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리가 났다 난리가. -- >
"지구로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
자넷은 물었다.
"왜?"
"거기도 시간이 흘러가고 있으면 큰일이잖아. 아니 여기가 이렇게 시간이 흘렀으면 거기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돌아가면?"
"응?"
"돌아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데? 괴수 몇 마리 잡고 지구가 박살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테멜 안에 숨어 있는 것이 고작일 텐데?"
"하지만..."
"우리가 여기 도착했을 때, 시간의 괴리가 심했어. 그건 알지?"
세진이 물었다.
"그래 알아. 우리가 지구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해야 몇 년 되지도 않는데 여긴 거의 몇 십 년, 혹은 그 이상이 지난 것 같아."
"그래. 만약에 그런 식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하면, 우리가 여기 와서 머문 몇 시간이 지구에선 며칠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지금 가서 뭘 할 수 있을까? 아니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고 해도 할 일은 없지. 내가 바라는 것은 지금 지구의 시간이 멈춰 있기를 바라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그 시간이 멈춰 있기를 바라는 거지. 이후로 다시는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이번만은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어."
세진은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사실 큰 기대를 가지진 못하고 있었다.
세진이 가지고 있는 듀풀렉 게이트는 우주의 어느 시간 왜곡 공간을 이용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 했다.
그래서 그 시간 왜곡지역을 지나면서 원래 떠났던 그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가는 힘 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라훌 행성으로 올 때에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시간이 엄청나게 흐른 뒤로 도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기간 왜곡 지역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고, 그건 지구로 돌아갈 때에는 제 시간에 맞춰서 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소리였다. 아니 어느 시간대에 도착을 하게 될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럼에도 세진은 바라는 것이다. 이번에 돌아갈 때에는 제발 마지막이라도 좋으니 원래 떠났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그래야 앞으로 세진이 하려는 일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전사들을 육성할 생각이구나?"
자넷이 물었다.
"그래. 그럴 거야. 그래서 지구를 구할 힘을 가져야지."
"후훗, 그래. 그렇게 하자. 그리고 나도 원래 내 자리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야지.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우리 세진과 어리가 있으면 못 할 일은 아닐 거야."
"응? 우주 연방과 연락할 길이 있어?"
세진은 자넷이 돌아갈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흥미를 보였다.
"아니. 없어. 혹시 위에 있는 기지에 뭔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래 그런 곳은 메인 시스템이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에 통신 기능만 살리거나 하는 것도 어렵지. 그쪽은 가능성이 없다고 봐."
"우주선 같은 것들이 있을 텐데? 없나?"
"호호홋, 알면서 그래? 여긴 데블 플레인이야. 여기까지 우주선을 타고 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아무도 없지.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가까운 곳, 그러니까 몇 년 정도 가면 도착하는 그런 곳이어야지. 빛의 속도로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이 걸린다는 거리를 무슨 수로 우주선을 타고 다니겠어?"
"하긴 그것도 그러네."
"그래도 연방에선 예전에 그런 우주선을 운영하긴 했었데, 짧은 시간이지만 어마어마하게 큰 화물선을 주기적으로 보내서 물자를 운반하곤 했다는데, 뭐 그것도 과거 이야기지. 게이트가 보편화 된 이후로는 그런 것도 없어졌지. 무인 우주선이라도 낭비가 심한 시스템이라고 판단을 했으니까 말이야."
"그래? 그럼?"
"기지에 우주선 같은 것이 있을 거란 생각은 말아야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소형 우주선도 사실 우주 공간을 누비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게이트를 넘어서 대기권에 머물면서 우리가 의체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든 거였잖아. 우주 여행용은 아니었지."
"그런 건가?"
"그냥 가까운 곳에 여행을 하면서 의체로 유희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긴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곳 라훌 행성에서 제일 가까운 유인 행성이라고 해도 몇천 광년은 될 거야. 빛의 속도로 몇 천년은 걸린다는 이야기지/"
세진은 자넷의 말에 새삼 우주라는 공간이 넓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우주의 연방이라거나 혹은 데블 플레인 연합이라거나 하는 것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얼마나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거야? 그 연방이니 연합이니 하는 곳은?'
