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1화 (201/298)

< -- 난리가 났다 난리가. -- >

"어떻게든 해야 할 텐데."

세진이 중얼거렸다. - 죄송해요오.

어리가 세진의 눈치를 본다.

"어리 네 잘못이 아니다. 이번 일이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이전에 도쿄의 G스페이스를 붕괴시킨 여파가 지금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부터 괴수가 활동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르고."

세진은 어리를 탓할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어리에게 괴수 등장의 책임을 묻고 있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심이 아니었기에 어리도 이런 저런 장난으로 되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정신이 연결된 세진이 진심으로 어리를 책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리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어리의 모든 일들은 세진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봐야 한다. 소소한 작은 일들을 어리 혼자서 결정하고 수행하지만 그것도 모두 세진이 내린 큰 명령의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어리가 세진에게 도구는 아지만 제 손발과 같은 존재다. 그런 존재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세진 결국 그 방법 밖에 없는 걸까?"

자넷이 물었다.

세진도 자넷이 하고 싶은 말을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세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괴수를 상대한다는 것은 지금의 세진으로선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괴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즉, 게이트를 넘어가서 그곳에서 힘을 길러서 돌아오는 것이 최선이란 뜻이다.

"테멜 사람들을 데리고 게이트를 넘어야 하나? 그래서 데블 플레인에서 성장을 시켜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헌터룸 관리자들이 금방 알아차리게 될 텐데?"

"그건 내가 방법을 만들어 볼게. 내가 헌터룸 관리자들과 관계없는 행성을 찾을 수 있어. 몬스터에게 점령이 된 행성은 아주 많으니까."

"그러다가 들키면 어쩌려고?"

"괜찮아. 우리 연방과 데블 플레인 연합과 마주한 행성들 중에서 에테르 몬스터에게 완전히 점령된 곳들이 있고, 그곳을 헌터룸을 운영하는 쪽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그 너머 넓은 영역에는 몬스터 행성이 한 둘이 아니야. 그 안쪽 행성 중에서 하나를 사용하면 될 거야."

"몬스터 영역 세력권 뭐 그런 지역이 있단 말이야? 우주에?"

"따지고 보면 우리 우주 연방이나 데블 플레인 연합은 그 에테르 몬스터들과 싸우는 최전선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아니, 에테르 몬스터라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고 봐야 하나? 하지만 전선 너머에는 이미 바이러스에 뒤덮인 행성들이 수도 없이 많은 거 야. 그것들 중에 하나를 우리가 쓰면 되는 거고."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우리 힘이 모자라니 힘을 길러서 돌아오자는 거네?"

세진이 공허한 눈빛으로 자넷을 보며 말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어쩌면 스스로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구의 에테르 몬스터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당장 눈앞에 괴수들이 날뛰기 시작하니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잘라 말하면, 그런 거지."

- 저기요오. 굳이 다른 행성에 가야 하나요? 그냥 테멜 안에서 사람들을 성정시켜도 될 것 같은데요.

"엉?"

- 그렇잖아요. 제가 에테르만 공급받을 수 있으면 얼마든지 모랜에서 몬스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요. 굳이 다른 행성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정말 그러네? 그냥 우린 라훌족이 있는 데블 플레인에 가서 숨어 지내면 될 것 같은데? 아니면 밖으로 좀 나돌아 다니면서 몬스터 사냥을 해서 코어나 수집하면서 때를 기다리면 되겠어.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테멜 안의 사람들도 성장을 해서 지금 나타 난 괴수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어리 잘 했어."

자넷이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어리의 아이디어를 칭찬했다.

"그 전에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세진은 다시 데블 플레인으로 넘어가는 것이 어쩐지 꼬리를 말고 도망을 가는 패배자가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필요에 의해서 몇 번이나 갔다 온 곳이지만 이번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 쫓기듯 가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개인적인 성장의 한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세진으로선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성장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방법이 없네. 방법이."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좋은 방법이 없었다.

- 어떻게 해요? 괴수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방향은?"

- 확실하지 않아요.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어서 아직은... 세진의 물음에 어리가 확답을 못했다.

"더 기다릴 거야?"

