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29화 (229/298)

< -- 게이트 테멜을 확보하라 -- >

어리는 세진과 정신의 일부가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에 세진이 나비의 테멜 안에서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온전히 정신을 연결한 상태와는 달라도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세진이 나비의 테멜에서 나올 때까지 나비를 마취시킨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리는 얼마 후에 그것이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취가 된 상태에서도 나비는 정신이 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비는 몸이 마취되어 있었지만 정신은 깨어 있었다. 더구나 뭔가 부지런히 두뇌 활동을 하는 것으로 봐서는 나비가 테멜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 거라는 예상도 할  수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는 나비를 깨웠다. 마취제로 사용했던 약의 중화제를 투입했다.

나비는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고 황금색 눈동자로 어리를 바라봤다.

"마취를 시켜도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고민인 것이에요. 우리 주인님과 언니가 나비 너의 테멜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은 문제인 것이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나비는 어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척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나비는 어리의 말을 대부분 이해했다. 그동안 나비가 받은 언어 교육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비는 모르는 척 앞발을 핥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나는 나비 너를 죽이기로 결심을 한 것이에요."

냥!

"테멜의 입구가 사라지게 되면 아마도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다시 입구가 여기 어디서 생기게 될 것이에요. 물론 그 사이에 주인님과 언니가 조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긴 하겠지만, 지금 나비 네가 테멜을 움직이는 것 보다는 사정이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나비는 죽어 줘야 하는 것이에요."

나비는 어리의 날벼락 같은 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이 똥그랗게 변해서 어리를 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핥고 있던 앞발을 든 상태로 굳어 버린 것이다.

"자, 그러면..."

냐앙! 냐앙! 어리가 뭔가 말을 하려는데 나비가 화들짝 뛰어서 물러서면서 낮은 소리로 울었다.

"지금 반항을 하겠다는 것이에요? 그럼 안 되는 것이에요. 그냥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면서 나비의 주변에 녹두병사들이 나타나서 포위를 해 버렸다.

어리의 테멜 안에서 나비는 그저 조금 사나운 고양이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남색 등급 몬스터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래봐야 녹두병사 하나도 상대하지 못할 능력이다.

냥냥냥냥! 냥냥냥!

나비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처 대처를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죽게 될 거란 생각이 들자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서 어리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어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지금 뭐하는 것이에요? 그건 항복인 것이에요? 배를 드러내고 눕는 건 보통 그런 의미인 것이에요."

냥냥냥!

나비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그런 것이에요? 그럼 이제부터는 내 말을 듣는 것이에요? 아니 그래야 하는 것이에요. 나는 관대하지 않은 것이에요. 주인님께 위협이 되는 것들에게는."

어리의 말에 나비는 그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자신을 포위하고 있는 몬스터들에게 갈가리 찢겨 나갈 것 같았다.

이후에 곧바로 나비의 앞다리에 툴틱이 채워졌다.

툴틱은 뇌파를 분석해서 언어를 통역하는 기능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툴틱이 고양이의 언어를 통역하지는 못한다. 다만 나비가 한국어를 익혔기 때문에 그것을 툴틱의 음성 변환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주의 여러 종족 중에서 인류에 속해 있으면서도 성대의 구조가 달라서 소리를 잘 내지 못하거나 혹은 너무 높거나 낮은 음파를 사용하는 종족이 있었다. 사고로 성대를 다치는 경우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선천적으로 음역대가 다른 소리를 내는 종족을 위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툴틱 이외에도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기들이 많지만, 툴틱에도 그런 기능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비는 자신이 어리가 가르친 언어를 어느 정도 익혔다는 것을 새삼 다행이하고 생각했다.

아마도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비 너는 네 안에 있는 테멜을 모두 관리하지는 못한다는 거야?"

- 연습하면 할 수 있을 테지만 해 보지 않았다.

"그럼 넌 필요가 없는 거잖아. 응?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냐?"

- 내, 내가 죽어도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연습을 하면 할 수 있다.

"아냐. 아냐. 쓸모가 없는 것 같아."

- 그러지 마라. 나는 열심히 할 수 있다. 그리고 테멜의 주인은 내 말을 듣는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테멜의 주인은 내 통제를 받는다.

"정말?"

- 그, 그렇다.

"보아하니 보라색 등급 부족 코어를 지닌 녀석 같은데 네가 그걸 통제한다고?"

- 아니다. 그보다 훨씬 강하다. 테멜의 주인은 여기 있는 이런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지금 내 녹두병사들을 무시하는 거야?"

-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좋아. 그럼 가 보자. 니가 말하는 테멜의 주인이란 놈이 '쫑'보다 강하진 않겠지."

냥!

나비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모랜 테멜에 있는 '쫑'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이 되었다. 그리고 나비는 '쫑'의 위용에 바짝 얼어 버렸다.

하지만 다시 어리의 홀로 돌아온 나비는 자신의 테멜 주인이 '쫑'과 같은 수준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너는 기껏 남색 등급인데, 테멜 코어라 괴수라고? 이걸 믿어야 하는 거야?"

- 믿어라. 사실이다.

"좋아. 그럼 그걸 니가 통제를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럼 이제 그 녀석에게 우리 주인님과 언니를 안전하게 테멜의 출구로 안내하라고 해!"

- 그건... 할 수가 없다.

"뭐라?"

- 테멜의 주인은 정해진 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정해진 곳을 벗어나게 되면 결국 테멜이 붕괴하게 된다. 그는 테멜의 주인이다.

"흐응, 결국 그 녀석이 테멜 코어라는 말이고, 몬스터니까 부족 코어도 지니고 있다는 말이 되는 거네? 그럼 설마 그 녀석 부족코어와 테멜 코어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 서 그렇게 강해진 건가?"

