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락칸의 비의를 훔치다. -- >
"미치겠군."
"역시 안 되는 거야?"
세진의 짜증에 자넷이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물었다.
"아무래도 이거 곤란한데? 기존의 에테르 로드와 자꾸만 겹치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길로 에테르가 흐르질 않아. 이건 전혀 새로운 길이야."
세진은 허서르 프락칸에게서 훔친 에너지 운용법을 시험해 보고 있었는데, 번번이 실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프락칸도 에테르를 이용해서 칼질도 하고 그러는데? 그랜드 마스터에 이른 실력자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그 타모얀 종족의 종족 특성일 수도 있어. 어리야 어때?"
= 확실히 다릅니다. 아니 어쩌면 그 프락칸이 되기 위해서 타모얀 종족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가 모두 가능했을 겁니다.
"너 말투가 왜 그러냐? 무슨 기분이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냐?"
세진은 단박에 어리의 말투가 바뀐 것을 알았고 또 그것이 어리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일어난 변화인 것도 알았다.
= 모랜 녀석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리는 슬퍼요.
"그거 어리 네가 사용할 새로운 몸체에 대한 이야기냐?"
= 네에. 아무리 해도 에테르 기반 생명체를 제가 쓰는 데에는 한계가 있은 것 같아요. 아아, 어리는 굉장한 좌절감에 휩싸였어요.
"그것 참. 너도 되는 일이 없고 나도 되는 일이 없구나."
세진도 맥이 빠져서 탁자에 뺨을 대고 엎드렸다.
"으응. 나도 맥이 빠지는 것 같아. 둘이 다 힘들어 하니까."
자넷도 세진 곁에서 뺨을 탁자에 대고 서로 코가 닿을 듯이 가까이 엎드렸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
= 으아아, 미워. 둘 다 미워! 이 와중에도 연애질이야!
어리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버럭 한다.
"있잖아. 세진."
"응?"
"우리 여기에 올 때에 가지고 온 우주선. 그거 말이야."
"왜? 그거 이제 반납해야잖아."
로페소에테에서 임무를 수행하느라 빌린 우주선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고 세진이 되물었다.
"어리가 그대로 만드는 거 가능할까?"
자넷은 그런 세진의 말은 무시하고 하려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 어리가 어떤 어린데?"
세진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테멜 안에 넣기만 하면 어떻게든 똑 같은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럼 그걸 하나 복제해서 숨겨 두자. 그거 잘 이용하면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재미있는 일?"
"있잖아. 그 우주선 소형 헌터룸으로 쓸 수 있잖아. 거기다가 그거 생체 에테르바디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잖아."
"그, 그렇구나. 그걸 지구 상공에 띄우, 아니지 여기 테멜에 넣어 두면?"
"맞아. 생체 에테르바디를 지구에서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말씀!"
"그거 연방법에 걸리지 않아?"
"어차피 지구는 연방에 속해 있지도 않잖아. 거기다가 우리가 뭘 했는데? 이제 우주선 반납을 해야 하긴 하지만 뭐 우린 반납 할 거거든. 거기다가 우리가 썼던 생체 에테르바디도 헌터룸으로 옮겨 질 거고? 우린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거지. 오호홋."
"그야 그렇지. 아무렴. 들키지만 않는다면야."
"응. 내가 잠시 회사에 복귀해서 알아봤거든? 지구에 대해서? 그런데 연방 전체를 다 들쑤셔도 지구에 대한 정보는 없었어. 그러니까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연방에선 알 수가 없다는 말이지. 호호홋. 어때?"
"좋다. 그거 아주 좋아. 그럼 그 생체 에테르바디를 이용해서 프락칸 수련법을 익히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니 가능할 거야. 어리야!"
= 네에. 어리는 우울해요.
"아니 우울해하지 말고. 지금 이야기 들었지?"
= 그래요. 어리에게 또 무지막지한 일을 시키려는 음흉한 작당을 다 들었어요.
"어리야. 생체 에테르바디를 만들 수 있는 우주선이야."
= 알아요.
"그 생체 에테르바디, 우리 어리가 쓸 수 있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리가 연구를 잘 해 보면 그 헌터룸의 시스템으로 어리가 그 생체 에테르바디를 움직일 방법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응?"
