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이트 테멜을 확보하라 -- >
새로 들어온 식구 '나비'는 세진과 자넷 그리고 어리에게 무한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나비는 테멜을 지니고 있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런데 몬스터는 아니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몬스터 즉 에테르 기반 생명체는 그 자체가 에테르에서 나온 것들이라 죽게 되면 결국 승화가 되어서 에테르로 변한다. 물론 그 과정에 에테르를 끼워 넣어서 몬스터의 사체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몬스터가 에테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혹은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나비는 일반 생명체의 특징을 보였다. 탄소기반 생명체인 것이다.
그런 녀석이 몸에 테멜 입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실 테멜 자체가 녀석의 몸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테멜은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 있는 것이고, 그 입구가 나비의 몸에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비가 그 테멜을 제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비의 머리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고, 사고력이 한계가 있어서 테멜의 사용도 어리만큼 훌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비는 일반적인 고양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사용하는 테멜의 활용도 제법이었다.
"그나저나 이 녀석, 웃긴 녀석이네? 이것도 사내 녀석이라고 여자만 현혹시키는 능력이 있단 말이지?"
"아마도 그건 종족 특성일 거야. 에테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니까, 가늘인들이 염력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짝찟기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종족 특성이 아닐까 싶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히 내 마누라를 넘봐? 아주 죽을라고."
"호호홋. 나비한테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무슨!"
"그래도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서는 다시 덤비지 않는 것을 보면 영특하긴 한 것 같아."
"그래. 아주 음흉한 놈이지. 어떻게든 테멜 밖으로 빠져나가 보려고 아주 기를 쓰고 있어. 자넷은 모르겠지만 저 녀석 틈만 나면 순간이동을 하고 있어."
"어?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제자리 순간이동이라서 그래."
"제자리?"
"그러니까 저 놈이 테멜 밖으로 나가려고 테멜 입구를 어리의 테멜 밖으로 열려고 애를 쓰는 거지. 그렇게 입구를 열어서 순간이동을 하면 테멜 밖으로 나갈 수가 있으니까 말이야."
"그게 가능해?"
"그야 당연히 불가능하지. 어리도 테멜 게이트가 아니면 테멜에서 마음대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데 지가 무슨 수로. 저러다가 안 되면 또 다른 수작을 부리겠지."
"흐응, 그렇구나. 나도 그걸 모르고 있었으니 정말 음흉한 녀석이네?"
"저봐. 몸을 말고 누워서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저러면서도 시간만 되면 한 번씩 순간 이동을 하고 있는 거거든. 꼼짝도 않고 제자리 순간이동이라 표시가 안 나지만, 나나 어리는 테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확인이 가능하 거야. 그냥 알아차릴 수가 없는 거지. 나라고 해도 테멜 안이 아니고, 어리와 연결이 되어 있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야."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네. 흐응."
"쯧, 그래도 조심해. 순간 방심하면 또 홀라당 꾐에 넘어가서 나비를 안고 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어."
"그 이야긴 그만 해. 이젠 그런 일 없을 거야. 나도 정신 바짝 차릴 거니까."
자넷이 세진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를 지른다. 나비를 테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넷이 나비를 안고 테멜 밖으로 나가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자넷의 의지가 아니라 나비 녀석의 현혹에 홀딱 넘어가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리가 쉽게 나비를 테멜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고, 곧바로 나타난 세진이 자넷의 품에서 나비를 빼앗아서 정말 호되게 나비 녀석을 다루었다.
누가 봤으면 동물 학대라는 소리가 바로 나올 정도로 나비는 눈물이 쏙 빠졌다.
그래서 그나마 그 뒤로는 자넷을 현혹시켜서 탈출하려는 시도는 멈춘 상태였다.
"자, 밥이나 먹어라."
세진이 참치캔을 나비에게 던져준다.
뚜껑도 따지 않은 것이지만, 캔이 날아가는 순간, 자는 척 눈을 감고 있던 녀석이 날아오는 캔을 앞발로 부드럽게 받아서 내려놓고 발톱으로 뚜껑을 땄다.
처음에는 발톱으로 윗부분을 잘라서 내용물을 꺼내 먹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뚜껑을 메뉴얼대로 따는 나비다.
