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87화 (187/298)

< -- 5등급 이면 공간 공략 -- >

이번에 새로 생긴 G스페이스, 그러니까 중첩된 이면 공간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많이 사는, 인구밀집 지역을 피해서 만들어졌다.

그것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일단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일본의 도쿄에 G스페이스가 생긴 것은 언뜻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도쿄는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일본의 수도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였다. 하지만 세진이 복수를 한답시고 한 번 소란을 피우고, 이후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몬스터인 갓파가 나타나면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초기에 몬스터에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탓도 있고, 사람들이 겁을 먹고 빠르게 피난을 간 이유도 있었지만 이후로도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통제나 구휼을 하지 않고 거의 버리다시피 했던 탓에 도쿄는 부랑자들이 떠도는 죽은 도시가 되어 버렸다.

그러니 그런 곳에 G스페이스가 생긴다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세진은 자넷과 함께 그 도쿄의 빌딩 위에 서 있었다.

세진의 어깨에는 어리 앵무가 앉아 있었다. 지금 세진과 자넷이 움직이고 있는 것은 본체가 아닌 의체였다. 아니 요즈음 도현과 자넷의 본체는 어리 테멜 안의 안전한 곳에서 누워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신에 본래 모습과 똑 같이 만든 의체로 현실 생활을 하고, 테멜 안에서는 또 프락칸 육성용 의체를 사용하곤 했다.

어쨌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로페소에테에서 사용하던 의체를 외모만 바꾸어서 그대로 쓰고 있는 중이었다.

지구로 넘어오면서 헌터룸을 만들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의체까지 모두 가지고 올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저기 강변이 제일 좋겠어."

"맞아. 거기가 중심인 것 같아. 에테르가 뭉쳐 있는 것이 느껴지네."

- 예전에 갓파가 주로 등장했던 바로 그곳이에요. 거기에 이번에 새로 이면 공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어리가 부연 설명을 했다.

"기다려봐야 볼 것도 없으니 이만 가자."

세진의 재촉에 어리가 셋을 목표까지 이동을 시켰다.

테멜 공간을 이용한 공간 이동은 정말 이 세상 어떤 능력보다 효과적인 수단이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되는 세진이다.

세진은 몬스터들이 달려들기 전에 서둘러서 1등급 이면 공간으로 통로를 열어서 진입했다.

"역시 여기도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이 있어. 3등급까지 몬스터들이 있는 것 같아."

자넷이 이면 공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5등급 이면 공간에는 7등급 우두머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네? 그것도 주로 5등급 이상의 몬스터들이 줄줄이 나오는 상황을 헤치고 나가서 7등급 우두머리를 잡아야 한다는 소리네?"

세진도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데블 플레인 식으로 하자면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를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지구에 몬스터는 30% 정도 약하다곤 하지만 그래도 보라색 등급의 부족 코어를 지닌 놈이라니 바짝 긴장이 되는 것이다.

"데블 플레인이었으면 절대로 상대하지 말라고 했을 거야."

자넷이 단호한 음성으로 그렇게 잘라 말했다.

사실 아직 세진과 자넷 둘이서 보라색 부족 코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세진도 알겠지만 우린 아직 그랜드 마스터 초입이야. 겨우 발을 들여 놓은 상태라고, 이런 상태로 보라색 부족 코어는 무리지."

"알아. 하지만 여긴 지구잖아. 30% 정도 약해진 놈이라면 어떻게든 될 거야. 특히 디버프가 걸리기만 하면 그걸로 끝이지."

세진은 솔직히 그것 하나만 믿고 있었다.

자신의 디버프가 우두머리 몬스터에게 먹히기만 하면 사냥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버프는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상대 몬스터를 무력하게 만드는데 아주 요긴한 기술이었다.

"그래. 나도 디버프가 있으니까 사냥을 하자고 나선 거였어. 자, 그러고 있지 말고 5등급 이면 공간으로 통로를 열어 봐."