그러면서 세진은 그 모든 것이 게이트가 없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결합이란 것을 새삼 깨달았다.
멀고 먼 우주를 여행하는 우주선의 이야기는 정말 꿈과 같은 것이었다.
"못 만드나?"
갑자기 세진이 물었다.
"뭘?"
"우주선 말이야."
"그걸 왜 만드는데? 그냥 행성 위에서 다른 행성 위로 갈 수 있는데? 굳이 우주선으로 대기권 밖으로 나간 다음에 게이트를 통과해서 다른 행성의 대기권 밖에 도착해서 우주선 타고 그 행성으로 들어가는 미련한 짓을 왜 해?"
세진은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물론 가까운 우주를 개발하기 위해서 우주선을 만들기는 했었지. 하지만 그것도 그냥 게이트 열어서 해결을 하게 된 후로는 잘 안 만들어. 그냥 진짜 관광삼아서 여행을 하는 경우에나 우주선을 타는 거야."
"우린 게이트를 만들 수가 없지?"
세진이 물었고, 넷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그야 그렇지. 그 지하의 마법진에도 그건 없었다면서?'
"그래. 듀풀렉 게이트에 대한 개념만 있고, 제작 방법은 없었지. 뭐, 마법진들을 모두 익히고 이해한 후에 연구를 하면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던가? 몇 세대 걸릴 거라고 했지."
"호호호. 몇 세대?"
"그래."
"우리 아이의 아이의 아이의 아이의 아이?"
"쯧."
세진은 아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자넷의 시선을 살짝 피했다.
라훌 행성은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헌터들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헌터가 있기는 하지만 라훌 헌터만 있었다.
그런데 몬스터를 잡아서 코어를 얻어 봐야 에텔론으로 바꿀 수도 없고, 그 에텔론을 이용해서 기술을 익힐 수도 없었다.
헌터룸 관리 기지가 완전히 박살이 나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그 기지와 연결되어 있던 많은 기능들이 멈춰 버렸다.
그나마 에텔론 상점이 있고, 그 상점에 직원들이 있었지만 그 직원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을 통제하던 중앙 시스템이 사라지자 그들은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당연히 에텔론 상점의 업무도 마비된 상태였다.
세진과 자넷은 라훌들을 통해서 지구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이에 7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았다.
약 열여덟 배로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54년 전에 라훌 행성에 유성이 떨어졌다는데 그것이 운석인지 혜성인지는 라훌들이 알 수 없는 문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엄청난 충돌이 있은 후에 몬스터들의 세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라훌족의 세력이 깎여나간 것처럼 몬스터들도 숫자가 줄어들었고, 또 등급이 높은 몬스터도 등장 빈도가 낮아졌다고 한다.
세진은 어쩌면 라훌 행성이 그나마 이정도로 안정되어 있는 것이 어쩌면 행성을 지키려는 에테르 코어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행성이 파괴되면 당연히 에테르 코어들도 기반을 잃게 된다. 그러니 코어들 역시 행성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대응을 했을 거라고 세진은 생각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지금 몬스터들의 힘이 약화된 것인지도 몰랐다.
"에테르 농도는 비슷한데? 왜 몬스터의 수가 줄었을까?"
자넷이 궁금한 표정으로 세진에게 물었다.
"어쩌면 그 어마어마한 충돌로 행성 코어나 그런 것이 피해를 입은 건 아닐까요? 아니면 행성 코어가 그 충돌의 여파를 줄이느라 무리를 해서 기운을 많이 잃었거나요."
어리가 세진 대신에 대답을 했다.
며칠 동안 세진과 자넷이 테멜 안에서 주로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어리도 의체를 이용해서 둘의 곁에서 지내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이민자들은 나름의 삶을 살고 있었고, 의체를 이용해서 몬스터 사냥에 힘쓰고 있었다.
