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85화 (185/298)

< -- 오버렙 스페이스와 어리의 헌터룸 -- >

"그렇지. 테멜 코어 4단계에서 이면 공간 유지 코어 4등급을 흡수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겠지? 그래서 어리가 그 때에 고생을 했을 수도 있어. 물론 그래서 좋아진 것도 있지. 어리와 내가 정신이 연결되는 효과를 얻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어리는 이번에는 자신이 있는 것이에요. 어리는 테멜 코어 남색 등급, 그러니까 6단계까지 흡수했어요. 그리니까 5단계 이면 공간 유지 코어도 흡수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럴 것이에요. 반드시."

어리는 의욕적으로 새로운 이면 공간 유지 코어의 흡수를 바랐다.

"괜찮을 것 같은데? 어리 말대로 어리는 테멜 코어로 치면 남색 등급까지 흡수했잖아. 5등급이라고 우리가 이름 붙인 이면 공간의 유지 코어 정도는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자넷도 어리의 편을 들었다. 세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리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일단 그 코어를 가지고 온 다음에 고민을 해 보자. 어리가 할 수 있다면 하는 거고, 딱 봐서 어렵겠다 싶으면 좀 더 고민을 하거나 혹은 데블 플레인으로 가서 좀 더 많은 테멜 코어드을 흡수하는 것으로 해야겠지. 어리도 너무 서둘 생각하지 말고. 알았지? 코어를 구해 오는 것까지는 하겠지만 그 후에 흡수를 할지 말지는 함께 의논해야 하는 거다. 멋대로 하면 혼나!"

"알았어요. 세진님. 쳇."

"쳇은 뭐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저는 헌터룸에 문제가 없는지, 지원자 선별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게요."

"참, 모랜은 괜찮은 거냐? 지금 헌터룸이 모렌 테멜에 있는 거잖아."

"괜찮아요. 문제 없어요. 몬스터들도 단계별로 준비를 해 두고 구역을 나눠놨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 가 볼게요."

"그래. 수고."

"갔다와."

어리는 세진과 자넷의 배웅을 받으며 홀에서 사라졌다. 테멜 안에서는 어디건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고, 뭐든 만들어 내거나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한 어리다.

그걸 보면 테멜에서는 거의 신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 세진이었다.

테멜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헌터룸 사용자들은 엄청난 인기인이 되었다.

사실 몬스터를 사냥해서 코어를 얻고, 그 코어를 에텔론이란 화폐로 교환해서 의체가 사용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게임과 같았다.

더구나 에텔론을 이용해서 의체를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말로 의체 사용이 게임과 같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몬스터를 사냥하고 돈을 벌어서 성장을 하는 현실적인 게임.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그렇게 번 에텔론을 현실의 화폐와 교환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한 장점이었다.

의체를 이용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적잖은 수익을 얻을 수가 있었다. 더구나 처음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과 얽혔던 파티 시스템이 이후에는 에텔론 광장이라고 이름이 붙은 광장에서 자유롭게 파티를 구성해서 사냥을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에텔론 상점이 있는 광장 한 쪽에는 구인이나 혹은 구직에 대한 게시판이 있고, 거기에 자신의 헌터룸 번호와 사냥 가능한 몬스터 종류를 적어서 올려놓으면 필요한 파티에서 연락을 해 온다.

그런 식으로 파티를 만들고 사냥을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파티 시스템에서 프락칸은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했다.

사냥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헌터룸 관리자들은 프락칸이 끼지 않은 파티는 허용하지 않았고, 또 사냥을 허락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프락칸과 함께 사냥을 가야 했고, 프락칸을 보호해야 했다. 만약 프락칸을 방치해서 프락칸이 죽는 경우가 생기면 그 파티의 모든 의체는 몰수를 당했다. 헌터룸 관리자들의 뜻은 확고했다. 전사들 모두가 죽어도 프락칸은 살려야 한다는 것.

그 때문에 점차 반발이 심해지고 있는데, 요즈음 새로운 대안으로 파티를 맺은 프락칸을 광장에 두고 사냥을 갔다고 와서 그 코어를 광장에서 정화하는 것에 대해서 논의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광장에서 시간을 죽여야 하는 프락칸들이나 사냥을 다녀와서 코어를 정화하는 동안 기다려야 하는 전사들 모두가 불만스런 방안이라서 별로 호응이 없었다.

때문에 프락칸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광장에서 프락칸들이 전사들에게서 코어를 구입해서 정화 시켜서 다시 에텔론 상점에 판매를 하는 방법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프락칸들은 중간 상인 정도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프락칸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정화 능력을 키워야 했다. 정화를 한 만큼만 코어를 판매할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의체 사용자들은 이 방법이 프락칸과 전사들 모두에게 좋은 방법이라고 한창 건의를 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전사가 되었건 프락칸이 되었건 의체 사용자들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프랜드에서 묘한 짓을 하고 있다고?"

"정확하진 않지만 엄청난 숫자의 능력자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좀 정확히 알아볼 수는 없나?"

"그게... 아시는 것처럼 밖으로 전해지는 소식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지인들에게 보내는 내용도 명확하게 어떤 사실을 전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몬스터들의 위협을 받지 않고 외부에서 지낼 때와 별다를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거나 혹은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다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등의 표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말을 믿고 이민을 가는 자들이 있다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야."

그는 습관처럼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정경으로 눈길을 던졌다. 펜타하우스, 지붕을 이루는 삼각형의 모양과 사각형 방의 모양을 합쳐서 오각형을 이루는 곳, 건물의 최상층에 있는 공간을 그렇게 부르고, 언제부턴가 고층 건물의 펜타하우스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그도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사무실 겸 저택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창밖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많은 건물들을 마치 자신의 발아래 엎드린 신하들처럼 굽어보기를 좋아했다.

