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등급 이면 공간 공략 -- >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게 불안해지는 것 같지?"
"5등급 이면 공간이 무너지면서 그 하위 이면 공간들도 꽤나 상태가 좋지 않아. 뭔가 건물의 주춧돌을 빼버린 것 같은 그런 상태 같은데?"
"무너질까?"
자넷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진을 본다.
"이대로 버틸 수도 있지만 어설프게 건드리면 무너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몬스터들이 날뛰게 될 텐데? 4등급 이면 공간에는 6등급 우두머리까지 있으니까 결국 6등급 몬스터들이 이 섬나라에 풀리게 되는 거라고."
"뭐 지상형 몬스터들은 바다로는 들어가지 않잖아. 결국 이곳 섬나라의 문제일 뿐이 지."
세진은 의외로 냉정했다.
"그럼 그냥 두고 보겠다는 거야? 그러다가 여기 사람들이 핵이라도 잔뜩 터트리게 되면 곤란하지 않아?"
"그건 좀 문제가 있긴 하네. 그래서 어쩌자고?"
"이왕 왔으니 차례로 공략을 해버리자는 거지. 그렇게 하면 괜찮지 않을까? 음, 귀찮으니까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까지만 해결을 하고 가자."
"야, 여기 2등급 이면 공간까지 내려가야 4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어. 네 말은 지금 2,3,4 등급 이면 공간을 모두 공략하고 가자는 소리잖아."
"뭐 겉으로 보기에 변화가 없도록 그냥 1등급 이면 공간만 남겨두자는 거지. 그러다가 그 이면 공간이 스스로 무너지거나 해도 겨우 3등급 몬스터들이 떼로 나타나는 정도 밖에 안 되니까 그거야 여기 나라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자넷은 결국 G스페이스 하나를 완전히 박살을 내자는 소리였다. 세진도 한 번정도는 G스페이스를 없앨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G스페이스는 정확하게 108개다. 그 중에 하나가 이곳 도쿄에 있는 것인데, 이걸 박살을 내게 되면 다른 하나가 어딘가에 새로 생기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확인을 하자면 어느 하나는 박살을 내야 하는데 세진 생각에 그곳이 이곳이라면 더 없이 좋을 것 같았다.
특정 국가에 대해서 너무 못되게 구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세진은 그런 문제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해야 할 곳이라면 차라리 이곳이 좋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어차피 이곳 놈들도 번번이 우리를 걸고넘어지면서 시비를 걸고 그러잖아. 지들도 그러는데 내가 이러는 것이 뭐 어때서?'
세진은 결국 자넷과 힘을 합쳐서 G스페이스 하나를 완전히 박살을 냈다.1등급 이면 공간만 남기고 모든 상위 이면 공간의 유지 코어를 뽑아버린 것이다. 물론 그 전에 겹쳐진 이면 공간에 6등급 이면 공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확인을 해 봤지만 역시나 6등급 이면 공간은 없었다.
"여기가 동천복지로 나눈 기준 중에서 복지에 해당하는 곳이니까 동천으로 분류가 된 36개는 6등급 이면 공간도 있다는 소리지?"
"세진은 무서운 소리를 태연하게도 하네? 그렇게 되면 거기는 괴수들이 있을 거라고. 괴수. 무슨 뜻인지 몰라?"
세진은 자넷의 말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괴수라는 존재는 자넷의 이야기로 우주 연방에서도 몇 년에 한 번 정도나 잡힐 정도로 엄청난 놈이라고 세진은 들었었다.
그랜드 마스터도 감히 맞상대를 하기 어려운 것들이고 그것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고, 그런 존재들이 여럿이 모여서 괴수의 능력을 줄인 다음에 그랜드 마스터급이 여럿 달려들어서 사냥을 해야 겨우 가능한 것이 괴수라는 존재라고 했다.
괴수는 실제로 지역 코어로 성장하기 위해서 몬스터들끼리 경쟁을 해서 만들어지는 놈들인데, 그렇게 지역 코어가 되면 이후에 다시 조정을 거쳐서 대륙 코어가 되기도 한다는데 대부분 행성 코어 밑에 대륙 코어는 한 번 정해지면 거의 바뀌는 일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지역 코어는 몇 번 획득한 적이 있었지만 대륙 코어와 행성 코어는 공식적으로는 사람들이 목격을 한 적이 없다고 했었다.
세진은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괴수나 지역 코어, 대륙 코어, 더 나가서는 행성 코어라고 하는 것은 감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생각만 해도 겁나지?"
자넷이 잠깐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세진을 놀리듯이 말한다.