"기다려. 여기선 순서대로 가야 해. 2등급, 3등급, 4등급을 차례로 들어가야 5등급 이면 공간을 열 수가 있다고. 그걸 건너뛰는 것은 안 되더란 말이지."

세진은 자넷의 재촉에 서둘러서 기운을 모아서 이면 공간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지하 창고라고 부르는 곳의 석판에서 얻은 마법진 지식을 기초로 만든 천공 능력은 이제 아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에테르를 중첩시켜서 이면 공간에 간섭을 하는 것인데, 단지 에테르를 뭉치는 것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에테르의 복잡한 작용들이 마법진의 구성처럼 어지럽게 짜여 있었다.

그래서 이면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마법진을 이용해서 다른 공간에 간섭하는 숨겨진 비의가 없었다면 감히 이면 공간에 마음대로 구멍을 내거나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번거롭게 된 거네? 다른 사람들도 이곳의 2등급 이면 공간을 가려면 1등급 천공기를 써서 1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간 다음에 다시 2등급 이면 공간으로 가야 할 테니 귀찮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서 이젠 정말로 천공기도 오래 쓸 수 있는 걸로 만들어서  보급을 해야 하나 어쩌나 고민을 하는 중이야."

"그런 건 안 만들어 준다면서?"

자넷이 오래가는 천공기란 말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어차피 이젠 이면 공간도 널리 알려졌고, 천공기도 많이 풀렸잖아. 사람들이 이리저리 모아둔 천공기가 아마 제법 많을 거야. 언제든 급할 때에 쓰겠다고 야금야금 모았겠지.

"하긴 한 때, 이미 공략한 빈 이면 공간에 이면 공간 유지 코어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그걸 모두 회수하느라 법석을 떤 적도 있었으니까."

자넷도 천공기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퍼진 마당에 1회용이 아니라 10회용, 아니면 20회용 천공기를 만든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 읏차, 이제 5등급 이면 공간이야. 들어가자."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천공을 하던 세진이 드디어 5등급 이면 공간으로 통하는 입구를 열었다. 세진과 자넷, 어리는 서둘러서 5등급 이면 공간으로 들어섰다.5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선 순간부터 세진과 자넷은 바짝 긴장을 했다.

"여기서 등장할 몬스터는 최고 7등급이야. 그러니까 보라색 등급 몬스터란 소리지. 조금만 방심해도 위험할 수가 있어."

세진은 자넷에게 주의를 주고는 창과 방패를 들고 앞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면 공간들이 겹칠 때마다 현실의 모습에서 조금씩 달라지더니 다섯 겹이 된 이면 공간 안쪽은 도쿄라는 도시를 전혀 떠올릴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원래 강이 흘렀던 곳에는 깊고 깊은 협곡이 있었고, 지금 세진과 자넷, 어리는 그 협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쪽에 있었다.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자넷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세진도 자넷과 같은 생각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광활한 평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땅들이 모두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갈라진 자국들은 지금 일행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 협곡들인 것이다.

"저 아래쪽은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을 것 같은데, 위쪽은 몽땅 갈라져 있어서 곤란하네."

자넷 다시 한 번 현실을 되새겼다.

- 꼭 저리 내려가야 해요? 그냥 건너뛰면 되잖아요.

"야, 아무리 우리라도 이런 넓이를 그냥 건너 뛰는 것은 무리... 아 아니구나. 어리가 힘을 쓰면 문제가 아닌 거네?"

세진은 어리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곧바로 상황을 인식했다. 어리가 있으니 굳이 협곡 아래에서 미로같은 길을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네? 여긴 몬스터도 없으니까 그냥 위쪽에서 움직이면서 우두머리 몬스터를 찾으면 되는 거네?"

자넷도 어리가 하는 말을 알아 들었는지 밝은 표정이 되었다.

- 그런데 여기 무척 넓은 모양이에요. 그리고 확실히 이면 공간의 등급이 높아질수록 제가 파악할 수 있는 영역도 줄어들고 있어요. 세진님은 어때요?

