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30화 (230/298)

< -- 게이트 테멜을 확보하라 -- >

"내가 반드시 다시 들어온다.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어라."

세진이 테멜의 출구 앞에서 괴수를 보며 한 마디 했다.

"그러고 싶어?"

"뭐가?"

"도망가면서 한 마디 던지고 가는 것처럼 없어 보이는 모습이잖아. 지금."

자넷의 눈빛에서 한심하단 의미를 읽은 세진이 슬쩍 뒷머리를 긁는다.

"그런가?"

"차라리 아무 말 하지 말고 나가자. 그리고 정말 다음에 다시 와서 저 고양이를 족치는 거야."

"휴우, 그래. 그러자."

세진과 자넷은 다시 한 번 황금색 거대 고양이를 눈에 담았다.

나비는 털이 길고 풍성하지만 테멜의 주인은 털이 짧고 날렵한 것이 표범의 몸을 닮아 있었다. 그런 녀석이 아직도 이빨을 드러내고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는데, 그 기세가 사뭇 거칠기 짝이 없다.

나비의 호언장담대로 테멜의 주인은 세진과 자넷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의를 숨기지도 않아서 둘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테멜 출구까지 와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들어가자. 이러다가 출구가 흩어질 수도 있겠어. 저거 조금 더 기세를 끌어 올리면 출구의 에테르가 흔들릴 거야."

자넷이 세진의 팔을 잡고 출구로 들어섰다. 괜히 성질 건드려서 괴수가 날뛰기 시작하면 테멜에 갖혀 버리거나 혹은 의체를 날려먹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자넷은 서둘러서 테멜을 벗어나기로 한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세진의 고집을 지켜보는 모험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세진과 자넷은 어리의 홀에 도착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어리는 무척 걱정하며 기다린 것이에요."

그리고 세진과 자넷을 맞은 것은 꼬마 어리와 나비, 그리고 음식이 가득한 탁자였다.

"우앗, 먹을 거다."

"일단 먹고 이야기하자."

자넷과 세진은 어리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음식에 집중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몸, 회복 캡슐의 복원력 그 조건이면 며칠을 굶은 상태에서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폭풍흡입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게 한바탕 탁자를 휩쓸고 나서야 세진과 자넷은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서 어리와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그러니까 저 놈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그런 것이에요. 그것도 데블 플레인 행성에서 온 것이에요."

"그래? 그럼 어느 테멜에서 나왔는지도 알고 있겠네?"

"그런 것이에요."

"어딘데? 응? 어디야? 지금 당장 여기 정리하고 넘어가야지. 가서 확 쓸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말이야."

자넷이 데블 플레인으로 갈 수 있는 게이트가 있다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지 않은 것이에요. 덱터의 도시가 있는 곳이 아니라 괴수가 지키는 곳이어서 부담도 별로 없는 것이에요. 그거만 정리하면 되는 것이에요."

"잠깐, 그러니까 괴수가 있는 곳에 테멜의 입구가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우리 지금 괴수 한 마리 처리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나하고 자넷이 나서고, 어리가 녹두병사들을 움직인다고 해도, 이전과는 많이 다를 텐데? '쫑'을 잡을 때와는 다르지. 지금은 어리의 순간이동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고."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괴수 한 마리 정도는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넷이 조급함을 버리지 못하고 데블 플레인으로 가는 것에 안달을 낸다.

"아니야. 괴수가 그렇게 쉬운 놈이 아니지. 전에 어리의 녹두 병사가 수백이나 작살이 나고 겨우 잡았어. 우리가 후방에서 디버프를 걸고도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녹두병사들이 한 곳에 밀집해서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러면 그 녹두병사들이 한 방에 전멸을 할 수도 있어. 거기다가 그 자리에는 어리 앵무도 함께 있어야 하는 거야. 어리 앵무가 있어야 녹두병사들을 통제할 수 있으니까."

