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게이트 테멜을 확보하라 -- >
"미치겠네. 그러니까 가능성이 있는 테멜이 네 곳인데, 그 중에서 둘은 덱터들이 도시까지 건설을 해서 방어를 하고 있는 곳이고, 나머지 둘은 괴수의 영역에 있다?"
세진은 틸터에서 가지고 온 정보를 확인하고는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이봐요. 빈엘르, 이게 정말인가요? 이 넷 중에 데블 플레인으로 가는 게이트 테멜이 있는 것은 확실해요?"
자넷이 흥분을 다스리고 있는 세진을 대신해서 빈엘르에게 물었다.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마함브에서 말하기를 덱터가 오랜 세월 동안 신경을 쓰고 있는 테멜이 그 네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정확하게는 두 개의 에그로메를 건설한 것을 두고, 그곳이 정확하게 데블 플레인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테멜을 파괴하는 것이 더 쉽지 않나요? 쓸데없이 테멜을 유지하면서 지키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않는데요?"
"그건 또 아닙니다. 만약에 덱터에서 주기적으로 반드시 파괴하는 게이트 테멜이 있 었다면 우리 틸터에서는 그 테멜이 데블 플레인으로 통하는 테멜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틸터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그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겠지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지역 어디에선가 게이트 테멜이 다시 생겨나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확신을 주지 않기 위해서 덱터에서 데블 플레인으로 통하는 게이트 테멜을 유지해서 혼선을 준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직까지 저희 틸터에서 정확한 게이트 테멜의 특정하지 못하고 있는 거고 말입니다. 어쨌건 결과가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저들의 의도는 성공적입니다. 거기다가 도시까지 건설을 해 놓은 상태라서 우리가 의심을 한다고 해도 그곳을 수중에 넣는 것은 어렵습니다."
"좋아. 좋아. 그런데 괴수가 지키고 있다는 두 곳은 또 뭐지?"
세진이 물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미확인 게이트 테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에 두 번께서 파괴하신 그 테멜과 비슷합니다. 다만 두 분이 파괴하신 테멜은 내부에 몬스터들이 강력하고 수가 많아서 덱터에서도 그냥 두고 보는 식으로 관리를 했다면, 거기 프레도민 몬스터가 있는 곳은 어지간해선 접근하기 어렵고 또 테멜에 들어가도 테멜 입 구를 프레도민 몬스터가 파괴하면 다시 입구가 열릴 때까지 시간에 오래 걸려서 결국에는 들어갔던 이들도 살아 나오지 못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확인이 되지 않은 테멜이죠."
"프레도민 몬스터는 괴수를 말하는 건가?"
"아, 맞습니다. 괴수라고 부르죠. 프레도민은 이곳 클리르의 선주민들이 쓰는 말인데, 주로 그렇게 쓰다보니... 하하하."
빈엘르는 살짝 민망한 듯이 과장된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고, 세진이나 자넷은 모른 척 했다.
"결국 틸터에서 정말 의심하고 있는 곳은 덱터의 에그로메가 세워진 두 곳의 테멜이라는 건데, 그 테멜들에 대한 정보가 정말 없는 건가요?"
자넷이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이 빈엘르에게 물었다.
이미 덱터나 틸터가 서로 선주민들을 이용해서 속을 다 들여다볼 정도로 정보원들을 이중, 삼중으로 깔아 두고 있는 상황인데 몬스터들이 날뛰는 영역 안쪽에 건설한 두 개의 도시에 대해서, 그리고 그 도시 안에 있는 테멜에 대해서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곳의 에그로메에는 덱터에 정식으로 소속된 이들이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거기다가 그곳에 있는 테멜은 출입 자체가 완전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테멜에 대해선 그 출입 여부까지 디퀴피드를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 두 곳에 에그로메에 있는 테멜은 우리가 디퀴피드를 만든 이후로 한 번도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덱터에서는 그 게이트 테멜을 이용하지 않으면서 그저 도시를 세워서 지키고만 있다는 소리군. 그럼 정말 그곳에 데블 플레인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을 확률이 높군."
"맞습니다. 그렇다니까요."
