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94화 (194/298)
  • < -- 우리가 좀 오래 있었나봐. -- >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

    자넷이 세진의 품으로 파고들며 물었다.

    벌써 함께 생활을 하며 부부로 산 것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구에서의 시간만이 아니라 게이트 너머의 우주에서 보낸 시간까지 더하면 어지간한 부부가 중년 이상이 되었을 시간을 함께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의 애틋함은 여전했다.

    "그러게, 이제 지역코어까지 나왔으면 대륙코어와 행성 코어만 남는 거지. 뭐 지역 코어조차도 당장은 어쩌지 못하지만 말이야."

    "호호홋, 그래도 여긴 솔직히 말해서 여건이 너무 좋잖아."

    "엉? 무슨 소리야?"

    세진은 자넷의 뜬금없는 소리에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이구 귀여워."

    자넷은 그런 세진의 코를 잡고 흔들었다.

    "아아아, 아파! 그만하고 뭔 소린지 이야기나 해 봐."

    "호호호. 그러니까 자기야, 다른 곳에선 말이지, 그 코어란 것을 지키는 몬스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코어를 품고 있는 몬스터가 있어. 무슨 소린지 알겠어?"

    "음? 그게 차이가... 있구나. 큰 차이가 있어."

    세진은 뚱하게 대꾸를 하려다가 뭔가 깨닫는 것이 있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알겠어? 무슨 소린지?"

    "그래. 알았어. 지역 코어를 지닌 몬스터와 괴수는 차이가 있지. 우린 괴수 셋을 처리하면 지역 코어를 그냥 얻을 수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 말이지?"

    "맞아. 지역 코어 자체가 뭔가 하는 것이 아니야. 그건 그냥 거기 있는 거지."

    "잘하면 그 괴수들 셋을 따돌리고 지역코어만 어떻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진이 살짝 눈을 굴리며 물었다.

    "그래서 그 괴수들이 세상으로 뛰쳐나가서 날뛰게 되면 그 책임은?"

    자넷이 세진에게 핀잔을 주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거야 뭐, 세 마리가 한꺼번에 돌아다니지 않으면 적당히 한마리씩 각개격파를 하는 거지."

    "이 사람이 왜 이럴까? 그거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자그마치 괴수란 말이야. 7등급 우두머리 보다도 강한 괴수. 그게 세상에 풀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아주 난리가 날 거야. 응?"

    "가만 보자, 일본에도 SG가 하나 있지 않나?"

    "세진!"

    자넷이 세진의 말에 빽하고 소리를 지른다.

    "하하하. 농담이야 농담. 아직은 지역코어를 건드릴 때가 아니지. 자칫하면 난리가 날 테니까 말이야. 위에 있는 대륙 코어나 행성 코어가 발끈하게 되면 곤란하지."

    "그게 또 문제야. 이전까지 있었던 행성들에서는 그렇게 의지가 강한 코어는 없었거든. 다른 코어들은 그냥 정해진 수순에 따라서 성장하고 또 확장하는 그런 모양이었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해 나가는 것은 아니었거든. 그래, 생물이 아니라 정해진 순서를 따라가는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었어."

    "그런데 여기 지구의 코어들은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것도 생물처럼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것까지 가능한 상태로?"

    세진이 자넷의 말을 받았다.

    "응, 그래서 걱정이야. 만약 이곳에 있는 코어들이 다른 우주로 퍼지게 되면 굉장한 위험이 되지 않을까 싶어. 그게 문제야."

    "그럴 일은 없지 않을까?"

    세진은 별 걱정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리가 있잖아. 어리가 데리고 있는 부하들 하나하나가 전부 그런 코어들이야. 거기다가 지구상에는 그런 코어들이 수도 없이 많지. 가장 기초적인 1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도 작은 의지는 지니고 있어.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지만 그런 화이트 코어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결국에는 행성코어까지 성장하는 메카니즘을 지니고 있다고."

    "어리는 절대 모르겠다고 하던데? 그리고 내가 살펴봐도 모르겠던데?"

    "세진이 사람의 유전자 속에 숨어 있는 유전 정보를 모두 알 수 있어? 심지어 코어는 그 정보를 에테르란 에너지 속에 숨겨 놓은 형태야. 그걸 세진이 알 수는 없는 거지. 지금 어리하고 세진이 파악하는 영역도 대단하지만 그것도 실제론 코어가 지닌 비밀의 일부일 뿐인 거야."

    "그런가? 아직 멀었다는 이야기네."

