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200화 (200/298)

< --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응? -- >

세진은 그런 어리의 발뺌에 어이가 없다.

"너도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놀라서 달려왔었잖아. 지금 와서 아니라고 한다고 아닌 것이 되지는 않지."

- 생각해 보니까 제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걸 알았을 뿐이에요. 세진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어리가 고집을 부렸다.

"허 참."

그렇게 되니 세진도 더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실제로 괴수가 등급이 낮은 곳으로 내려온 이유를 세진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세진 어떻게 생각해?"

"뭐라고?"

자넷의 말에 세진은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걸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어리야, 가 보자. 다른 SG스페이스의 5등급 이면 공간들도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내려온 괴수가 있는지."

세진은 마음이 급해져서 다시 이면 공간 밖으로 나와서 다른 곳들을 확인했다.

지구에는 총 서른여섯 개의 SG스페이스가 있었다. 그리고 세진이 그곳을 일일이 확인을 해 본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곳에서 괴수들이 6등급 이면 공간을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문제는 더 심각한 상황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곳에는 5등급 이면 공간에 괴수가 있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4등급 이면 공간까지 괴수가 내려와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 봐요. 제 잘못이 아니었다고요.

어리는 그런 사실을 확인하자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세진은 생각이 달랐다.

"어리야, 너 대형 사고를 친 것 같다."

- 저 아니라고요.

어리가 항변했다.

"저것들 정보 교환 한다고 했잖니. 그러니 어리 네가 자극을 준 것을 모두가 동일하게 받아들였다면, 이번 일이 네가 벌인 일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지만."

- 아니에요. 저 때문은 아닐 거라고요. 설마 하는 생각이 있기는 했지만 어리는 그래도 아니라고 우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어리 니가 수고를 좀 해야겠다. 최대한 빨리 코어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보들을 분석해서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알아내야겠다."

세진은 어리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했다.

그리고 어리는 혹시라도 이번 일이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사태 분석에 들어갔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어리는 열심히 36 SG스페이스를 오가며 상황의 변화를 살펴야 했다.

"큰일 났어. 그것들이 또 나왔어."

자넷이 기가 질린 표정으로 탄식하듯 말했다.

세진이 확인한 바로는 모든 SG스페이스에는 6등급 이면 공간이 있었고, 그 이면 공간에는 괴수가 세 마리씩 있었다. 그런데 그 괴수들이 6등급 이면 공간을 벗어나서 등급이 낮은 이면 공간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그러더니 이제는 또 한 마리가 나오고 있었다.6등급 이면 공간에 괴수 한 마리를 남기고 두 마리가 외유를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

자넷과 세진은 이마를 맞대고 고민을 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괴수 중에서 몇 마리는 1등급 이면 공간까지 내려왔다. 언제 현실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진과 자넷은 그 중에 한두 마리는 어떻게든 처리를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세진과 자넷이 나서고 어리까지 힘을 모으면 한 마리씩 각개격파를 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봐야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숫자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리가 7등급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것도 한계가 있는 일이었고, 자넷과 세진의 능력 도 괴수를 상대하기엔 부족했다.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자넷과 세진이라고 해도 괴수를 여러 마리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상대를 한다면 몰라도, 그 사이에 지구가 폐허가 되는 것은 막을 길이 없을 터였다.

그래서 세진과 자넷도 나서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알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벗에서 전 세계에 경고 성명이 있었다. 어마어마한, 추측 불가의 괴수가 SG스페이스에 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성명이 발표되기 전부터 이미 세상은 시끄러웠다. 괴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각 SG스페이스의 1.2 등급 이면 공간에서 사냥하던 이들을 통해서 널리 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사망자가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유언비어처럼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중에 벗에서 그 몬스터가 7등급 우두머리 이상의 등급이라고 발표했고, 핵무기 따위로 해결을 할 수 없는 것이니 현실에서 핵을 써서 잡으려는 무리한 짓을 하지 말라는 발표가 이어졌다.

핵을 써서 지구 자체를 죽이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몬스터는 잡지도 못하고 지구만 죽이는 것이 될 거란 경고였고, 7등급 우두머리 몬스터 이상의 몬스터란 소리에 세계 각국은 혼란에 빠졌다.

그나마 세진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이었다.

세진은 서른여섯 곳의 SG스페이스 주변의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을 제안했고, 적어도 100km 내에 사람들이 머물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상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반경 100km는 지름 200km라는 말이고 작은 나라라면 그 나라 전체가 포함될 정도의 넓이였다. 그런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어디론가 옮긴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목숨을 건 기자들이 세계 곳곳의 SG스페이스에 퍼져서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괴수의 출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전 세계가 숨죽이고 있는 동안 세진은 무력감을 느끼며 어리 공방에 머물고 있었다.

"괜찮아?"

"아, 괜찮아.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그래도 어리 테멜로 사람들의 이동을 돕고 있잖아. 그것만도 큰일이야."

"그건 어리가 하는 일이지."

"어리가 세진의 힘이잖아.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하는 거라고."

"하아, 위로가 안 되네. 지금 내 실력으론 괴수 한 마리도 어렵겠지?"

"연방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 정도 되는 실력자 20명 정도는 있어야 괴수를 잡을 수 있다고 했어. 물론 깝딴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순수한 무력으로는 그렇다는 거지. 그나마 여기 지구의 괴수가 약해서 우리 둘하고 어리가 힘을 모으면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나오는 거야. 아니라면 어림도 없어."

