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73화 (173/298)
  • < --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기댄 모양이다 -- >

    로페소에테는 점점 무너졌다.

    사람이 줄어들고 몬스터의 습격은 끊이지 않았다.

    세진은 결국 로디아드에는 더 이상 구할 사람이 없다고 결정을 내렸다. 이제 그곳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가 테르켓트의 악몽과 연관된 이들 뿐이었다.

    페이러드의 사람들도 이젠 그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도록 두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소르메드와 에프레드, 테르켓트는 계속 사람들을 뽑아서 하리야트로 보내서 정착을 시켰다.

    그러면서 세진은 될 수 있으면 계급 의식에 젖은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에겐 여전히 로페소에테의 삶을 살도록 둘 생각이었다.

    점점 어리가 한가해지기 시작했다.

    하리야트로 옮길 사람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대신에 하리야트에선 새로운 붐이 일었다.

    방어구와 무기, 거기에 몬스터 방지부적이 하리야트를 들뜨게 만들었다.

    좀 더 튼튼한 방어구, 강력한 무기, 안전을 위한 부적에 환호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전보다는 조금 더 몬스터 사냥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서 투렐의 주민들이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들의 실력이 하리야트의 주민들 보다는 나았기 때문에 몬스터 사냥에 유리했던 것이다.

    거기에 니스렐의 주민들도 경쟁자로 뛰어들었다.

    니스렐은 하이야트와 투렐 이후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규모로 보면 투렐의 세 배는 넘는 규모였는데 그곳에는 주로 페이러드돠 소르메드에서 온 중급, 하급 귀족들이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아무래도 쉽게 하리야트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리가 어쩔 수 없이 따로 마을을 만든 후에 이주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했는데, 그들이 모여서 내린 결론이 새로운 정착지로의 이주였다.

    그렇게 생긴 마을이 니스렐이었다. 어쨌건 거기에도 제법 실력자들이 있어서 몬스터 사냥에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렐이나 니스렐은 여전히 하리야트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었다.

    아직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사용할 도구들을 생산할 재주가 없었다. 당연히 몬스터를 잡고 채집을 해서 그것으로 교환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면서 하리야트에는 에테르 수련법이 널리 퍼지고, 또 세진이 로디아드의 귀족들에게서 빼돌린 수련법과 에테르를 이용한 기술들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방어구와 무기 부적을 수리하는 방법이 장인들에게 남모르게 전해졌다. 아마도 그것들은 그 장인들의 비기가 되어서 또 다른 권력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지만 그것까지야 세진이 어찌 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수리하는 방법에서 제작까지 가자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야 할 것이니 결국에는 그것도 나름 수고의 대가라고 생각해 주기로 했다.

    "하리야트와 니스렐, 투렐도 이젠 어느 정도 정착을 한 것 같은데? 이제 어쩔 거야?"

    "뭐가 이게 우리가 받은 임무 아니었어? 여기 사람들에게 몬스터와 맞서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또 그들이 몬스터와 상대할 수 있는 기본적은 능력을 부여하는 거 말이야. 그럼 이제 우린 임무 완수인 거 아냐?"

    "알면서 왜 자꾸 물어? 그래서 로페소에테는 그냥 두고 갈 거야?"

    "흐음. 그냥 둘 수는 없지. 하지만 또 모두 죽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고... 어쩔까 고민 중이야."

    "만약에 거기 귀족 놈들이 신도시들을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자넷이 세진에게 물었다.

    "그것 참, 그렇게 되면 곤란한가?"

    "아이, 곤란한가 정도가 아니지. 그 강력한 무력을 앞세워서 하리야트와 니스렐, 투 렐을 점령하고 지배할 것이 분명하잖아."

    "너무 가까운 곳에 도시를 건설한 건가?"

    세진이 머리를 긁었다.

    "이참에 도시를 더 먼 곳으로 이주해야 하나?"