"아, 그러다가 어리가 잠시라도 녹두병사의 통제를 놓치게 되면, 그 녹두병사를 다시 통제할 수가 없지? 테멜 밖에서 연결이 끊어지면 다시 이어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자넷도 이제 기억이 났다는 듯이 세진의 말에 덧붙인다.

"그래. 그래서 곤란한 거야. 어리 앵무의 몸 자체가 박살이 나거나 혹은 테멜 입구가 사라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사라진 테멜 입구는 어리가 다시 만들려고만 하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녹두병사들의 통제가 끊어지고 그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문제지."

"결국 중요한 것은 어리가 전력이 되기 어렵다는 거잖아."

"그렇지."

"죄송해요오. 어리는 정말 미안한 것이에요."

어리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다.

"그게 어디 어리 책임이야? 이 클리르의 특색이 그런 거지."

세진은 자넷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그렇게 위로를 했다.

"그럼 결국 어떻게든 괴수를 공략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그러니까 우리 전력을 키우기 전까지는 방법이 없는 거네?"

"있다면 틸터와 연합을 해서 공격을 하는 건데, 그건 또 그것 대로 덱터가 방해를 할 테니까 어렵다고 봐야지. 그 양쪽의 눈을 속이고 단번에 괴수를 정리하고 테멜로 들어가는 것이 최선이야."

세진은 사실 그보다 더 복잡한 문제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이 클리르 행성의 덱터와 틸터는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어렵네. 참, 그러고 보니까 저 나비 순간이동을 하지 않았어? 어리야 그건 어때?"

자넷이 어쩌면 수가 나지 않을까 하는 눈빛으로 어리를 봤다. 혹시라도 어리의 전력이 높아질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인 것이다.

"그게 아닌 것이에요. 저 나비의 순간 이동은 테멜 코어의 힘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종족 특성인 것이에요. 아, 종족 특성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이 여우 고양이는 실제로 순간 이동은 할 수 없는데 나비는 그런 능력이 생긴 거니까요. 테멜의 힘은 아니지만 테멜과 연결이 되면서 생긴 능력이라고 할까요? 테멜의 괴수가 지닌 능력을 나비는 그냥 쓰게 된 거죠."

"그게 뭐야? 테멜 때문에 생긴 거지만 테멜 코어의 힘은 안 쓰는 거다? 그러니까 어리도 흉내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거야?"

"제가 가늘인의 염력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

"그럼 나비의 순간 이동을 우리가 배울 수는 없을까?"

세진이 매우 흥미가 동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알 수 없는 것이에요. 하지만 나비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에요. 그렇지 나비?"

- 나는 그렇게 할 거다냥. 열심히 도울 거다냥.

"호호홋, 역시 나비는 착해. 응응."

- 나비는 착한 여우 고양이다냥.

"그런데 어리야. 왜 저렇게 끝에 냥냥 거리는 거야?"

자넷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물었다. 툴틱의 언어 변환은 꽤나 정교한 것이어서 쓸데없는 저런 소리는 자체적으로 걸러주기도 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리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에요. 나비는 말이 끝날 때마다 '냥'을 붙이는 것이에요. 그게 훨씬 귀엽고 고양이다운 것이에요. 언니."

"하긴."

"자넷, 그런 식으로 인정하지 마. 쓸데없이 냥이 뭐야? 냥이."

세진이 뒤늦게 한 마디를 해 보지만 어리나 자넷은 굳이 나비의 말투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아무튼 마마호환보다 무서운 것이 그것들이었어. 애니와 만화."

세진은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목표가 뚜렸하면 어떻게든 공략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세진과 자넷은 데블 플레인에 속한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게이트 테멜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하필이면 그 테멜 입구가 괴수가 거처로 삼은 계곡의 절벽에 있었다.

마치 테멜 입구를 수호하는 것처럼 괴수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괴수를 처리하지 못하면 테멜로 들어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머리를 굴리면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어떻게?"

"의체 몇을 희생하는 거야. 의체들은 헌터룸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20km까지는 활동을 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 의체들을 이용해서 괴수를 유인하는 거지."

