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상이 어긋나는 일은 흔하기 짝이 없다 -- >
세진과 자넷과 어리.
이 조합은 사실 현 상황의 지구에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조합이다.
그랜드 마스터가 둘이고 6등급 테멜의 주인인 어리가 있다. 어디건 순식간에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규격 외의 존재들인데 지니고 있는 무력도 감당할 수준을 넘었다. 그런 그들이 5등급 이면 공간을 공략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5등급 이면 공간 공략도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거 도대체 있기는 한 거야?"
"그러게? 정말 그 천공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자넷이 세진의 신경질에 동조하며 함께 성질을 냈다.
- 흐응. 정말 이상해요. 5등급 이면 공간은 없는 걸까요?
어리 앵무가 자넷의 어깨에 앉은 상태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리 앵무를 실제 앵무처럼 보이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가 저렇게 사소한 행동까지 말과 감정에 어울리게 움직임을 제어하는 것으로까지 발전을 했다.
"셋 중에 하나겠지. 5등급 이면 공간이 없다. 있는 장소를 찾지 못했다. 천공에 문제가 있다."
자넷이 손가락을 꼽으면서 세 종류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벌써 며칠 동안 찾고 있는데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말이지."
세진도 자넷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리의 성장을 위한 코어 확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오늘은 이쯤 하고 돌아가자. 세진이나 나, 어리까지 모두 우린 여유가 좀 필요 한 것 같아. 가서 어리 공방 식구들이나 좀 더 훈련을 시키자고."
자넷이 잠깐 여유를 가지자고 제안을 했고, 세진도 그런 자넷의 의견에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 5등급 이면 공간 때문에 며칠 사이에 자신이 몹시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게 좋겠다. 그 사이에 나는 프락칸 수련이나 해야겠다."
"응? 의체를 바꾸게?"
자넷의 세진의 말에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 일단 테멜 안에서도 본체로 지내기보다는 프락칸 수련을 위한 생체 에테르 바디를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 이제부터 프락칸의 비기를 연습할 필요가 있잖아. 사실 그게 중요한 거였으니까 말이야. 이 지구의 에테르들을 모두 본래의 기운으로 돌려보내야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을 멈출 수가 있지."
"하긴 세진은 그걸 위해서 데블 플레인에 온 거였지?"
"하하하.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었지. 그런 사명감 같은 건,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생긴 거지. 이 튜풀렉 게이트를 얻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받은 숙명이라 생각하니까 말이야."
세진이 손목에 문신처럼 남은 있는 듀풀렉 게이트 팔찌를 살짝 들어 보이며 말했다.
- 자자.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요. 흐응. 제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겠어요.
"으윽! 어리야. 참아 주라."
"아아, 어리야. 아직은 무리잖아. 너."
세진와 자넷이 동시에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테멜 안에서 생체 에테르바디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어리는 직접 느끼는 여러 감각들에 홀딱 빠졌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수영이나 달리기 등의 운동처럼 몸을 움직이는 활동들을 좋아했다. 물론 거기서 끝이 났으면 좋았겠지만 어리는 그 외에도 먹고 마시는 행위에 집착을 했다. 그 자극을 즐기는 것이다. 물론 그 종착역은 스스로 만든 것을 먹고 마시겠다는 것으로 이어졌는데, 이제 막 음식 만들기를 배우는 어리의 실력은 빈말로도 '맛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니 '맛있다' 대신에
'컥!'
하는 비명이 먼저 나오는 정체 불명의 덩어리를 접시에 올리곤 해서 세진이나 자넷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언니가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좀 더 맛난 것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래. 그럼 함께 가서 만들기로 하자. 혼자는 무리다."
"맞아. 어리야. 우리 셋이 함께 만들자.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 뭐 정 그러시다면, 지금 제 실력이 엉망인 것은 아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어리도 고집을 피우기엔 자신의 실력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순순히 동의했다. 사실 레시피를 외우거나 하는 것은 어리에게 너무 쉬운 일이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하지 않고 테멜의 능력과 어리가 지니고 있는 합성 능력을 사용하면 음식을 만드는 것이 한결 편할 것이다. 맛도 있고.
하지만 어리는 그런 능력을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요리를 하기를 고집했다.
"아구구 미치겠네."
