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86화 (186/298)

< -- 오버렙 스페이스와 어리의 헌터룸 -- >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몸 안에서 프락칸의 능력을 쓰기 위해서 뭔가 개척을 해 나가는 것이, 뭐라고 할까요? 퍼즐을 풀어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처음에는 몇 피스 안 되는 퍼즐이었는데 점점 퍼즐의 수가 늘어나서 지금은 몇 천 피스는 되는 퍼즐을 풀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기대가 되는 거죠. 다음에는 또 얼마나 난해한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그런 거요."

김혜인 박사는 실제로 의체를 이용한 코어의 정화보다는 몸 안에서 프락칸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수련에 더 흥미가 있어보였다.

"재미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리는데 프락칸 의체는 정말 소중하게 다루어 주십시오. 그 프락칸 의체는 물론 김혜인 박사님도 우리에게, 아니 인류 전체에게 굉장히 중요한 분입니다. 에테르의 정화는 인류 생존의 기본입니다. 지금은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결국 인류의 생존은 에테르를 정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진은 진지하게 김혜인 박사에게 그녀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세진도 프락칸 의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성취가 높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정도 평균을 내고 보니 프락칸의 능력은 여성들이 훨씬 높은 성취를 보였다. 그걸 보고 자넷도 이번에 새로 프락칸 의체를 육성한다고 본격적으로 나섰을 정도다.

"알았어요. 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아도 저는 저를 아끼니까요."

"그럼 그럼. 당연하지."

떡배가 입이 귀에 걸린 꼴을 하고 헤벌쭉 웃는다.

"떡배 아저씨는 조용히 해요. 어떻게 의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몸 관리를 못해서 현실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요?"

정진이가 떡배를 타박했다.

"그거야 나는 정신 능력을 주로 사용하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죠. 몸을 관리 못하는 탓이죠. 처음에는 그렇게 미끈한 의체를 줬는데 점점 배가 나오고 있잖아요."

"야, 의체도 먹어야 하거든? 그리고 먹으면 당연히 찌는 거지."

"아니죠. 많이 먹어야 찌는 거죠. 선도일씨랑 형일은 괜찮잖아요."

"진이 너! 그만 못해? 원래 어느 정도 배가 나오고 해야 듬직하고 좋은 거야. 뭘 알지도 못하면서."

김혜인 박사가 진이를 윽박질렀다.

"우와아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몰라. 야, 형일이 넌 내가 당하고 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냐?"

"아니 내가 뭘..."

막내인 형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웅얼거린다.

"지금 농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동천복지에 대한 겁니다. 그런데 세진님께선 어떻게 북한의 동천을 중국 탐욕에서 빼내실 생각이십니까?"

잠깐 분위기가 산만해진 것을 선도일이 바로잡으며 세진에게 물었다.

"뭐, 거기가 그나마 백두산이니 뭐니 하는 곳처럼 국경선과 물려서 곤란한 지역은  아니지 않습니까. 개마고원은 양강도와 함경남도의 경계에 있는 곳이니까 말입니다. 그럼 당연히 그곳에 대한 권리를 얻으려면 북한 지도부와 이야기를 하면 될 일이죠."

"그럼 북한 정권과 거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그건 의논을 해 봐야겠지요. 내가 마음을 먹는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 북한 정도는 우리 벗의 입장에서는 그리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힘의 논리를 내세워도 북한 정도는..."

세진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모두가 세진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었다.

북한 따위는 벗의 입장에서는 하찮은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 것이다.

거기다가 세진의 경우에는 일을 매끄럽게 진행하기 위해서 북한의 지도부들을 협박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한의 경우에는 독재정권에 독재자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였다. 당연히 그 사람만 적당히 얼러주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정말로 북한의 지도부 몇 명을 의체로 바꿔버리는 것도 가능할 거라 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외모만 똑 같을 뿐, 내면을 모르니 별로 실현 가능성은 없는 일이다.

"아무튼 동천복지니 G스페이스니 하는 것이 등장하면서 꽤나 복잡해진 것 같은데 벗에서는 여전히 지금처럼 숨어서 활동을 하는 겁니까?"

떡배가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숨어서라구요?"

세진이 무슨 말이냔 표정으로 떡배를 보았다.