    - 어리는 결사 반대인 것이에요. 세진님은 너무하신 것이에요. 아무리 어리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어요?

    즉각적인 어리의 항의가 튀어 나온다.

    다시 세진이 머리를 긁는다.

    사실 놈들이 뛰어 나와서 하리야트를 공격하면 문제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페소에테를 몽땅 밀어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마스터 정도 되는 놈들은 정리를 하고 떠나야 한다는 건가?"

    세진이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 정도 실력자는 없애고 가야 이후에 하리야트 쪽도 방어가 가능하겠지. 당장은 힘들어도 나중에는 다들 성장할 테니까 말이야. 더구나 그 방어구들은 기본적으로 에테르 흡수를 빠르게 해서 수련 효과를 높이는 기능도 약간이지만 들어 있잖아."

    "흐음. 지금 싸워선 거멘단트, 데글, 털거일, 이 세 수장들에겐 이기지 못할 것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말이야."

    "응?"

    "어차피 여기서 죽어야 하는 거 아냐?"

    "왜?"

    "우리 어떻게 올라가?"

    자넷이 하늘을 보며 물었다. 적어도 수백 Km 상공에 떠 있을 우주선에 올라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뭘 그런 걸 고민해? 어리야 우주선까지 갈 수 있지?"

    - 당연한 말씀인 것이에요. 어리는 세 번의 이동으로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에요. 어리의 계산은 틀리지 않을 것이에요.

    "에?"

    "에는 무슨. 어리가 순간 이동으로 연속 이동을 하는 거야. 그럼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지. 당연히 우주선으로 가는 것도 가능하고 말이야."

    "그렇구나. 난 또 돌아가려면 자살이라도 해야 하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 미련한 짓이었지. 이곳에 내려올 때에도 어리의 도움을 받았으면 고생할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야. 이게 전부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 누가 그런 생각을 해 봤어야지 말이지."

    "호호호. 그건 그러네. 아무튼 어쩔 거야?"

    "싸우긴 부담이 왕창 되는데 말이지. 자히락 가주하고 테르렉치 가주는 어려울 것이  없는데 나머지는 최상급이란 말이지. 아슬아슬, 그것도 1:1 일때나 아슬아슬이야."

    "그럼 내가 끼면?"

    "그야..."

    새진은 대답을 하려다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협공을 하는 것을 그다지 거리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서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자신을 느낀 것이다.

    "그래. 하나씩 유인해서 처리하자. 일단 원로 중에서 실력이 있는 이들부터 처리를 하고, 그 다음에 가주들을 정리할까?"

    "가주들을 먼저 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좋지 않아? 우두머리가 없으면 흩어지게... 아 그럼 안 되는 거구나? 여기서 로디아드에서 도망가게 하면 곤란하네. 그러다가 하리야트로 가기라도 하면..."

    "뭐 일단 정리하자. 마스터 이상은 싹 정리하고, 그 중에서 그나마 사람같은 이들이 몇 있으니까 그들은 테멜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고 처우를 결정하기로 하고."

    "응. 그래."

    세진과 자넷은 이후로 차근차근 실력자들을 줄여 나갔다.

    그러면서 로페소에테에 대한 몬스터 공격도 줄였다. 이제 이곳은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꾸려가야 할 터전으로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대신에 신의 은총은 박살이 났다.

    테르켓트 외곽에 있는 것만 남기고 나머지 네 구간의 신의 은총은 말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은 로디아드의 귀족들도 복구가 불가능했다.

    그들도 있는 것을 유지할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연합에서 준 것을 저들이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자넷은 망연자실한 귀족들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결국은 나만 남았나? 자히락, 데글, 털거일의 가주들은 자네들 손에 죽었고, 테르렉치의 가주는 자살을 했지. 원로들이나 실력있는 가솔들은 이미 모두 사라졌고 말이야. 대단하군. 그런데 자네들은 누군가? 어디서 왔지? 이곳 로디아드 출신은 아닌 것 같은데?"

