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4화 (204/298)

< -- 데블 플레인 행성 떠돌이가 되다 -- >

"게이트를 열기 위해선 코어를 사용해야해. 그것도 등급이 높은 코어가 필요해."

세진은 자넷의 말에 따라서 보라색 등급의 코어를 들고 테멜 게이트가 있는 통로 앞에 섰다.

"이제부턴 세진이 알아서 해야 해. 알지?"

세진은 자넷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세진이 통로에 흐르는 에테르의 흐름을 감지하고 그 핵심을 찾아서 코어를 올려 놓는 것이다.

코어를 넣는 장소 따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코어는 게이트 사용자가 직접 정확한 위치에 넣어야만 게이트가 열린다.

세진은 눈을 감고 에테르에 대한 감각을 극대화시켰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완성한 세진이고, 다른 그랜드 마스터에 비할 바 없이 훌륭한 오러 로드를 익히고 있는 세진이다.

때문에 느끼고자 하는 순간 통로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에테르의 흐름을 단번에 포착해 낼 수 있었다.

'멋지군.'

세진은 그 에테르의 흐름이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마치 마법진을 만드는 것과 같이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진의 감각은 그 에테르들이 어디에서 연유했으며 또 어떻게 통로에서 형태를 이루고 있는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크윽!"

하지만 세진은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세진, 왜 그래?"

감자기 신음을 흘리는 세진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는지 자넷이 세진을 불렀다.

- 그냥 둬요. 언니. 지금 세진님은 통로를 파악하게 계세요. 저도 잠시 세진님과 동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세진님의 정신적인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요.

"그, 그래. 그럼 어서 시작해. 엄호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넷은 어리의 말에서 세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짐작했다.

세진이 게이트 통로의 모든 것을 밝혀낸다면 어리는 그것을 테멜 안에서 만들어 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럼 어쩌면 연방과 연합에서 관리하고 있는 게이트를 어리가 만들어 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자넷은 입술이 마르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세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미 이 던전 안에는 어리가 깔아놓은 녹두병사들로 가득하다. 사실상 호위 같은 일은 필요가 없으니 마음 편히 세진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세진은 방대한 게이트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에 심한 부담감을 느꼈다. 그것은 세진의 정신 영역이 넓어졌음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량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진에겐 더없이 든든한 도우미가 있었다.

- 세진님 힘내세요. 어리가 왔어요.

어리가 세진의 정신과 동조를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게이트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어마어마해요. 이건 테멜 전체가 게이트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거기다가 이 게이트를 움직이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여기서 우리가 넣는 코어만이 아니에요. 이 테멜의 코어와 반대쪽에 있는 테멜의 코어에서도 필요한 에너지를 더해주는 방식이네요. 멋져요.

어리는 하나하나 밝혀지는 테멜 게이트의 모습에 환호성을 올렸다.

'기억 할 수 있지?'

-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는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하지만...

'괜찮아. 연구하다보면 되겠지. 지금은 이걸 이대로 모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해.'

- 문제 없는 것이에요. 어리는 지금이라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에요. 필요 없는 부분은 생략하고 게이트에 필요한 부분만 만들 수도 있고, 축소해서 작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에요.

'그래. 일단 확실하게 기억을 해 두자.'

세진과 어리는 조금이라도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서 결국 자신들이 들어온 테멜의 게이트를 완벽하게 훔치는데 성공했다.

"어때?"

자넷이 눈을 뜨는 세진에게 물었다.

"여기와 꼭 같은 것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새로 만든 것이 반대쪽에 있는 게이트와 연결이 될지는 모르겠네. 여기 이미 게이트가 있으니까 말이야."

"뭐 그건 나중에 실험을 해 보면 되는 거고. 그럼 어서 게이트를 열어 봐. 할 수 있는  거지?"

세진은 자넷의 물음에 활짝 웃어 주고는 코어를 게이트 통로의 입구 허공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약간의 에테르를 뿜어 내자, 곧바로 코어가 움찔 움직이더니 세진의 손을 떠나서 허공에 둥둥 떴다.

"자, 됐다."