"어리야? 어리야?"
= 어리는 지금 무지무지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기쁜 것이에요. 그러니까 말은 조금 있다가 시키시는 것이에요. 어리는 지금 감격한 것이에요.
"그, 그러냐?"
"그런데 어리가 헌터룸 관리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어도 어떻게든 생체 에테르바디를 이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지. 저렇게 좋아하는데. 그리고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뭔가 있어? 응?"
"아직은 아닌데 방법이 생길 것도 같아. 아무래도 내가 어리 보다는 창조적이잖아. 그래서 어리와 연결이 된 상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제법 많아. 내가 어리를 도우면 어쩌면 수가 생길 거야. 어리 녀석 소원 성취를 하는 거지."
"아,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
"그나저나 그 우주선 만들려면 재료가 만만치 않을 텐데? 그건 어떻게 하지? 아무리 어리라고 해도 그런 재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합을 해 내는 것은 무리라고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그런가? 뭐 그럼 회사에 연락해서 고철들 좀 가지고 오라고 하지 뭐. 다른 건 몰라도 고철덩어리 좀 움직이는 걸로는 연방에서도 신경을 안 쓸 거야. 대신에 우리가 썼던 우주선 그거 어떻게든 테멜에 넣어서 정보 분석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
"어리야 어떻게 안 될까?"
세진이 어리에게 물었다.
= 어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우주선을 테멜로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면 밖에 있는 상태로 스캔을 하는 것이에요. 엄청난 에테르가 필요하긴 하겠지만 어리는 어리의 에너지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에요.
세진은 어리의 말에 속으로 많이 놀랐다. 어리에게 에너지, 즉 에테르는 어떤 의미에서 어리의 생명과 같다. 그래서 어리는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를 위해서 불철주야 노력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과도한 에너지 소비가 예상되는 일임에도 하고 말겠다니, 어리가 얼마나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우주선 있는 곳에 가 보자."
자넷이 세진을 재촉했다.
세진과 자넷은 곧바로 숙소를 나와서 우주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들은 아직도 허서르 프락칸이 초대한 공간에 머물고 있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실내에 머무는 중인 것이다. 이제 언제 기회를 봐서 우주선과 함께 자넷과 세진을 게이트 너머로 보내 준다고 했지만 정확한 일정은 잡히지 않아서 기다리던 중인 것이다. 모든 정보 수집이 끝난 상태에서도 어리는 우주선을 만들 수가 없었다.
"으아악, 왜 아직도 안 보내주는 건데?"
세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세진과 자넷은 갇혀 지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허서르도 자주 오지 않고 며칠에 한 번씩만 왔다 갔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둘을 게이트에 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반 게이트도 아니고 우주선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 거라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니 당연하게 어리가 사용한 재료들을 수급한 방법이 없었다.
"정말 자꾸 이러면 여기 있는 벽이고 천정이고 바닥이고 몽땅 뜯어서 삼켜버리는 수가 있어!"
세진이 다시 한 번고함을 질렀다.
= 어리도 세진님이 말씀만 하시면 몽땅 뜯어 버릴 수 있어요.
"자자, 진정해. 응. 좀 진정해라. 뭘 그렇게 서둘러? 조금만 기다리면 허서르가 우릴 라훌 행성으로 보내 줄 거야. 그러면 우리가 했던 일은 완전히 덮이는 거지. 그리고 거기에 이미 어리가 쓸 재료들을 한 가득 실어서 행성 상공에 대기시켜 뒀으니까 거기 도착해서 어리가 올라가서 실려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오면 되는 거야.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 응?"
자넷이 세진과 어리를 말리느라 진땀을 뺀다. 그러면서 허서르를 속으로 무지하게 씹어 삼키는 중이다.
"어머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재미있게 하시는 걸까요?"
그런데 마침 허서르가 등장을 한다.
"이제 갈 수 있는 겁니까?"