자넷이 물었다. 게이트를 넘어가지 않을 거냐는 질문이다.

"아직, 아직은 아니야. 혹시라도 괴수들이 모두 G스페이스로 향하는 거라면 그렇게 큰 피해는 없을 거야. 그러니 조금 더 기다려 봐도 될 거야."

세진은 괴수들의 행보를 끝까지 확인하고 싶었다.

- 세진님, 만약에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심각해요.

어리가 세진에게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뭐가?"

세진은 또 무슨 이야긴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느끼며 물었다.

- 이 좁은 한반도에 괴수 네 마리가 움직이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거예요. 북한에서 두 마리가 나와서 북한에 있는 G스페이스로 간다고 하면 여기와 여기로 이렇게 이동 경로가 나와요. 아주 단순하게 이동 경로를 만들어도 이렇게 되죠. 그런데 남한에도 G스페이스 두 곳이 었어요. 여기하고 여기. 그런데 이 두 곳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이라고 해서 다른 곳에서 이리로 오는 길이 전부 그런 것은 아니죠.

"대도시를 거쳐서 오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 그게 아니라도 남한의 인구밀도는 어마어마하죠. 피해가 엄청날 거예요.

"흐음."

세진은 어리의 충고에 신음 소리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괴수가 어떻게 움직이건 피해가 적지 않을 것 같았다.

"잡아야 한다는 거네.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 괴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거야. 적어도 남한 쪽은 막아야... 젠장 남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지구가 문젠데  무슨 생각인지."

세진은 혼자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자넷을 봤다.

자넷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진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들을 모두 테멜로 복귀 시키고 그게 끝나면 게이트를 넘자. 가서 괴수들을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돌아오는 거다."

세진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어리가 전세계를 누비며 벗의 전사들을 테멜로 복귀시켰다.

세진은 자넷과 어리를 데리고 다시 게이트를 넘어 라훌족의 행성으로 이동했다.

게이트를 넘은 세진과 자넷이 도착해야 하는 곳은 당연히 라훌족이 있는 데블 플레인의 제이비아 마을이어야 했다. 하지만 세진은 게이트를 넘자마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멋? 어떻게 된 거야?"

자넷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세진은 급하게 어리 테멜로 들어가서 게슈너가 사용하던 툴틱을 꺼내서 다시 나왔다.

그리고 툴틱을 작동시켰다.

"이런!"

"왜? 무슨 일이야?"

자넷이 세진의 경악성에 덩달아 놀라며 물었다.

"툴틱이 먹통이야. 작동아 안 되고 있어."

"그럴리가. 그럼 이 필드를 포기했다는 말이 되는 건데?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된 거 야? 그 듀풀렉 게이트를 건너면 떠났던 시간으로 되돌아 오는 거였잖아."

"그래. 지금까진 그랬는데, 이전 확실히 아닌 것 같지. 우리가 떠났던 바로 그 때가 아니야. 그 후로도 엄청난 시간이 흘렀어. 분명히."

"맞아. 여긴 우리가 예전에 머물던 그 집이 맞을 거야. 다 허물어졌지만 바닥에 남은 흔적들이 집의 구조와 맞아 떨어지니까 말이야."

"그 집이 이 꼴이 되려면 어느 정도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 거야? 담도 거의 다 허물어지고 지붕은 남아 있지도 않을 정도면 말이야."

"글쎄? 하여간 시간이 엄청 흐른 건 분명한 것 같은데? 아, 그러면 회사에서 나 실종 된 건가? 이런 상태면 회사와 연락도 할 수가 없겠는데?"

"일단 대기권 밖으로 나가서 상황을 살펴보자. 그래야 뭔가 확인을 하지. 이전에는 대기권 밖에 헌터룸 관리 기지가 있었잖아."

세진이 자넷에게 상황 파악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야겠네."

"어리야!"

- 네. 세진님.

"우주선 준비해야겠다. 예전에 우리가 쓰던 우주선 그거 만들어 뒀던 거 쓸 수 있지?"

세진이 로페소에테에서 쓰던 헌터룸이 장착된 우주선에 대해서 물었다.

