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93화 (193/298)

< -- 우리가 좀 오래 있었나봐. -- >

"이면 공간에서는 전자제품들 먹통 아니었나?"

형일이 벗 소속의 전사들이 싸우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통신이 안 되는 거지 언제 전자제품 자체가 못쓰게 된다고 했어? 뭐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되긴 하지. 이면 공간과 동화되면 이상하게 변하기도 하니까."

정진이가 그런 형일을 타박한다.

둘 모두 육체 능력을 사용하는 형태라서 전면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사실 4등급 이면 공간 안쪽이라고 해서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몬스터들이 처음에만 다수가 몰려 왔을 뿐, 이후에는 많아야 열 마리 정도가 무리를 지어서 달려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떼를 지어서 이동하는 전사들의 수는 400명이나 되지 4등급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가까이 오기 전에 녹아버린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았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이 한 번씩만 공격해도 몬스터들이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그중에 간혹 일행들 근처로 오는 것을 앞에서 막고 있는 것이 형일과 정진이, 선도일이었고, 떡배는 후방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떡배는 빨리 일을 마치고 헌터룸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을 터였다. 집에서 김혜인 박사가 귀여운 딸을 돌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4등급 일반 몬스터는 별 것 아니지만 4등급 우두머리는 어떻게 할 건지 알아?"

김형일이 정진이에게 물었다.

"뭐 세진님이나 자넷님이 해결하지 않을까? 두 분이 나서면 그냥 한 방에 해결이 될 텐데?"

"그래선 너무 허무하잖아. 어쩌면 우리들에게 직접 잡게 할지도 몰라."

"하긴 벗의 전사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이렇게 대대적으로 인원을 끌고 와서 촬영까지 허락한 상황이니 우리들에게 맡길 수도 있겠네."

"그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상위 몇 명만 뽑아서 우두머리를 잡게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둘의 대화에 선도일이 끼어들었다.

함께 일행의 선두를 책임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뭉치게 되고, 또 의견 교환도 편해진 사이가 되었다. 거기다가 선도일이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는 좀 더 벽이 허물어진 것 같아서 예전처럼 겉도는 것도 사라진 상태였다.

"수인이 프랑스 민간에서 많이 나오던 것이었나?"

세진은 4등급 몬스터로 수인 형태의 몬스터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이번 4등급 이면 공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수인, 즉 동물의 특징을 지닌 인간형 태였던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개과 동물의 머리를 지닌 인간이었고, 그 외에는 새의 머리를 지녔거나 동물의 꼬리나 손발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부 두 발로 걷는 것만도 어디야? 그래도 동물의 몸뚱이에 인간 머리가 달린 경우는 없잖아."

자넷이 곁에서 툭 던지듯 한 마디를 한다.

- 맞아요. 사람머리 괴물도 많은데 말이에요. 그런데 그건 주로 동양에 많은 것 같아요. 어리도 심심했는지 끼어들었다.

이번 이면 공간 공략은 사실 하나의 이벤트 같은 것이어서 긴장감이 거의 없었다.

어리와 연결된 세진은 다른 곳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는 의체들의 상황도 실시간으로 확인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쪽을 돕고 있는 노두병사들 덕분에 오히려 그 쪽이 더 빨리 이면 공간의 중앙 부로 접근을 하고 있었다.

- 어떻게 해요?

어리가 세진에게 물었다.

"그냥 되는 대로 하지 뭐. 꼭 그쪽에서 싸우는 것까지 촬영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지. 이면 공간이 사라지고 나면 촬영팀에게 다른 쪽에서 공략이 끝났다고 통보를 하면 그만이지. 그것까지 신경을 써 줄 이유가 있나? 그거 찍자고 사람들 기다렸다가 우리 전사들이 광대처럼 나서서 우두머리 잡아 주는 것도 웃긴 일이잖아. 저 쪽에서 따라다니는 카메라도 있는 것 같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지."

