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9화 (209/298)

< -- 또 다른 떠돌이 -- >

자넷과 마을 대표의 대화는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내용은 단순했다. 어디에서 왔느냐? 그것은 어떤 행성에서 왔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어떤 테멜 게이트를 이용해서 왔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것을 이해하고 대답하기 위해서 꽤나 많은 대화를 해야 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에 자넷은 자신의 행성 이름을 댔고, 마을 대표는 그 행성이 자신들의 행성에서 어디를 나타내는 것인지 이해하려 들었으니 당연히 출발부터 어긋난 시도였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화를 거듭하면서 세진과 자넷은 큰 수확을 얻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화를 하는 중에 마을 대표가 말하는 여행자, 혹은 떠돌이라고 하는 것이 테멜 게이트를 이용해서 행성 사이를 오고가는 이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특이하게 이 행성에는 테멜 게이트의 수가 많은 편이고, 그래서 이 행성으로 오는 테멜 게이트 이용자가 많다고 했다.

물론 그 많다는 개념이 몇 년에 한 번이라는 함정이 있는 말이었지만, 어쨌거나 이 가늘인 행성에서는 테멜 게이트의 존재를 알고 또 게이트를 이용한 떠돌이의 존재도 알았다.

더구나 가늘인들 중에서도 게이트를 이용해서 다른 행성을 오고가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이를테면 이곳 가늘인 행성은 자그마치 행성간 교역이 가능한 곳이란 소리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가늘인 중에서도 큰 마을의 지배자들뿐이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세진과 자넷에겐 좋은 정보인 셈이었다.

한동안 마을 입구에 서서 대화를 한 후에 마을 대표는 세진과 자넷에게 마을 중앙에 있는 건물에서 방 하나를 내줬다.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가 가고 싶을 때에 가도 된다며 마을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면서 한 배려였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세진과 자넷은 가늘인의 말을 배우는데 시간을 보냈다.

물론 말을 배운 것은 두 사람이 아니라 둘이 가지고 있는 툴틱이었다.

기본적으로 툴틱은 언어 학습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과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대화를 하다보면 그들의 말을 조금씩 통역을 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어느 정도 언어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 되고, 그 뒤로는 훨씬 빠르게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다.

물론 툴틱이 언어를 익히면 그것은 곧바로 툴틱 소유자가 가장 잘 하는 언어로 변화되어서 소유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툴틱 간의 소통에서는 소유자의 말을 우주연반 언어로 바꿔서 상대 툴틱에 전달하고, 상대 툴틱에서 연방 언어로 바뀐 것을 받아서 실시간으로 소유자의 뇌에 번역해서 전달하는 형식을 취한다.

아무튼 가늘인이라는 새로운 행성인의 말도 그리 오래지 않아서 현지인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실력있는 전사들은 무기를 열 개까지 사용하고, 그 무기들이 모두 빛이 난다는 거지?"

"빛나는 검. 그걸 만들면 전사가 된다. 그리고 전사의 실력이 늘어나면 사용하는 무기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그 빛나는 검이란 것이 이런 거야?"

세진이 가늘인 자치단원과 성벽 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보 수집을 하는 중이다.

"맞다. 그거다.

세진이 보여준 검기를 보고 빛나는 검이라 한다.

세진은 이로서 이들이 전사라고 하는 이들이 익스퍼트의 실력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만약 싸움을 한다면 이들 가늘인들이 훨씬 유리할 거란 사실도 짐작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무기를 셋 이상 다룬다. 그리고 능숙해지면 열 개의 무기를 한꺼번에 다룰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의 무기는 허공을 날아와서 공격을 한다. 물론 그래봐야 20미터 이상은 원거리 공격은 못하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그 영역 안에서는 마음대로 다수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잠깐 살펴본 세진의 판단으로는 동급 익스퍼트 셋은 있어야 가늘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가늘이들은 원거리 무기가 발달하지 않았다.

