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96화 (196/298)

< --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의 변화 -- >

세 명의 사내가 커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앞에 놓인 노트북을 살피고 있고, 그 앞에 테이블 너머로 한 명의 사내가 홀로 앉아서 긴장된 표정으로 세 사람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셋 중에서 중앙에 앉아 있던 금태 안경의 사내가 무심한 듯 화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에테르를 비정상적으로 주입해서 돌연변이를 발생시키는 연구는 사실상 괴물들만 만들어 내는 것으로 성과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련 능력자와 각성 능력자가 실험체들을 상대로 번갈아가며 에테르와 기(氣)를 주입한 결과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보고자 입장의 사내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준비한 보고 내용을 읊었다.

"어떻게 되었단 건가?"

"비약적인 능력의 향상이라고 파악되었습니다. 같은 능력이라도 그 파괴력이나 영향력이 월등하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세한 설명은 보고서에 있습니다만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면 각성 능력자와 수련 능력자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이 서로 상반됩니다. 그 때문에 각성 능력자는 에테르라는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수련 능력자들은 지구 본연의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배척하고 밀어내며 때로 충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내용은 이미 아는 내용이고."

짧게 이야기하란 뜻의 말에 보고자의 이마에 살짝 땀이 솟았다.

"네, 네. 그런데 이 성질을 이용해서 실험 대상자가 주로 사용하는 에너지 통로를 강화시키는 것이 이번 실험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담금질을 하는 것이라 보면 되는 건가?"

상관이 이해를 한 듯 하자 보고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조금 마음의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맞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듀얼리스트라고 불리는 특별한 능력자들의 수련법과 매우 유사한 효과가 있습니다. 비록 두 가지 능력을 쓰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데 요긴한 방법입니다. 더구나 이 방법은 각성 능력자가 수련 능력자 모두에게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큽니다."

"그렇다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수련 능력자인가?"

"그렇습니다. 이미 모두 아시는 것과 같이 수련 능력자들은 인도와 중국, 한국, 일본 쪽에 몰려 있습니다. 물론 우리쪽이나 다른 지역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수가 적고 또 기(氣)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실험 내용에 적합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양의 기 수련법, 특이 중국과 한국의 방법이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보다는 대화가 매끄럽게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이 없던 왼쪽의 반대머리 사내가 흰 눈썹 아래로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보고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크음. 그렇단 말이지. 우리 쪽의 수련 능력자들은?"

그는 별로 심기가 편치 않은 듯 했다. 그도 자국의 수련 능력자들의 수준이 별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 내용을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선 꼭 필요한 질문이고 중앙에 있는 이를 보좌하는 입장에서 그가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다.

"사실 마법이나 연금술 쪽이라서 그다지 성과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주술 쪽이 더 나은 실정입니다. 그러니 그런 능력자들에게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의 실패도 있었고 말입니다."

"크음. 그렇긴 하지."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보고를 받고 있던 세 명의 사내들이 얼굴을 굳혔다.

실험의 실패는 곧 인명 피해, 그 중에서도 사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에 초기의 연구에 대한 기록들은 지금은 이들의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 연구 성과를 제외한 과정에 대한 것은 완벽하게 말소된 상태였다.

만약 그것이 외부로 알려지면 얼마나 큰 후폭풍이 생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다시 언급하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었고, 보고자도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 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누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건가?"

이번에는 중앙에 있던 금태 안경의 사내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의제가 바뀌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가 해야할 질문인 것이다.

"그렇습니다만 어디와 손을 잡을지에 대해선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어디가 좋을 것 같은가?"

"아무래도 한국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보고자는 한국과 손을 잡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유는?"

"중국은 일단 제외했습니다. 그들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고 또 어느 정도 실험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우리와 손을 잡아봐야 그들로선 별로 얻을 것도 없다고 여길 것이고, 당연히 우리 쪽의 성과를 빼앗을 생각만 하지 우리와 좋은 파트너가 될 생각은 없을 것입니다."

"일본은?"

"일본에도 수련 능력자가 있지만 사실 그들은 개인은 몰라도 단체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계산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은 면이 있습니다. 멀리 보지 못하고 표면적입니다."

"그런데 한국인 이유는?"

"일단 수련 능력자들의 성향이 실험과 잘 맞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한국의 경우, 아직은 그 정치 세력들이 일반 국민들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 가능한 이들입니다."

보고자의 이마에는 이전보다 많은 땀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꼬치꼬치 따지는 듯한 수장의 질문은 보고자를 지치게 하는 것이다.

"그게 이유가 되나? 그들에게 국가와 국민을 배신하고 우리를 위해서 뭔가를 하게 만들 계획인가?"

지금껏 말이 없던 오른쪽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할 내용이니 누가 물어도 상관없을 질문이었다.

"그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그런 성향은 우리와 한국이 손을 잡고 연구를 할 때에 그들 일부에게 이익을 보장하면 연구에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예상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를 우리가 차지할 수도 있고?"

보고자의 말에 질문을 던졌던 오른쪽의 사내가 기분 좋은 미소를 띠며 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 미소를 지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닙니다. 그저 연구에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방해를 받지 않는 선에서 멈춰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연구를 진행하게 될 사람들, 즉 정치인이 아닌 연구원들은 절대로 그들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우리가 이익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정치인이 아닌 한국인들은 애국이나 애민 정신이 제법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정치를 하는 이들은 대부분 악취가 나는데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는 위에는 더러운 물이 고여 있는데 아래론 맑은 물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파악한 한국의 실정은 그와 유사합니다. 물론 모든 경우에 그러하듯 예외 는 있습니다."