그와 동시에 세진이 만족스런 음성으로 이야길 했고, 통로 안쪽에 휘몰아치는 에테르의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와, 저건 테멜 입구랑 비슷한데?"

"맞아. 거의 같은 모양이네. 일단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먼저..."

"말도 안 되는 소리!"

- 맞아요. 세진님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잘못되면 어떻게 해요?

"그래. 너 없이 우리 둘만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

- 그럼요. 절대 안 되요.

세진이 혼자서 들어갔다 오겠다는 소리에 자넷과 어리의 반대가 극심했다.

"이건 그냥 의체일 뿐이야. 본체가 아니지. 그러니까 문제 없어."

세진은 그렇게 둘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그 말이 또 다른 문제점을 상기시켰다.

"아, 큰일이다."

자넷이 그것을 깨달았다.

"응? 또 뭐가? 나 큰일 났다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려."

세진의 표정이 굳었다.

"의체잖아. 우리 의체는 어리와 멀리 떨어지면 사용을 하지 못하지? 그런데 게이트 를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그 말에 세진은 표정이 아니라 몸까지 굳어 버렸다.

게이트를 넘어간 의체가 제대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정신체를 담은 의체가 일순간 먼 곳으로 사라져서 정신을 회수하지 못하면 본체에 타격이 있나?"

세진이 물었다.

"그건 아니야. 정신을 옮겼다고 해도 완전히 그렇게 한 것은 아니야. 근본, 근원이 되는 것은 본체에만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의체가 죽어도 본체가 멀쩡한 거잖아. 안 그랬으면 의체로 유희를 즐기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못 했을 걸?"

"그럼 게이트 넘어가서 의체와 연결이 끊어지게 되면?"

"그야 뭐 정신을 잃었다가 본체에서 깨어나는 거지."

"어리야. 새로운 의체를 하나 준비해라."

"그걸로 게이트 넘어 보게?"

자넷이 세진의 의도를 짐작했다.

"그래야지. 그러면서 게이트 안쪽이 어떤지도 확인을 하고. 난 게이트를 지나면서 혹시라도 어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야."

- 어리는 걱정 없는 것이에요. 테멜의 출입구만 닫아버리면 어리는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안전한 것이에요.

"어리 너, 본체가 목걸이란 사실은 잊은 거냐? 그 목걸이에 문제라도 생기면?"

세진은 어리의 본체가 걱정이 되었다. 테멜이 들어 있는 본체는 원래 목걸이였다. 지금도 그 목걸이는 어리 앵무의 몸 안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 게이트를 지나는데 사물이 훼손될 거라고는 생각이 안 되는데요. 그리고 어리의 본체인 목걸이는 이미 몇 번이나 보완을 해 둔 것이에요. 어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재료들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긴, 제 몸은 확실하게 챙기는 녀석이니 할 수 있는 최대한 했겠지. 어쨌거나 기본 의체로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겠어."

세진은 그렇게 고집을 부렸고, 결국 기본 의체로 게이트를 넘어 들어갔다.

그 결과는 당연하다는 듯이 의체의 상실로 이어졌다.

"뭐가 이래? 저 안쪽 어느 정도까지는 여전히 이쪽 라훌 행성의 영역이야. 그러다가 일정 부분을 넘어가면 다른 행성의 영역이 되는 그런 방법인 것 같아. 다만 일반인들은 못 지나가겠어. 에테르의 압력이 굉장해. 적어도 마스터는 되어야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마스터 중급 이상의 보호를 받아야 될 거고."

"에테르 압력 때문에 의체가 죽은 거야?"

자넷이 물었다.

"기본이라도 내구성을 높인 몸이었어. 게이트 너머로 건너가면서 연결이 끊어진 거야."

"그럼 우리가 가는 데는 문제없겠네. 어리도 문제 없을 거고. 또 함께 가는 거니까 의체와 연결이 끊길 이유도 없고."

자넷이 게이트 통로 안쪽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한시름 놓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결국 세진은 어리와 자넷을 데리고 게이트를 넘었다.

게이트를 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에테르의 압력이 굉장히 강하긴 했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세진과 자넷에게 큰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게이트를 통과하는게 걸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체감상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을 걷자 곧바로 새로운 테멜 안에 도착해 있었다.

