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상이 어긋나는 일은 흔하기 짝이 없다 -- >
세진과 자넷의 귀환은 사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던 자넷이 어리 공방의 세진과 자넷의 보금자리에서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에 무시무시한 에테르 집중 현상이 있었고, 그것이 벗(友)의 비밀스러운 실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어리 공방의 식구들은 그 실험이 끝났으니 자넷이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진과 자넷, 어리가 데블 플레인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을 겪고 왔건, 그것은 어리 공방의 사람들에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구의 시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이고, 자넷이 나타난 것은 에테르 집중 현상이 있고 난 직후였던 것이다.
"이젠 어쩔 거야?"
"어쩌긴? 5등급 이면 공간을 찾아서 털어야지."
세진은 자넷의 말에 심드렁한 대꾸를 한다.
"그런데 5등급 이면 공간은 어떻게 찾을 건데? 또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천공을 할 거야?"
천공은 구멍을 뚫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세진이 하는 천공이란 숨겨진 이면 공간으로 들어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다.
일정한 에테르를 사용하면 그에 맞는 이면 공간이 열린다. 물론 그 전제 조건은 그곳에 그 수준에 맞는 이면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의 에테르로 1등급 이면 공간이 열리고 4의 에테르로 4등급 이면 공간이 열린다면, 4의 힘으로 천공을 했을 때, 4등급 이면 공간이 없으면 천공이 되지 않는다. 1등급이나 2등급 3등급의 이면 공간이 있는 장소라고 하더라도 4의 힘을 사용한 천공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약에 하위 이면 공간까지 모두 영향을 받았다면 정말 곤란했을 것이지만 다행히 각각의 등급에 맞는 에테르 양에 따라서 천공이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5등급은 처음이잖아. 정확한 에테르 양을 알 수 있어?"
자넷이 약간의 걱정을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에테르를 이용하는 능력이 이전보다 훨씬 늘었잖아. 지하 창고의 석판에서 얻은 마법진 지식도 확실히 활용 능력이 늘어났어."
"다행이네. 그런데 어디에 먼저 갈 거야? 5등급 이면 공간이 아무곳에나 있는 것은 아닐 거 아냐?"
"음, 그것도 그렇지. 거기다가 아무래도 조금 불안해서 중국으로 갈까 해."
"응? 중국?"
"그래. 5등급 이면 공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잖아. 그러니까 우리나라 보다는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말이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그게 좋지 않겠어?"
"무척 이기적으로 들리는 소린데?"
"뭐 그래도 하는 수 없는 거지. 솔직히 애국심이나 뭐 그런 것 보다는 이를테면 내가 사는 곳, 내 앞마당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그런 심리 아닐까?"
"호호, 뭐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그렇다고 해. 사지만 세진이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보면 은근히 국수주의? 민족주의 뭐 그런 냄새가 나."
자넷은 슬쩍 고개를 돌려 세진의 시선을 피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세진은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짓는 자넷의 표정에서
'아니라고 해도 다 보인다.'
는 뜻을 읽었다.
하지만 사실 세진은 스스로 대단한 애국 애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마음에 가는 대로 행동을 할 뿐, 큰 의미를 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세진님, 언니.
잠시 대화가 끊긴 틈에 자넷의 어깨 위로 어리 앵무가 나타났다.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는 어리는 이제 어디든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데 테멜 내부의 일을 처리하느라 외부에 정신을 쏟을 수가 없을 때에는 어리 공방에 있다가, 외 부와 소통을 할 때에는 세진이나 자넷의 어깨에 올라탔다.
"어서 와라."
"어리 안녕? 그래 어때?"
세진의 인사에 이어서 자넷의 질문이 이어졌다. - 아주 좋아요. 남색 테멜 코어를 흡수한 보람이 있어요. 뭐라고 할까 굉장히 여유가 생겼어요. 하위 테멜들을 관리하는 부담이 확 줄었어요.
"다행이네.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남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구하긴 어려울 거야. 알지?"
세진이 어리에게 다짐을 하듯이 말했다.
