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17화 (217/298)

< -- 조난을 당하다 -- >

"자넷 저들이 적이라는 증거는 없어. 너무 자극하는 거 아냐?"

세진이 한국어로 물었다.

"아니야. 분위기가 좋지 않아. 딱 봐도 뭔가 캐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다가 뭔지 우리에게 적대적인 기색이야."

"뭐 그거야 좀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세진과 자넷은 빠르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듣고 있는 이들은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때문인지 얼굴 가득 불쾌감이 드러났다.

"너희가 게이트가 있는 테멜을 파괴했다. 그걸 부인하진 않겠지?"

"맞아요. 그렇게 되었어요."

"게이트 테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른단 말인가? 그 때문에 이제 그 행성으로 가는 길이 닫혔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그걸 우리 부부에게 책임지라고 하는 건 옳지 않죠. 이 행서에 깔려 있는 이 이상한 기운이 우리의 운신의 폭을 좁혔어요. 그게 아니었다면 우리가 테멜 안에서 부족 코어를 지닌 테멜 코어 몬스터와 마주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게 아니라도 테멜 게이트를 지나면서 스스로는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요?"

자넷은 게이트가 있는 테멜을 붕괴시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것에 반발했다.

"어쨌거나 너희는 우리가 관리하는 게이트 테멜을 파괴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대가? 그러니까 이곳에 있던 테멜이 당신들이 관리하던 것이란 말인가요?"

"그렇다."

"그렇다면 이상하군요. 어째서 관리하는 테멜 안에 그토록 많은 몬스터들이 있었던 거죠? 설마 게이트를 통과하는 여행자들을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함정을 판 것인가 요? 아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이금 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이 괴상한 기운, 이것은 여행자를 죽이기 위한 함정일 수도 있겠어요."

"무슨 헛소리냐? 너희가 느끼는 기운이란 것은 단지 이 행성에 나타나는 게이트 테멜을 감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함정 따위가 아니다."

"그게 무슨 이유였건 우리는 그 때문에 죽을 뻔 했어요. 그리고 그 때문에 테멜의 코어 몬스터와 싸워야 했고 말이죠.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건가요?"

"하지만 게이트를 감시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테멜을 파괴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또 다른 그랜드 마스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가 손짓을 하자 마스터 열 셋이 세진과 자넷을 포위했다.

"우리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 물어봐. 대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알아야 수긍을 하거나 말거 하지."

세진은 일단 싸우기 전에 저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우리가 테멜을 파괴한 것은 인정해요. 그래서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는 건가요?"

자넷이 세진의 말에 따라서 질문을 했다.

"일단 제압한 다음에 생각한다. 너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겠다. 하지만 아마도 너희에게 다른 기회는 없을 것이다. 연방으로 가는 길은 절대 열어줄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연방으로 가려는 것을 막겠다는 거군요? 목적이 그것이었나요?"

"목적 따위를 알 필요가 있나? 그만 떠들어라. 이쯤이면 마지막 가는 길에 유언은 충분히 들었다."

"그런!"

자넷은 막무가내로 공격을 시작하는 모습에 낭패스런 표정을 지었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지. 이건 뭐 오자마자 이런 웃긴 상황을! 어리야 녹두병사 열다섯만 꺼내서 저 마스터들 공격을 막아."

- 네. 세진님.

어리의 대답과 동시에 세진과 자넷 주변에는 열다섯 마리의 녹두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갑옷을 입고 칼과 창, 방패를 든 모습이지만 실제로 갑옷 안은 식물성 줄기로 채워져 있는 것이 녹두병사다. 상처를 입어도 금방 회복이 되고, 식물체이기 때문에 특별한 급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등급은 보라색 등급.

순식간에 열 마리의 보라색 등급 몬스터가 나타나서 세진과 자넷을 호위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뭐지?"

"어디서 나타난 거야?"

"테멜인가? 소형 테멜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 그 안에 있던 동료들인 모양이군."

"하지만 테멜은 감지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런 변화에 습격자들은 놀라서 허둥거렸다.

"싸우자면서 웬 헛소리?"

세진은 곧바로 허둥거리는 놈들에게 디버프를 실행했다.

"헛? 뭐야?"

"저것들이 쓰는 기술이야. 역시 같은 패거리였어."

"빌어먹을 것들 죽여!"

녹두병사의 등장에 당황하고, 거기에 세진의 디버프까지 당하자 신중함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마스터 등급이 앞서서 무기를 들고 달려들고, 그 뒤에서 그랜드 마스터의 검이 날아들었다.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검을 움직여 공격을 할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쪽으론 세진과 자넷이 한 수 위였다.

원래부터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서 무기를 의지로 다루는 것이 가능한 두 사람인데 거기에 가늘인들의 파르티크가 들어간 무기는 같은 위력의 공격을 하더라도 원거리 공격에서 지게 되는 부담을 절반 이상은 떨어뜨려 준다.

차자장! 카가가각! 카강!

허공에서 그랜드 마스터 넷의 무기가 이리저리 얽혔다.

무기에 두른 검강이 부딪히며 듣기 거북한 굉음을 만들어 냈다. 머리 위에서 무기들이 춤을 추며 접전을 벌이는 동안에 아래에서 벌어지는 녹두병사들과 마스터들의 싸움은 방어 일변도인 녹두병사들의 태도 때문에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어리가 부리는 녹두병사들은 주변 30미터 밖으로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이상 떨어지면 어리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녹두병사가 폭주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주인 없는 보라색 등급 몬스터가 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움직임을 멈출 가능성도 있지만 어떻게 되었건 어리는 녹두병사가 30미터 밖으로 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금하고 있었다.