    "멀었지. 우리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지역 코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래. 그러니까 살살 해야지. 왕창 깨부수다가 대륙 코어나 행성 코어가 열 받아서 뛰쳐나오는 날에는 그야말로 망하는 거니까. 계획대로 사람들을 적응시키고 또 프락칸을 양성해서 지구를 정화하는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 프락칸이 중요하지."

    "생각 같아서는 그 뭐라고 했어? 프락칸 말고 몬스터들 약화시켜서 잡는데 앞장서는 그 사람들 말이야."

    "깝딴?"

    "그래 맞아. 그 사람들 능력도 어떻게 슬쩍 할 수 없을까?"

    세진이 은근히 자넷의 의견을 물었다.

    사실 괴수 정도 되는 몬스터는 세진이나 자넷이 나서도 잡기 어려웠다.

    세진이나 자넷은 이제 그랜드 마스터의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물론 품고 있는 에테르의 양이 조금 미흡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채워질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력을 지니고 있어도 괴수를 직접 상대해서 이길 거라는 자신은 없었다. 아니 세진과 자넷 둘이 힘을 모으고 어리가 7등급 몬스터 다수를 동원해도 괴수 등급 몬스터는 한 마리 정도를 잡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러니 세 마리 괴수가 지키는 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얻으려면 다른 수단을  세워야 할 거고, 그런 고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깝딴이란 존재였다.

    프락칸과 비슷하게 에테르를 기존의 기운으로 돌리는 능력이 있지만 살아 있는 몬스터의 몸에서 직접 에테르를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어서 부수적으로 몬스터를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그런 깝딴들이 여럿 모이면 따로 전사들의 도움이 없어도 몬스터들을 녹여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세진이니 욕심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쎄? 그 쪽은 별로 선이 닿지 않는데?"

    "왜?"

    "아, 그 종족이 원래 좀 그래. 지들 행성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어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출장도 잘 안 가지. 뭐 솔직히 지들끼리 친한 데블 플레인 연합에서는 나름 빨빨거리고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밖으론 안 나와. 그래서 우리 회사하고도 거래가 없다고 알고 있어. 그 쪽 거래의 대리자는 전에 봤던 그 여자니까."

    "프락칸?"

    "응. 프락칸."

    "그럼 곤란하겠네. 이번에 뭘 부탁하면 전에 했던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을 시킬 것 같으니까 말이야."

    "하다하다 안 되면 모를까 그 전에는 생각도 하지 마. 차라리 지구에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아. 나도 그 쪽으로 넘어갔다가 괜히 세바스에게 붙잡히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다고."

    "무슨 소리야? 자넷은 평생 휴가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었어? 회사에는 그만한 일거리는 충분히 줬다면서?"

    "그야 그렇지만 세진도 아는 것처럼 쓸모가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부려먹으려고 드는 것이 조직이란 곳이잖아. 그러니까 일치감치 피해 있는 것이 최선이지."

    "그런데 자넷."

    세진이 자넷의 말을 듣다가 조금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으응? 왜? 뭐가 잘못 된 거야?"

    "휴우, 자넷, 뭐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너 다시 게이트 넘으면 그곳은 시간이 전혀 안 흘렀을 거란 말이지. 그러니까 그쪽에선 네가 이렇게 도망와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으응, 그러니까... 뭐야? 결국 세바스나 회사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지내는 건 꿈에도 모를 거고, 돌아가면 예전, 아니 나한테는 예전이지만 실제론..."

    "뭐 그런 거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흐응.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인데? 실제론 엄청난 시간의 득을 보는 건데 왜 이렇게 기분이 별로지?"

    자넷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한껏 자유를 느끼며 회사라는 조직에서 벗어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고 있었는데 실제 회사에선 아무것도 모르고, 또 달라진 것도 자넷 자신 이외엔 없을 거란 사실이 분한 생각이 든 것이다.

    "훗, 뭐 그래도 상관없어. 생각해 보니까 지금 게이트를 넘어가도 회사에서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키기엔 휴가 기간이 너무 짧으니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란 소리잖아. 적어도 게이트 넘어가서 몇 년 동안은 자유로울 거란 소리니까 좋은 거네. 뭐. 지금은 억울해도 돌아가면 확 달라진 내가 되는 거잖아. 세바스는 잠깐 사이에 그랜드 마스터의 완숙한 경지에 오른 나를 상상도 못할 거 아냐? 후후훗."

    자넷은 또 금방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생각만 조금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이는 것이다.

    벗에서 파견한 전사들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전 세계의 몬스터 영역들이 빠르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등급 혼합형이 아닌 곳이 먼저 정리가 되었고, 이후에는 등급 혼합형 몬스터 영역이 정리가 되었다. 그 중에는 5등급 몬스터가 등장했던 3등급 이면 공간도 있었고, 5등급 몬스터가 나왔던 4등급 이면 공간도 있었다.3등급까지는 천공기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이면 공간들이 정리가 되었다. 물론 그래봐야 4등급 우두머리가 있는 곳까지가 한계였고, 희생도 적지 않았 다.

