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3화 (203/298)

< -- 데블 플레인 행성 떠돌이가 되다 -- >

괴수나 지역 코어를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리가 만드는 7등급 몬스터는 데블 플레인에서 30%약화된 상태로 만들어졌다.

당연히 같은 등급과 1:1을 하면 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몬스터로 괴수를 상대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거기에 지역 코어라니.

세진 등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라훌 행성의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들을 모랜으로 잡아들이는 작업을 했다.

어차피 의체 사용자들은 테멜 안에서 나름의 삶을 영위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는 중 이었다.

어찌어찌 받아들인 이민자의 수가 10만을 넘었고, 그 중에서 5천 명이 전사로 지정되어 의체를 성장시키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비로 2만 명 정도가 의체를 이용해서 수련을 하는데 이들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5천 명의 전사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5천 전사 중에서 누군가는 강등이 되어야 한다.

예비 전사와 전사가 실력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예비 전사들이 전사가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예비 전사는 헌터룸의 이용 시간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헌터룸을 이용할 수 있는 전사들에 비해서 패널티가 있었다.

그런데도 전사들 수준으로 실력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당연히 하위권의 전사들보다 재능이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세진과 어리는 그런 방법으로 예비 전사와 전사를 선별하고 있었다. 어쨌건 그들은 모두가 테멜 공간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아직 지구를 떠나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지구에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해서 위험한 상황이라는 정도만 알려졌고, 그 문제 때문에 실력이 일천한 전사들을 더는 파견을 보낼 수가 없다고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중에는 지구가 멸망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거짓말을 해야 할지로 모른다.

어쨌건 세진은 의체 사용자들 중에서 그랜드 마스터에 이르는 이들에게만 지구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알릴 생각이었다.

사실 이민자들 대부분은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지만 그것은 고향에 대한 향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터전을 잃고 안전을 찾아서 벗의 품으로 들어온 이들이라, 대부분 테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한 어리의 테멜은 10만의 인원이 생활하기에 충분하다 못해서 넘치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필요에 따라서 하위 테멜들에 분산되어 소규모 마을을 이루고 사는 이들도 많아서 이민자들은 삶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굳이 지구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이들이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지구가 위기에 빠졌으니 열심히 의체를 성장시켜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하자는 이야기는 잘 먹히는 편이었다.

어차피 진짜 목숨을 거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경우에도 의체를 잃을 뿐이니 부담이 적은 것이다.

물론 의체를 상장시켜서 등급이 높은 몬스터를 잡고 코어를 얻으면 그것이 곧 수입의 증가로 이어지는 것도 의체를 성장시키려는 의욕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쨌건 그렇게 테멜 사람들이 잘 지내고 있지만, 정작 세진과 자넷은 발전이 없이 한동안 무료한 사냥에만 열중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진과 자넷, 어리가 눈빛을 빛내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새로 발견된 테멜을 공략할 때였다.

세진 등은 라훌 행성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테멜을 찾았다. 그리고 보이는 족족 공략을 해서 테멜 코어를 확보하고 어리가 부리는 하위 테멜들의 성장을 위해서 흡수를 시키거나 혹은 이동이 가능한 테멜들은 어리 테멜로 옮기거나 했다.

그런 재미라도 없으면 아마 세진은 무척 심심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테멜 공략은 결국 세진과 자넷에게 엄청난 사건을 가지고 왔다.

"아! 이건."

자넷이 오랜만에 만난 남색 등급의 테멜을 공략하다가 테멜의 중앙에 도착해서 갑자기 환호성을 질렀다.

"뭐야?"

- 그게 뭐예요? 처음보는 코어인 것 같은데요?

세진과 어리가 자넷에게 물었다.

"이걸, 이걸 여기서 보다니 정말 상상도 못했어. 아니 어쩌면 난 이걸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자넷은 세진과 어리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망연한 표정을 지으며 공략 중이던 테멜의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폭과 높이가 3미터 정도 되고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통로였다.

다만 지금까지 세진 일행이 봤던 어떤 테멜의 구조와는 다른 뭔가가 있었고, 통로에서 에테르 코어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뭔데 그래?"

세진이 다시 자넷에게 물었다.

"테멜 게이트. 테멜 게이트야."