"나는 별로 영향이 없는 것 같은데? 어차피 에테르를 펼쳐서 그 범위 내를 살피는 거잖아. 그리고 디버프 기반 에테르는 지금도 300미터 정도가 고작이야. 그 이상이 되면 디버프 기능은 없어지고 그냥 탐지 능력만 쓸 수 있지. 너는 이곳에선 어느 정도나 되는데?"

- 저도 1km정도까지 밖에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면 공간 밖에서 수백 km를 넘는 감지 범위가 여기서 고작 그 정도가 끝이에요.

"우와 그건 좀 심각하네? 우리 어리 어쩌니?"

자넷도 1km밖에 안 된다는 말에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 어리는 현실에서는 최대 300km가 넘는 거리를 한 번에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정도 거리까지 대체적으로 주변 확인이 가능하고 테멜의 본체가 들어 있는 어리가 이동을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이동을 하게 되면 테멜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동을 하게 되니 세진이나 자넷은 물론이고 마음만 먹으면 테멜 안의 전체를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것이 어리다.

그런데 그런 어리가 5등급 테멜 안에서는 감지 범위가 1km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인 것이다.

"그냥 5등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면 공간이 겹치니까 더 심각한 것 같네? 전에는 그렇게 심하진 않았잖아."

- 그런 모양이에요. 사실 4등급 이면 공간이라도 전체가 제 감지 범위 안에 들어올 정도였으니까 신경을 안 썼던 거죠. 그런데 오늘은 3등급 이면 공간에 들어올 때부터 전체 공간을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그럼 맞는 거네. 이면 공간이 겹칠수록 우리 어리의 능력이 제약을 받는 거네."

자넷이 어리의 상태를 확신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우두머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거냐?"

세진이 어리에게 물었다.

- 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이 테멜 안에 들어와 있으면 제가 열심히 돌아다녀서 확인을 하면 되니까요. 아무리 대단한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저를 어쩌진 못하죠. 그것도 한 번에 1km씩 움직이는데 무슨 수로 저를 잡겠어요?

어리가 혼자서 우두머리 몬스터를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다가 우두머리에게 딱 걸리면?"

세진이 걱정스러워 물었다.

- 괜찮아요. 도망가면 돼요. 연속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문제없어요. 절대 잡히거나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어리는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세진도 어리의 생각이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여겼다. 언제든지 순간 이동이 가능하고, 어리의 핵은 테멜의 중앙에 있는 어리 홀의 제단 안에 있는 코어였다. 어리와 코어가 겹합한 상태인 그것이 바로 어리의 본체인 것이다.

- 위험하면 우두머리 몬스터고 뭐고 그냥 제 테멜 안으로 넣어버릴까요?

"가능하겠냐?"

- 4등급 우두머리까지는 잡아서 넣어 뒀잖아요. 테멜 입구만 잘 조절하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뭐 잔뜩 화가 나서 에테르를 마구 돌리고 있으면 어렵겠지만요.

테멜의 입구는 에테르 소용돌이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에 다른 에테르가 거칠게 부딪히면 소용돌이가 유지되지 못하고 흩어진다. 그렇게 되면 테멜의 입구가 닫히는 것이다.

그러니 잔뜩 기세를 뿜고 있는 몬스터의 경우에는 테멜 안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해 보자고. 안 되면 후퇴해서 상황을 보고."

자넷이 한 번 붙어 보고 데이터를 얻자는 식의 주장을 내놓았다. 일단 어리가 위험할  일은 거의 없으니 그대로 우두머리 몬스터 수색을 해 보자는 이야기였다.

"그래. 그럼 일단 찾아보고 이야기를 하자."

세진도 어쩔 수 없이 어리의 몬스터 수색을 어락했다.

그리고 세진과 자넷은 어리의 테멜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어리 앵무는 그 때부터 번쩍번쩍 순식간에 이동하며 우두머리 몬스터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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