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97화 (197/298)

< --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의 변화 -- >

"에테르 기관을 사용하는 전사들과 그렇지 않은 전사들 사이에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요."

어느 날, 어리가 불쑥 홀에 모습을 드러내며 한 말이었다.

내용을 들은 세진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의체의 종류는 지금까지 세 종류로 나뉘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두 종류로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는 의체와 그렇지 않은 의체로 나뉘고, 에테르 기관이 없는 의체는 프락칸과 수련자로 나뉜다.

그 중에서 의체의 에테르 기관을 이용해서 능력을 키우는 이들이 벗의 전사들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얻은 코어를 이용해서 의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쓴다.  물론 그렇다고 코어만 많다고 의체를 무조건 강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테르 기관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서 그 기관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을 시켜야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거기에 에테르를 이용한 여러 기술들을 익히고 난 후에는 그것들 또한 수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숙련도를 높여야 기술 강화도 할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또 에텔론이란 화폐가 필요하다. 세진이 운영하는 헌터룸에서 사용하는 화폐 단위로 익숙한 에텔론을 그대로 썼기 때문인데, 어쨌거나 이 에텔론의 획득은 현금으로 거래를 해서 구하거나 혹은 사냥을 해서 몬스터 코어를 얻어서 그것을 팔아서 마련하는 방법 이외에는 거의 다른 방법이 없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헌터룸 사용자들의 의체는 그렇게 에테르 기관과 기술을 성장시키는 방법을 쓰는 것들이다.

하지만 프락칸의 비기는 오직 그것 하나만 몸에 익혀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에테르 기관이 없는 몸을 사용한다.

그리고 또 아주 특별한 이들에게는 에테르 기관이 없는 의체를 제공하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이들이 각성자나 수련 능력자들이다. 각성자나 수련 능력자들은 헌터룸을 통해서 의체를 얻은 후에도 자신들의 각성 능력이나 수련 능력을 어떻게든 의체로 구현하고 싶어 했고, 그 때문에 에테르 기관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에테르 기관이 없는 몸을 받기를 원했다.

그렇게 의체 사용자들도 세 종류로 나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리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무래도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성장이 에테르 기관이 없는 이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빠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이야기 한 것이다.

심지어는 어리 공방 5인조가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는 상황까지 생기고 있었다.

그들에겐 처음부터 에테르 기관이 없는 의체를 제공했기 때문에 각자 자신들의 각성 능력과 수련 능력을 사용해서 의체를 성장시켰었다. 물론 김혜인 박사는 프락칸으로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키워야 했었고.

그런데 누구보다 빨리 시작한 이들이 의체를 사용하는 이들 중에서는 최상위가 되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상황이 되었고, 어리는 그게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문젠데, 자넷은 어떻게 생각해?"

"그냥 둬도 될 거라고 생각해. 알잖아. 어차피 에테르 기관을 가지고 있는 쪽은 마스터 경지에 이르는 것도 바늘 구멍이야. 그랜드 마스터는 더 어렵지."

"그래봐야 별로 차이도 안 나는 거 아냐?"

세진은 솔직히 마스터의 경지에 이르거나 그랜드 마스터가 되는 이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보면 소수의 인원만 가능한 경지를 두고 어느 쪽이 더 쉽고 어느 쪽이 더 어렵다는 말은 적절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엄연히 우리 연방에서 확실한 통계가 나와 있다고. 에테르 기관이 있는 헌터들과 그렇지 않은 헌터들은 성장 비율이 달라. 그건 확실하다고."

"자넷, 그거야 당연하지. 생각을 해 봐라. 거기서 에테르 기관이 없는 헌터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그 사람들 모두 생체 에테르바디가 아니라 본체로 사냥하는 헌터들이거나 원주민들이잖아. 즉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소리지. 그러니 당연히 목숨 걸고 수련하고 사냥하는 사람들하고 의체를 이용해서 최후의 안전을 보장받은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겠냐? 차이는 거기서 생기는 거지. 그렇게 보면 에테르 기관이라고 하는 것도 꽤나 좋은 시스템인 거다."