사살 그런 상황에서 마스터들과 싸우고 있지만 마스터 정도가 녹두병사의 상대가 되긴 어려웠다. 균형은 아직 살인 명령을 받지 않은 어리의 관용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읻.

마스터라면 파란색이나 남색 등급의 몬스터를 겨우 상대할 정도다. 그것도 파티를 꾸려서 사냥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15:13으로 숫자도 적으니 상대가 안 된다.

"사정 보지 말고 그냥 죽여!"

그런 꼴을 보고 있던 세진의 입에서 살인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신속하게 드러났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던 이들이다. 보라색 등급과 마스터의 싸움에서 요행을 바라긴 어렵다. 녹두병사들이 죽이기로 결정한 순간 마스터들의 운명은 결정이 된 것이다.

"크아악!"

"컥!"

"제, 젠장!"

털썩, 털썩, 우당탕!

삽시간에 다섯의 마스터가 죽어 넘어졌고, 위기감을 느낀 다른 마스터들이 훌쩍 뒤로 물러나면서 마스터들과 녹두병사들의 싸움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뒤로 빠지는 마스터를 녹두병사들이 굳이 쫓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두 그랜드 마스터와 세진과 자넷의 싸움은 여전했다.

네 사람의 무기들이 어지럽게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충격파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쪽도 이미 상황은 세진과 자넷이 주도하고 있었다.

단지, 무기를 겨루는 것이라면 그나마 조금 더 버틸 수 있었겠지만 시작부터 디버프에 당한 상태다. 그랜드 마스터의 극에 이르러 있는 세진과 자넷에 비해서 실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두 사람인데 디버프까지 걸렸으니 시작부터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 름이 없었다.

상황이 어렵게 되자 두 그랜드 마스터는 도주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같은 실력자 앞에서 도주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막아! 막으란 말이야. 지금 뭣들 하나?"

그나마 원거리 공격이라서 어찌 어찌 버티고 있지만 금방 한계가 올 것을 알고 있는 그랜드 마스터는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어떻게든 틈을 봐서 몸을 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진은 그런 기색을 이미 파악했다. 디버프 기반 에테르를 상대의 체내에 투입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상대의 움직임도 읽을 수 있다. 세진은 그것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싸울 의사가 없어지고 조금씩 힘을 모으면서 틈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틈이 공격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망을 가려는 틈이란 것도 어느 정도 짐작했다.

"어리야, 녹두병사들 잘 따라 오라고 해. 한꺼번에 덮쳐서 정리를 하자. 포로를 잡을  수 있으면 몇 명 정도 잡아 두고."

- 네. 세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 곁에서 30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을 거예요. 세진님이 빠르게 움직이셔도 괜찮아요.

전투 중에는 세진과 어리의 정신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러니 세진의 생각이 곧 어리의 생각이 되고, 그 생각에 따라서 녹두병사들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세진과 어리 사이의 대화는 거의 필요가 없는 것인데, 굳이 말을 하는 것은 곁에 있는 자넷에게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자넷! 가자."

"응!"

세진이 먼저 앞서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자넷이 곁을 따르고 녹두병사들이 세진과 자넷을 호위한 상태로 뭉쳐서 전진했다.

"이런, 막아! 크윽!"

갑작스런 돌진에 올라서 소리를 지르던 그랜드 마스터의 허리에 길게 상처가 생겼다.

세진의 도가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세진은 원거리용으로 사용할 무기를 창이 아닌 도로 선택했다. 물론 근접전에서 쓸 무기로는 여전히 언월도를 닮은 창을 든다.

두 명의 그랜드 마스터는 이제 세진과 자넷의 원거리 공격을 손에 든 검으로 직접 막아 낼 정도로 몰린 상황이었다.

한 순간의 방심이 상처가 되고, 또 죽음이 될 수 있는데, 부하들을 독려하느라 신경을 쓰다가 당한 것이다.

"이건 도대체 말이 안 되잖아. 겨우 둘 뿐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 둘만 해도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자야. 거기다가 저 갑옷을 입은 것들도 뭔가 이상해!"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거 아냐?"

"개소리! 차앗!"

두 그랜드 마스터는 상황이 계속해서 뒤로 밀려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어떻게든 도망을 가야 했다. 게이트 테멜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확인을 하기 위해서 온 길이었다.

그것도 평소 친분이 있는 그랜드 마스터 둘이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에 부하들을 끌고 나왔다. 보통 그랜드 마스터 한 명 정도가 인솔을 하면 그것으로도 과하다는 소리를 할 테지만 이번에 일이 생긴 곳은 자신들의 영역 안에 있지만 워낙 몬스터들이 강력해서 방치하다시피 한 테멜이었다. 그런 곳이니 그랜드 마스터 둘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연방으로 간다는 소리를 대놓고 하는 연놈을 만났다. 당연히 적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잡아서 정보를 얻거나 혹은 죽여야 했다.

살려두면 적들 편에 설 것이 분명하니 다른 선택 따위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하들과 자신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선택이 될 줄은 몰랐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요! 그럼 살 길이 있을 거예요."

자넷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공격을 멈추지는 않는다. 틈을 주지 않고 항복을 강요하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항복을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좋았다.

여기저기서 마스터들이 무기를 버리고 엎드렸다. 그나마 몇 남은 마스터들의 저항이 없어지자 녹두병사들이 두 그랜드 마스터를 포위했다.

"하, 항복!"

"항복하겠다."

몸 안에서 이질적인 에테르가 더욱 강력해진 것을 느낀 그랜드 마스터들은 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다.

세진과 자넷의 무기가 그런 그랜드 마스터의 목 앞에서 멈췄다.

그런데 막상 마스터들과 그랜드 마스터를 잡아 놓고 보니 금제를 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어쩔 수 없이 과거 세진이 의체 상태로 당했던 '못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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