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22화 (222/298)

< -- 클리르 행성에서 발이 묶이다 -- >

"우리는 그 괴수가 난동을 부리지 않고 그저 G스페이스로 가서 자리를 잡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괴수의 수와 SG스페이스를 제외한 G스페이스의 수가 동일했기 때문에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괴수들이 지구 전체를 공격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상황을 보며 기다리다가 한 마리의 괴수라도 어떻게 막아 볼 것인가, 아니면 상황을 반전시킬 도박을 해 볼 것인가."

세진은 여기서 말을 끊고 사람들과 시선을 다시 한 번 맞췄다.

그들은 이어질 세진의 말을 기다리며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우리는 도박을 선택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시간을 멈추는 방법입니다. 아니 지구의 시간을 멈춰 둔 상태로 우리들의 실력을 키워서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 우리가 선택한 도박이었습니다."

"시간을 멈춘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그게 정말입니까?"

김혜인과 선도일이 깜짝 놀라서 세진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도박이라고 한 겁니다. 우리가 우연히 발견한 일종의 행성간 이동 게이트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연구하는 중에 반대쪽으로 가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고 오더라도 이쪽의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것은 아닌지 그런 때도 있고 아닌 때도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그 게이트를 넘어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힘을 길러서 지구로 돌아갔을 때, 지구의 시간이 멈춰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맞습니다. 김박사님."

"도박을 했다면 지금 우리는 그 게이트를 넘어온 상태군요? 그것도 10년 전에 말이죠."

"그것도 맞습니다."

"그럼 왜 진작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지요? 아니 이민자들 모두에게 이야기를 해 줬으면..."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괴수를 상대하는데 여러분의 힘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랜드 마스터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분과 이렇게 다시 만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하는 공간을 게이트로 함께 옮기기 위해서 적잖은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진은 적당히 거짓말을 버무려 넣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를 다시 부른 것은 무슨 이윱니까?"

떡배가 물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는 괴수를 상대할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 행성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괴수 사냥의 실마리를 찾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이동하던 중에 목적지로 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게이트를 점령하고 있는 세력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게이트 이용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행성에서 그들과 싸워야 하는데 겉으로 드러난 우리의 세력이 너무 약합니다. 그래서 의체 사용자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도시를 건설하고 그들을 압박할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의체로 했던 활동을 다른 장소에서 하게 된다는 말이군요? 사냥터가 바뀌 고 생활 터전이 바뀐다는 거지만 의체를 사용하는 것이니 별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요?"

김형일이 별 문제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른 사람들에겐 의체를 이용한 활동 방향이 바뀐 정도로 해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도시 건설을 유도할 생각입니다. 그들은 그곳 역시 이면 공간의 일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이후에 이 행성의 주민들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일단은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정도로 설명을 할 생각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앞으로 그들을 이끌어 줘야 할 필요가 있어서 이렇게 따로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대할 적이 몬스터가 아닌 인간, 아니 우주인이 되는 건가요?"

김혜인 박사가 물었다.

"그들도 인류입니다. 생긴 것이나 종족의 특징이 조금씩 달라서 개성적인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인류로 묶인 이들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그런 분류는 대부분의 행성인들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뭔가 굉장히 거창해진 것 같은데요? 우와, 이건 뭐 행성이 어쩌고 저쩌고, 우주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야기잖습니까. 무슨 SF영화에 들어온 기분인데요?"

김형일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SF에 들어온 건 지구에 몬스터가 나타날 때부터 그랬던 거지. 지금은 그 스케일이 더 커진 것 같지만."

떡배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우리가 의체 사용자들을 이끌고 도시를 건설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정진이가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을 했다는 듯이 세진과 자넷을 보며 물었다.

"압박입니다. 우리가 세력을 일으키고 그것이 저들 덱터, 아, 텍터가 적대 세력입니다. 아무튼 그 덱터에게 우리가 부담이 된다면 결국 우리에게 게이트 사용을 허락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덱터는 지금 틸터라고 하는 세력과 이 행성을 양분하고 있는데, 우리가 끼더들게 되면 덱터가 불리한 상황이 될 테니, 결국에는 우리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끝내 세진님의 기대대로 하지 않으면요?"

"싸워야겠지요. 우리는 지구로 돌아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냥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괴수를 제압할 방법을 찾아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가능성을 잡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덱터와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싸워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하는 말입니다."

김형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될 수 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하죠? 상대도 의체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요?"

김혜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이번에 도시 건설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할 겁니다. 의체 사용자들 이외의 사람들은 모두가 본체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도 본체로 테멜 안에서 일반인들과 어울리기도 하니까 그 정도는 이해를 하겠죠."

