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 노트-168화 (168/298)
  • < -- 너희는 새로운 질서에 적응해야 한다 -- >

    - 어리는 무척 바쁜 것이에요. 그러니까 너희들도 열심히 나를 도와야 하는 것이에요. 알았어요?

    테르켓트의 방어막 일부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걸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에프레드로 들어가는 입구는 막혔다. 또한 테르켓트에서 방어막이 무너지지 않은 방향으로 향하는 모든 길들이 귀족들에 의해서 통제가 되었고, 접근하는 것도 거부되었다.

    심지어는 가까이 다가갔던 이들은 공격을 받아서 죽기까지 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쉽게 죽이는 것은 아무리 테르켓트의 사람들이라도 좀처럼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자 몬스터에게 던져진 테르켓트의 사람들은 갈 곳을 잃고 이리저리 도망을 다녀야 했다.

    그나마 에테르 수련법을 익힌 이들이 나서서 최하급 몬스터들을 상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급, 중급 몬스터들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밀렸다. 그런데 의외로 테르켓트 내에서 몬스터에게 죽는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았다.

    죽었다 싶은 순간 정신을 차리면 어딘지 모를 공간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마을 광장에 모여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다가 순식간에 마을 인원 전체가 이동이 된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어리였고, 그 어리를 돕는 것은 어리의 부하들이었다.

    - 두고 보는 것이에요. 벌써 죽은 사람들이 몇이나 생긴 것이에요. 팜하고 초원이는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제일 실수가 많은 것이에요.

    어리의 지적을 받은 테멜들은 그야말로 지옥을 떠올리며 연약한 코어에 스크레치가 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어리는 테르켓트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었다.

    점점 어리가 수용하는 인원들의 수가 늘어났고, 하루가 지나기 전에 몬스터가 밀고 들어온 테르케트 안에는 단 한 명의 사람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몬스터를 막고 있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적어도 열흘 동안은 테르켓트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살필 계획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테르켓트에 들어가 상황을 확인한 것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그들은 테르켓트의 악몽을 만든 다음 날,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로디아드는 다섯 겹의 신의 은총으로 보호받는 축복받은 땅이다.

    그곳에 사는 이들은 한 번도 로디아드에 몬스터가 나타날 거라는 상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테르켓트의 악몽이 벌어진 다음날 밤, 로디아드는 도디아드의 악몽을 맞이했다.

    세진은 로디아드에 어설픈 몬스터들을 꺼내 놓지도 않았다. 로페소에테에서 잡은 몬스터들 중에서 제일 강력했던 파란색 몬스터의 부족 코어를 지닌 놈을 테멜로 끌어 들인 후에, 어리가 그 몬스터가 부족코어로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 것을 관찰한 후에 곧바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를 양산해냈다.

    인간형 몬스터이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몬스터들이 분열을 한다는 것이다.

    부족 코어를 지닌 몬스터가 부하를 만들면 그 부하 몬스터는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다. 그런데 이 몬스터가 분열을 해서 두 마리가 되면 파란색 하급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분열을 하면 초록색 상급, 다시 분열하면 초록색 하급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분열을 할 수 있는 몬스터가 바로 세진이 선택한 몬스터였다.

    그래서 이 몬스터는 최하급이랄 수 있는 빨간색 등급에서부터 하급인 주황색, 중급인 노란색, 상급인 초록색, 최상급인 파란색까지 모두 한꺼번에 존재할 수 있는 특이한 종인 것이다.

    물론 이런 몬스터 분류는 이곳 로페소에테에서만 나누는 것이다.

    이들은 그 이상의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 최고의 능력자가 사냥 가능한 단계까지만 몬스터를 구별하고 나머지 남색과 보라색 등급 혹은 그 이상은 규격 외로 취급해서 등급도 나누지 않은 것이 이곳 로페소에테의 귀족들이었다. 어차피 잡을 수 없거나 혹은 잡을 생각이 없는 것들을 굳이 그 강함의 척도를 나눌 이유가 없었기에 이들은 몬스터를 다섯 단계의 사냥 가능한 몬스터와 사냥 불가의 그 외 등급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어쨌거나 로디아드의 악몽은 그 몬스터가 나타나면서 시작되었다.

