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28화 (228/298)

< -- 게이트 테멜을 확보하라 -- >

"어리를 들어오라고 할까?"

"응? 어떻게 그래도 되?"

"지금 우리도 의체를 사용하고 있잖아."

"그거야 헌터룸의 신호는 디퀴피드에 영향을 안 받으니... 아참, 여긴 어리 테멜 안이지? 어리 테멜 안에 나비의 테멜이 있는 거니까, 어쩌면 어리의 의체도 여기서 움직일 수 있겠네?"

"그래서 어리 녀석이 고민을 하고 있어. 들어올까 말까. 그러다가 그냥 나비를 지키고 있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네."

"그럼 그냥 둬. 우리끼리 하지 뭐."

"그래도 다행이야. 어리가 가까이 없는데도 의체와의 연결이 유지되는 것 말이야."

"그러게 그 생각을 못했었네. 언제나 어리와 함께 다니다 보니까 테멜 안쪽에서 어리가 없으면 의체를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고 있었어."

"다른 곳에선 상관이 없었지. 지구에선 헌터룸의 신호가 지구 전체에 퍼졌으니까."

"하지만 여기선 곤란하잖아. 앞으로 다른 테멜들을 공략할 때에도 언제나 어리와 함께 가거나 어리가 테멜 입구에 가까이 있어야 한다고. 클리스에선 신호가 넓게 퍼지지 못하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 디퀴피드는 지랄같긴 해. 뭐, 그건 그거고. 일단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야지? 괜히 이런 곳에서 의체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지."

"그래. 아자!"

세진은 자넷의 파이팅 소리를 들으며 홀 너머로 보이는 통로를 향해 걸었다.

그리고 홀을 벗어나 얼마 가지 않아서 드디어 나비 테멜의 몬스터를 만났다.

"음, 남색 등급인데?"

"제법이네?"

"그러게."

홀을 지난 후, 통로는 더욱 넓어지고 높아지더니 결국 폭이 십여 미터에 높이도 그 정도가 될 정도로 넓어졌다. 그런 통로가 끝도 없이 뻗어 있었고, 테멜을 이루는 벽에서 나오는 특유의 빛으로도 통로 끝까지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런 통로에서 나타난 몬스터는 남색 등급으로 보이는 절지 곤충 형태의 몬스터였다.

"머리와 가슴은 떼어내고 나머지만 남은 바퀴벌레 같은데?"

"마, 말하지 마. 상상 되서 토할 것 같아."

세진은 자넷의 표정을 보고 더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납작하게 생겼는데도 체고가 1미터는 넘을 것 같은 몬스터는 흑갈색의 색깔에서부터 바퀴벌레를 떠올리게 했다.

그런데 머리와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은.

"우엑!"

"뭐야? 왜 그래? 무슨 독이라도 있어?"

갑자기 세진이 구토를 하자 자넷이 깜짝 놀랐다.

"아니, 그냥 복숭아를 한 입 먹었는데 반만 남은 벌레가 그 안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나면서 저게 그 복숭아에서 남은 벌레... 우엑!"

"우욱! 우욱! 아니, 그런 생각을 왜 해? 그 전에 내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꼭 해야 했어?"

"우욱, 우욱. 그냥 물어 보니까 생각 나는 대로. 나도 지금 제 정신이 아니거든."

"엄청난 몬스터다. 겨우 생긴 꼴로 우릴 이렇게 몰아붙이다니 말이야. 어서 처리하고 지나가자. 응?"

"아, 알았어."

세진은 겨우 진정을 하고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서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몬스터는 멀뚱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 그랜드 마스터인 두 사람의 힘에 눌려서 꼼짝도 못하고 바닥에 붙어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올려졌던 것인지 그 몬스터의 등에는 세진과 자넷의 칼이 놓여 있고, 그 칼이 무겁게 몬스터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면 흉악한 몬스터가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을 까닭이 없었다.

투투툭, 투둑!

"아, 정말! 그냥 잘라서 죽이지, 꼭 터트려서 죽여야 해?"

"어떻게 죽여도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은 놈이야. 잘라 놨는데도 다리들이 살아서 바들바들 거리면."

퍽!

"그만 해! 재밌어? 응?"

