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응? -- >
이면 공간 유지 코어와 대화가 가능할 것 같다는 어리의 말은 세진과 자넷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당장에라도 SG스페이스의 6등급 이면 공간의 지역 코어와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코어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어리의 말은 조금 과장이 된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리가 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에테르 코어가 갖고 있는 정보 교환 능력을 세밀하게 살핀 끝에 드디어 어리도 그 정보 교환에 어리가 원하는 정보를 실어서 보내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두고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코어들 사이에 오고가는 정보라는 것은 실제로 몬스터의 생성이나 통제에 필요한 정보들이 대부분이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화라는 것과는 거리 가 멀었다.
"결국 아직 그 코어들이 주고받는 정보의 내용도 제대로 분석이 안 된다는 거잖아."
"그야 어쩔 수 없는 거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거잖아요. 그래도 제가 테멜 코어랑 이면 공간 유지 코어랑 흡수를 해서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한 거지. 아니었음 어림도 없었다구요."
"호호, 그래. 그래서 어리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에헴, 그래서 어리는 이제부터 친구 사귀기를 해 볼 생각인 것이에요."
"뭐?"
"응? 뭐라고?"
어리의 대답이 워낙 의외라서 세진은 물론이고 자넷까지 이해를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시 말씀 드릴까요? 친구 사귀기를 한다고요."
"그러니까 어리 니 말은 지구에 있는 이면 공간 유지 코어와 친구가 되겠다는 거냐?"
"그런 거죠."
"그래서 어떤 코어랑 친구가 될 건데?"
"그거야 당연히 전에 봤던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죠."
"그게 말이 되냐?"
"그래. 어리야. 너도 생각을 해 봐라. 갑자기 쳐들어와서 공격을 했던 사람이 어느 날, 친구가 되자고 오면 너는 어떨 것 같으니? 이 언니가 보기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 내 생각도 그렇다."
이미 한 번 대대적인 공격을 했다가 실패했던 코어와 친구가 될 생각을 하다니 세진은 혀를 찼다.
"아니에요. 괜찮을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 코어들은 무척 단순해요. 그러니까 잘 꼬드기면 홀딱 넘어올 것 같아요."
"도대체 그 근거가 뭐냐?"
세진은 자신만만한 어리의 태도에 혹시나 정말 뭔가 있는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물었다.
"그거야 제 부하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 아이들은 정말 애들이거든요."
세진도 그건 알고 있었다. 어리에게 종속된 코어들은 그 능력이 아니라 정신수준을 놓고 보면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 수준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오션이나 모랜같이 제일 성숙한 녀석들이 그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전에 상대했던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생각하면 전혀 아니지 않아?"
자넷이 어리의 생각에서 빈 틈을 찾아 찔렀다.
"아니에요. 그 녀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에요. 그냥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는 거지 똑똑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세진님이나 언니도 알지 않아요?"
"뭐 그러고 보면 그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서로 싸우는 중에 그 녀석 엄 청나게 성장을 했었는데?"
"흐응, 그러니까요.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거죠. 세진님도 생각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녀석 처음에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나 세진님, 자넷님과 정신세계에서 싸우면서 성장을 하고, 또 우리 셋에게 배워서 그렇게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어리 네 생각에 지금 지구에 있는 코어들은 덩치 크고 힘도 세지만 정신수준은 아이들과 같으니까 잘 꼬셔서 친구가 되겠다는 거냐?"
세진은 어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그거예요."
"그럼 아예 안면이 없는 다른 오버렙 스페이스의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 괜히 한 번 싸웠던 코어랑 엮이지 말고."
세진은 최대한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는 의미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아닌 것이에요. 어리는 전에 봤던 그 코어가 마음에 든 것이에요.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고 그러는 것이에요.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말을 걸기도 좋은 것이에요. 그 무시무시한 호위병들을 칭찬하면서 말을 붙여 볼 생각인 것이에요."
"벌써 계획까지 잡아 뒀냐? 그런데 아직은 의사 소통이 잘 안 된다면서?"
"그래도 괜찮은 것이에요. 반드시 꼬셔서 제 꼬봉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흡수하고 말 것이에요."
"어째 그 말은 좀 그렇다. 친구를 만든다면서 꼬봉을 만들어서 흡수를 할 거라니 그건 좀 아니지 않니?"
자넷이 어리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흥,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에요. 속고 속이는 것이죠."
"하긴, 드라마 보니까 다들 그러긴 하더라만. 그래도 드라마에 결론은 언제나 권선징악이었는데? 어리 너 그러다가 벌 받으면 어쩌려고?"
"흥, 그래도 세상을 보면 그렇게 독한 놈들이 대부분 더 잘 살아요. 돈도 많이 벌고, 권력도 가지고, 존경도 받고 그러죠. 어리는 세상에게 배운 것이에요."
"하아, 우리 아이가 이상해졌어요. 거기 나오는 아이 같아."
세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것들은 적인 것이에요. 어리는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고 배웠어요. 음 세진님도 적을 용서하지 않으시잖아요. 자넷 언니도 그렇고."
"그야 그렇지."
"뭐, 적이라면 속고 속이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
"그러니까요. 어리는 적을 속이는 기만책을 사용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말을 하면…."
"우린 할 말이 없는 거지 뭐. 안 그래? 세진?"
세진과 자넷은 그렇게 어리에게 오랜만에 침몰당하고 말았다.
어리가 친구를 사귄다느니 했지만 사실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어리는 교묘하게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의 정보 교환을 염탐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들키지 않고 정보만 훑어보며 기회를 살폈다.
사실 어리가 전에 한 번 봤던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목표로 한 것은 그나마 그 코어를 직접 마주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것에 대해서 다른 것들보다는 더 많이 알기 때문이었다.