- 네에. 가능해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응? 무슨 문제?"

- 그 우주선 움직일 수가 없는데요?

"엉?"

- 우주선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없어요. 쉽게 말하는 메인 시스템이 없다는 거죠. 그냥 헌터룸 관리 프로그램만 있는데요?

"아, 그렇다. 그 때 우주선은 어차피 쓰지 않을 거라고 헌터룸 관리 프로그램만 세바 스에게 받아 뒀었어. 이걸 어쩌지?"

자넷이 어리의 말에 겨우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소리를 지른다.

세진도 우주선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한숨이 나왔다.

"그럼 어리가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와라. 대기권 밖에 헌터룸 기지가 있는지 어떤지 말이다."

- 네에. 세진님.

어리는 세진의 부탁을 받고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시 세진의 어깨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됐어?"

자넷이 급하게 물었다.

- 아무래도 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리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래. 자세히 이야길 해 봐. 응?"

세진과 자넷이 어리를 재촉했다. 그리고 이어진 어리의 말은 두 사람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기지가 있기는 있는데 작동이 멈췄어요. 아니 파괴되었어요.

"파괴?"

자넷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쉽게 부서질 그런 곳이 아닌데? 엄청 강력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는 그런 곳인데?"

- 그게 전부가 아니고 여기 행성도 엄청나게 바뀐 것 같아요. 이전과는 지형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여기 커다란 운석 충돌이나 혜성 충돌 뭐 그런 일 이 벌어진 것 같아요.

"그게..."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지 않아도 정신이 없던 두 사람은 운석 충돌이나 혜성 충돌이란 말에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안 되겠다. 직접 올라가서 확인을 하자."

세진이 제안을 했고, 자넷과 세진은 어리의 테멜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리는 두 사람을 깡통 우주선에 태워서 대기권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세진과 자넷은 부서진 헌터룸 기지와 커다란 운석공들이 군데군데 있는 라훌 행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엄청난 광경이네. 제이비아가 그나마 멀쩡했던 것이 기적이라고 할까?"

"그래도 저 정도 공격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행성이 깨끗한 것 같은데?"

"어? 뭐라고?"

세진은 행성이 여기저기 파인 모습에 놀라고 있었지만 자넷은 그것과는 다른 이유로 놀라고 있었다.

"아니, 생각을 해 봐. 저 정도 흔적이 남았으면 행성 전부가 땅이 뒤집어지고 용암이 올라오고 그래서 불바다가 되어야잖아. 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엄청난 먼지구름 때문에 오랜 시간 빙하기가 와야 할 텐데? 그런 기미는 안 보이잖아. 우리가 도착했던 제이비아도 허물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흙먼지에 매몰된 흔적은 없었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구멍이 뚫린 곳과 그 주변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멀쩡한 모습이네?"

"그렇지. 이상하잖아. 저게 가능한 거야?"

"그러게?"

세진도 자넷의 말을 듣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본다고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지 안에도 가 봐야 하나?"

세진이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찌그러지고 뜯겨 나간 헌터룸 관리 기지를 언급했다.

- 가시지 않는 것이 좋아요. 곳곳에 시체들이 가득해요. 어리가 그런 세진을 말렸다.

"시체?"

- 원래 헌터룸에서 의체를 사용하던 본체들이 모두 죽었어요. 의체를 사용하는 중에 기지가 날아갔으니 어쩔 수가 없었겠죠.

"그러면 라훌 행성에 있던 의체들도 모두?"

- 본체가 죽었으니 의체들도 쓸모가 없게 되었을 거고, 따로 관리를 받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시체가 되었겠죠. 생체 에테르바디 관리소나 에텔론 상점들도 헌터룸 기지에서 관리를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니 쓸모가 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기지에 다른 행성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있었을 텐데?"

세진이 자넷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 없어요. 그게 있어야 할 부분은 통째로 날아갔어요. 운석에 직격탄을 맞은 것 같아요.

하지만 들려오는 어리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자넷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여길 포기했다는 건가?"

"그랬겠지. 아니었다면 기지를 재건했을 텐데, 그냥 둔 것을 보면 포기했다는 거겠지."

자넷이 힘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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