세진은 이번에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나서고 또 이면 공간 안에서 몬스터를 쉽게 잡는 장면을 충분히 보여줬으니 그만 하면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세진 일행을 따라왔던 촬영팀은 우두머리 몬스터의 사냥 장면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그나마 다른 곳에 떨어졌던 카메라 기자가 겨우겨우 사냥 장면을 확보한 것이 그들에겐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다만 녹두병사 몇이 달려들어서 우두머리 몬스터를 그냥 썰어 버리는 장면이라 긴장감도 없고 임펙트도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그것이 벗 이 지닌 힘의 일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했다.

이면 공간 공략이 순식간에 끝이 나고, 벗의 전사들이 나타났을 때와 같이 일제히 모습을 감춘 후에, 프랑스 언론에서 발표한 영상은 그 동안 벗이 사라진 상황에서 엉뚱한 생각을 하던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누군지 확인은 할 수 없지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전사들 몇이 나서서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를 순식간에 처리하는 모습은 확실히 충격적이긴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1등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으로 오해를 했을 법한 영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존재들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는 벗과 적대적인 관계가 되길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은 북한의 G스페이스에 슬쩍 걸치고 있던 발을 냉큼 빼버렸다.

그곳에 만들어 놓았던 훈련소까지 깨끗하게 청소해서 벗에게 양도한다는 뜻을 보였다. 벗이 없는 동안에 슬그머니 차지했던 것이 어떤 재앙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상황 이라 최대한 몸을 낮춘 것이다.

실제도 중국은 한중일 삼국 중에서 가장 많은 능력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인구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능력자에 비해서 수련 공간은 부족했다. 세계의 108개의 G스페이스가 있지만 그 중에 한반도에만 다섯 개가 있었다.

세진은 처음에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전 세계에 108개 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한반도에 몰려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나머지는 지구상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어떤 것은 바다에 있고, 어떤 것은 험한 산맥에 혹은 밀림에 있거나 남극과 북극에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쓸만한 G스페이스를 가까이 두고 그냥 둘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벗은 중국의 행위에 대해서 몬스터를 상대하는데 필요한 능력자의 양성을 위해 잠시 권리를 침범한 것에 대해서 관대하게 용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그 성명을 본 중국 입장에서는 뭣도 아닌 것이 거대한 나라인 중국을 용서하니  마니 하는 것에 속으로 울분을 삼켰지만 딱히 반발을 하거나 하진 못했다.

관심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만약에라도 벗이 나서서 세계의 정세를 재편하려고 든다면 벗은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유언비어까지 퍼지고 있는 상태에서 그까짓 발표에 발끈해서 문제를 일으킬 배짱이 중국에는 없었던 것이다.

어쨌건 이민 신청자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서 헌터룸의 전사가 되려는 지원자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 때문에 그들을 헌터룸으로 들여보내면서 테멜 내의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은 하지 않고 헌터룸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니 당연히 테멜 안의 생산 활동이 위축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이 움직이는 의체가 벌어들였다.

즉 각 나라에서 의체들을 고용하는 대가를 현물로 지불하는 것이다.

물론 그 비용이 싼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의 군대에게 몬스터 방어를 맡기는 것에  비하는 훨씬 싸게 먹히는 것이고, 또한 국제 사회에서 군대를 빌려 온 나라에게 굽실거릴 일은 없어졌으니 더없이 좋았다. 쉽게 말해서 더는 간섭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약소국들에게 가장 큰 기쁨이랄 수 있었다.

"우아아아앙! 억울해요!"

어리가 세진의 품에 안겨서 대성통곡을 한다.

"쯧, 그러니까 안 될 짓은 하지 말자고 했잖아."

세진은 그런 어리를 달래기는커녕 타박을 한다.

"하아, 괴수가 괜히 괴수가 아니거든? 아무리 욕심이 난다고 어떻게 괴수 사냥을 할 생각을 했다니?"