그 때, 잠시 싸우는 중에 얻은 데이터가 있으니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코어보다는 낫다는 생각인 것이다.
거기다가 어리의 정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하는 일이니 한 번 싸웠던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어려워요. 어려워."
어리는 눈썹을 찌푸리고 인상을 쓴 모습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세진은 그런 어리의 의체를 보며 딸이 있으면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진님은 재미있어요?"
"뭐가?"
"이 어리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 지켜보시는 거요."
"그럴 리가 있나. 절대 아니지."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은데요?"
"아니다. 절대로. 어리가 내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데 그런 생각을 하겠니. 아니다."
"네에. 그렇다고 하시니 믿어 드리죠. 그런데요."
"응? 그런데라니?"
"대륙 코어인지 행성코어인지가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장악하고 있는 힘이 굉장한 것 같아요. 제가요 6등급 그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 삼아서 1등급을 대상으로 해 봤거든요?"
"오호? 그래서?"
세진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새로운 실험을 해 봤다는 어리에게 속으로 박수를 쳐 주며 결과를 물었다.
"1등급도 안 되요. 통제 권한을 제가 훔칠 수가 없어요."
"대화는 제대로 되고?"
"아니요. 그것도 안 되고 있어요. 딱 봐도 4등급 이상의 코어는 되어야 그나마 의사 표시를 할 수준이 될 것 같은데 한결 같이 반응이 없어요."
"그러냐? 그건 아쉽구나."
"네에. 그래서 어리는 지금 의기소침이에요."
어리는 정말로 맥이 빠진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이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절로 동정심이 생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쯧, 그건 또 어디서 배운 거냐?"
"텟! 미워요."
어리는 다시 홀에서 모습을 감췄다.
세진은 어리가 다시 코어 꼬시기에 나선 것을 확인하고는 프락칸의 비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본체는 물론이고 의체 중에서 게슈너의 모습을 한 의체도 그랜드 마스터의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니 달리 수련을 할 것도 없어서 요즈음 세진은 마법진과 프락칸의 비기를 연습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아아아. 크, 큰일 났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어리가 나타나 호들갑을 떨었다.
"뭐? 무슨 일이냐?"
"6등급 이면 공간 코어가 뿔이 났나 봐요. 괴수 한 마리를 이면 공간 밖으로 내보냈어요오!"
"뭐라고? 뭘 어디로 내 보냈다고?"
"괴수를 한 마리, 이면 공간 밖으로 내보냈다고요."
세진은 어리의 말에 머리에서 번개가 치는 느낌을 받았다.7등급 몬스터도 아니고 괴수가 이면 공간 밖으로 나왔다면 그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막을 수 없는 재앙.
"어디? 어디 있는 거야. 설마 북한에 있는 그거냐?"
"네에. 제가 꼬시고 있던 그 코어요."
어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제가 자꾸 뭐라고 하는 것이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에요. 저는 그냥 호감을 표시했을 뿐인데 말이죠."
"호감만?"
"그러면서 저를 따르라고 했죠."
"너를 따르라고?"
"지금 따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존재니까 나를 따르라고. 잘 해 주겠다고요."
"그게 뭐냐? 그걸로 코어를 꼬시겠다고 한 거냐?"
"아니 그거야 세진님과 제가 주고받는 말로 바꾸니까 그렇게 볼품없이 들리는 거지만 뜻만 전달하는 코어 사이의 정보 교환에선 굉장히 그럴 듯한 거거든요."
"그래서 결과가 그 코어의 폭주냐?"
"그건…."
어리는 할 말이 없는지 말끝을 흐리고 만다.
"그래서 그 괴수는 어쩌고 있는데?"
"그냥 있어요. 5등급 이면 공간의 우두머리 몬스터 있잖아요."
"그래. 거기도 7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지."
"그 몬스터랑 같이 다정하고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요."
"다, 다정?"
"말이 그렇다고요. 그냥 5등급 이면 공간의 중앙에 있어요."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만."
세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그렇다고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서 가서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세진과 자넷은 서둘러서 북한의 SG스페이스로 향했고, 5등급 이면 공간 안으로 진입했다.
서둘러 이동한 북한 SG스페이스의 5등급 이면 공간 안은 아직까지는 평온했다. 하지만 괴수가 6등급 이면 공간을 벗어난 것은 절대 간단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그나마 아직 여기 있는 것이 다행이네."
세진과 함게 급하게 달려왔던 자넷이 그나마 아직은 별 이상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6등급 이면 공간에서 나온 괴수는 아직 5등급 이면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이 이면 공간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이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정말 난리가 났을 거야. 저게 현실에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정말 재앙도 그런 재앙이 없지."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저 괴수에다가 지금 여긴 7등급 우두머리도 한 마리 있고, 그 외에 5.6.7등급 몬스터들도 많아. 여긴 5등급 이면 공간 안이라고."
자넷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괴수 하나도 사실 벅찬 상황에서 그 외에도 숱하게 많은 몬스터들이 있는 것이다.
"어쩌긴 일단은 상황을 지켜봐야지."
세진은 그러면서 어깨 위의 어리 앵무를 바라봤다.
- 저는 왜요? 전 가만히 있었어요.
"저걸 끌고 나온 것이 너잖아. 어리."
- 하지만 제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또 꼭 저 때문에 나온 거라고 할 수는 없죠. 확인되지 않은 것을 사실처럼 이야기하지 말아주세요.
어리가 슬쩍 발을 뺀다. 확실히 괴수가 6등급 이면 공간에서 나온 것이 꼭 어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증거 따위가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리가 발뺌을 한다고 해도 딱히 뭐라 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