"솔직히 전적으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벗의 힘은 무척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라면 좀 더 세상에 나서서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벗은 의외로 무척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무슨 이윤지 몰라도 가진 힘을 쓰지 않고 있다는 거지요."

세진은 떡배의 말에 잠시 자신의 행보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떡배의 말이 그리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나서 서 뭔가 거창한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덕배님은 제가 속해있는 아니, 우리 모두가 속해있는 벗이란 곳의 존재 의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진이 의외의 질문을 해서인지 세진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모두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한 것이다.

"사실 벗이란 단지 몇 명의 수재, 혹은 천재들이 모인 친목 단체에 불과했습니다. 그 친목이란 것이 문제가 되어서 회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제 복수를 한다고 일이 커졌고, 그 후로는 갑자기 등장한 몬스터들 때문이 우리들이 나서서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지요. 이런 우리들에게 벗이란 단체는 지금 너무 버거운 규모가 되었습니다. 지금 정도를 유지하는 것도 벅찬 일이지요. 우리가 이민을 받은 사람들이 몇입니까? 거기다가 몬스터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세상에 대한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 같은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목적은 몬스터 퇴치 하나입니다. 그 외의 문제는 별로 관여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입니다."

"권력을 잡거나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요?"

김혜인 박사가 세진의 말이 끝나자 제일 먼저 질문을 던졌다.

"권력이라..."

세진은 사실 경험의 차이가 만든 인식의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은 세진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했다. 비록 다른 행성을 경험한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우주의 연방이라는 세력에 대한 경험이 있는 세진에게 지구는 그리 큰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곳에서 권력을 다투며 싸우는 것은 당연히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럴 것 같았으면 라훌족을 통합해서 세력을 만들고 우두머리가 되거나 혹은 로페소에테에서 지도자 노릇을 했을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그런 이야긴 없는 것 같군요. 우리는 그저 몬스터 문제가 해결이 되고 우리들이 원래 했던 일들을 하면서 평온하게 살 수 있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절대적으로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곤 못해도 일단 벗이란 단체의 성향이 그런 것은 분명하죠."

"그렇군요. 하긴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그들을 모아서 스스로 나라를 세워도 세울 수 있는 것이 벗이겠죠. 그러니 굳이 이미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욕심을 내지 도 않는 것 같고, 땅도 이면 공간을 이용하면 될 테니 그쪽도 관심이 없을 테고 말이죠."

"그런가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김박사님, 혹시라도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바라는 것이 있으면 눈치보지 말고 하셔도 됩니다. 그것이 벗에 대한 이적행위만 아니라면 개인적인 성취욕의 실현을 방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돈을 벌거나 정치를 하거나 그건 개인의 자유입니다. 당연히 어리 공방의 식구들도 해당이 되는 말이고요."

"호호호. 저도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냥 해 본 말이죠. 그런데 의체 사용자의 수는 더 늘이지 않을 건가요?"

김박사가 눈빛을 빛냈다.

"어떨 것 같습니까?"

"그야 당연히 늘어나겠죠. 그래야 프락칸의 수가 늘어날 테니까 말이죠. 프락칸이 늘어나야 에테르를 정화할 수 있고, 그래야 몬스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거 아닌가요?"

김혜인 박사는 프락칸의 존재 의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사들에  대해선 좀 무시하는 것 같아서 세진은 그 생각을 고쳐줄 필요성을 느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사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프락칸이 에테르를 정화하지만 그 대상은 대부분 몬스터들의 코어입니다. 그리고 그 코어는 전사들이 아니면 획득하기가 어렵죠. 특히 4등급 이상으로 넘어가게 되면 고위급 전사들의 필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전사들의 양성도 큰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그러네요. 하급 몬스터들이야 어떻게든 현대식 무기를 이용해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등급이 높은 몬스터들은 그게 안 될 테니까요. 그나저나 우리들의 현실 실력으로도 4등급 우두머리, 그러니까 일반 등급으로 5등급도 잡기 어려운데, 의체로 다시 키워서 언제 그런 실력을 키울지 모르겠네요."

"맞아. 아직도 2등급 잡고 있다고."

"그래도 우린 빠른 편이지. 지금 2등급 사냥하는 파티는 몇 없잖습니까."

"커엄. 일반인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우위에 있다니 그게 더 문제지. 이럴 것이 아니라 시간 될 것 같으니가 사냥이나 가자고. 여기서 떠들어봐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의체라도 능력이 빵빵해져야 벗에도 뭔가 보탬이 되지.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아니라고."