빈엘르는 세진이 자신의 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으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렇지만 괴수들이 있다는 곳은 별 근거가 없는 것 같군."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으로 알려드리는 겁니다. 뭐 덱터의 그 두 도시에 비하면 그 가능성이란 것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긴 합니다만."
"알았어요. 일단 이 자료들을 자시 한 번 확인을 해 보죠."
자넷은 그렇게 빈엘르에게서 툴틱을 통해서 정보를 받았다.
"어리야, 어떻게 방법을 찾긴 했냐?"
"아직은 방법이 없어요. 최대한 제가 만들 수 있는 데까지 만든 다음에 마무리를 그 사람들에게 시킬 수밖에 방법이 없어요."
어리는 세진의 물음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웅얼거리듯 대답한다.
디퀴피드를 이용한 감지장치 겸 통신 장치의 생산이 여전히 어려운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에 틸터에서 억지로 기술자들을 데리고 와서 그들이 작업을 하는 것을 세밀하게 살피고, 그에 따라서 어리가 작업을 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가중 중요한 핵심 부품은 여전히 어리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완성이 되는 순간 어리의 에너지와 충돌해서 폭발을 일으키니 답답한 노릇인 것이다.
"그래도 새로 만들 수는 있으니까 다행이잖아. 어리가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만들어 놓으면 그 기술자들이 마무리를 하는 방법으로 이동식 감지장치를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그거 이젠 김혜인 박사 팀에서도 가능하다고 하던데?"
"그래?"
세진이 자넷의 말에 반색을 한다.
"그래. 사실 모든 것을 어리가 다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부품들을 만들어서 조립하는 형식이 되어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솔직히 어리가 테멜 사람들의 물건을 모두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야 그렇지. 어리가 모든 것을 해 주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게 되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기술은 전부 사라지게 될 거야. 그럴 수는 없지."
세진은 그런 이유로 테멜 안의 이주민들에 대해서만큼은 어리가 보급품을 만들 때에도 완제품을 보급하는 것은 지양하도록 하고 있었다.
기초적인 것들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이민자들이 알아서 해결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에 만드는 그것도 실제로 몇 가지 파트로 나누어 놓으면 되잖아. 뭐 그 에너지 발생 장치는 아예 나눌 수가 없어서 만들어 조립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는 해도, 미완성인 상태로 어느 정도까진 만들 수가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어리가 하고, 나머지는 사람들의 손에 맡기면 되는 거지."
"하긴, 그렇게라도 수량을 늘릴 수다 있다면 좋겠지."
"그런데 세진님."
어리가 세진을 불렀다.
"왜?"
"그거 있잖아요. 디퀴피드에 꼭 필요하다고 하는 그 재료요."
"그래. 꽤나 까다롭게 합성을 해야 한다고 했었지? 그게 왜?"
"그거 클리르 행성에서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던데요? 기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그건 오로지 덱터 쪽에서만 구할 수가 있대요. 그래서 그쪽에서 정보원을 통해서 밀반출하지 않으면 이동용 디퀴피드 이용장치도 만들 수가 없다고 하더라고 요."
"그래? 그럼 우리가 그걸 가지고 틸터와 거래를 할 수 있다는 말이네?"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틸터에서도 원활한 통신을 위해서라도 그것들을 많이 만들 수 있기를 바랄 테니까요."
"좋은 생각이네. 그럼 빈엘르를 통해서 협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세진, 우리가 그걸 내주고 얻을 것이 있긴 한가?"
자넷이 틸터에게 얻을 것이 뭐가 있냐는 표정으로 세진을 보았다.
"글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히잉, 그럼 소용 없는 거예요?"
오랜만에 좋은 의견을 낸 것 같은데 쓸모가 없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조금 살아나던 어리의 분위기가 다시 확 죽어 버렸다.
"아니지. 아니야. 굳이 틸터와 거래를 할 이유가 있나? 덱터와 거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세진은 다르게 생각했다.
"덱터와? 어떻게?"
자넷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틸터에게 넘기지 않는 걸로 협상을 할 수도 있지. 틸터에게 그것이 대량으로 공급되면 덱터로서도 곤란하지 않을까? 거기다가 어쩌면 덱터에서도 그건 구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그 쪽에서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것도 그렇겠네? 그럼?"