"그런가? 아닐 텐데? 에테르 기관이 있는 경우에는 성장 한계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다고 들었는데?"

자넷은 세진의 말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연방에서 배운 것들 때문에 쉽게 인정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의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있다는 건데 말이야..."

세진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별 문제 아니야."

그런 세진에게 자넷은 이전과 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다.

"어째서?"

"그거야 에테르 기관이 없는 사람들은 의체를 통해서 빠르게 성장해도 본체의 성장이 늦잖아. 하지만 에테르 기관이 없는 사람들은 의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본체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그거 알아? 본체로 프락칸의 능력을 보이는 이들이 생기고 있어."

"그 이야긴 나도 들었어. 놀랄 일이지. 뭐 전부는 아니고 일부라곤 하지만 에테르를 정화하는 능력자들이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지."

"그건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 능력자들과 같은 거라고 생각이 되. 결국 프락칸 능력이라는 것도 수련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거였단 소리지. 그걸 꽁꼼 숨기고 알려주지 않은 거였어."

자넷은 조금은 화가 난 듯이 씩씩 거렸다.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지. 비기를 아무에게나 알려주는 경우는 당연히 없는 거잖아. 거기다가 우리 프락칸 1천명 중에서 본체로도 가능한 사람은 겨우 서른 명도 안 되거든? 그 소리는 정말로 특별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만 가능한 것이 프락칸 능력이란 소리겠지. 그러니 알리고 싶어도 어려웠을지 몰라."

"세진은 너무 좋게만 생각하려는 것 같아. 그들도 분명히 자신들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숨겼을 거야. 분명해."

자넷은 데블 플레인 연합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티를 분명하게 내고 있었다.

세진도 연방과 연합 사이에 미묘한 대립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다.

여기서 연방도 연합에게 알리지 않고 숨기는 것이 많지 않냐고 해 봐야 자넷에게 좋은 소리를 들은 것은 없다는 것을 세진도 분명히 아는 것이다.

그 정도 눈치는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터득한 세진이었다.

"이제 제 이야기도 좀 들어 주시겠어요? 두 분?"

그런데 잠시 잊고 있었던 어리가 뭔가 잔뜩 화가 나서 볼을 부풀리고는 세진과 자넷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으응?"

그 순간, 세진은 자넷에게만 신경을 쓰다가 어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마, 말해보렴. 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였지? 에테르 기관 사용자들과 비사용자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는 문제에 대해선 뭐 본체의 성장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그냥 둬도 될 것 같다만."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하고, 그 다음 문제요."

"또 무슨 문제가 있었어?"

자넷도 분위기를 읽고 어리에게 붙어 앉으며 관심을 보였다.

"칫, 일단 넘어가 주겠어요. 하지만 기억은 해 둘 것이에요."

어리가 살짝 볼에서 힘을 빼며 둘을 용서해 준다.

"그건 그거고요. 아무튼 우리 주민들 사이에서도 튜얼리스트가 등장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까 이야기했던 에테르 기관이 없는 의체 사용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높은 확률로 듀얼리스트가 되고 있어요."

"수련 능력과 각성 능력이 함께? 그건 다르게 이야기하면 각성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네? 수련이야 누구나 어느 정도만 하면 어떻게든 수준이 낮아도 수련 능력자는 될 수 있으니까 말이지."

세진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뭔가 각성을 부추기는 것이 있다는 소리다.

"맞아요. 에테르 기관이 없는 사람들이 높은 비율로 각성을 하고 있는 거죠."

"이유는 알아봤어?"

자넷이 물었다.

"네. 알아봤어요. 그랬더니 별 거 아니었어요. 의체가 에테르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 에테르의 힘으로 각성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각성이란 것이 몸에도 영향을 주지만 정신과 기억에도 영향을 주거든요. 그래서 본체로 돌아가도 각성의 영향이 남는 거죠. 그게 반복되면서 결국은 본체도 각성을 하게 되는 거고 거기다가 의체에서 수련을 하던 것이 본체에도 영향을 주니까, 짜잔 하고 듀얼리스트가 되는 거예요."