다만 사냥이나 수련이 큰 의미가 없는 자넷과 세진은 프락칸 수련용 의체를 사용하 며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봐. 그래도 다행인 거지. 안 그랬으면 라훌들 모두가 전멸을 했을지도 몰라. 어차피 이젠 당분간 이곳은 홀로 자립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말이지. 연방이나 연합에서 라훌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지도 않고."
"사고가 있었으니까 분명 조사를 하러 왔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방치를 한 걸 보면 분명 여긴 버렸다는 거죠. 언니 언니 생각도 그렇죠?"
"그럴 거야. 그리고 한꺼번에 많은 헌터들이 죽었으니 당연히 문제가 되었겠지. 그리고 그런 문제가 생긴 곳을 다시 재건할 생각은 없었을 거야. 그러니 지금까지 이모양이지. 더구나 제이비아에 머물던 이들이 많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큰 문제지. 나 같은 경우에도 이곳에서 사망했다고 결론이 났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말이야."
"우와, 정말 그렇겠네요. 일단 실종으로 되어 있다가 여기 행성에 문제가 생긴 뒤에는 사망으로 처리를 했을까요?"
어리가 자넷의 처지를 대략 짐작했다는 듯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괜찮아. 다시 찾을 수 있는 자리고, 못 찾아도 아쉬운 것은 별로 없는 자리야. 흥, 회사 하나 보다 확장이 가능한 테멜이 훨씬 더 가치가 있지. 뭐 어리처럼 똑똑한 테멜 관리자가 없어서 문제긴 하지만."
"에헤헤, 그럼 그냥 내가 부하들 중에 하나를 언니에게 줄게요. 저번에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 흡수하면서 여유가 생겨서 꼬맹이들 잔뜩 부하로 만들어 놨으니까 언니에게 하나쯤 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어리는 나름 불쌍한 신세가 된 듯한 자넷에게 선심을 배풀었다.
"됐다. 어차피 세진의 것이 내 건데 뭐. 어리 니가 안 줘도 되거든?"
"그런 것이었나요? 하지만 어리는 세진님의 것이에요. 언니의 것이 아니거든요?"
"니가 아니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란다. 세진과 나는 일심동체 아니겠니? 호호홋."
세진은 또 다시 주제를 벗어난 말싸움을 하는 둘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의체 사용자들이 최소한 마스터 경지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려면 말이야."
"그렇긴 하죠. 어리 생각에는 어쩌면 정말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의체를 사용한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아무래도 이민자 전체를 의체 사용자로 만들 수도 없는 일이잖아. 최대한 추려야 하는데 그렇게 추린 사람들 중에서 적어도 그랜드 마스터 경지에 오른 사람이 25명 정도씩 묶어서 몇 팀은 되어야 할 거야. 그래야 지구에 나타난 괴수들을 정리하지."
"어리가 괴수를 만들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리도 불가능한 것이에요. 아쉬운 일이에요."
"어리가 지역 코어를 흡수하면 또 어떨지 모르지."
세진은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이 라훌 행성에 지역 코어 등급의 테멜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그런 테멜이 있으면 그 안에서 테멜 코어를 보호하고 있는 존재는? 못해도 괴수 아닐까? 아니면 재수없이 테멜 코어를 몬스터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럼 지역 코어를 지닌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지도 몰라. 뭐 그것도 이 행성에 그런 테멜이 있다는 가정에서 하는 말이지만."
"어쨌거나 전에 자넷네 회사에서 테멜 코어 중에서 지역 코어가 있는 것을 확인했잖아. 그렇다면 가능성은 있는 거지."
"아니면 지역 코어 부터는 테멜 코어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흡수가 가능한 것인지도 몰라요. 어리는 갑자기 지역 코어를 확인하고 싶어졌어요."
세진과 자넷은 어리의 말에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할 일이 없다고 해도 그런 모험은 사양하고 싶은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리는 곧바로 어리 앵무를 움직여서 라훌 행성의 지역 코어를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