"우와 이번엔 정말로 죽을 뻔 했어."
정진이가 김형일의 곁에 다가와 땅바닥에 누워있는 김형일의 배에 머리를 올리며 누워버렸다.
"뭐하는 거야? 이건?"
"참아. 발끈하지 말고."
정진이가 형일을 윽박지른다.
"하아, 어쩌다가..."
김형일은 고개를 돌려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선도일이 곁으로 다가와 역시 지친 기색으로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평소 깔끔한 성격의 선도일도 이번 전투에서 받은 데미지를 무시하진 못하는 모양이라고 김형일이 내심 이해했다.
그런 세 사람에게 떡배와 김혜인 박사가 다가왔다.
"이건 뭐 3등급 이면 공간이라고 방심했다가 골로 갈 뻔 했군."
떡배가 엉기적거리며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에요. 잘못했으면 누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고요."
김혜인은 그나마 모두가 무사한 것을 감사했다.
"그러고 보면 말이죠. 역시 우리 다섯으론 아직 3등급 이면 공간도 안전을 장담하긴 어려운 모양입니다. 도일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맞다. 이번 우두머리는 특이한 놈이었어. 이런 식으로 뭔가 특화된 놈들이 나온다고 치면, 3등급 이면 공간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지."
"아구구. 죽겠네. 이러다가 마스터가 되고 나서도 4등급 이면 공간도 처리를 못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정진이가 누운 상태로 이리저리 몸을 뒤틀면서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면서 4등급 이면 공간에 대해서 언급했다.
"4등급 이면 공간의 우두머리면, 5등급 일반 몬스터보다 더 강하겠지. 그렇다면 아무리 우리 경지가 올라간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지. 봐, 여기서도 3등급 우두머리에게 우리들이 확실한 우위를 차지한 것은 아니잖아."
김혜인이 정진이에게 자신들의 수준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이전보다 조금 상황이 달라져서 그런 거지. 몬스터들이 강해지고 있는 거야."
하지만 떡배의 생각은 김혜인과는 조금 달랐다.
"에엑, 강해지고 있다고요?"
정진이가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해야 하나? 음 그러니까 또 같은 놈인데 좀 더 머리가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지. 내가 느끼기엔 그래."
"하긴 인간들이 성장을 하는데 몬스터들은 제자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게 이상하지. 그나저나 떡배 아저씨."
"응?"
떡배는 정진이의 부름에 무슨 볼 일이 있냐는 표정으로 정진이를 봤다.
"세진씨 무슨 생각일까요?"
"뭐?"
"그렇잖아요. 갑자기 우리에게 3등급 천공기를 주고는 알아서 공략을 하라고 내몰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이것아. 우리 정도면 3등급은 충분히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보고 맡긴 거잖아. 이전에도 3등급 공략은 우리끼리 했었고."
"그 때는 그래도 뒤에서 지켜주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잖아. 언니."
"언제까지 보모 노릇을 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 그리고 우리도 이젠 기저귀는 벗을 때가 된 거고."
떡배가 정진이와 김형일 등을 한 눈에 담고 훑어보며 말했다.
"일종의 졸업이란 건가요?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위험해서 그렇지."
"졸업이라."
"졸업."
김형일의 졸업이란 말에 다들 한 번씩 '졸업'이란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 본다.
"아마도 이제부터 우리 나라에서 발생하는 몬스터 영역은 우리가 모두 해결을 해야 할지도 몰라. 세진님이나 자넷님은 뭔가 다른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거든."
"맞아요. 요즈음 공방 내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어딘가 비밀 공간에서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언니 생각도 그래?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그런데 정말 벗(友)은 어떤 단체인 걸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엄청난 곳인 모양이야. 우리도 사실 거기에 대해선 아는 없잖아."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잘못하다가 '실종'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하하."
김형일이 살짝 정진이를 도발했다.
"아, 그렇겠다. 괜히 설치다가 형일이 말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겠다. 입조심해야지. 흐응. 역시 내 걱정을 해 주는 사람은 형일이 밖에 없다니까? 호호홋."
"뭐야? 손이 어딜 와!"
"아야앗! 너 갑자기 그렇게 일어나면 어쩌자는 거야?!"
"시, 시끄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딜!"
"야, 그냥 어쩌다보니 스친 거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고."