자넷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세진이 일부러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연한 응징이 세진의 복부에 가해진 것이다.

"컥! 이, 이거 진심이 담긴 주먹질인데?"

"그만하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러게 왜 장난을 그렇게 치고 그래? 아, 저기 코어가 나왔네."

"가지고 가야 하냐?"

"그럼 버리고 가? 남색 등급 코언데?"

세진은 자넷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터덜터덜 걸어가서 죽은 몬스터의 체액이 버무려진 코어를 들어 올렸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체액까지 승화되어 사라지고 코어만 깨끗하게 남겠지만 일단 지금 상태론 굉장히 불쾌한 느낌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들어 올리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자넷의 화가 풀릴 것 같기 때문이 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자진납세인 거다.

세진과 자넷은 자신들의 예상을 넘어서는 나비의 테멜 규모에 지쳐갔다.

편한 마음으로 테멜로 뛰어 든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러다가 이거 의체를 버려야 하는 거 아냐?"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

"하지만 이러다간 몬스터에게 죽기 전에 굶어 죽게 될 것 같은데?"

"하긴 그게 문제긴 하지. 의체도 먹고 마셔야 하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비록 영구 회복 캡슐 덕분에 의체에 있는 에너지를 마지막까지 긁어 쓸 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몸을 유지할 에너지가 없어서 쓰러지고 말 거야. 에테르로 몸의 에너지를 대신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 쪼그마한 놈이 뭔 테멜은 이렇게 넓은 걸 가지고 있는지 몰라. 더구나 보라색 등 급 테멜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자넷은 나비의 테멜이 보라색 등급인 것도 그렇지만 그 안에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여러 마리 있다는 것에 더 놀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진과 자넷이 나비의 테멜 안에서 만난 몬스터의 종류는 자그마치 여섯 종류나 되고, 그 중에서 한 종류는 보라색 등급이었다.

그나마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를 만나고 약간의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은, 설마하니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가 여러 종류는 있지 않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즉, 테멜의 마지막 부분, 즉 출구가 있는 곳에 가까이 왔을 거라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테멜은 입구의 반대쪽에 출구가 있고, 출구 쪽에 더 많은 몬스터가 몰려 있다. 그리고 거기에 테멜의 코어와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있기 마련이다.

물론 이 나비의 테멜은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있고, 등급에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런 규칙을 살짝 다르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즉, 출구 쪽으로 갈수록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나오는 것으로 해야 말의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

"흥. 나가기만 해 봐, 이걸 그냥 가만히 두지 않겠어."

자넷이 주먹을 불끈 쥐고 바르르 떨었다.

벌써 엿새 정도를 테멜 안에서 헤매고 있으니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자, 또 가 보자."

세진이 조금 전에 쓰러뜨린 몬스터의 뒷처리를 모두 마치고 자넷에게 다가온다.

그런 세진의 등에는 커다란 보따리가 매어져 있다.

몬스터의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을 이용해서 만든 보자기다. 그 안에는 지금껏 잡은 몬스터에게서 얻은 몬스터 코어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냥 버리고 가고 싶지만 살림꾼 자넷이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우겨서 세진이 등에 지게 된 것이다. 그러느라 죽은 몬스터의 가죽까지 벗겼다.

원래 승화되어 사라지는 것이 몬스터지만 다른 에테르가 들어가서 간섭을 하게 되 면 승화가 느려지게 된다. 그래서 그런 성질을 이용해서 몬스터 사체를 일부 가공해서 사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세진처럼 가죽을 벗겨서 쓰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이용법이고, 그 기간이 오래 가기도 어렵다. 어느 순간 몬스터 가죽이 에테르로 변해서 사라질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무지막지한 에테르가 주입된 가죽이니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만은 했다.

"아, 저기 봐."

그런데 세진보다 몇 걸음 앞서가던 자넷이 뭔가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토했다.

"응? 저게 여기에 있어?"

세진도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비가 게이트 테멜을 짊어지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야? 나비 대단한 녀석이었네?"

자넷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세진도 꽤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꽤나 비밀이 많은 녀석이네."

"응, 그러게."