자넷이 홀린 듯이 통로를 보며 대답했다.

"테멜 게이트? 그게 뭔데?"

세진이 게이트란 말에 살짝 흥분을 느끼며 자넷의 팔을 잡았다.

"테멜 게이트는 말이야..."

자넷의 설명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했다.

테멜 안에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정확하게는 다른 데블 플레인 행성의 테멜로 통하는 게이트가 아주 희박한 확률로 존재하고, 그것을 테멜 게이트로 부른다는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테멜 게이트를 이용하면 다른 데블 플레인으로 갈 수가 있어."

"그럼 그렇게 다니다 보면 결국 필드로 사용하고 있는 데블 플레인을 찾을 수도 있곘네? 그럼 자넷도 원래 자리를 찾을 수 있게 되는거고?"

세진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뭐, 회사 따위는 별로 안 중요해. 중요한 것은 그렇게 연방으로 가면, 괴수를 잡을  수 있는 깝딴과 어떻게든 연결이 될 수 있다는 거야. 그 여자들이 비록 외부 활동을 잘 안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서 프락칸의 비기를 훔친 것처럼 깝딴의 능력도 훔칠 수 있을 거야."

"그럼, 깝딴을 대거 양성해서 괴수들을 사냥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이지?"

"깝딴 20명이면 괴수도 녹일 수 있다고 했어. 물론 그만큼 깝딴이 되는 것이 힘들고, 깝딴을 배출하는 행성에도 깝딴의 수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라고 들었지만. 아무튼 연방으로 돌아가면 그런 희망이라도 생각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군. 그런데 이 테멜 게이트, 어디로 통하는지 모른다고?"

"응,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다른 행성의 테멜로 통하는 것은 분명해."

"운이 좋으면 한두 번에, 운이 없으면 영원히 테멜 게이트를 찾아서 떠돌아야 된다는 말이네?"

"일단은 이 테멜 입구는 철저하게 지켜야 해. 누가 여기 들어와서 테멜 코어를 빼버리면 이 게이트도 없어져. 아주 간혹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테멜 게이트로 몬스터 정보가 다른 행성으로 오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몬스터 종의 다양성이 늘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행성간의 소통을 끊어 놓으려는 이들이 있었다는 데, 데블 플레인 개발 초기에 잠깐 있었던 사람들이라지. 하지만 여전히 테멜 안에서 게이트를 발견하면 그 테멜은 어떻게든 없애는 것이 좋다고들 생각해. 여기도 누가 들어오면 그렇게 할 거야."

자넷은 테멜 게이트가 사라질 것을 걱정했다.

"쯧, 어차피 여길 떠나게 되면 다른 행성에서 또 다른 테멜을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그런데 굳이 이 테멜에 집착할 이유가 있어?"

세진은 자넷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바보야? 만약에 다른 행성에 갔는데 거기에서 테멜 게이트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서 여기서라도 찾아 봐야 할 거 아냐?"

"그, 그렇구나."

세진은 자넷의 면박에 살짝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다른 테멜 게이트를 찾아보는 것도 좋아. 여기 느껴지지?"

"뭐가?"

"이 테멜 안의 에테르가 조금 다르잖아. 라훌 행성의 에테르와 성질이 조금 다르지 않아?"

"음, 그런 것 같네. 확실히 그래. 에테르가 조금 달라."

"그런 곳을 찾아야 해. 테멜 중에서 그 행성의 에테르와 성질이 다른 곳이 있는데 그런 곳이 다른 행성과 연결된 게이트가 있는 테멜이야. 어쩜 나는 이걸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자넷은 테멜 게이트에 대해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 번 자책하면서 한편으로는 희망을 발견한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게이트가 있는 테멜은 당연히 보존해야 했다.

그리고 보존을 넘어서 보호해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어리는 테멜 안에 7등급 녹두병사를 잔뜩 풀어 놓았다. 아직 어리는 데블 플레인의 보라색 등급 몬스터는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랜의 테멜 안에서 라훌의 보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들이 늘어나면서 그 부하 몬스 터들 생산하고 있었지만 아직 보라색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는 잡아들이지 않은 상태였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하급 몬스터부터 올라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녹두병사가 어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몬스터들이었고, 그 녹두병사가 게이트 테멜 안에 배치되었다.