"당연하겠지. 그래도 그 쪽이 나을 것 같긴 하군. 먹이를 달라는 것들에겐 먹이를 줘. 그리고 담 밖에서 놀게 하고, 우린 담 안에서 연구를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을 하겠습니다."

"참, 그건 어떻게 되었지? 벗의 바이오 바디 확보 작전이 계획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다시 중앙의 앉은 사내가 의제를 바꿨다.

"전면 보류입니다. 미국에선 절대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그보다 전에 일을 벌였던 이들이 모두 시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지?"

"벗의 전사들이 몬스터 퇴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직후에 습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습격은 성공적이어서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전사들 모두를 사살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워낙 기습이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마무리가 되었다는데 그 직후에  벗의 응징이 있었습니다. 습격 후에 사체들을 수거하기도 전에 습격에 참가한 모두가 실종되고, 이후에 그 일을 추진한 단체의 수장부터 아래로 줄줄이 관계자들 모두가 실종 혹은 사망처리가 되었습니다. 단 27시간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도망가서 숨어 있는 이들이 몇 있기는 하겠지만 오래지 않아서 처리가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벗에서 나서지 않아도 벗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이들이 나서서 추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네. 우리도 몇 명 확보하기 직전입니다."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 그런데 어떤 놈들이야?"

"무기상들이었습니다."

"죽음의 상인들이 나섰단 말이지? 그들이 나섰다면 세계의 군수사업자들 모두가 연관이 있을 텐데?"

"아무래도 경고가 나오던가 아니면 직접적인 행동이 있던가 할 것 같습니다."

"예상은?"

"직접 행동이 유력합니다. 3년 이상 외부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오판을 하는 이들이 생겼다고 여길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응징을 통해서 벗의 건재를 과시하려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 행동으로도 충분한 과시가 될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만,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능력을 사용할 의향이 있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각오도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능력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능력을 사용하는 마음이 무서운 것이다?"

"그렇습니다."

"좋군. 아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

보고자는 수장의 칭찬에 몸이 살짝 떨릴 정도로 환희를 느꼈다. 상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이 좋은 일이다.

"어디에 누구?"

"뭐가?"

자넷의 물음에 세진이 도리어 되물었다.

"그 뭐라고 했지? 그 용병들 말이야."

"Blackwaters라고 했지. 미국에 본부가 있지만 실제론 전 세계적인 민간군사기업이지. 아니 그랬지. 지금은 없으니까."

말 그대로 지금은 뼈대가 무너진 상태로 거의 해체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단체가 바로 그곳이었다.

아프리카에 파견했던 의체 전사들 한 팀이 숙소에서 몰살을 당하는 순간 그 내용은 곧바로 헌터룸의 관리 프로그램에게 알려졌고, 그와 거의 동시에 어리가 세진과 자넷에게 알렸다.

그리곤 곧바로 어리와 함께 세진과 자넷이 출동을 했고, 그들이 퇴각하기도 전에 어리의 테멜 안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당연히 심문 과정이 이어졌고, 내막을 알게 된 직후, Blackwaters 본부로 날아간 세진과 자넷이 최고 지휘자부터 시작을 해서 사건과 관련이 있는 모든 이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잡아서 심문하고 또 잡아서 심문을 하는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27시간 후에는 거의 모든 관계자를 잡아서 처리했다.

그 중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고, 죽지 않은 이들은 영원히 지구에서 실종 처리가 되기도 했다.

물론 깊게 연관되지 않은 이들은 다시 풀어주기도 했지만 실제로 민간군사기업의 용병들 중에서 세진이나 자넷이 안타까워 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테멜에서 억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경우가 많았다. 이후로 적응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 가족들과 연결을 시켜 줄 것인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민간군사기업 뒤에 있는 죽음의 상인들과 또 그들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 군수기업들을 대상으로 어떤 대상을 잡아서 경고를 할 것인지를 의논중인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은 처리했다고 치고, 배후 중에서 누굴 칠거냐는 거지."

"생각을 해 봤는데 레이시어니(Raytheoni)가 제일 알맞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미국이야. 하필이면."

"미국이란 것이 문제가 되는 거야?"

"뭐 대부분의 군수기업이 미국에 있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문제가 될 것도 없긴 하겠다. 다른 놈들을 때리려고 해도 열 개 중에서 여섯 일곱은 미국 회사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죽음의 상인으로 이름 높은 놈들 중에서 이번 용병들과 관계가 있는 놈들 몇을 납치하고, 레이시어니(Raytheoni)는 확실하게 관계자를 찾아서 문책을 해야지. 성명도 발표하고.

""바쁘겠네?"

"바쁘긴 뭐가? 정보만 얻으면 일은 어렵지 않으니까 괜찮아. 이참에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이들에게 정보 좀 내 놓으라고 하지 뭐."

"호호호. 그러니까 다른 정보 단체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보 제공을 요청한다고? 그거 좋은 생각이다. 맞아. 아주 신나서 정보를 제공해 줄 거야."

자넷은 세진의 생각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일주일이 흐르기 전에 죽음의 상인 중에서 각국의 긴장을 유도하며 무기 거래로 떼돈을 벌었던 굵직한 이들이 다수 실종이 되었고, 이어서 레이시어니(Raytheoni) 또한 최고 경영자를 비롯한 실무자 다수가 실종되는 일이 벌어졌다.

벗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 정보 단체가 제공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벗의 응징이 타당함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렇게 세상은 또 한 번 시끄러워졌고, 벗의 전사들에 대한 어떤 도발도 일어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벗의 전사들도 테멜 밖에서는 언행을 조심하는 까닭에 조금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벗의 전사들을 위협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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