    세진은 로디아드 곳곳에 몬스터를 풀어 놓았다. 테멜 안에서 만들어진 몬스터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갑자기 인간들이 가득한 공간으로 옮겨졌고, 곧바로 흉폭성을 드러내며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

    물론 어리는 그래도 신경을 써서 몬스터들을 로디아드의 귀족들이 있는 곳에서 가깝게 풀어 놓았다. 로디아드의 귀족은 기본적으로 에테르를 이용한 기술들을 익힌 전사들이다. 그러니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나타난 파란색 등급의 몬스터, 그들의 기준으로는 최상급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기다가 몬스터들은 상대를 만나지 못하거나 혹은 상대가 약한 경우에는 분열을  해서 수를 늘렸다.

    그것은 진정 악몽이었다. 로디아드의 귀족들은 원래 선택받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고급 수련을 시켰다. 그렇게 수를 유지하면 권력을 나누지 않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그러니 로디아드에 실력있는 이들이 넘쳐날 수가 없다. 더구나 지금은 페이러드에 있는 이들을 이끌고 테레켓트로 침범한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 많은 병력이 출동을 해 있는 상태였다.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테르켓트의 악몽을 만드느라 실제로 필요한 병력의 수도 몇 배는 많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로디아드의 전투력은 형편없이 떨어진 상태였다.

    "꺄아아아아악!"

    "살려줘!"

    "모, 몬스터다!"

    "도망가!"

    화려한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어리는 무척 바빴다.

    -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이에요. 초원이는 방금 삼킨 사람을 다시 뱉는 것이에요. 그 사람은 테르켓트의 악몽에 동참을 한 사람인 것이에요. 뱉는 것이에요. 마운틴, 어린 아이는 구하는 것이에요.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이에요. 순서를 지켜야 하는 것이에요. 아이와 어른 중에선 아이. 젊은이와 노인 중에선 젊은이, 여자와 남자 중에선 여자. 그 기준으로 구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잊지 않는 것이에요. 테르켓트의 악몽을 알고 동참한 사람들은 구하는 것이 아닌 것이에요. 어리는 대부분의 능력을 순간 이동에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동과 동시에 어리의 부하들이 주변을 탐색해서 사람들을 몬스터에게서 구해내는 일을 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다 구할 수는 없었다.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과 몬스터들이 하나씩 죽어나갔다. 거멘단트의 가주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된 일이냐? 설마 모든 방어막이 다 열렸더냐?"

    "아닙니다. 지금도 로디아드와 페이러드 사이의 방어막은 굳건한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 절대 방어막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럼, 그럼 도대체 로디아드에 몰려든 저 많은 몬스터들이 뭐란 말이냐?"

    그는 보고를 하는 부하에게 괜한 역정을 냈다. 그렇게 물어본들 부하의 입에서 신통한 대답이 나올 턱이 없다.

    "싸울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모았느냐?"

    "네. 그렇지만 워낙 수가 적습니다. 거기다가 저것들은 최상급 몬스터들입니다. 상대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거멘단트의 가주는 부하의 말에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시간만 있다면 모두 정리하는 것이 가능한 놈들이다.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저보다 강한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정리를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너는 가족들을 데리고 페이러드로 피신을 하거라."

    "네? 페이러드로 피신을 말입니까?"

    부하는 가주의 말에 깜짝 놀라서 예의도 잊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니다. 최대한 희생을 줄일 것을 생각해라. 어차피 밖으로 나가 있는 가문의 병력과 전사들이 돌아오면 수습될 혼란이다. 그 때까지는 희생을 막는 것이 최선일 터."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어허,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을꼬?"

    거멘단트의 가주는 허리에 찬 검을 살짝 두르려보며 테라스에서 저택의 정원으로 훌쩍 뛰어 내렸다. 그의 눈에는 가문의 정원으로 뛰어 들어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확대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감히! 이곳이 어딘줄 알고!"

    자신의 가문에 몬스터들이 발을 들였다는 사실에 거멘단트의 가주는 크게 분노했 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몸에서는 일찌기 보이지 않았던 무서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휴우, 살떨리네? 저 정도면 거의 마스터 최상급에 가까운데?"

    "그러게? 그랜드 마스터는 없는 건가?"

    "모르지 원로들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랜드 마스터 한 둘 쯤은 로디아드나 페이러드에 숨어 있을지도 말이야. 원래 어딜 가나 특이한 일들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 가끔 로디아드, 페이러드, 소르메드, 에프레드 할 것 없이 적당한 몬스터들을 한 번씩 풀어 버려야지. 아니면 저 방어벽인지 뭔지를 몽땅 날려버리거나."