    "로디아드가 아니라 로페소에테 어디 출신도 아니에요. 우린 저곳에서 왔어요."

    자넷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 그럼?"

    "아는지 모르지만 당신들은 예전에 이 넓은 세상에 번창하면 살았던 인류였어요. 그런데 몬스터들이 나타나자 조금씩 밀리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로페소에테까지 밀렸죠. 그래서 우리들은 당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당신들이 신의 은총이라고 부르는 방어막을 만들어 줬어요?"

    "시, 신?"

    "아니요. 우린 신이 아니에요. 우린 당신과 같은 인간이죠. 어쨌건 우리가 원한 것은 당신들이 안전한 보금자리를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서 몬스터들을 밀어내고 다시 이  대지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의 선조들은 엉뚱한 선택을 했죠."

    "안주를 했구먼. 안전한 삶의 터전이 있으니 그것에 만족하고 말았겠지. 그러면서 테르켓트의 악몽을 만들어 내고 말이야."

    "맞아요. 당신들, 그리고 당신의 선조들은 잘못된 선택을 한 거죠. 하지만 우린 그걸 그냥 두고 보기로 했어요. 그건 당신들의 선택이니까. 멸망으로 가는 것을 방관하기로 한 거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인 거냐"

    거멘다트의 가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눈에 보이는 멸망을 아쉬워한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의뢰를 했어요. 몬스터들과 맞설 의지를 주고, 능력을 주라고 말이죠.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뭐 당신들 귀족이란 이들이 하는 짓이 우리 마음에 안 들었던 점도 한 몫을 했고 말이죠."

    "너희만 너희만 아니었으면 평화롭게 살 수 있었다. 비록 언젠가 멸망을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아, 걱정하지 말아요. 실종된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 있어요. 단지 그들에게 없는 것 은 신의 은총이죠. 신의 은총이 없이 몬스터와 맞서며 지금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러니 멸망은 당신과 이곳에 있는 귀족들의 멸망일 뿐이에요."

    "하하하. 너희가 무슨 권리로!"

    "뭐 당신들이 당신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이 우리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당신들의 몰락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뭐 거창한 대의명분 따위가 필요한가요? 당신들의 몰락이 우리에게 이익이 된 거예요. 조금 미안하긴 하네요."

    자넷의 말에 거멘다트의 가주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 자리가 마지막 자리가 될 것임도.

    자넷의 곁에 있던 세진이 거멘다트의 가주에 맞서서 창을 들고 나섰다.

    "비, 비겁한..."

    "미안요. 우린 부부거든요."

    "나도 좀 미안한데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좀 강해 보이면 혼자 보다는 여럿이 가서 때려 주는 거지. 뭐."

    세진과 자넷은 쓰러지는 거멘다트의 가주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남편이나 아내에게 난 작은 생체기 하나보다 못하단 것은 분명했다.

    까짓 죽는 놈이 욕을 한다고 그게 뭔 대수일까. 내가 사랑하는 이의 피부에 흠이 생기는 것이 더 걱정이 되는 그런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제 여기 임무는 끝난 건가? 그럼 돌아가서 보상을 받아야겠네?"

    "으응. 그 여자도 만족할 거야. 설마 뭐라고 트집을 잡으면 그 때는 정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니까 말이야."

    자넷이 살짝 매서운 눈빛을 했다가 다시 세진을 보면서 스르르 눈빛이 풀렸다. 입 안에 들어온 소프트 아이스크림 같은 눈빛이다. 세진은 그 눈빛이 무척 맛있다고 생각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지금은 안 돼. 흐응."

    "내가 생각은 무슨. 아무 생각도 안 했어"

    그러면서 세진은 슬쩍 자넷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 어서 서두르세요. 빨리 나머지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에요. 어리는 어서 여기를 떠나고 싶은 것이에요.

    오늘도 어리는 두 부부의 사이에서 훼방꾼 노릇을 톡톡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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