"그럼 에테르 기관 사용자들과 격차가 생기느니 마니 하는 이야긴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세진이 뚱하게 어리에게 물었다.

"왜요?"

"아니 듀얼리스트가 되는 거잖아. 본체가. 그럼 당연히..."

말을 하던 세진이 입을 다물었다.

듀얼리스트가 되어서 좋은 것이 뭐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테멜 안의 주민이다. 본체가 위험할 일도 없고, 본체가 듀얼리스트라고 딱히 그 힘으로 뭔가 할 일도 없다. 사실 그랜드 마스터인 자넷과 세진조차도 외부 활동을 할 때에는 물론이고 테멜에 머물 때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의체로 보낸다. 도대체 본체가 듀얼리스트 되어서 어디 써 먹을 것인가 말이다. 테멜 밖의 지구라면 엄청난 일이겠지만 테멜 안에선 별 것도 아닌 일이다. 개인적으로 건강하고 힘이 강해진다는 의미가 있을 뿐, 몬스터와 싸울 일도 없는 이들에겐 크게 끌릴 일은 없는 변화일 것이다.

어쩌면 도리어 그런 능력을 본체가 지니게 되면 쓸데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가?"

"뭐가 곤란하다는 거예요? 테멜의 주민들은 어리가 꽉 잡고 있는 것이에요."

"그렇다고 어리가 주민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것은 아니잖아. 힘이 생기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자넷도 걱정이 되는 표정이다.

"괜찮은 것이에요. 잘못을 저지르면 혼을 내 줄 것이에요."

어리는 주민들 중에서 듀얼리스트가 생기거나 말거나 별로 상관이 없다는 투다.

사실 어리의 입장에서 테멜 안에서는 어리를 거스를 수 있는 존재란 없다. 그러니 주민들 중에 능력자가 생기는 것은 그리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세진과 자넷의 입장에선 또 다른 문제다. 테멜 안에서 새로운 하나의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 안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낼 불안한 씨앗들이 자라는 것은 무척 염려스러운 일인 것이다. 이후에 어리나 세진, 자넷 등이 나서서 무력을 동원해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세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언젠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겠지. 그 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세진이 중얼거렸다.

"그럴까? 다시 테멜 밖으로 내보내야 할 때가 올까?"

자넷도 세진의 결론을 짐작했는지 그렇게 물었다.

"이곳에서 살 수 없다고 들고 일어나면 방법이 없잖아. 죽일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야."

"하지만 여기에 올 때 했던 약속이 있잖아. 그들이 작성한 서류들엔 그들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 그러니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도 가능해. 아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약속을 어긴 것은 그들이니까. 물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아니야. 이것도 한 방법이겠지. 사라들 중에서 듀얼리스트가 늘어나고 그들이 이곳에서 사는 것을 거부한다면 내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목숨 걸고 원하는 것을 쟁취해야 하는 삶을 원한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또 그렇게라도 지구에 능력자의 수를 늘 려주는 것이 나쁘지도 않을 거고 말이야. 대신에 테멜에 대한 정보 통제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지. 뭐 이미 이곳이 벗에서 만든 이면 공간이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겠지만 말이지."

"호호, 그거야 다들 짐작하고 있는 거잖아. 벗에서 특별한 이면 공간을 이용해서 벗의 정체를 감추고 있다는 건 이젠 비밀도 아닌데 뭘."

"맞아요. 다들 테멜이란 것을 모르니까 그냥 이면 공간이라고들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쳇, 어리는 이면 공간 따위가 아니라 무징무징한 테멜의 주인인데 말이에요."

"무징무징은 뭐냐?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에헷, 귀엽지 않아요?"

"뭐, 귀엽긴 하구나. 자주 들으면 두드러기가 날 것 같아서 문제긴 하지만."

"세진님! 미워요."

어리는 그 말과 함께 홀에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세진은 자넷을 보며 슬쩍 어깨를 으쓱했다. 어리가 삐친 것은 절대 고의가 아니란 표현이지만 자넷은 어리를 놀리는 세진을 뚱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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