"그래, 아주 오싹하다. 절대로 6등급 이면 공간에는 들어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혹시 6등급 이면 공간에 우두머리 몬스터가 괴수가 아닐 수도 있어. 그건 확인을 해 봐야해. 혹시 알아?"
"무슨 소리야?"
세진은 자넷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이참, 그렇잖아. 1등급 이면 공간에 어떤 곳에는 1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고, 어떤 곳은 2등급이나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어. 그럼 사실 6등급 이면 공간이라면 무조건 괴수 등급이 아니라 그보다 좀 약한 것이 우두머리 몬스터로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으냐 하는 거지."
"그걸 확인하러 6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갈 생각은 없은데?"
"호호홋, 거길 뭐라러 들어가? 대충 5등급 이면 공간의 우두머리를 딱 보고, 그게 7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라면 그냥 포기하는 거지. 그리고 만약 거시에 6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다면?"
"6등급 이면 공간에 7등급 우두머리 몬스터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거지. 어때? 내 생각이?"
"확실히 가능성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선은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어리가 이번에 얻은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는 것부터 신경을 써야지. 그거부터 하고 나서 다른 서른여섯 곳의 SG스페이스를 돌아 보자고."
"그 SG스페이스는 뭐야?"
"스페셜Specia 그레이트Great 스페이스Space."
"쯧, 작명하고는... 차라리 SGS라고 하지?"
"뭐가 어때서? 괜찮은 것 같은데?"
- 두 분 그만하시고 어서 나가요. 저도 오늘 너무 열심히 다녀서 피곤하다고요.
어리가 둘의 말싸움에 끼어들었다.
어리가 피곤하다는 것은 그만큼 코어에 저장된 에테르를 많이 소비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어리는 엄청난 횟수의 순간이동을 연속을 했었다. 세진은 어리가 고생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순히 어리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다. 세진과 자넷은 서둘러서 1등급 이면 공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리의 힘으로 곧바로 한국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세진과 자넷이 사라지고 몇 시간이 되지 않아서 도쿄의 G스페이스가 있던 곳에선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겹쳐졌던 이면 공간이 무너지면서 과도하게 발생한 에테르의 기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몬스터들이 1등급 이면 공간의 붕괴와 함께 풀려나온 것들이었다.
새로 태어난 몬스터들은 1등급 이면 공간에 동화될 시간도 없이 이면 공간이 무너진 때문에 멀쩡한 모습으로 세상에 풀려나게 된 것이다.
거기에 3등급 우두머리 몬스터도 한 마리 끼어 있었지만 그것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일본에는 없었다.
갑작스런 몬스터 난동으로 일본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세계는 G스페이스란 것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많은 몬스터를 방출하며 사라졌는지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당연히 G스페이스를 감시하는 눈이 더욱 세밀해지고 약간의 에테르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G스페이스 주변을 엄청난 군대를 동원해서 틀어막는 대책을 새우기 시작했다. 세진과 자넷은 그런 변화를 살펴보면서 어리와 함께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당장 흡수할 것이냐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냐를 두고 하는 고민이었다.
"그러니까 어리는 자신이 있는 것이에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에요."
어리는 귀여운 외모의 여자아이 몸으로 어리 홀의 제단 곁에 의자를 만들어 올라앉아서는 세진과 자넷에게 일관된 주장을 펴고 있었다.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흡수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진과 자넷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벌이고 있는 모든 일들이 어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리가 없다면 세진이나 자넷은 그저 제법 실력이 괜찮은 헌터에 불과할 뿐이다. 어리가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도 헌터룸을 만들어서 의체 사용자들을 육성할 수 있 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제대로 되어야 세진의 입장에서는 결국 지구의 몬스터 사태를 해결할 수 있고, 또 자넷의 경우에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프락칸의 비기를 익힌 사람들이나 혹은 프락칸의 비기를 이용한 기구를 대량으로 만들어서 이미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에게 완전히 점령당한 행성을 되찾아 오는 사업을 할 수 있다.
자넷은 세진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지구의 몬스터 사태가 진정되면 세진과 함께 우주 연방으로 넘어가서 그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에테르 몬스터 점령 행성들을 되살리는 사업을 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구 회복 캡슐을 사용하고 에테르를 이용한 오러 로드를 개척한 세진의 수명은 꽤나 길 것이다. 그리고 자넷도 연방의 수 많은 생명 공학의 혜택을 입은 만큼 수명이 길다.
그러니 연방의 전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거창한 계획 정도는 있어야 남은 생이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자넷이다.
어쨌거나 어리는 중요하다.
