한다냥.

"세진님과 자넷임께서 수련을 마치고 나오면 생각을 해 볼 것이에요. 그러니까 무사히 수련을 마치실 수 있도록 협조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순간이동에 대한 것도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이 있다면 조언을 해 주는 것이 좋을 것이에요. 그럼 가산 점을 줄 수도 있는 것이에요."

어리가 그렇게 나비를 교육시키고 있는 동안 모든 준비를 마친 세진과 자넷이 어리와 나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럼 기다릴 것도 없으니까 그냥 출발하지."

"그래. 세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오."

세진과 자넷은 발랑 누워서 배를 드러낸 나비를 통해서 다시 테멜 안으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어리는 나비를 여러 테멜 중에서 에테르가 거의 없도록 만들어 놓은 소형 테멜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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