- 알아요. 당분간은 데블 플레인에 안 가실 거잖아요. 하지만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는 많이 구해 주실 거죠? 아, 오션이나 모랜 녀석들도 조금씩 더 성장을 시켜야 하니까 열심히 해야 해요.
"그건 좀 생각을 해 보자. 어리 네가 확실하게 통제를 할 수 있다곤 하지만 그 녀석들 이 5등급이 되도 어리 너의 통제가 확실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 없어요. 어리는 남색 등급의 코어를 흡수한 것이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에요. 4등급 때에도 어리가 파란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흡수한 후에 확실하게 녀석들을 제압했으니까요. 한 등급의 차이는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어리는 자신감에 넘쳤다.
지구도 돌아오기 전에 어리는 6등급, 그러니까 남색 등급의 테멜 코어를 세 개나 흡수를 했다. 세바스가 두 개를 구했고, 세진과 자넷이 직접 테멜을 찾아서 공략하면서 구한 것도 하나 있었다.
그렇게 구한 세 개의 남색 등급 테멜 코어를 흡수한 어리는 새로운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들이 어마어마하게 신장되었다.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고, 하위 테멜들에 대한 장악력도 늘어났다. 거기다가 어리의 테멜 공간도 확장이 되었다.
물론 그로 인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에테르 수급은 괜찮아?"
세진이 약간 굳은 표정으로 어리에게 물었다.
- 역시 지구가 30% 정도 에테르가 적어요. 그래서 제가 외부에서 끌어 들이는 에테르의 양도 조금 줄었어요. 하지만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에요. 코어를 충전하는 것에 문제는 없어요.
"그래? 다행이네? 세진이 걱정이 많았거든. 테멜 코어가 에테르가 충전이 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에테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지."
"테멜만 아니라면 괜찮을 텐데 말이야."
자넷이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화이트 코어는 에테르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화이트 코어가 영구적인 에너지원으로 각광을 받고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멜에 있는 테멜 코어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랐다.
테멜 코어는 에테르를 받아들여서 그것을 흡수한다. 테멜은 코어가 에테르를 받아들여서 그것으로 만들어낸 특별한 공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테멜 공간 안에서는 테멜 공간에 들어 있는 다른 여러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에테르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슨 이유인지 그렇게 제한이 걸려 있었다. 그래서 필요한 에테르는 외부에서 수급을 해 온다. 즉 끊임없이 에테르를 받아들여서 그것으로 테멜 코어를 충전하는 것이다.
물론 급한 경우에는 테멜 안에 존재하는 에테르를 흡수해서 코어를 충전할 수도 있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렇게 테멜 안에서 흡수하는 에테르의 양이 더 많다.
일종의 에테르 순환인 것이다. 코어에 흡수된 에테르는 테멜의 유지나 보수, 확장, 개조 등등의 용도로 사용이 되고, 그것을 다시 코어가 흡수해서 에너지로 사용한다.
사실 그런 순환은 거의 손실이 없어서 끝없이 이어질 수 있지만 그래서는 테멜 내부에 변화가 없다. 에테르의 총량에 변화가 없으면 테멜은 발전이 멈추는 것이다.
그런데 테멜은 끝없이 외부에서 에테르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테멜 내부의 에테르 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때문에 테멜도 발전하는 것이다.
지금 어리는 남색 등급 즉, 6등급 테멜에 어울리는 확장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기에는 6등급 테멜을 흡수하면서 받아들인 에테르의 양이 부족한 것이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에테르가 많기는 했지만 어리가 완전히 6등급 테멜로 성장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외부에서 에테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데 데블 플레인에 비해서 지구의 에테르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그나저나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뭘 모르겠다는 건데 자넷?"
세진이 자넷의 뜬금없는 말에 반응을 한다.
"아니, 왜, 어째서 테멜 안에서는 에테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걸까?"
자넷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글쎄? 어쩌면 테멜 안에 다른 기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뭐?"
"그렇잖아. 테멜 안에 에테르 이외의 기운들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한 거겠지. 아니면 애초에 테멜이란 것은 에테르만 충만한 곳에서 만들어지던 것이어서 에테르 이외의 기운은 테멜 안으로 들어올 일이 없으니까 다른 기운을 에테르로 만드는 것을 빼버렸을 수도 있고."