"이것들이 밖으로 나가면 곤란한데 말이지."

그러면서도 세진은 걱정을 했다. 녹두병사가 지구의 몬스터라서 그것이 이곳 라훌 행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는 것이다.

아마도 몬스터의 다양성에 영향을 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세진이 라훌에 몬스터 다양성이 늘어나는 것을 신경 쓰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라훌족들은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세진과 자넷, 어리는 정말 쉬지 않고 라훌의 테멜들을 찾아서 공략했다. 세진 일행은 마치 그것에 목숨을 건 것처럼 매달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어리 테멜 안에는 라훌에서 얻은 이동 가능한 테멜들이 계속 늘어났고, 또 모랜 테멜에는 몬스터가 늘어나고, 농장이나 초원, 밭 역할을 하는 테멜에는 또 여러 생물종들이 수집되었다.

테멜의 입구가 소형이어서 이동 가능한 경우에는 어떻게든 어리 테멜 안쪽으로 옮겼다. 물론 그런 테멜은 찾기 어려웠지만 세진 등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라훌 행성의 모든 것을 조금씩 어리 테멜 안으로 이식하는 작업도 병행했던 것이다.

그러한 노력 끝에, 세진 일행이 발견한 테멜 게이트는 총 세 개. 의외로 라훌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는 게이트가 셋이나 발견이 된 것이다.

"더 찾는 건 나중에 하자. 일단 이동을 해서 다른 곳의 상황을 살펴봐야겠다."

세 개의 테멜 게이트를 찾은 후에 세진은 이제 게이트를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 동안 참은 것도 엄청난 인내의 결과였다.

"그래. 세 군데가 있으니까 이제 가 보자. 어쩌면 그 셋 중에 한 곳은 필드로 사용되는 곳이 있을지도 몰라."

자넷도 세진의 의견에 찬성표를 던졌다.

"남색 등급이 하나에 보라색 등급이 둘이에요. 어디로 가실 거예요?"

어리가 물었다.

그들이 발견한 게이트 테멜의 등급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 발견한 곳이 남색 등급의 테멜이었고, 다른 두 개는 자그마치 보라색 등급의 테멜이었다. 아니 그 보다 많은 테멜들을 찾았지만 게이트가 있는 곳은 그 세 곳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테멜들은 공략을 하지 않고 코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히 테멜의 몬스터를 만드는 부족 코어도 건드리지 않았다.

테멜을 최대한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테멜들은 외부에서 발견하기 어렵게 주변 환경에 변화를 줘서 테멜 입구를 가려 놓았다. 거의 산을 새로 쌓아 올리는 것처럼 일이 많았지만 결국은 테멜의 입구를 세진 일행만 알 수 있도록 숨기는데 성공했다.

"쉬운 곳부터 가자. 남색 등급 테멜부터 가서 확인을 하자. 일단 필드로 사용되는 곳인지 아닌지만 확인하고 돌아오는 걸로 하자. 그 다음에 다른 두 곳도 가서 필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그게 좋겠네. 솔직히 게이트 하나 찾았을 때부터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그래서 아니면 그 실망감은 어쩌게?"

"하지만 셋 모두 아니면 그건 더 큰 충격일 것 같은데?"

"맞아요. 그냥 처음부터 확인을 했었어도 좋았을 걸요."

"그래. 그 두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미루고 있었던 거였지. 그럼 이번에도 하나는 남겨두는 걸로 하자. 다른 행성에서 게이트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이곳 라훌의 게이트 하나는 확인하지 않는 걸로. 어때?"

"희망은 필요하니까."

"맞아요. 그래도 하나는 남았다는 그런 거. 언제나 게이트 하나는 여유를 두는 걸로 해요.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으로 발견된 게이트 하나는 언제나 확인하지 않고 남겨 두는 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뭐가 했던 이야길 또 하는 것 같네. 전에도 이런 이야기 하지 않았어?"

"호호호. 게이트 테멜 찾으면서 비슷한 이야길 몇 번이나 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확인하는 셈 치고 또 하는 거지 뭐."

"좋아. 그럼 가자. 제일 먼저 발견한 테멜 게이트를 여는 거다."

"알았어요. 지금 가요."

어리가 순간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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