"저거 봐. 자는 척 하면서 우리 이야길 다 듣고 있는 거라니까? 아마 조금씩 우리 말을 배우고 있을 거야. 그래서 어리도 저 녀석에게 시간이 날 때마다 말을 가르치고 있어."
"흐응. 그렇구나. 그럼 우리 말, 말고 공용어를 써 보면 어떨까?"
"다 써 봤는데 아직 제대로 먹히는 언어가 없어. 어리가 시험해 봤어."
"그럼 역시 사람들하고 접촉이 없었던 녀석이었나?"
"뭐 그런 거 같아. 그런데 신기한 건, 저 녀석에 대해서 틸터에서도 모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 새로 나타난 녀석이란 거지. 심지어는 저렇게 생긴 동물도 이 클리르에는 없어."
"테멜을 몸이 지니고 있는 녀석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고? 그것도 이 행성에 없는 종류의 동물이? 그럼 저 녀석 테멜 게이트를 통해서 나온 거 아냐?"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클리르에 정말 저런 동물이 없었는지 확인을 하고 있는 중이야. 틸터, 빈엘르에게 부탁해서 알아 보라고 했으니까 연락이 오겠지. 뭐 대가로 감지기 몇 대 만들어 주면 되는 거고."
"신기한 놈이네."
자넷의 눈길이 캔 하나를 모두 먹어치구고 앞발을 핥고 있는 나비에게로 향한다.
나비는 그 눈길이 신경이 쓰이는지 고개를 팩 돌리고는 다시 몸을 말고 눈을 감아 버린다.
"너, 잘 들어. 지금 말이다. 내가 너를 기절을 시킬까 하는데 넌 불만이 많겠지?"
세진이 나비를 앞에 두고 말을 걸고 있었다.
곁에는 언제나처럼 자넷이 함께 하고 있었다.
냐오옹.
"시끄럽고. 내가 네 테멜 안으로 좀 들어가서 확인을 해 볼 생각이거든? 그런데 니가 깨어 있으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나하고 여기 자넷이 네 테멜 안으로 들어간 후에 어리가 널 기절시킬 거야. 그러니까 너무 반항하지 마라. 아무래도 네 테멜은 위험할 것 같아서 테멜 코어를 박살을 내야 할 것 같거든."
캬오오오옹! 캬오옹!
"훗, 그렇게 반항을 한다고 달라질 것 같으냐? 넌 우리에게 너무 적대적이야. 그러니까 위험 요소는 미리 제거를 해야 하는 거지. 일단 너의 테멜을 제거하면 아무래도 덜 위험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하려는 거야. 너도 알지? 우리가 널 많이 배려해 준 거라는 거 말이야. 사실 그냥 널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되는 거거든. 여기서 널 죽이면 얼마 후에 이곳에 테멜의 입구가 다시 나온단 말이야. 그러니 생각을 해 보면 그게 편한 일이지. 안 그러냐?"
세진이 눈을 갸름하게 뜨면서 나비를 쳐다본다.
나비는 꼿꼿하게 세웠던 털을 갈무리하면서 살짝 자세를 낮추고 있다.
"그러니까 이해를 해라. 널 죽이는 것 보다는 그냥 테멜을 정리하는 쪽이 좋겠단 거니까 말이다."
네옹 네에옹.
"서로 통하지도 않는 말이긴 하지만, 일단 상황을 설명했으니까 그렇게 알고, 이젠 반항하지 마라. 너도 알겠지만 어리 누나가 아주 무서운 사람이거든? 나를 위해서라 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지. 그런데 내가 테멜 안으로 들어간 후에 니가 딴 짓을 하게 되면 내가 위험할 수도 있지? 그래서 어리가 널 기절시킬 거야. 그런데 반항을 하고 그러면 그냥 넌 끝장이 나는 거지. 반항을 하는 건, 니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말이지."
"이젠 알아들었을 것이에요. 이 녀석 아주 똑똑한 것이에요. 말은 못 알아들어도 분위기 만큼은 정말 잘 파악하는 것이에요. 어쩌면 말은 몰라도 상대가 하는 이야기의 의미를 그냥 알아차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에요."
열 살 조금 넘을 것 같은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어리가 등 뒤에서 나비의 앞발을 들어 올려서 뒷발로 서게 하더니 좌우로 흔들면서 말한다.