세진은 이제 테멜 코어란 것이 일종의 관리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시스템에 에테르 생산 기능이 없는 이유는 앞에서 이야기 했던 두 가지로 짐작할 수 있었다.
테멜 안에 에테르 이외의 기운들이 필요했거나, 에테르 이외의 기운이 테멜 안에 들어올 일이 없었거나.
"테멜이 에테르 이외의 기운이 필요했다면?"
자넷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진에게 물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테멜을 이용하는 것처럼 일종의 피난처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는 거지. 애초에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것이 테멜이었다면, 당연히 에테르 이외의 기운을 코어가 흡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했을 거야."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화이트 코어를 이용해서 피난처로 테멜을 만들어 냈다는 거야? 그런데 테멜이 제 멋대로 에테르가 있는 곳에 나타나게 된 건?"
"그 이유야 내가 알겠어? 하지만 코어란 것이 미지의 영역이잖아. 그러니 테멜 코어가 만들어진 이후, 그 시스템을 복사한 코어들이 생겨났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잖아. 사실 코어들 사이에 정보가 오고 간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고, 그런 상황에서 새롭게 생겨난 테멜 코어에 대한 정보가 확산이 되었다면 테멜 코어의 존재도 설명이 가능하지."
"재미있는 가설이네? 거기다가 애초에 에테르만 있는 곳에서 테멜 코어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다른 기운을 에테르로 만드는 기능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거네?"
"그렇지. 그렇게 되면 테멜 코어는 에테르 기반 생명체들, 혹은 코어들이 만들어 낸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우린 이미 존재하는 코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으응, 세진은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건 중요한 거라고. 테멜을 누가 만들었느냐 하는 것을 밝히면 뭔가 대단할 것 같지 않아?"
- 역시 언니. 맞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어리가 열심히 해서 코어의 비밀을 밝혀 보겠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모든 테멜 코어들을 제 밑에 무릎 꿇게 할 거예요. 흥흥.
"쩝. 그건 나중 일이니까 일단 그 이야기는 그만 하자. 그래도 지구에서도 어리의 코어에 문제가 없다니 그걸로 된 거다. 이젠 어리를 위서 5등급 이면 공간 유지 코어를 구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세진, 이번에 갈 때에는 이 의체를 쓸 거지?"
자넷이 세진에게 물었다.
그들은 지구로 오면서 이전 로페소에테에서 사용하던 생체 에테르바디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헌터룸도 가지고 있었다.
소형 우주선으로 그 안에 헌터룸이 들어 있었는데, 사실 그 우주선은 헌터룸 관리자들이 고객의 편의를 위해서 우주 여행 중에도 생체 에테르 바디를 이용해서 데블 플레인에서 유희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물건이었다. 그걸 자넷의 이름으로 구한 다음에 그 헌터룸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을 세바스가 복사하고 또 개량해서 자넷에게 넘겼다.
그리고 어리는 로페소에테에서 사용하던 우주선을 테멜 안에서 완벽하게 복재를 한 후에 원래 사용하던 우주선을 반납하고, 대신에 새로 만든 우주선에 세바스가 보낸 프로그램을 이식했다.
그렇게 세진과 자넷은 소형 헌터룸을 가지게 되었고, 그 헌터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기능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생체 에테르 바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능이라거나, 생체 에테르바디를 사용할 수 있게 접속을 시키는 기능이라거나 하는 것들을 고스란히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부터 위험한 사냥에서 굳이 본신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개인적인 수련을 생각하면 본체를 움직이는 것이 좋겠지만 위험도를 생각하면 생체 에테르바디를 사용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래서 세진과 자넷은 될 수 있으면 외부 활동에선 생체 에테르바디를 사용하기로 합의를 본 상태였다.
지금도 세진과 자넷의 본체는 어리의 테멜 안에 안전하게 누워있었다. 어리 공방에 나타난 세진과 자넷은 실상 생체 에테르바디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