"참, 이상한 일이야. 그렇지 않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비서는 사내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사내도 자신의 말이 너무 뜬금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갑자기 몬스터가 나왔어. 일본이었지? 몬스터가 처음 나온 것이 말이야.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프랜드가 알려졌지?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프랜드가 일본에서 사건을 저지르고, 거기서 몬스터가 나왔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들이 몬스터 사태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 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몬스터 사태를 그들 프랜드에서 만들었을 거란 것은 억측이란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맞아. 몬스터, 그것들을 프랜드에서 만들지는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것들이 세상에 나오는 길을 그들이 혹은 일본에서 사건을 저질렀던 그 누군가가 만들었을 가능성은 여전하지. 물론 그런 것을 떠들어봐야 우리가 득을 볼 것도 없지. 도리어 프랜드와 골이 깊어질 뿐이니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몬스터가 나타나고 석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에너지원이 등장했어. 그래서 지금 세상은 그 에테르 코어라는 것에 열광하고 있지. 물론 사람들의 삶은 위험해졌지만 말이야."

"그렇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나나 자네의 삶은 그런대로 평온했을 거야. 물론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겠지. 우리 카르텔은 걸림돌 없이 안정적으로 세상을 조율했을 거고 말이야."

"네.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어지러워지고 혼란스러워지면서 나도 덩달아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대책을 마련하느라 정신이 없었지. 결국 석유 카르텔은 지금 에너지 카르텔의 모습이 되었고 말이지. 그 사이에 정리된 회원들도 몇몇 있었지?"

"정리라기보다는 도태였습니다. 시류를 읽지 못하고 움직임이 둔했던 그들의 잘못입니다."

"그래. 그래. 맞아. 그 말이 맞지. 그런데 나는 어쩐지 이번에 프랜드에서 벌인다는 일이 우리가 겪은 그 변혁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큰 물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지."

"그렇습니까?"

비서는 사내의 감이라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내가 그렇다고 하면 대부분 그랬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끼어들 길이 없어. 틈이 없는 거야. 이건 답답해."

"흔들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비서는 사내가 프랜드에 대한 어떤 일을 획책할 것인지 물었다.

"아니. 아니야. 그들은 건들면 안 되는 이들이야. 난 말이야 이전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들이 두려워.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그래, 마치 천척 앞에 끌려 나와 있는 듯 한 느낌이야. 이런 거 알지 모르는데 말이지. 난 기분이 더러워.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선처를 바라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자꾸만 든단 말이지. 그게 최선의 생존법이란 그런 느낌."

"믿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카르텔의 실질적인 조율자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말입니다."

비서의 눈은 정말 똥그랗게 떠져서 그의 놀람을 표현하고 있었다.

"능력자 양산이라. 그것 참. 혹시라도 그에 대해서 어떤 것이건 정보가 있으면 모아서 뭔가 알아내라고 해. 대신에 프랜드를 건드리는 것은 금지야. 그냥 흘러나오는 것들로 하란 소리야. 그리고 만약 능력자 양산과 관계된 일에서 우리가 도울 것이 있다면 무조건 지원하라고 해. 아니 프랜드에서 하는 일이라면 뭐가 되었건 도우라고 해. 우리가 손해를 보는 일일 아니라면 무조건이고, 손해가 작은 일이라면 해 주는 쪽으로 하라고 해."

사내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는 프랜드와 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중국 놈들이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부른다며? 그거 원래 신선들이 산다는 땅을 나누는 기준인데 뭐 36동천 72 복지? 그런 거?"

세진이 혀를 차면서 물었다.

어리 공방의 응접실,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다.

"맞습니다. 그런데 대충 그와 유사한 결과가 나오고 있어서 중국 놈들이 그것 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오버렙 스페이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세진과 어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에테르의 밀집도가 높은 장소, 다르게 말하면 이면 공간이 높은 등급까지 겹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서른여섯 곳으로 36동천이라고 부르는 중국 놈들의 분류와 맞아 떨어졌다. 거기에 복지라고 하는 72곳의 장소도 대략 파악이 되었다.

그곳들 모두 G 오버렙 스페이스라고 부르는 곳이다. 줄여서 G스페이스. G는 크다는 의미의 약자로 쓴 것이다. 딱 108개의 동천복지(洞天福地)가 있는 셈이고, 그곳들은 지금도 이런 저런 이유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그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인 것은 사실이지요.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 동천이 하나에 복지가 넷이나 있지요. 문제가 있다면 동천 하나와 복지 둘이 북한에 있다는 거고, 남한에는 복지만 둘이란 거랄까?"

"중국에서 북한의 동천을 노린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세진의 말에 도일이 재빠르게 말을 붙였다.

아무래도 북한에 있는 곳이라도 중국이 눈독을 들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뭐 실제로 그 108개가 끝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일단 G스페이스라는 곳에는 벗에서도 관심이 있으니까 북한에 있는 동천에 대한 소유권을 얻어 볼까합니다. 북한이거나 중국이거나 감당도 하지 못할 것에 괜한 욕심들 내지 말라고 해야지요. 뭐 북한에는 적당히 도움을 주는 쪽으로 하면 되겠지요. 그건 벗에서 알아서 할 테니 문제는 없는 거고, 다들 의체에 적응은 잘 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 김혜인 박사님은 의외로 프락칸에 소질이 있으셨던 모양이지요? 프락칸 서열 1위라고 하는 것 같던데 요?"

세진의 시선이 김혜인 박사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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