-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그럼, 세진님과 자넷 언니가 그 녀석이 있는 곳까지는 자력으로 도착을 해야 하는 거네? 뭐 그 정도야 둘이서 알아서 할 수 있겠지. 그러면서 또 에헤로 석판을 조금 더 수련하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고. 좋은 것이에요. 그럼 나는 주인님과 언니를 응원하며 기다리면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나비는 잘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만약에 테멜의 주인이란 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나비는 큰 일이 나는 것이에요."

- 알았다. 나는 잘 할 수 있다.

나비는 어리의 경고에 살짝 몸을 떨면서 테멜의 주인을 통제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사실 나비는 테멜의 주인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테멜이 자신에게 생기고 난 후에, 테멜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와 서서히 정신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비는 테멜을 어느 정도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테멜 안 에 있는 몬스터들은 나비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나마 테멜의 주인이라는 녀석은 나비와 정신이 연결되면서 조금씩 나비의 것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의지가 없는 테멜 코어와 나비의 정신이 연결이 되면서 주도권을 나비가 가져오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였다.

다만 테멜 코어 외에도 몬스터의 부족코어도 함께 있는 상태였기에 나비가 아직까지 테멜의 주인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비는 걱정이 많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몬스터들은 인류에 대해서는 엄청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테멜의 주인인 괴수가 몬스터로서의 흉폭성을 드러내서 세진이나 자넷을 공격하게 되면 그 때는 정말 어리가 자신을 죽일지도 몰랐다.

어떻게든 테멜의 주인을 완벽하게 손에 넣어야 할 필요가 생긴 나비였다. 목숨을 걸고. 세진과 자넷이 나비의 테멜 안에서 한걸음씩 꾸준하게 출구를 향해서 움직이고 있을 때.

어리는 세진과 연결된 정신을 통해서 세진과 자넷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나비는 최선을 다해서 테멜의 주인을 제압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그런 중에 드디어 세진이 마지막 관문에 도착을 했고, 세진과 자넷은 그 마지막 홀에서 괴수 등급의 테멜 코어를 만나서 겨우겨우 홀 밖으로 후퇴를 하게 되었다.

어리는 상황이 그렇게 되자, 나비를 죽이네 살리네 하며 구박을 했고, 나비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세진과 자넷이 먼저 겁을 먹고 자리를 피한 것일 뿐이라고 변명을 했다.

물론 테멜의 주인인 괴수가 세진과 자넷을 보고 포효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공격 행위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비는 그 정도로 테멜의 주인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어리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그래서 이쯤에서 어리는 세진과 좀 더 강하게 정신 연결을 해서, 나비와 테멜의 주인  사이의 관계를 알린 것이다.

물론 나비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있는 것이 어리고, 그 때문에 나비가 세진과 자넷에게 출구로 통하는 길을 열어 줄 거라고 설명했다.

나름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얻었으니 알아 달라는 어리의 어필이 들어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세진은 그 연락을 듣는 순간 테멜의 출구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자넷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만 믿어!'

라며 큰소리를 칠 수 있을 때에 남편은 없던 힘도 생기는 법이다.

"정말 괜찮을까?"

"어리가 그렇다고 했으니 그렇겠지. 그리고 정말 상황이 꼬이게 되면 어쩔 수 없지 뭐. 이대로 있어도 의체를 잃게 되는 건 확실하잖아. 그것도 굶어 죽어서 말이야."

"하긴 그렇긴 하다."

"그러니까 들어가서 한 번 부딪혀보고 안 되면 하나라도 출구로 나가야지. 둘 중에 한 명은 어떻게든 뒤로 빠져 나가서 출구를 통과하도록 노력을 해 보자고. 뭐 정말로 그 나비 녀석이 괴수를 조종해서 우릴 공격하지 못하게 하면 그게 최선이겠지만 말이야."

"그래. 세진 말대로 어리를 한 번 믿어 봐야지. 자, 그만 가자. 이러다가 정말 배가 고파서 쓰러지겠어."

세진은 자넷에게 어리가 정신 연결로 전한 내용을 알렸고, 자넷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인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괴수가 있는 홀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세진과 자넷은 테멜 코어이자 몬스터 부족 코어를 지닌 괴수 등급의 몬스터가 기다리는 홀로 나란히 들어섰다.

그런데 괴수는 무서인 기세를 뿜어 내면서도 세진과 자넷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역시 괴수. 엄청난 기운이야."

"그러게. 우린 상대로 안 되겠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가진 에너지의 양이 우리보단 월등하긴 하네."

"흐응, 그렇지?"

"자, 그럼 일단 지나가자."

"으응. 좀 떨리네. 저러고 있다가 갑자기 와락 달려드는 것은 아니겠지? 고양이는 좀 음흉한 면이 있어서 믿기 어려운데 말이야."

자넷이 슬금슬금 괴수를 향해 다가가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괴수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이 털을 바짝 세우고 이빨을 드러낸 상태였다.

"행동만 제약을 해 둔 상태라고 했다는데, 일단 자극하지 않도록 살살 자나가자."

세진이 자넷을 끌어서 등 뒤로 숨긴 다음에 괴수와 눈싸움을 하면서 홀의 벽면에 붙어서 살금살금 이동을 했다.

괴수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에테르도 최소한으로 끌어 올려서 괴수의 기세를 견디는 정도로만 사용하며 움직였다. 크르릉!

"읏, 짜식이 사납기는."

세진은 살짝 으르렁 거리는 괴수의 낮은 포효 소리에 바짝 긴장하며 괴수의 뒤쪽으로 보이는 테멜의 출구로 다가갔다.

이제 탈출이 눈앞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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