    하지만 5등급 우두머리가 있는 곳은 벗에 특별하게 의뢰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이면 공간을 공략하는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것도 벗들의 일반 전사들은 아무리 해도 4등급 우두머리가 한계였고, 특별한 전사들이 나서야만 겨우겨우 5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해결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어찌되었건 이면 공간이 겹쳐 있는 오버렙 스페이스가 아닌 몬스터 영역들을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벗에게 전사를 요청한 나라들은 이면 공간이 나타나기 무섭게 전사들이 나타나서 정리를 해 주는 덕분에 몬스터 영역 발생으로 인한 인명 피해나 물질적 피해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했다.

    그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도 벗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 때는 벗에서도 전사들의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대신에 새롭게 양성하고 있는 전사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된다면 그 때에는 다시 전사를 파견하는 문제를 생각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테멜 안에서는 새로운 전사들이 헌터룸에서 훈련을 시작하고 있었 다.

    이전에 만들었던 것과 같은 규모의 헌터룸, 즉 1천명 단위를 수용할 수 있는 헌터룸이 네 곳이나 더 만들어져서 사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기존의 이민자들이나 새로 이민을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헌터룸 사용자를 구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역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원자가 많았지만 기존의 이민자들 사이에선 나이가 많은 이들도 조금씩 호응이 생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을 다칠 일이 없다는 것이나 새로운 몸으로 뭔가 배우고 익힐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다는 것이 큰 관심을 끈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턴다 벗의 전사들이 의체, 즉 만들어진 몸을 사용하는 인조인간이란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문제 때문에 헌터룸 관리 프로그램이 며칠을 정보 검색 끝에 의체 사용자들 몇이 그 정보를 퍼트렸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의체로 다른 나라에 파견을 나간 상태에서 경솔하게 입을 놀린 것이다. 그런 이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 덕분에 그들의 말이 적당한 정보 분석을 거쳐서 의체, 즉 인조 신체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가 된 것이다.

    세진은 즉시 그런 말을 흘린 이들의 의체를 회수했다.

    그렇다고 어리 테멜에서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서약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적잖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의체를 다시 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어쨌건 그 문제가 점점 시끄럽게 공론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진은 벗의 공식적인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이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으음. 어쩔 수 없이 정보를 숨기거나 왜곡해야 한다는 말인데, 어떻게 하지?'

    세진은 사람들이 인조인간이란 존재를 알게 되면 그들에게 모든 몬스터 문제를 맡기고 몸을 사릴 것을 걱정했다. 당장 각성자거나 혹은 수련 능력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의체 사용자들은 최소한 부상이나 사망의 걱정은 없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이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더 이상 몬스터 사냥에 나서지 않을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지구의 몬스터는 벗에서 의체를 이용해서 전담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류 전체를 패배자로 만들고 진취적인 기상을 꺾어 놓는 일이 된다면 차라리 의체의 활동을 제한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뭘 고민해?"

    "응? 알면서 뭘 물어?"

    "그러니까 그게 왜 고민이냐고. 의체의 수를 한정하면 되잖아. 딱 잘라서 지금 운영하는 5천. 그게 끝이라고 해. 그 이상은 안 된다고 말이야. 헌터룸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재료가 운석에서 나온 물질인데 그게 없어서 안 되다고 해. 그럼 결국 5천명으로 지구를 책임지란 헛소린 못할 거 아냐? 그리고 의체 사용자의 수를 제한하면 그만큼 걸러서 뽑을 수도 있겠지. 안 그래?"

    "그러니까 재능이 있는 사람만 전사로 쓰자? 나머지는 그냥 테멜 안에서만 훈련을  하도록 하고?"

    "그렇지. 그렇게 되면 고민 끝 아냐?"

    "음, 생각을 좀 해 볼 문제네."

    세진은 자넷의 제안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벗의 공식 발표가 있었다.

    [벗의 전사들은 특별한 신체에 정신을 빙의시켜서 그 신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한계가 있고 우연히 얻은 우주 광물에서 축출한 성분이 반드시 필요한 까닭에 그 수를 5천 이상으로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우리는 벗의 전사들에 대한 검증을 계속하고 있으며 자격이 되지 않은 이는 언제든 퇴출하고 새로운 전사를 양성할 각오가 되어 있다. 우리는 5천개의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전사의 양성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구의 몬스터 문제를 해결하는데 선봉장의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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