"어쩔 수 없네. 그럼 해 봐."
"세진! 그렇게 쉽게 결정을 할 문제가 아니잖아!"
세진의 허락에 자넷이 화들짝 놀란다.
"뭐, 어리의 뜻도 존중을 해 줘야지. 그리고 나도 곁에서 도울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문제가 커지면 자넷도 도와주면 되지 뭐. 우리 셋이서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 정도도 어떻게 하지 못하겠어?"
"하지만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넷은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는 의체가 아닌 본체를 사용하기로 했어."
"뭐? 뭐라고?"
"세진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건 안 되요. 위험하다구요."
자넷은 물론이고 어리까지 놀라서 반대를 한다.
"어리 넌 괜찮을 거라면서? 그런데 무슨 위험이야? 위험은?"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세진님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다고요. 차라리 제가 포기할게요."
"맞아. 나중에 하자. 응? 데블 플레인에 가서 남색 테멜 코어하고 보라색 테멜 코어를 구해서 몇 개 더 흡수를 하는 거야. 그러면 어리에게도 여유가 많이 생기지 않을까?"
자넷이 데블 플레인이 있는 우주 연방으로 넘어가서 상위의 테멜 코어를 흡수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래. 나도 그걸 생각했었는데 그 동안 차근차근 어리의 상태를 점검을 해 봤어. 그 동안은 정신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될 수 있으면 어리에게 맡겨두고 필요한 것만 챙겼는데 이번에는 사안이 사안이라 어리의 시스템 깊은 곳까지 살폈지."
"그래서?"
자넷은 세진이 뭔가 특별한 것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테멜 코어는 일종의 영역 확장에 비중을 주고 있어. 뭐라 고 설명을 할까? 그러니까 도시를 세울 때에 건물을 세우기 전에 여러 작업들을 하지? 땅을 고르고, 하수도를 묻고, 수도, 전기 시설을 하는 그런 거 말이야."
"뚝딱 건물을 세우는 경우는 별로 없지. 계획적으로 도시를 건설하는 경우엔 기반 시설을 먼저 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자넷이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느 정도 세진이 할 이야기를 짐작한 것이다.
"바로 그거야. 테멜 코어가 그런 역할을 하는 거야. 세 개의 남색 등급 테멜 코어를 흡수한 어리는 충분히 넓은 땅에 기반을 단단하게 다지고 건물들이 올라가길 기다리고 있는 상태지."
"그래서 결국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 그래서 어리가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고?"
"그래. 더 높은 등급의 테멜 코어를 흡수해도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을 거야. 물론 더 발전된 형태의 기반 시설이 나오긴 하겠지만 내 생각에 지금 어리가 하고 있는 준비로도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럼 지금까지 고민한 이유는 뭔데?"
"의지 때문이지."
"맞아요. 의지요. 지구에서 나오는 이면 공간 유지 코어들은 모두가 의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저를 삼키려고 하는 거죠. 아마도 이 지구에 있는 행성 코어의 의지를 받은 것이겠죠. 그게 문제인 거예요."
"그래서 데블 플레인에서 상등급의 테멜 코어를 더 흡수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거야?"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아. 아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는 된 것 같아. 전에는 몰랐는데 같은 등급의 테멜 코어는 아무리 많이 흡수를 해도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
"의지를 가지고 있단 말이지? 그래서 문제라고?"
"네에. 맞아요. 언니."
"그런데 자신이 있다고?"
"어리는 자신이 있어요. 제가 더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리는 세진님의 어리인 것이에요."
"휴우, 모르겠다. 둘 다 고집을 부리는데 내가 어쩌겠어? 그래 하자 해."
자넷은 계속 고집을 부려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기 말고 그 지하 창고에서 하자. 데블 플레인에도 에테르 코어들이 넘치고, 이 지구에는 더 끔찍한 코어들이 잔뜩 있는 것 같으니까 그것들 없는 곳에 가서 하자. 그건 괜찮지?"
자넷은 한 가지를 포기하는 대신에 새로운 의견을 냈다.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렇게 하면 적어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상위 코어들의 신호 같은 것은 신경을 안 써도 될 테니까 말이지. 결국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만 상대하면 되잖아."
"멋진 생각인 것이에요. 역시 언니인 것이에요."
"시끄럽고! 세진 가자. 그 뭐라고 했진 뭔 불을 단번에 뺀다고?"
"알았다. 가자. 가."
세진은 테멜 밖으로 나와서 어리 앵무와 함께 지하 공간으로 듀풀렉 게이트를 열었다. 오랜만에 여는 게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