특이하게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인 무기로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묘한 고집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활이나 석궁 같은 무기가 없고, 돌팔매 같은 것은 쓰지 않는다 했다. 의지가 닿지 않는 무기는 무기라 아니라는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가늘인들도 무기가 아닌 다른 방법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은 인정했다.

마법이나 정신 능력을 이용한 에테르 공격 같은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것들 자체가 의지를 이용해서 만들어 낸 산물이고, 그것을 날리는 것 역시도 의지이므로 마땅히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몬스터 사냥은 언제 나가나?"

"틈만 나면. 자주 나간다. 몬스터를 잡아서 가죽과 뼈와 뿔과 이빨과 털을 얻는다. 그리고 힘돌을 얻는다."

세진도 이젠 힘돌이 코어란 사실을 안다. 힘을 간직하고 있는 돌이라는 뜻이다. 고유명사는 아무래도 해석에서 오류가 간혹 생긴다.

그래도 점차 힘돌을 코어로 해석하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툴틱이다. 학습 프로그램이 해석에서 최적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가늘인들도 몬스터의 사체나 코어를 정화해서 원래의 기운으로 돌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능력 역시 어리가 카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어리는 기억만 하고 쓰레기 취급을 했다. 왜냐하면 그 에테르 정화는 프락칸의 것보다 배우가 어렵고 또 효과도 좋지 않았다.

다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가늘인들의 장점이었다.

효과도 좋지 않은 정화를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사냥이 끝나고 필요한 것을 잘라 낸  몬스터 사체를 가늘인들이 모여서 정화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힘돌, 즉 코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수거해서 마을로 가지고 오고, 집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그 코어를 손에 들고 조금씩 정화를 한다.

그래서 이들은 무기를 들고 다니지 않는 빈손에 에테르 코어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고, 코어를 담을 주머니를 하나씩은 몸에 달고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거기에 들어 있는 코어를 정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가늘인들의 생활이었다.

"언제 시작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은 알았다. 세상에 가득 퍼진 에테르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는 물론이고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죽게 될 거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들은 태어나서 처음 힘돌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힘돌의 힘을 걸러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이다."

자치대 소속의 가늘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 손을 힘돌 주머니에 넣고 조금씩 코어를 정화하고 있었다.

느리지만 꾸준히.  세진이 보기에 가늘인들은 그렇게 그들의 행성을 지켜오고 있었다.

"이거 정말 어렵네."

세진이 투덜거리면서 가늘인의 무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가늘인은 무기를 손에 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염력을 타고 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늘인들은 특별한 금속에 대한 염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들에는 그 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파르티크라고 부르는 그 특이 금속은 가늘인들의 모든 도구에 사용되는 귀한 금속이었다. 파르티크를 포함하고 있는 물건들은 가늘인들의 염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당연히 금속의 함유량이 높으면 움직이기가 더 쉽다. 결국 무기같은 경우가 가장 특이 금속 파르티크의 함유량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특이 금속이 포함된 무기들의 강도가 높아지고, 내구성이 좋아지며,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세진은 이참에 가늘인들의 무기술을 익히길 원했다. 그들이 열 개의 무기를 한꺼번에 다루고 또 그 열 개의 무기에 모두 검기를 유지할 수 있다면, 세진의 경우처럼 강기를 사용하면서 무기들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세진도 물론 그랜드 마스터의 능력을 전부 개방하면 무기를 허공을 사이에 두고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면 엄청난 에테르 소모가 있다.

그런데 가늘인들은 그것을 에테르 소모 없이 해 낸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이 능력과 특이 금속이 합쳐진 결과다.

세진은 자신이 그것을 익히게 되면 마스터 등급의 힘만으로도 지금 그랜드 마스터로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공격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확실히 에테르 낭비를 줄이면서 공격 시간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니 꼭 배우고 싶은 것이다.

"아직도 그래?"

자넷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러는 자넷은?"

"나도 그렇지 뭐. 이제 겨우 둥둥 떠다니는 정도야."

"그거 참."

세진은 머리를 북북 긁었다.