자넷도 어리를 달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사건인 즉, 어리가 세진 몰래 녹두병사를 대거 양성해서는 그것들을 이끌고 SG스페이스라고 세진이 이름을 붙인 그곳의 6등급 이면 공간으로 의기양양하게 쳐들어간  것이다.

그것도 이번에 중국으로부터 돌려받은 바로 그곳으로.

물론 세진과 자넷도 함께 하기는 했다. 워낙 어리가 한 번만 해 보자고 고집을 부려서 함께 가 준 것이지만 속으로는 실패를 하더라도 한 번 경험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자그마치 200마리가 넘는 7등급 녹두병사들을 이끌고 들어간 6등급 이면 공간 공략이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6등급 이면 공간은 1등급에서 7등급까지 모든 등급의 몬스터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들도 있었다. 각 등급에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고, 이면 공간 중앙에는 괴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세진과 자넷은 확실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6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란 것이 지역코어에 해당한다는 사실.

그러니 그런 지역코어를 지키기 위해서 괴수급 몬스터가 있는 것이야 당연했다.

"하지마안, 괴수가 세 마리나 있을 거라곤 안하셨잖아요. 한 마리였으면 어쩌면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엉엉엉. 에테르 아까워서 어떻게 해요. 엉엉."

어리가 다시 통곡을 시작한다.

사실 어리가 이렇게 통곡을 하는 이유는 6등급 이면 공간 공략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공략하느라 소비된 에테르 때문이었다.

어리가 7등급 몬스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게 공짜는 아닌 것이다. 그게 전부 에테르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인데, 어리가 에테르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외부에서 일정 수준의 에테르를 흡수하는 방법과 코어를 테멜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그 코어에서 에테르를 얻는 방법 밖에 없었다.

사실 코어를 통해서 에테르를 보충하지 않아도 어리는 충분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에테르만으로도 테멜 전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어리는 적잖은 에테르를 흡수하는 존재인 것이다.

거기다가 코어들까지 테멜로 가지고 들어와서 꿀꺽하는 것이니 지구의 행성 코어 입장에서는 흔적도 없는 큰 도둑이 생긴 상황이다. 어쨌거나 어리는 예전부터 에테르에 대한 욕심이 많고, 또 생존 욕구가 강해서 어지간하면 에테르의 손해를 보는 것은 무척 꺼린다.

그런데 이번 6등급 이면 공간에서 200 마리의 녹두병사 중에서 40마리 남짓만 남기고 모두 죽고 말았다.

아니 죽어서 에테르가 되어 그곳 이면 공간에 남게 되었다.

그러니 그 많은 에테르를 빼앗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리가 억울해서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쯧, 예상보다 좀 쎄긴 했지?"

세진이 어리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자넷에게 물었다.

"그렇긴 했어. 설마 괴수가 셋이나 있을 줄은 나도 몰랐거든. 거기다가 그 코어. 보지도 못했지만 그 느낌만으로도 확실히 달랐어. 그건 확실히 지역 코어급이야."

"그래?"

"나도 지역코어가 활동하는 것을 본 적은 없어. 하지만 그게 지역코어가 아니라면 뭐겠어? 실제로 세계에도 36개만 있는 거잖아."

"그럼 지구를 서른여섯 조각으로 나눈다는 건데?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위치기 중구난방 아닌가?"

"그거야 먹을 것이 많은 곳에는 몰리는 거고, 아닌 곳은 영역이 넓은 거고 그런 거겠지."

자넷은 별 소리를 다 한다는 듯이 눈을 흘긴다.

"하긴."

"끄으윽. 어리는 상심이 큰 것이에요. 그런데 세진님과 언니는 관심도 없는 흐앙아아앙아."

둘의 대화에 살짝 귀를 기울이던 어리는 좀처럼 자신을 위로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 판단이 서자 다시 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세진의 행동으로 이젠 위로도 해 주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니 더 서럽게 운다.

'쯧, 애야. 애. 점점 더 애가 되는 것 같아. 이번에 너무 감싼 것이 문젠가?'

세진은 그런 어리를 내려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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