떡배가 일행들을 재촉해서 헌터룸으로 갈 태세를 갖췄다.

"그럼 수고들 해요."

자넷이 몸을 일으키는 다섯 명을 향해서 인사를 했다.

그렇게 떡배 등이 응접실에서 나간 후, 둘만 남은 세진과 자넷은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북한 놈은 아무래도 가서 겁을 좀 주는 것이 좋겠어. 시간 끌 것도 없지. 대외적으로는 벗에서 개마고원의 몬스터영역을 연구용으로 빌린 것으로 하면 되겠지. 그런데 그래도 뭔가 생색을 내긴 해야 할 텐데 뭘 주지?"

세진이 자넷을 보며 물었다.

"글쎄? 거기 부족한 것이 뭐가 있는데?"

"뭐긴 몽땅 부족한 곳이 북한이지. 식량부터해서 이것저것 모두 다 부족하지."

"그럼 식량 좀 주고, 발전소 좀 세워 주면 되겠네. 식량이야 어리가 관리하는 팜이란  테멜에서 넘칠 정도로 생산이 되고, 그게 아니어도 어리가 합성을 해 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발전소도 코어를 이용한 발전소 하나 세우면 어렵지 않게 전력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음, 그렇게 할까? 그래, 그런 방향으로 해야겠다."

"그리고 중국이란 나라에서 엉뚱하게 시비 걸지 않도록 간단한 경고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때?"

세진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G스페이스를 임대하는 것과 중국에게 경고를 하는 문제는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이 되어 버렸다.

북한의 문제는 뚱뚱한 독재자를 남모르게 찾아가서 협박을 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절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밀폐된 상태의 침실에 세진과 자넷의 의체들이 나타나 그의 잠을 깨웠을 때, 그 독재자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영원한 잠을 자거나 어딘가에 감금이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식량을 공급하고 또 발전소를 세워서 운영을 해 주는 조건으로 개마고원의 오버렙 스페이스는 벗(友)의 소유가 되었다.

거기다가 나머지 두 개의 복지라고 하는 G스페이스도 벗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어차피 북한에서는 몬스터에 대한 연구를 하거나 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저 몬스터의 영역을 정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길 일이었다.

이전에는 군부를 동원해서 몬스터를 처리하고 있었고, 때로 세진과 자넷이 남모르게 넘어와서 이면 공간을 공략해 줬기 때문에 겨우겨우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몬스터 영역을 해결해준다는 말에는 독재자도 반색을 하며 환영의 뜻을 보였다.

그렇게 북한과 협정을 맺으면서 중국에 대해서 북한과 벗의 계약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마디 던졌는데 곧바로 '절대 관여하지 않을 것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전혀 의외의 결과여서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세진이 며칠을 두고 어리와 함께 알아보니 에너지 카르텔이란 곳에서 벗에게 보내는 일종의 화해의 선물, 혹은 뇌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건 쓸데없는 일로 서로 힘을 낭비할 일은 없어진 것 같으니 다행이네.'

세진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부를 쥐고 있는 세력과 싸울 일이 없어진 것이 무척 기뻤다.

물론 다른 많은 세력들이 아직도 벗에 대해서 이빨과 발톱을 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나라도 우군이 생긴 것은 축하할 일인 것이다.

"자, 이젠 대충 일이 끝났으니까 5등급 이면 공간이나 하나 공략하자. 우리 어리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으니까."

세진은 자넷과 어리에게 그렇게 5등급 이면 공간 공략 의사를 밝혔다.

"그래? 그럼 어디로 갈 건데?"

"일단 시작을 한 곳으로 갈까 해."

"시작한 곳?"

"어리는 어딘지 알겠어요. 처음으로 몬스터가 나왔던 곳으로 가시려는 거죠? 거기도 G스페이스가 있으니까 당연히 5등급 이면 공간이 있을 거니까요. 맞죠?"

어리가 세진의 생각을 맞췄다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마침 거기에 5등급 이면 공간이 있는 것 같으니까 가서 잡아 보자."

"우헤헤. 역시 맞았어."

"몬스터가 처음 나온 곳이면 가까운 섬나라네? 거길 가는 거야?"

"맞아. 거기야."

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