세진이 허서르를 보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물었다. 그 목소리엔 기다릴 만큼 다 기다렸으니 또 딴 소리를 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어머나 무서워라. 네네.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어렵데 게이트를 확보했답니다. 그 게이트를 이용하면 저기 자넷 말처럼 라훌족이 있는 행성 대기권 밖으로 가실 거예요. 그리고 거기사 헌터룸의 도움을 받아서 필드로 가시게 되는 거에요. 정확하게는 제이비아로 가시는 거지요. 그런데 듣자하니 무슨 어리가 어쩌고 하시는 것 같던데, 여기 또 다른 누군가가 계시는 건가요?"
"잘.
못. 들은 거겠지요. 그래서 언.
제 갈 수 있는 겁니까?"
세진이 얼음물이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물었다.
"무섭네요. 뭐 비밀이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죠. 하긴 그렇게 넓은 테멜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다고 해도 그게 뭐 그렇게 이상한 일이겠어요? 마을이나 도시도 있을 수 있는 곳이 테멜인데 말이죠. 그런데 로페소에테에서 하우타칵을 제법 수거하시지 않으셨나요? 그것도 저번 테멜에 넣어 두신 모양이죠? 호호호. 뭐 그런 정도의 부수입은 이해해 드리죠. 그럼 준비를 하세요. 세 시간 후에 게이트를 이용하실 수 있을 거에요."
허서르 프락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모습을 감췄다.
"대단하군."
"으응. 안 그럴 것 같은데 실제론 실력이 엄청난 여자야. 딱 보기엔 열 몇 살 정도로 보이지만 저건 결혼을 못해서 아직 저 모양인 거고. 나이는 많아. 저 종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2차 성장을 하거든."
"그래? 그런 것도 있어? 재미있네."
"아무튼 저 여잔 조심해야 해. 어쩌면 우리에 대해서 뭔가 더 알아냈을지도 몰라."
"왜 그렇게 허서르 프락칸을 싫어 하는 거야?"
"흥, 저런 절대 동안 따위 절대 부러워서 그런 건 아니야!"
"그, 그래."
세진은 자넷이 허서르를 험담하는 이유가 어쩌면 단지 저 이유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자넷은 어쩐지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거나 자넷과 세진은 허서르가 다녀가고 세 시간 후에 우주선을 탄 상태로 라훌 행성의 상공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다시 우주선을 헌터룸에 반납을 한 후에, 정식 헌 터룸의 도움을 받아서 제이비아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헌터룸에서는 자넷과 세진이 일반 행성 중에 한 곳에 다녀왔다는 기록이 남았다. 자넷과 세진이 다른 데블 플레인에서 엉뚱한 짓을 하고 왔다는 기록은 전혀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곤 곧바로 자넷과 세진의 요구에 의해서 두 사람은 본체 상태로 제이비아로 내려갔다.
이제 우주선을 만들고 헌터룸을 만들어서 생체 에테르바디를 이용한 계획들을 실행에 옮겨봐야 하는 것이다.
- 어리는 정말 흥분이 되는 것이에요. 세진님 자넷님 너무 감사한 것이에요.
제이비아에 도착해서 테멜로 들어서자마자 어리의 흥분된 목소리가 홀을 가득 울렸다.
"자, 이제 대기권으로 나가서 자넷이 준비한 재료들을 챙겨 오자."
세진이 어리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리는 순식간에 순간이동을 거듭해서 라훌 행성의 대기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자넷이 준비한 우주선을 찾았다.
"이건 우주선이 뭐가 이렇게 커?"
"호호호. 원래 이런 우주선이야. 모든 물류를 게이트를 이용할 수가 없으니까 행성과 행성 사이를 이런 초거대 우주선을 수도 없이 띄워 놓고 물류 이동을 맡긴 거지. 그 중에서 이곳 근처를 지나는 것들 중에서 그럴듯한 것을 여기 가지고 온 거야. 뭐 그래도 모자라면 이 우주선을 어느 정도 잘라 먹어도 상관 없어."
"그것 참. 저건 어리 테멜에 다 들어올것 같지도 않은데?"
"호호호. 농담도. 그 정도는 아니야. 몇 Km정도 되기는 하지만. 일단 안에 실려 있는 것들로 충분할 거야. 알아서 챙겨."
자넷의 말에 어리는 우주선 안으로 순간 이동을 한 후에 닥치는 대로 우주선에 실려 있던 것들을 테멜로 흡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