어떻게든 가늘인들의 염력 사용법을 익히긴 했다. 실제로 염력도 어느 정도 사용이 가능한 세진이지만 가늘인 특유의 염력은 특별한 금속하고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어서 쉽게 정복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국은 세진은 물론이고 자넷도 해 냈다.

"그런데 무기도 이곳에서 나는 것을 써야 한다면 제약이 너무 크지 않아?"

자넷이 뭔가 불만이 있다는 듯이 투덜거린다.

"어리가 못 만든다고 그래? 만들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좋은 무기도 실력 아니겠어?"

세진이 물었다.

"쳇,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금 가지고 노는 그 검에도 가늘인의 특이 금속은 거의 들어 있지 않잖아. 나 떼어 놓고 혼자서 성장하려는 거야?"

"하하, 때로는 내 것이 아닌 무기를 써야 할 때도 있고, 주변에 널린 아무거나 무기로 삼아야 할 때도 있고 그러니까."

세진이 자넷의 말에 뒷머리를 긁었다.

이왕 시작하는 거, 어떤 무기로든 가늘인처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조금 무리를 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자넷도 말을 저렇게 해도 세진과 비슷한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을 세진도 알고 있었다.

"음, 이젠 다른 마을로 가야 하지 않을까? 어리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녀석 이젠 제법 에테르를 모으지 않았나?"

세진이 화제를 돌렸다.

세진과 자넷은 처음 발견한 가늘인의 마을에서 벌써 40일이 넘도록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마을은 이 가늘인 행성의 수 많은 마을들 중에 하나일 뿐이고, 마을의 크기도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왕이면 좀 더 큰 곳으로 가서 혹시 있을지 모를 떠돌이를 마나 볼 생각을 하고 있는 세진과 자넷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세진인 것이다.

"하긴, 그래도 되겠지? 어리 고것이 한 번 쉬더니 게을러져서 늘어지는 모양인데 이젠 억지로라도 끌고 나와야 할 것 같긴 해."

자센도 세진의 생각과 같은 모양이었다. 에테르 소비가 극심했던 괴수 사냥 이후로 에테르를 흡수하는데 전력하고 있던 어리는 이제 어느 정도 에테르를 저장했다.

물론 아직도 녹두병사들 300 개체 이상을 만들어 낼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회복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어리의 순간이동을 이용해서 가늘인 행성을 살펴보는 것도 충분할 것이다.

"너무해요. 세진님!"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어리는 하는 일이 무징무징하다고요. 그리고 이제 겨우 에테르가 조금 차는가 싶었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에테르 코어를 잔뜩 준다고 하잖아."

"그 에테르 코어 얻으려면 어리가 또 일을 잔뜩 해야 하는 거잖아요."

"어렵지도 않고 힘도 별로 안 드는 일이잖아. 물질 합성은 어리 네 전공이고. 그거 한 번 해 주면 네 앞으로 에테르 코어가 잔뜩 쌓일 텐데?"

"그런데 정말 무기를 만들어 주면 가늘인들이 코어, 그러니까 힘돌을 준데요?"

"들어보니까 큰 도시에선 간혹 떠돌이들과 그걸로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 이곳 가늘인 행성에서는 힘돌, 그러니까 코어가 별다른 소용이 없는 물건이지만 떠돌이라고 부르는 이들 중에서 코어를 가치있게 쓸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거지. 그런 그들도 이곳 가늘인들의 꼭 필요로 하는 무기나 가늘인 특수 금속은 거래 목록으로 쓰지 못했다고 하니, 어리 니가 그게 포함된 무기하고, 금속괴를 만들어 주면, 어리 네 앞으로 코어가 니 말대로 무징무징 쌓일 거다."

"에헤헤, 정말 그런 거죠? 네?"

"그럼 물론이지."

"알았어요. 어리는 열심히 가늘인들이 쓸 무기하고 특수금속 괴를 만들 것이에요. 읏샤. 읏샤."

세진은 신이 난 어리를 보며 일이 정말 계획대로 되어야 할 거란 걱정을 살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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