"그래. 그렇겠지. 정말 생각 같아서는 일흔 두 마리를 모두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잠깐, 어리야!"

세진이 말을 하다말고 어리를 불렀다.

- 부르셨어요?

그러자 곧바로 세진의 어깨에 어리 앵무의 모습이 나타났다. 세진과 정신으로 연결된 상태라서 세진의 부름을 곧바로 인지한 것이다.

"그거 정보 분석 말이야. 어느 정도나 진척이 된 거야?"

- 죄송해요오. 아직 별로...

"전에 그랬지. 뭔가 동일한 명령이 이어진다고 말이야."

- 네. 반복되는 명령이 있어서 확인을 하고 있는데 정확히 풀린 것은 아니고 괴수들을 이동시키는 그런 내용이에요. 전부 조금씩 달라서 정확하지는 않고 괴수에게 이동 명령을 내린 것은 분명해요.

"자, 그럼 생각을 해 보자. 원래 괴수가 많은 것은 아닐 거야. 그렇지?"

"맞아. 세진. 괴수는 많지 않아. 한 지역 코어 밑에 괴수가 여러 마리가 있을 수는 없지. 데블 플레인에서도 지역 코어 아래에 괴수는 많아야 넷이나 다섯이었어."

"좋아. 그럼 여기 지구는 서른여섯 개의 지역 코어가 있다고 치고, 그 아래에 괴수가 셋씩 있는 것은 확인을 했어. 맞지?"

세진이 물었다.

- 네. 맞아요.

"그 중에서 지금 움직이는 놈들이 몇이지?"

"몇은 몇이야? 서른여섯 곳에서 두 마리니까 아까 세진이 말한 대로 일흔두 마리지."

"그래. 그렇지. 그럼 지금 G스페이스 중에서 괴수가 없는 곳은?"

- 36동천 72복지. 그래서 72곳이 5등급까지 있는 오버렙 스페이스고, 괴수가 없는 곳이죠. 그러니까 세진님 말씀은 지금 괴수들이 그 72곳의 G스페이스로 갈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런 거야?"

어리와 자넷이 세진의 짐작을 알아차린 듯이 물었다.

"그렇지 않을까? 원래 108마리의 괴수가 있었고, 우리가 전에 없앴던 G스페이스도 복구가 되어서 꼭 108곳의 G스페이스가 있잖아. 그 중에 서른여섯 곳은 SG스페이스라고 부르는 거고. 그 SG스페이스에 있던 괴수들이 나와서 나머지 G스페이스로 이동을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소리는 어쩌면 그렇게 이동한 괴수들이 자리를 잡게 되면 그 72곳의 G스페이스에 6등급 이면 공간이 생길지도 모르지. 아니면 그냥 뭔가 불안하니까 무력을 증강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까 세진 생각은 그 괴수들을 분산시켜서 G스페이스를 지키게 한다는 거야?"

"그런 거 아닐가 하는데?"

- 하지만 전에 일본에 있던 G스페이르를 박살냈을 때에는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이전에 한 번 G스페이스를 붕괴시켰던 것을 상기시키는 어리였다.

"아무 일이 없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 그렇게 한 곳이 박살이 났기 때문에 지금처럼 괴수들을 움직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4년이 넘었는데,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왜 이제 와서?"

자넷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진의 생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큰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거야. 솔직히 행성코어가 G스페이스를 다시 만들어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그 때 그 코어들은 모두 어리 테멜로 들어왔고, 행성 코어는 그만큼 에테르를 손해 본 거잖아. 휘청했을 수도 있지."

- 하긴 그 일본의 G스페이스가 복구되는 데도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했죠? 그 뒤로 또 시간이 흘러서 이젠 괴수들을 내보낼 힘을 비축했다는 뭐 그런 건가요 세진님?

"내 짐작은 그래. 또 그래야 하고. 아니면 정말 재앙이 될 거야. 만약 그렇게 되면 72마리의 괴수가 난동을 부리는 지구를 우리가 나서서 지켜야겠지. 한 마리씩 각개격파를 하기라도 해야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러다가 의체를 잃게 되면 다시 그 수준에 오르려면 엄청 오래 걸릴 텐데?"

"그럴 일이 없도록 해야지."

- 정말로 괴수들이 다른 G스페이스에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일단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이동 경로를 잡아봐야겠다. 또 사람들에게 우리의 예측도 알리고."

"그래야겠네.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예상이라도 알려 놓는 것이 좋겠지."

어리는 노트북을 들고 성명서를 쓸 준비를 한다.

- 저는 계속 정보 해석을 할 게요. 어리도 할 일을 찾아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세진은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서 명상에 들어갔다. 얌전히 다른 오버렙 스페이스로 들어가 주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일은 터졌다.

전 세계적으로 72마리의 괴수가 일제히 이면 공간에서 나온 것이다.

벗에서 경고를 했기 때문에 SG스페이스 근처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직업정신이 투철한 기자들이 제법 있었고, 그들은 대부분 괴수가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결이 끊겼다.

그것은 괴수가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에테르 파동에 의한 죽음이었다.

괴수는 대부분 크기가 큰 초대형으로 서서 걷는 놈들은 높이가 30미터에 이르고 기어 다니는 놈들은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숨 쉬듯이 에테르 파장을 토해 내는데, 일반인은 근처 500미터 내로만 들어가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심장 마비로 죽음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 괴수들이 SG스페이스의 몬스터 영역까지 벗어나서 움직이지 시작하자 전 세 계인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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