"그냥 한 방에 훅 가지 않을까? 의체들로는 감당이 안 될 텐데?"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는 거야. 일정한 간격으로 의체를 배치를 하고 이어달리기 식으로 괴수를 끌고 가는 거야. 그리고 어느 정도 괴수가 멀어지면 곧바로 우리가 어리와 함께 테멜 입구로 뛰어드는 거지. 그렇게 되면 밖에서 테멜 입구가 박살이 난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잖아. 우린 어차피 테멜의 게이트를 이용해서 데블 플레인으로 가면 그만이니까."

"으응,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자넷이 세진의 계획을 듣더니 찬성표를 던진다. 의체를 잃게 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가짜 몸이다. 물론 그 동안 수련을 해 놓은 성취가 아깝기는 하겠지만 다시 의체를 주고 또 보상을 넉넉하게 준다고 하면 지원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일일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 수준이 아직은 무척 낮다는 건데 말이지."

"익스퍼트 최상급, 아니면 마스터는 되어야 괴수를 끌고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릴 수 있지. 아니면 괴수의 기세에 묶여서 움직이기도 어려울 거야."

"그래. 그렇지. 아니 익스퍼트 최상급이라도 별로 신통치 않을 수 있어. 시험을 해 봐야 알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네?"

"괴수 타입이 거기다가 인간형이란 것도 문제야. 의외로 크기가 5미터 정도 밖에 안 되는 괴수란 말이지. 크기가 작으니까 더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세진은 괴수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렸다.

대부분의 경우 힘의 집중은 분산보다 더 강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십 미터가 넘는 괴수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5미터 남짓의 괴수는 꽤나 까다로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나비는 어떻게 그 괴수를 피해서 도망을 칠 수 있었을까? 아무리 남색 등급에 가깝다고 해도 괴수에게서 도망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러다가 자넷이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 괴수가 지키는 곳에 뚝 떨어진 나비가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문제였다.

"그거야 나비는 동물이니까 그렇지."

하지만 세진은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다.

몬스터는 다른 생물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몬스터가 관심을 두고 적대하는 생명은 오로지 인류에 국한되어 있었다. 다른 생명체들은 그저 행성에 점차 에테르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멸종을 하게 되는 것이지, 몬스터가 직접적으로 위해를 끼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나비의 경에도 괴수 입장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럼 나비를 이용하면 그 테멜 입구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자넷이 물었다.

그리고 세진의 시선이 어리 홀의 구석에서 참치를 먹고 있는 나비에게로 향했다.

냥?

나비가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세진과 어리를 뚱그란 눈으로 바라본다.

"저거 밖으로 풀어 놓으면 도망가지 않을까?"

"으응? 그럴 수도 있겠다."

"방법이 없을까?"

냐냥!

둘이 이전에 나눴던 대화 내용을 듣지 못한 나비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받은 것인지 고개를 돌리고 둘의 시선을 외면한다.

"의체를 희생시키는 것 보다는 나비를 이용하는 쪽이 더 빠를 것 같기도 한데."

"결국 프랜드에그로메는 쓸데없는 짓이었네?"

"모르지. 우리가 성공해서 데블 플레인 연합에 속한 행성으로 넘어가면 그렇게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여전히 프랜드에그로메를 기반으로 삼아야 하니까 꼭 쓸데없는 짓이었다고 단정하긴 이르지."

"하긴 덕분에 지구이민자들에게 상황 설명도 하고 그랬으니까."

자넷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나비와 협상을 해 볼까?"

"그래야지. 어리도 부르고."

세진과 자넷은 곧바로 나비에게 다가갔고, 나비는 영문도 모르고 먹다 남긴 참치를 두고 도망을 갈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을 했다.

하지만 가 봐야 어리의 손바닥 안이란 사실을 깨달은 나비는 체념을 하고 그냥 남은 참치를 입에 물었다. 죽더라도 먹던 것은 먹고 보겠다는 뜻이다.

냐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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