정진이가 김형일을 따라 일어났다.
"자, 그럼 이제 정리하자. 이면 공간 유지 코어만 획득하면 끝이니까 말이야. 쉴 만큼 쉬었으니 가자."
떡배가 연장자로서 파티의 리더 역할을 하며 일행의 다음 행동을 이끌었다.
그렇게 그 날 경기도 일원의 몬스터 영역 하나가 나타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략이 되었다.
세계 곳곳에는 4등급 몬스터와 5등급 몬스터의 출현으로 난리가 났다.
아직까지 몬스터 영역은 3등급 몬스터 영역이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타나는 몬스터는 5등급으로 추측되는 것까지 등장했다.
사실 그 몬스터들의 등급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일단 프랜드에서 그렇다고 했고, 몬스터 패턴의 복잡성의 정도로 분류를 한 것이니 크게 벗어난 분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3등급 이면 공간에 5등급 몬스터라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나?"
몬스터의 등장과 함께 미국이란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 만들어진 대통령 직속 기관의 보스가 된 세이트 레이거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물었다.
그 회의에는 '몬스터 대책 본부'라는 식상한 이름의 이 단체를 이끄는 핵심 브레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DTM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새로 나타나는 거의 모든 몬스터 영역이 등급 혼합형이고, DTM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DTM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몬스터'의 약자였다. 그리고 DTM이란 정확하게 4등급과 5등급의 몬스터를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그것들을 잡아서 몬스터 코어가 나오게 되고, 그 몬스터 코어 때문에 4등급 이면 공간 이 열리고 그에 해당하는 몬스터 영역이 발생하면 그 때는 정말 5등급이 아니라 6등급 몬스터가 나올지도 모른다. 5등급 몬스터를 잡기 위해서 핵배낭을 써야 한다는 예상을 하고 있는데 6등급이라면 그것은 전술핵을 넘어서 전략 핵을 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더구나 프랜드에선 7등급 몬스터까지 예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세이트 레이거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DTM의 사냥을 막고 있었다.
어딜 가나 꼭,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선두에 서려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일 놈들은?"
그는 가장 걱정이 되는 석유 카르텔의 움직임을 물었다. 사실 이제 그들은 석유 카르텔이 아니라 에너지 카르텔이라고 불러야 맞을 것이다.
"아직은 조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이번에 DTM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저희들의 강력한 의지가 제대로 전달이 된 것 같습니다."
중간에 앉아 있던 부하들 중에 하나가 세이트에게 보고를 했다. 하지만 세이트는 살 짝 코웃음을 쳤다.
"훗, 그래봐야 제 버릇 개 못 주겠지. 오래지 않아서 무슨 짓이건 하게 될 것이 분명해. 하지만 그 쪽 보다는 나는 어쩐지 프랜드가 걱정이란 말이지. 어떻게 생각하나?"
"맞습니다. 사실 프랜드에선 이미 4등급 몬스터를 다수 사냥하고 그 코어를 획득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어쩌면 5등급도 사냥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나마 그들은 코어에 대한 확실한 보관 방법을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상급의 이면 공간의 출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문제긴 문제지. 그들은 계속 앞서서 나가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이들이 뒤쳐진 상황이니 말이야. 역시 우리도 DTM은 아직 무린가?"
세이트의 말에 일순 회의장에 침묵이 흘렀다. 사실 그들도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스스로 DTM이라 이름을 붙여 놓고도 여전히 그것들을 이용할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몬스터 대책 본부의 구성원들 역시 욕심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아니었다.
"곤란합니다. 사실 3등급 이면공간의 우두머리, 즉 일반 4등급 보다 뛰어날 것으로 짐작되는 그 몬스터 조차도 공략이 불가능합니다."
"그렇지. 그래."
세인트의 목소리엔 실망감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핵을 쓰는 것도 염두에 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의장의 말석에서 누군가 심각한 내용을 들고 나왔다.
"무슨 소리지?"
세인트의 시선이 테이블 끝을 향했다.
"이면 공간 안에서 핵을 터뜨리는 것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이면 공간이 온전히 그 핵의 여파를 견뎌준다면 그리고 이면 공간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이면 공간에서 핵을 이용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이야길 해 봐. 들어보지."
세인트는 이 새로운 이야기의 무척 흥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