"하지만 의체 사용자들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은 의체를 잃는  한이 있어도 사람을 죽이는 선택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도일씨의 말이 맞아요.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긴 하겠지만 살인보다는 의체를 잃는 쪽을 택할 사람들이 더 많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선도일과 김혜인은 의체 사용자들이 살인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두 분은 어떻게 하자는 말입니까?"

세진이 물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를 이민자들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선택을 하게 해야 합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 적과 싸울 결심을 한 사람들만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선도일이 잘라 말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겁니까? 우리가 지금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와 있다는 사실을요?"

세진은 허락할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차피 이면 공간에서 다른 이면 공간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나 지구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동하는 것이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냥 쉽게 설명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면 공간 중에서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이면 공간이 있다고 말입니다. 게이트라고 따로 설명을 할 것도 없이,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다른 행성으로 통했다고 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구를 구할 단서를 찾았고, 그걸 얻기 위해서 그 행성의 세력과 싸워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세진은 선도일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뭘 그렇게 생각해? 어차피 사람들은 테멜 안에 있는 거야. 나가는 건 의체 밖에 없다고. 의체로 하는 싸움이야. 이민자들은 어차피 테멜의 사람들이야. 그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뭐가 문젠데? 세진이 죄를 지었어?"

자넷이 세진의 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에테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한 상태였다.

"그것도 그렇긴 하네. 일단 설명을 하고 지원자를 받자."

세진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을 털어 놓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려도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이미 다른 행성의 주민들이 들어와서 살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들도 지구의 이민자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미리미리 조금씩 상황을 알려서 충격을 완화할 필요도 있었다.

덱터와 틸터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연일 회의를 거듭했다.

얼마 전에 나타난 여행자가 틸터에그로메를 떠난 후에 어딘가 정착을 할 것이라 여겼는데 그곳이 의외로 테멜 영역에 바짝 뭍어 있는 분쟁지역이었다.

덱터나 틸터 어느 쪽도 그곳을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하기 어려웠고, 또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두 여행자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하루가 가기 전에 성벽이 생기고, 또 하루가 가기 전에 성벽 안에 건물들이 상겨났다. 그리고 그 건물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자그마치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프랜드에그로메라는 이름의 도시에 나타난 것이다.

덱터와 텔터에선 사람들이 테멜에 있다가 나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벽과 집을 짓는 모든 것들도 테멜 안에서 가지고 나와서 어떻게든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 이외에는 그들이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새로운 도시 하나가 애매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틸터의 입작에서는 세진과 자넷이 그들에게 적대적인 입장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다.

다만 덱터에서는 이미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었기에 전전긍긍하며 상황 변화를 지켜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프랜드에그로메에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테멜 안에서 생산하면 그만이었다.  테멜 안의 이민자들은 나름대로 견고한 사회 구조를 완성해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지만, 필요에 따라서 좀 더 생산을 늘리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더구나 어리가 있는 이상, 대부분의 물건들은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프랜드에그로메에서는 그렇게 생산된 물품들을 가까운 마을과 도시에 가져다 팔면서 이주민을 받아들인다는 광고를 어마어마하게 했다.

위치가 테멜 영역, 즉 고위 몬스터들의 출현이 빈번한 곳이어서 문제가 있지만,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니 솔깃한 것이다.

더구나 선주민들이 보기에 프랜드에그로메의 생활 수준은 무척 높아보였다.

살기가 좋다는 것은 어쨌거나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서 조금씩 프랜드에그로메를 방문하는 이들이 생겼다.

정착이 아니라 정찰이 목적이지만 프랜드에그로메의 사람들은 누가 되었건 도시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프랜드에그로메의 신상품들을 싼 가격에 판매했다.

비슷한 그릇이고 칼이고 창이고 또 옷감이며 가죽이라도 프랜드에그로메의 것이 훨씬 싸고 또 품질이 좋았다.

그러니 당연히 프랜드에그로메를 찾는 상인들이 줄을 이었고, 그 상인들과 함께 왔다가 슬쩍 정착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프랜드에그로메의 관리는 어리공방의 식구들이 맡았다.

김형일과 선도일, 전진이가 도시의 방어와 치안을 맡았고, 떡배와 김혜인 박사가 행정을 맡았다.

사람들을 정착시키고 그들을 지원하는 일에서부터 의체로 활동중인 소상인들에게 상품을 분배하고 판매를 조절하는 일들이 떡배와 김혜인 박사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세진과 자넷은 부지런히 프랜드에그로메 주변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정리했다.

어리의 감지 능력이 없다고 해도, 세진과 자넷의 능력만으로도 몇 km 이내의 몬스터는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도시 근처의 몬스터를 찾아서 정리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의체 사용자들 중에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위주로 정찰병을 선발해서 만일을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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