    "그럼 희생이 너무 커지지 않겠어?"

    "바깥부터 부수면 그렇지만 안쪽부터 부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그런데 그것도 나중에 원망을 듣게 될 것 같아서 망설여 지기도 하고 그러네."

    "그냥 새로 만드는 도시로 사람들을 옮기는 것이 제이 좋지 않을까?"

    "일단은 귀족들을 배제해야 해. 귀족들은 실제로 강력한 무력을 지니고 있어. 그런 사람들이 신도시에 있게 되면 그들이 다시 권력자들이 될 거야. 뭐 그래서 그 힘이 고스란히 대몬스터 전력으로 쓰인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저들은 이미 안주하는 것에 익숙해진 이들이라서 말이야."

    "그래도 저 사람은 좀 다른데? 젊어서 그런가?"

    자넷이 한쪽으로 가리켰다. 자넷과 세진은 로디아드의 가장 높은 곳, 즉 신전의 종탑 꼭대기에 있었기에 어지간한 곳이면 모두 한 눈에 살필 수가 있었다. 그런 자넷의 시선에 잡힌 사람은 자히락 가문의 가주였다.

    그는 로디아드를 휘저으며 몬스터들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줄기줄기 뻗어 나오는 강력한 에테르 결집체가 그의 실력이 마스터 중급을 상회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만 보니까 저 녀석 몬스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응? 무슨 소리야?"

    세진의 말에 자넷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놈, 로디아드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래서 지금 어리가 움직이는 곳으로 쫓다 다니는 거야. 사람들의 기척이 사라지는 곳을 향해서 움직이고 있는 거지."

    "어머, 정말이네? 대단한데? 감이 좋은 건가? 그런데 왜 저렇게 뛰어다니지?"

    자넷이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질문의 답은 분명했다.

    자히락을 비롯한 다섯 가문의 일반인들이 속속 실종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수련을 해서 익스퍼트 이상이 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하나씩 사라지더니 결국 모두 모습을 감췄다.

    그래서 자히락의 가주도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찾기 위해서 눈이 벌겋게 되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저기도 있네?"

    "응. 다들 이제 알아차린 모양이야. 가족들이 사라진 것을 말이야. 거멘다트의 가주도 페이러드로 향했던 가족들이 없어진 것을 안 모양인데, 아주 기세가 사나워졌어."

    "그래도 아쉽네. 가주들 몇 정도는 다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실력들이 좋아. 거기다가 호위들도 만만치 않고."

    "그러게 예상 보다는 두 배는 더 많은 호위들이 남았어. 처음에 저들이 테르켓트의 악몽을 계획할 때에 파견하기로 한 숫자의 절반 정도만 보낸 거야. 실력자들을 남긴 거지."

    "서로를 못 믿어서 전력을 숨겨 두고 있었다는 소리네?"

    "뭐 그건 저들 모두가 예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나저나 이제 대충 끝이 난 건가?"

    = 맞아요. 세진님. 이제 대충 끝났어요. 가서 로디아드의 귀족들에게 그들의 처리를 설명하고 신도시 외곽에 풀어 놓는 것만 남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말을 들을까요?

    "만약 그들이 도시의 경비를 맡지 않겠다면 그들은 굶어야 할 거야. 테르켓트에서  온 사람들은 할 일이 있지만 그들 귀족들은 할 일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일을 하지 않으면 굶어야지."

    = 힘으로 빼앗으면요?

    "그건 도둑이나 강도나 그런 거니까 범죄자 취급을 해야지. 족쇄를 채우고 노역을 시키는 거지. 채찍으로 때리면서."

    = 어머나, 그런... 재미있겠어요. 흐음. 그런 내용도 미리 알려줘야겠네요. 적응을 잘 하도록 말이죠. 그런 저는 가서 일을 하는 것이에요. 그 말을 끝으로 어리는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세진은 언제든지 자넷을 데리고 어리의 테멜 안으로 들어갈 능력이 있으니 걱정을 하지 않았다. 생체 에테르바디의 능력이 올라간 만큼 어리 테멜을 이용하는 능력도 올라간 세진이었다.

    "저들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르겠네. 재미있을 것 같아."

    자넷이 그렇게 말하며 세진에게 기댔다. 둘은 그렇게 신전 종탑 위에 앉아서 자신들이 만든 로디아드의 악몽을 끝까지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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