"그냥 미끼를 던져두고 기다려야지. 이번에는 우리가 나서서 거래를 하자고 매달리진 말자고."
세진이 지금까지 덱터와의 대화 창구를 만들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그렇게 말했고, 자넷도 그 생각에 동의했다.
"자, 그럼 이제 다른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어느 정도 결론이 지어지자 세진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무슨 이야기?"
"괴수들이 지키고 있다는 그 테멜들 말이야."
"뭐야? 거기에 관심이 있어?"
자넷이 놀라서 물었다.
"우리 전력이면 그 괴수들은 어떻게든 잡을 수 있지 않나?"
세진이 자넷을 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자넷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그건 어려워."
"어째서?"
"어리가 순간이동을 쓸 수 없고, 거기다가 녹두병사들 또한 우리 주변에서 떨어질 수가 없으니까 그렇지. 우리까지 함께 괴수와 맞붙어서 싸워야 한다는 건데, 그거 아주 위험한 일이야. 우리가 의체를 잃을 수가 있어."
자넷은 괴수 사냥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세진에게 강력하게 주장했다.'쫑'을 상대할 때처럼 세진과 자넷이 거리를 둔 상태로 녹두병사들을 앞세워서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잘 생각해 봐, 세진. 괴수는 그 길이만 수십 미터에 이르는 놈들이 많은데, 우리 녹두 병사들은 지름 60미터, 조금 여유를 두면 지름 40미터 정도 안에서만 움직여야 해. 그리고 언제나 세진, 아니 정확하게는 어리의 테멜 입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움직여야 하지. 그런 상태로 괴수를 공략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칫 세진이 급하게 움직이면 외곽에 있는 녹두병사들의 통제가 끊어질 수도 있어."
"그거야 어리가 나나 자넷과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될 문제잖아."
"그러니까 어리를 녹두병사들 틈에 끼워 넣은 상태로 괴수를 공격하게 하자는 거야? 우리는 뒤에서 빠져서 원거리 공격을 하고?"
"우리 디버프가 없으면 괴수 사냥이 어려우니까 어쩔 수가 없지."
"하지만 그러다가 어리의 테멜 입구가 파괴되면 어쩔 거야? 그렇게 되면 꺼내 놓았던 녹두병사 전부가 통제 불능이 되어 버려. 어리야, 그렇게 통제가 풀린 녹두병사를 다시 통제할 수 있니?"
"응, 그건 안 되던데? 일단 풀린 다음에는 테멜 안에 넣어서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해. 안 그러면 내 말은 안 들어. 그냥 일반 몬스터처럼 되어 버리는 거야. 언니."
어리가 자넷에게 대답을 했지만 세진도 이미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싸움 중에 어리의 테멜 입구가 파괴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문제였다.
"지금 어리 앵무의 몸 안에 있는 테멜 입구가 그렇게 쉽게 파괴될까?"
세진이 그 정도로 약하진 않을 거란 생각으로 되물었다.
"물론 쉽게는 아니지. 하지만 괴수를 상대하면서 어떤 돌발 변수가 생길지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당장 괴수 사냥은 불가능한 일이야."
"그런가?"
세진은 자넷의 단호한 말에 괴수 사냥에 대한 욕심을 억눌러야 했다.
"그래도 거긴 덱터아 틸터에서 어찌하지 못하는 테멜이라니까 한 번 확인을 해 보고 싶은데 말이지."
"위험해. 세진. 지금 당장은 무리야. 대신에 시간이 지나면 가능성은 있잖아. 그 때까지 좀 기다려."
자넷이 다시 한 번 세진을 말렸다.
"시간이라, 하긴 가능성이 보이긴 하지."
세진은 자넷의 말에 조급함을 털어버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 틈틈이 연구하며 수련하던 에헤로의 수련법 덕분에 어쩌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실마리를 잡은 상태였다. 자넷의 말도 바로 그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잘만하면 세진과 자넷 둘이서 괴수를 상대할 수 있는 길이 열릴지도 몰랐다.
그 때문에 요즈은 에헤로의 석판을 수련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세진과 자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