"흐음. 역시 이곳의 에테르는 라훌 행성의 것과 같은 에테르네?"

세진이 가장 먼저 테멜 안의 에테르가 바뀐 것을 확인했다.

"내가 그랬잖아. 게이트가 있는 테멜은 그 게이트가 연결되는 행성의 에테르와 닮는다고 말이야. 이유는 모르지만."

- 그건 제가 알 것 같아요. 아까 게이트 구조를 파악할 때 알게 된 건데요, 이곳에 있 는 테멜 코어가 게이트를 통해서 반대쪽의 테멜 코어에게 에테르를 보내고, 반대쪽에서도 그렇게 해요. 그래서 서로 연결이 되게 되는 거죠.

"그래?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란 말이지? 그럼 나중에 어리가 똑같은 게이트를 만들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게 궁금하네?"

- 에헤헤. 그거야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죠. 언니. 나도 알 수 없음이에요.

"자 그만 떠들고, 어리야, 이 테멜 구조 파악할 수 있냐?"

세진이 어리와 자넷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 어리에게 물었다.

- 잠깐만요.

어리는 곧바로 지금 일행들이 있는 테멜의 구조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어리 역시 에테르를 장악해서 그것을 통해서 주변을 살핀다. 지구에선 수백 키로 미터가 떨어진 곳을 살필 수도 있었지만 데블 플레인에 와서는 30%정도 줄어들었고, 테멜 안으로 들어오면 또 10% 정도로 거리가 확연히 줄어든다. 세진은 그 이유를 에테르에 대한 장악력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곳 테멜 안쪽의 에테르는 사실상 테멜 코어에게 속한 것이니 그 에테르를 어리가 사용하려면 당연히 힘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데블 플레인에서 능력이 줄어드는 것은 지구에서 쉬웠던 것이 데블 플레인에서 조금 어려워진 탓으로 여기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 으음. 확인 했어요. 그러니까 이런 형태로 생겼어요.

어리가 허공에 에테르를 이용해서 테멜의 구조를 영상처럼 만들어 보인다.

어리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형적인 테멜의 모습이다. 테멜 코어가 있는 곳 뒤쪽으로 출구가 있고, 테멜의 입구는 정 반대쪽에 있다.

그러니 테멜을 들어오게 되면 그곳에서부터 코어가 있는 곳까지 몬스터들을 돌파하면서 테멜 코어 앞에 있는 부족 코어 몬스터까지 처치해야한다. 그래야 코어를 얻거나 혹은 테멜 밖으로 나갈 수가 있다.

"어떻게 할 거야?"

자넷이 물었다.

"일단 여기 게이트부터 확인을 해서 구조 파악을 해야지. 그리고 잠깐 나가서 필드로 쓰이는 곳인지 확인을 하고 필드가 아니면 곧바로 다시 라훌 행성으로 가서 다른 게이트를 열어 봐야지."

"여기 테멜 안에서 사냥은 안 하고? 코어도 그대로 둘 거야?"

"게이트에 대한 실험이 끝날 때까지는 어떤 테멜 게이트도 건드릴 수가 없지. 그냥 둘 밖에. 어리야, 준비하자. 그리고 자넷은 우리 둘 좀 잘 지켜주고."

"응, 걱정하지 마. 혹시 일이 생겨도 둘이 정신을 차릴 정도는 버틸 수 있어. 설마 여기 괴수가 등장하겠어? 호호호."

세진은 자넷의 호언장담을 들으며 어리와 함께 게이트 구조 파악을 시작했다.

이곳까지 게이트 구조를 파악하면 이곳에 어리가 만든 게이트를 놓고, 돌아가서 라훌 행성에 게이트를 만들어 둘이 연결이 되는지 확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쪽만 만들었을 때, 그 것이 다른 반대쪽 행성의 원래 테멜 게이트와 연결이 되는지도 알아 봐야 했다.

그리고 이후에는 어리 테멜 안에 게이트를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다른 행성과 연결 이 되는지도 알아 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어리 테멜 안에 여러 행성을 오고갈 수 있는 터미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세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게이트 구조 파악에 힘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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