그런데 나비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무척 강력하게 저항을 하더니 이제는 포기한 듯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다.
"그럼 들어가 볼까?"
"응, 세진."
세진이 먼저 나비의 몸에 있는 테멜의 입구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자넷이 그 뒤를 따른다.
냐오오옹!
"시끄러운 것이에요.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하는 것이에요. 하필이면 테멜의 입구를 그런 부끄러운 곳에 만들어 두다니 말이에요."
냐오오옹, 냐옹 냐옹.
"어쩔 수 없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런 걸로 순결을 잃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이에요."
니양, 니야옹. 니양.
"이제 기절을 할 때가 된 것이에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에요. 어리는 좋은 약을 준비해 둔 것이에요."
어리의 말과 함께 나비는 순식간에 축 늘어졌다.
"전에 지나온 행성에서 사용하는 사냥용 마취제인 것이에요. 아주 강력하지만 몸에 무리를 주지는 않는 것이에요. 푹 자면 되는 것이에요. 아참, 그리고 나는 고양이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에요. 내가 나비 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왜 세진님은 어리는 안 데리고 가신 건지. 어리도 테멜 안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는데. 나비의 테멜 안이라도 이 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흐음. 시험을 해 볼까?"
어리가 혼잣말을 하며 축 늘어져 있는 나비의 몸을 훑어본다. 그러다가 나비를 바로 눕히고 큰 대자로 만들어 놓는다.
나비의 부끄러운 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부끄러운 부분 바로 위쪽에 나비의 테멜 입구가 조용하게 회오리치고 있다. 크기가 워낙 작아서 배에 난 점으로 착각하기 딱 좋은 모습이다.
"어리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에요. 세진님이 나오실 때까지."
어리는 세진을 따라서 나비의 테멜 안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을 버렸다. 세진이 나비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리의 의체가 나비의 테멜 안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아까운 의체를 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이 몸이 무척 마음에 든 것이 에요."
결국 그렇게 어리가 세진이 나비의 테멜에서 나올 때를 기다리기로 결심을 했을 때, 세진과 자넷은 나비의 테멜에 들어와 있었다.
"이건 예상 밖인데?"
"그러게? 규모가 큰 테멜인 것 같아."
자넷도 의외라는 표정으로 앞쪽을 살피고 있었다.
테멜의 규모는 등급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어떤 곳은 몇 시간이면 모두 돌아볼 정도로 작고, 어떤 곳은 며칠 동안 탐색을 해야 할 정도로 크다.
대체로 파란색 등급 이상이면 하루 정도로는 절대로 다 둘러보지 못할 정도의 규모가 된다.
하지만 테멜들은 지구의 이면 공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지구의 이면 공간은 세상의 일부를 옮겨 놓은 듯이 땅과 하늘이 있지만, 테멜은 일종의 건물 안과 같은 형태다. 밖으로 나갈 길이 없는 건물의 내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하 건축물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그런 형태인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테멜은 일종의 던전으로 취급이 되기도 했다고 자넷이 말했었다. 쉽게 말하면 데블 플레인의 던전에 테멜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란 말이 옳다. 데블 플레인이 아닌 다른 행성에서도 고대 유적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고, 그것들도 던전이라 부르다 보니, 구별하게 위해서 테멜이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아무튼 테멜의 모양은 대체적으로 석조 건물의 내부들 닮았다.
그리고 보통, 테멜 입구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아무것도 없는 넓은 홀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일종의 준비 공간이다. 테멜을 공략하기 전에 이런 저런 준비를 하고 동료들과 진형을 짜기에 적합한 곳인 셈이다. 이런 공간은 제대로 된 테멜이라면 입구에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을 지나서 들어가게 되면 그 때부터 미로 형식의 통로가 이어지면서 몬스터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때, 나타나는 몬스터의 등급이 곧 테멜의 등급이 되는데 아주 간혹 여러 등급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테멜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테멜 안에 부족 코어를 지고 있는 몬스터가 여러 마리가 있는 경우다.
물론 그런 테멜은 엄청난 규모가 된다.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많을 정도로 테멜의 내부가 넓다는 뜻인 것이다.
어쨌건 세진과 자넷은 입구 홀의 규모만 보고도 나비의 테멜이 꽤나 규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홀이 넓고 높고 화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