"하지만 저건 지금 우리가 쓸 수 없는 거야. 우리만 게이트를 넘어서 다른 행성으로 갈 수는 없어. 가려면 어리와 함께 모두 같이 가야 해. 이주민도 모두 복귀를 시켜야 하고."

"하긴 그것도 그렇지.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나비 녀석의 테멜 코어를 분리할 수가 없게 되는 거네?"

"그게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럼 우리 어떻게 해? 혹시 출구를 테멜 코어가 막고 있다거나 하면 말이야. 테멜 코어가 얌전히 박혀 있는 모양이 아니라 여기 보라색 등급 몬스터들의 부족 코어와 같은 거면 어쩌냐고."

"그게 문제긴 하네."

세진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보라색 부족 코어가 이 테멜의 코어와 같은 것이라면 정말 난감한 사태가 벌어진다.

"어떻게든 뚫고 출구로 나가야지 뭐. 싸워서 죽일 수도 없잖아. 아니면 어떻게든 싸워서 반쯤만 죽인 다음에 지나가던가."

"그래야겠지? 그런데 어리 없이 우리 둘이서 보라색 부족 코어를 지닌 테멜 코어 몬스터를 잡을 수 있을까?"

"괴수도 아닌데 뭐, 힘은 좀 들더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거야."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째 불안한 거 있지?"

"자넷도 그래? 나도 좀 그런데? 완전히 불안한 것은 아닌데 뭔가 꺼림칙한 그런 기분이야."

"응, 그렇지?"

세진과 자넷은 잠시 주저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은 그들이 향한 테멜의 끝에서 절망과 마주했다. 나비의 테멜 코어는 보라색 등급의 몬스터가 아니라 괴수급의 몬스터가 품고 있었고, 그 출구 역시 몬스터의 몸에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움직이는 괴수급 몬스터, 그것이 내 뿜는 어마어마한 생체 에테르는 출구를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에테르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출구는 간신히 흔적만 남기고 있고, 에테르가 잠잠해지지 않으면 절대로 통과할 조건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괴수를 잡아서 진정시키지 않으면 테멜을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만 괴수가 테멜의 마지막 홀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기에 세진과 자넷이 무사했던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의체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뭐가 저런 놈이 다 있어? 저걸 어떻게 해? 우리 둘이서?"

자넷이 진저리를 치며 화를 냈다.

"글쎄? 우리 둘이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방법이 없는데?"

"어리 들어오라고 하면 안 될까?"

"여기까지 오기 전에 우리가 굶어서 죽지 않을까?"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수련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정말로 의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 아이 참. 이걸 어째."

자넷이 속이 상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돌바닥 위에 주저앉았다.

세진도 역시 그 곁에 나란히 앉았다.

괴수급 테멜 코어를 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세진과 자넷이었다.

"미칠 노릇이네. 어쩌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그나저나 여기서 의체를 잃게 되면 새로 이 수준까지 올라 오는데 몇 년은 걸리겠지?"

"그렇겠지. 하아."

세진도 한숨만 쉬었다.

괜히 나비의 테멜로 들어왔다는 후회가 가득했다.

너무 성급하게 행동했다는 생각은 이미 먹을 것이 없었을 때부터 했던 거지만, 이렇게 괴수를 만나고 보니 눈앞에 깜깜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역시 죽으란 법은 없는 모양인지, 그런 세진에서 지금까지 조용하던 어리의 의지가 전해져 왔다.

- 세진님. 어리인 것이에요.

'그래 안다. 무슨 일이냐?'

- 어리는 세진님과 언니의 상황을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나비와 잘 이야기를 해 본 것이에요.

'나비하고? 그게 무슨 소리지?'

세진이 어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세진과 자넷이 나비의 테멜 안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동안 밖에 서 일어난 일들의 전모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어리와의 정신 연결이 이럴 때에는 무척 편리한 면이 있다.

"그것 참, 요지경이네."

"응? 무슨 소리야?"

대충 상황을 알게 된 세진이 혼잣말을 하는데 곁에 앉아 있던 자넷이 힘없이 물었다.

"아니야. 그리고 걱정하지마, 이 남편만 믿어. 음!"

세진은 그런 자넷의 어깨를 잡고 자신있는 목소로로 말했다.

"우린 나갈 수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